이곳
이제는 국산차의 품질과 디자인 수준이 정말로 ‘국제적인’ 수준이 된 것 같다. 연간 200만대의 자동차를 해외로 수출하는, 세계에서 대여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동차 수출국에서 만드는 차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제적’인 수준일 것이겠지만, 우리나라의 메이커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전반적으로 자동차를 보는 안목이 높아진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오로지 싼 값으로만 승부를 거는 식의 수출이 대부분이었는데, 수출가격이 싸지 않다면, 품질로는 일본차들을 도저히 당해 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새로 나온 국산차를 보고 있노라면 ‘저 부분은 왜 저런 모양으로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말하자면 덜 다듬어지거나 덜 세련된, 또는 일견 어설픈 부분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었다. 그때는 주말에 세차를 하면서 차체를 닦아내다가도 ‘아, 이 부분은 살을 좀 더 붙여서 디자인했어야 해…’ 하는 식으로 디자인의 완성도에 만족스럽지 않은 곳이 있곤 했다.
그러한 국산차의 디자인에 대한 불만은 필자가 자동차 디자인이 특기에서 직업으로 바뀌면서 당연히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는 필자의 머리 속에 하나의 이상적인 자동차의 모습을 그려 보려고 애쓰곤 했다. 그런데 그런 ‘디자인의 불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 나온 차들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큰 문제점(물론 디자인에 대한 문제점)이 점점 적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각도에서 구석구석 관찰을 해도 디자이너들이 형상적으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얼버무린 디테일이나, 깊이 생각하지 못한 면 처리 같은 것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변화가 점진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불과 얼마 전부터 나오는 차들에서부터 ‘별안간’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조금씩의 꾸준한 향상은 계속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지속적인 발전 없이 갑작스럽게 ‘고수(高手)’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성된 차 한 대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디자인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사실 ‘전문가’는 물론이고 그런 사람이 아닌 누구라도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왜 우리나라 차는 외국의 아무개 차처럼 멋있게 못 만드느냐는 불만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말로 디자인하는 것’보다 ‘실제로’ 잘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게다가 디자인을 하는 실무 디자이너 뿐 아니라 그 방향을 잡아주는 디자인 결정권자, 나아가 경영진의 안목과 메이커의 개발 철학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차에는 실무 디자이너들의 ‘실력’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결정권자와 경영자, 그리고 그 디자인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술력 등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최근 우리나라 차들의 ‘디자인적인 성숙’은 비단 디자이너들의 실력 향상 때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아직도 디자인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차가 ‘알 수 없는 원인’들로 인해서 불쑥 나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최근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두 차 투싼과 스포티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이야기의 시작이 무척 길어져 버렸다. 필자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로 이렇게 길게 ‘뜸을 들인’ 이유는 이 두 차들이 같은 플랫폼(flat form)을 가지고 서로 다른 디자인으로 개발된 무척 대비되는 차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사례는 외국에서도 종종 있지만, 서로의 디자인(스타일)이 이렇게 다른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성능을 가진 차이지만 이 두 차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취향은 전혀 다르다.
이들 두 차는 현대자동차의 준중형 승용차 아반떼의 플랫폼을 이용해서 개발되었다고 알려진 컴팩트 스포츠 유틸리티 비클(Compact Sports Utility Vehicle, 줄여서 CUV라고도 한다)이다. 최근 미국이나 일본 등의 자동차 시장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CUV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CUV라고 구분하기 이전부터 소형의 SUV가 있어 왔지만, 최근에 여러 메이커에서 소형 SUV를 내놓으면서 CUV라고 구분되어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SUV는 잘 알다시피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4륜구동 차량에서부터 발전되어 공간의 활용성이 더해지면서 오늘날에 이른 차량이다. 그리고 4륜구동에 의한 험로주행보다는 주로 도시지역에서 승용차의 용도로 쓰이게 되면서 소형 SUV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소형 SUV는 1990년대 초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 때에는 크로스오버(crossover), 또는 퓨전(fusion)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승용차와 SUV의 장점을 모두 갖춘 차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이런 성격으로 나온 차들이 토요타의 RAV-4나 기아자동차의 1세대 스포티지 등이다. 그리고 그 뒤부터 여러 메이커에서 소형 SUV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1세대 스포티지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뛰어났다. 그리고 국내보다도 오히려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 때의 SUV들은 소형이라고 하더라도 차체와 프레임이 분리된 구조에 뒷바퀴 굴림 방식을 바탕으로 하는 구조로서, 이를테면 트럭(truck)과 같은 개념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에서는 SUV와 4륜구동 차량들을 모두 ‘트럭’이라고 구분한다. SUV와 화물차가 근본적으로 같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제 살펴볼 투싼과 스포티지가 프레임이 없는 일체구조식 차체(monocoque body)에 준중형 승용차의 앞바퀴 굴림 방식을 바탕으로 4륜구동 방식을 적용한 것과 뚜렷이 대비되고 있다.
어쨌든 1세대 스포티지는 트럭의 개념으로 설계된 차이다보니 승용차에서와 같은 섬세함이나 깔끔한 마무리는 다소 부족했었다. 이런 이유로 1세대 스포티지는 4륜구동으로 주행하지 않을 때는 트럭과 같이 뒷바퀴를 구동시켜 주행을 했다. 그런데 승용차가 바탕이 된 투싼과 2세대 스포티지는 4륜구동으로 주행하지 않을 때는 승용차와 같이 앞바퀴를 굴려 주행한다. 사실 이러한 차이는 차의 겉모습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이지만, 차량의 속성과 성능, 승차감에서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1세대 스포티지가 진화한다는 측면에서 실질적인 2세대는 지금의 기아 「쏘렌토」라고 할 수 있다. 쏘렌토는 차체와 프레임이 나뉜 구조에 후륜구동 베이스의 4륜구동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온 2세대 스포티지는 차체구조는 1세대와 전혀 다르지만 도시형 소형 SUV라는 차량의 성격에서 초대 스포티지와 같은 계보(lineage)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투싼과 스포티지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살펴보자. 투싼(Tucsan)이라는 이름은 미국 중부의 지명이기도 하고, 북아메리카 인디언 중 용맹스럽다고 알려진 이로코이즈(Iroquois)족의 한 지족(支族)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차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투싼은 전반적으로 도시적이고 깔끔한 차체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어느 외국 평론가는 포르쉐의 SUV 카이엔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투싼은 전체적인 스타일 마무리에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다. 옆 유리창도 모두 연결된 흐름으로 마무리했고, 차체의 아랫부분과 앞뒤 범퍼를 모두 짙은 회색의 플라스틱 재질로 처리해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투싼의 기본형 모델에는 이 플라스틱 커버가 붙어있지 않아 차체가 그대로 나와 있고, 그에 따라 범퍼도 차체 색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기본형이 더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투싼의 차체는 포동포동하게 젖살이 오른 어린 아이 같은 느낌의 면 처리로서 귀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앞모습도 한 등급 위의 현대 산타페(Santa Fe)와 비슷하면서도 산타페의 동생쯤 되는 인상을 주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SUV 차종 체계 내에서 통일된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것에는 성공을 한 셈이다. 게다가 승용차를 바탕으로 해서 성능과 실내 디자인 등에서 이전까지의 SUV에서 느껴지던 ‘트럭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투싼은 보통의 승용차에 싫증을 느낀, 그렇지만 덩치 큰 SUV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차일 것이다.
투싼에 비하면 2세대 스포티지는 이미 초대 스포티지가 레저용 차량으로 나왔던 계보를 이어 받아 역시 캐주얼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가령 투싼이 콤비라고 불리는 양복을 입은 듯한 스타일의 차림이라면, 스포티지는 청바지차림 같은 이미지다. 그리고 스포티지는 곳곳에서 1세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사각형 헤드램프와 U자의 이미지를 가진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티브가 그렇고, 뒤쪽에 별도로 붙은 마름모꼴의 쿼터 글래스와 테일램프의 디자인 역시 1세대 스포티지의 모티브 그대로이다. 물론 모티브가 같은 것이지 형태가 똑같다는 것은 아니다. 요즘 디자인 분야에서 쓰이는 말로는 「디자인 DNA」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나 제품의 디자인에 생명체와 같은 유전자(Deoxyribo Nucleic Acid)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제품과 유사성을 유지해 나가는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가리켜 「디자인 DNA」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스포티지라는 이름은 운동(sport)과 세대(age)라는 말의 합성어로 스포츠와 레저를 즐기는 세대를 위한 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의 스포티지는 1세대의 아이덴티티를 이미지로 가지고 있지만 구조적인 면에서는 1세대의 ‘트럭 같은’ 구조와는 전혀 다른 승용차의 구조이다. 그러나 루프 캐리어(roof carrier)와 오버 펜더(over fender)를 붙이고, 도어 아래쪽의 로커 패널(rocker panel)을 검은 색으로 처리해 차체가 높아 보이는 이미지 등 전반적인 스타일이 도시적이기 보다는 4륜구동 성능을 강조한 오프 로더(off-roader)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포티지의 사각형 트윈 테일 파이프(tail pipe), 두개의 배기관이다. 상당히 강력하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준다. 물론 투싼도 두 개의 테일 파이프가 있지만 타원형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투싼의 차체 면 처리가 포동포동한 것이라면 2세대 스포티지는 약간은 마른 체격에 알맞은 근육이 있는 듯한 느낌인데, 이런 느낌이 테일 파이프의 형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디자인의 통일성에 감탄스럽다. 전체적으로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 디자인이라고 할 만 하다.
처음 투싼이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와’ 였다. 아담한 크기에 깔끔한 도시적 이미지의 소형 SUV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2세대 스포티지가 나오자 이번에도 역시 사람들의 반응은 ‘와’ 였다. 도시적인 이미지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오히려 조금 심심한 듯 했던 투싼에 비해 무언가 좀 많이 붙어 있고, 근육질로 보이는 2세대 스포티지는 투싼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가를 많이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길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치는 쇠파이프와 램프를 온통 덕지덕지 붙여놓은 SUV들을 볼 때마다 필자는 그것이 좋고 나쁘고의 판단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렇게 많이 붙여놓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렇게 많이 붙이는 것을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알맞게 붙이는 정도가 얼마만큼 인가에 대해 잘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지나친 것은 누가 보아도 지나친 것이다. 그런 점에서 2세대 스포티지는 투싼이 약간 심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알맞게 붙이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투싼과 스포티지는 같은 메이커에서 같은 구조를 가지고 개발되었지만 서로 다른 스타일과 브랜드를 가진 소형 SUV이다. 그리고 이들 두 차는 오늘날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하나의 제품(자동차)에서 과거에는 하드웨어가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둘러 싼 소프트웨어, 즉 어떤 감성과 스타일이냐가 모든 것을 결정해 주는 다양성의 시대가 되었음을 말해 주는 뚜렷한 증거인 것이다.
글&사진 제공 : 삼성교통박물관의 자동차 문화(http://www.stm.or.kr )
'Auto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Infinti G35 Sedan / An infinite of Infiniti possibilities (6) | 2005.08.16 |
---|---|
원박스카의 대명사 - 봉고 (12) | 2005.08.13 |
국산 최초의 자동차 시발 (3) | 2005.07.03 |
기아자동차 첫 고유모델 - 세피아 (7) | 2005.06.14 |
한국 최초의 4륜구동차 쌍용의 코란도 (2) | 2005.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