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 A4 / 완전히 다른 세상
직분사 터보 200마력과 콰트로 4WD로 중무장한 A4는 진작에 나왔어야 했다. 가속성능이, 섀시가, 안정감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A4는 이제야 진정 아우디다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외줄 위의 허공에서 양 다리를 활짝 벌리는 장면을 끝으로 극은 일단락되었지만, <왕의 남자>의 엔딩 크래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언제나 이런 식이다. 머리 속에는 정리되지 않은 무엇인가가 맴돌고, 개운한 듯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기분. 주워담을 얘깃거리가 너무 많아서 일 수도 있고, 꼼꼼히 분석하고 나서야 겨우 아귀를 맞출 수 있는 치밀한 플롯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가끔은 상영관 내부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절절한 음악 때문인 경우도 있다. <왕의 남자>가 바로 그랬다.
이번에야 말로 음악의 힘이 나를 영화관의 불편한 의자에 눌러 앉혔다. 2시간 여의 상영시간 전부도 필요 없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1분도 채 되지 않을 한 장면이었다. 공길을 침소로 불러들인 연산군. 놀이를 시작한 공길 앞에서 연산군은 어린 시절부터 억압되어 온 자아가 해빙하며 금쪽 같은 한 줄기 눈물을 떨군다. 이 장면에서 보여지는 감정의 흐름은 이병우의 음악에 의해 한껏 고조된다. 오선지를 떠나 스크린 위에 펼쳐진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 연산군의 눈물도, 그에 대한 애틋함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공길의 심리도 그렇게 극적이진 못했을 거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연출력, 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왕의 남자>처럼 세상 어디에나 이런 조합이 요구된다. 일상 생활에서도,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그리고 자동차라는 운송수단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해 봄 국내에 상륙한 새로운 A4는 자아의 어느 한 구석이 결핍되어있는 연산군과 닮아 있었다. 디자인에 관해서라면, A4는 '이보다 좋을 순 없다'. 3박스 보디는 정확한 비례 안에서 올바른 기능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 표현하고 있고, 이는 '적을수록 많다'던 바우하우스 가르침의 실체를 일러준다. 싱글 프레임 그릴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듯 차갑고 이성적이던 A4을 '감성 디자인'의 세계로 인도하는 한편 라디에이터 그릴의 현실적 냉각 기능까지 고려한 기능주의 디자인의 표본이기도 하다. 디자인 총책 발터 드 실바의 빛나는 성과. 절제하고 또 절제한 인테리어는 여전히 세상 어디에서나 인정 받는 감성품질의 기준점이다. A4는 독일의 디자인 감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대표 모델임이 분명했다.
다만, 국내에 소개된 A4에게는 아우디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과 끈기가 부족했다. 콰트로 4WD 시스템은 논외. 실제로 앞바퀴굴림 방식의 A4는 콰트로 시스템을 쓴 모델과는 또 다른 차원의 다이내믹함을 보여준다. 경쾌하고 긴박하다. 그건 콰트로 모델에서 누릴 수 있는 로드 홀딩 능력과 맞바꾸어도 좋을 만큼 매력적인 요소다.
그러나 1.8ℓ 터보 엔진은 아쉬웠다. 현재 폭스바겐 그룹 이사회의 회장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박사가, 아직은 폭스바겐-아우디 그룹의 총수이던 1990년대에 개발한 유닛. 흡기와 배기 밸브가 각각 3개와 2개씩 달린 이 엔진은 90년대 중후반부터 4세대 골프 GTI를 이끌고 파사트, A3와 A4 등에 두루 쓰이며 성능을 검증 받았지만 21세기의 엔진 기술 흐름에서는 이미 뒤쳐진 지 오래였다. 훨씬 이전부터 A4를 알아온, 그리고 이 차의 달라진 현재까지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이들의 성에 찰 리 없었다. 누구나 최신형 2.0ℓ TFSI 엔진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왕의 남자>와 이병우의 음악처럼 A4가 한층 A4다울 수 있는 존재. 그걸, 이제야 만나게 됐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2.0ℓ TFSI 엔진을 얹은 A4는 긴 기다림이 아쉽지 않을 만큼 달콤한 열매를 맺고 있다. 겨우 엔진 하나만 바뀐 게 아니다. 새로운 심장과 더불어 팁트로닉 자동 6단 기어박스를 맞이했고, '콰트로 없으면 아우디도 아니다'는 골수 아우디 팬을 위해 풀타임 4WD 시스템도 마련했다. A6에서 그 영특한 재주를 마음껏 펼친 전동식 서보트로닉 스티어링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그 결과 차의 성격이 크게 달라졌다. A4는 A4이되 과거 1.8 터보 모델처럼 말랑말랑하고 편안하기만 한 '시장지향적' A4가 아니다. 특히 흠잡을 데 없는 짜임새의 파워트레인과 섀시가 가슴 뻐근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만큼 훌륭하게 성장했을 진데 '기다림이야 천년을 간들 어떠랴!'
차근차근 뜯어보자. TFSI 엔진은 휘발유 직분사 유닛에 터보차저를 더한 폭스바겐-아우디 그룹 고유의 기술. 최대 100바의 고압 연료를 실린더 안에 직접 뿌리는 커먼레일 시스템으로 연소효율을 높였고 매끈한 저압 배기터빈이 소 배기량 엔진의 부족한 퍼포먼스를 채워준다. 1천800rpm의 중저속 영역부터 최대토크(28.6kg·m)를 만들어내는 알싸한 성격은, 도심 주행과 같은 실용 영역 쓰임새가 탁월한 직분사 디젤 엔진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28.6kg·m의 토크는 5천rpm의 고회전 영역까지 이어지고, 뒤이어 6천rpm까지 900rpm 더 올라가면 200마력의 최고출력이 터져 나온다. 자잘하게 따지고 드는 제원표의 숫자 놀이가 버겁다면, 간단하게 1천800rpm부터 엔진 한계회전수 언저리에 이르기까지 퍼포먼스의 빈 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
2.0ℓ TFSI 엔진은 이미 폭스바겐 파사트 TFSI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지난 2월 중순 국내 시판을 시작한 5세대 골프 GTI의 심장도 바로 이것. 세 대의 폭스바겐에 실린 TFSI 엔진은 토크 밴드나 출력 특성 등이 판박이처럼 똑같지만 차종에 따라 느껴지는 감각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파사트 안에서는 퍼포먼스를 주체하지 못하는 느낌이더니 A4로 와서는 직분사 터보의 힘이 옹골찬 섀시 안에서 맴도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TFSI 엔진은 전용 스티어링 프로그램과 스포츠 서스펜션, 듀얼 클러치 6단 DSG를 버무린 골프 GTI와 함께 할 때가 가장 돋보이긴 한다. A4와의 궁합이 적절치 못하다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하지 말도록. 엔진과 기어박스의 조화, 콰트로 4WD 시스템과의 매칭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주고 살아 숨쉬는 듯한 생동감이 전해온다. 철두철미하게 계산된 디자인처럼 도무지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근래 만나본 차들 중 가장 돋보이는 파워트레인이다. 하지만 로보타이즈 6단 기어박스에 론치 컨트롤(launch control) 기능이 없는 건 의외다. 론치 컨트롤은 1.8T 모델의 멀티트로닉 CVT에 마련된 '최대 출발가속 프로그램'으로, 타이어가 지면을 할퀴는 소리를 들으며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이 차의 가속성능을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시속 100km일 때의 엔진회전수는 2천rpm 무렵. 시속 160km로 달릴 때도 3천200rpm(이상 6단)을 넘지 않는다. 비록 오버 드라이브 모드이긴 해도 언제건 최대토크를 보장한다는 얘기다. 배기량의 한계는 여전하다. 시속 180km 이상 넘어가면 힘겨운 기색이 역력하고 최고시속은 218km/5천400rpm(5단)에서 제한된다.
서보트로닉 스티어링 시스템과 콰트로 4WD가 아니었다면 이 차가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나기는 어려웠을 터. 전동 파워 스티어링은 저속에서 충분히 가벼워 다루기 쉽다. 시속 100km 무렵에서 직접적인 응답성이 살아나고 시속 200km 근처까지 올라가도 피드백이 아득해지는 일이 없다. 중저속에서는 서보트로닉 장치가 경쾌한 핸들링을 돕고, 자동차 전용도로의 권장 속도에 이르면 콰트로 시스템이 듬직한 움직임을 뒷받침한다. 시속 120km만 넘어가도 부들부들 떨면서 조작한 대로 따라와주지 못하던 1.8T의 불안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A4 TFSI 콰트로의 움직임은 언제나 단호하고 정확하며, 탄탄하다. A4의 섀시는 정말 믿음직하다. 어지간히 몰아 붙여서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네 바퀴로 전달되는 구동력을 깔끔하게 소화해내는 235/45 R17 컨티넨탈 스포트컨택 타이어의 역할도 크다. 브레이크는 초기 응답성이 빠르고 끝맺음도 분명하다.
A4 TFSI 콰트로가 마냥 안정 지향적이기만 한 차라고 여겨지는가? ESP가 그 까칠한 진압봉을 들고 있다면 분명 그러하다. TFSI 엔진과 콰트로의 퍼포먼스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ESP를 끄고 트랙에 나서보기를 권한다. ESP가 잠든 동안에는 트랙션이 한층 활발해지고 거동도 솔직해진다. 반 박자쯤 늦은 스티어링 조작과 더불어 드로틀을 좀더 과감하게 제어하다 보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A4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글 | 김형준 사진 | 최대일
2.0 TFSI quattro
Verdict : 골프 GTI의 뜨거운 심장을 공유했다. 훌륭한 스티어링 장비와 콰트로 시스템도 마련했다. 그 결과, 모두가 애타게 바라던 탁월한 아우디로 거듭났다
Price : 5,260만 원
Performance : 0→시속 100km 가속 7.7초, 최고시속 235km, 주행 연비 10.7km/ℓ
Tech : 4기통 1984cc 직분사 터보 200마력, 28.6kg·m, 4WD, 1610kg, CO2 배출량 n/a
에어컨(O), 네비게이션(×), CD플레이어(O), 알루미늄 휠(O, 17), 가죽시트(O)
기사&사진 제공 : 톱기어 200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