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0 - 속속들이 밝혀지는 드라이버(part 4)
이거 연재하는 다른 사이트에는 제가 용어 사전을 만들었거든요?? 근데 여기는 용어 사전이 따로 필요 없을거 같아요. -_-;;;;;;;;
진행 시작합니다.
2013년 1월 28일, 미국 안젤라 시티 특별구.
USC Archangel Racing의 2013년도 출정식이 열렸다. 주목할 사항이 있다면 남북 아메리카/유럽계 드라이버들 사이에 끼인 1명의 아시아인 드라이버. 이날 행사에는 송재혁이 델타 로지스틱스의 대표인 Dr. AD와 함께 관람객으로 참가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할 줄 알았더니 여기서 하는군요.”
“아무래도 모기업인 United Star Corporation의 본사가 이곳에 있으니까요. 이 행사는 모기업의 전년도 실적 발표도 겸하거든요.”
“보통 같으면 실적 발표는 일찍 할 텐데, 의외인데요?”
“아시겠지만 대기업의 레이싱 참전은 기업 홍보도 겸하고 있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글쎄요. 저희는 이야기가 다른 게 아예 대표님이 작정하고 법인 등록을 해버리셨거든요. 원래는 대기업 내의 한 사업부였지만 확대를 검토해서 만든 게 바로 지금의 이글 모터스포츠니까요.”
이글 모터스포츠는 본래 이글 코퍼레이션 산하의 모터스포츠 사업부가 더욱 더 본격적인 모터스포츠 활동에 나서기 위해 2008년 종전의 사업부 체재를 개편하면서 신규 법인을 신설했고 당시 사업부 책임자이던 송미옥을 초대 대표로 선임했다. 이렇게 독자 법인을 꾸린 이글 모터스포츠는 2010년 초에 정식으로 레이싱팀을 창설하고 유럽 FIA GT3 European Championship에 출장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강 블랙버드 레이싱 팀을 인수, 레이싱팀의 기반을 더욱 다지게 된다. 이후 마츠자와 유카(松沢由宇か)와 사쿠라이 레이카(櫻井麗華, 현 이글 모터스포츠 일본지사 부사장)라는 두 여성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2011년 초, 이재연과 박영준을 유럽 무대에 진출시킨 이후 2011년 중반, 일본 슈퍼 GT에 이글 모터스포츠가 참전했고 2010년 중반부터 슈퍼다이큐에도 진출, 12년 슈퍼레이스에는 채서인이라는 젊은 드라이버를 합류시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망의 2013년, 전격적 공략을 위해 박준혁, 유경진 등의 드라이버와 송재혁이라는 경영업무가 가능한 드라이버를 더했으며 지금 협상 중인 드라이버들만 더하면 상당한 진용을 갖출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지 외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팀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독이 되지 않을까요?”
“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러한 독을 맞더라도 홍보가 이뤄져야 투자도 들어오고 회사가 살아날 수 있는 겁니다. 경영상에는 그러한 리스크도 고려해야겠죠. 물론 제가 경영에 대해 완벽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때마침 송재혁이 안젤라 시티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신문 기자들의 눈이 모두 몰리게 되었다. 사실 송재혁이 Delta Logistics와의 협상을 위해 혼자 온 것은 아니었다. 이날 회동에는 송재혁의 파트너로 일본 도쿄의 이글 모터스포츠 지사에 있던 사쿠라이 레이카 부지사장이 송미옥 대표에 의해 긴급히 파견, 송재혁을 백업하게 했다.
사쿠라이 레이카는 마츠자와 유카와 동년배인 여성으로 과거 유카가 자위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같이 일했던 여성이었다. 2003년, 모종의 사건으로 자위관 생활 및 정보요원 근무를 그만 둔 후 유카가 지방에서 은둔하던 그녀를 찾아낸 것은 2007년, 죽고 싶다던 레이카에게 유카는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고, 이후 2년간 레이카는 유카의 집에서 동거하면서 유카의 그림자로 지냈다. 그러다가 2010년에 이글 모터스포츠에 합류했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사쿠라이 양, 오늘 이 자리가 마음에 안 드신 겁니까?”
“아니에요. 다만, 보는 눈이…… 많네요.”
Dr. AD의 질문에 대한 사쿠라이 그녀의 대답, 재혁도 주변을 한번 돌아봤다. 확실히 보는 눈이 많았다. 송재혁이 직접 왔다는 것만으로도 기자들에게는 엄청난 정보가 될만 했다.
잠시 여기서 화제를 돌리기 전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재혁과 레이카의 복장을 잠시 살펴보자. Dr. AD의 비서와 함께 서서 대화중이던 사쿠라이 레이카가 입은 정장은 일본 애드 루쥬(Add Rouge, アッドルージュ)제 정장이었고 송재혁은 한국의 제일모직에서 제조한 로가디스 콜렉션 정장이었다. 본래 송재혁은 유럽에서 파크랜드에서 만든 정장을 입었지만 합류 직후 대표인 송미옥이 경영 업무에 나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정장이라고 하면서 새로이 맞춰준 것이 지금의 정장이었다. 물론 송미옥의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된 옷이었다.
이글 모터스포츠와 델타 로지스틱스가 무슨 연유로 만났는지에 대해 기자들의 눈이 이곳 안젤라 시티에 쏠렸지만 양 측 모두 정보를 주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렇다. 회사의 사정이 걸린 문제를 어떤 다른 이에게 알려준단 말인가? 더더군다나 두 회사는 스폰서 관계이다. 지금 레이카가 송재혁 쪽으로 오자 Dr. AD가 당황해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자들의 눈이 많다는 것을 그녀가 먼저 알아챈 것이다.
“장소를 좀 옮기죠.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요?”
안젤라 시티, 시내의 한 비즈니스 호텔, 송재혁과 사쿠라이 레이카, Dr. AD와 그의 비서가 앉아 있었다. 실질적인 양자회담, 그리고 송재혁의협상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무대에 송재혁 자신이 직접 오른 것이다.
“도입 차량의 운송 요청이요?”
“네, 그렇습니다.”
재혁의 발언에 Dr. AD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글 모터스포츠에서 신 경주차를 도입할 예정이라는 것은 그도 들은 바가 있었다. 이미 송미옥 대표는 올 초 신형 경주차의 도입을 확정 짓는다고 했고, 그 상황에서 대강의 참전 계획이 공개된 이상, 출격 차량도 확정되었는데, 하필이면 도입결정 차량이 메르세데스 벤츠 SLS AMG C197 GT3이었다.
다만 이차는 의외로 Dr. AD가 싫어하는 차종이었는데, 화살같이 날렵한 SLR McLaren과 달리 SLS AMG는 1950년대의 전설적인 스포츠카인 300SL의 디자인을 다시 살리다보니, 전체적으로 약간 높아진 감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람 속을 누가 알겠는가?
“혹시 지난번에 언급하신 SLS입니까?”
“네, SLS AMG GT3입니다.”
“하필이면 SLS AMG입니까?”
“벤츠의 스포츠카 중 유일하게 현행 GT3 호몰로게이션을 받은 차는 그 차 하나였습니다. 과거의 Group A였다면 아마 전 190E의 도입을 요청했겠죠. 그러나 현재 저희가 이번에 SLS AMG GT3을 투입시킬 경주는 슈퍼다이큐(スーパー耐久) 레이스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사실이다. 2011년 ST-X란 명칭으로 신설된 ST-GT3 클래스는 FIA GT3 호몰로게이션을 통과한 경주차들이 벌이는 내구레이스 클래스이다. 현재 닛산, BMW, 메르세데스 벤츠가 격돌을 벌이는 가운데 다른 업체들도 나설 가능성이 있었지만 사실상 어려운 가운데 이글 모터스포츠의 대표 송미옥은 일본 지사가 직접 도전하는 방식을 취해 여성 드라이버로 팀을 꾸려 ST3 클래스에서 활약해 온 이글은 2012년 ST-GT3의 경기 현황을 지켜보고 참전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 여러 차들을 골랐는데 BMW는 이미 Super GT에서 쓰고 있기 때문에 정비하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Super GT에서 고장난 부품을 슈퍼 다이큐에서 쓰거나 그 반대의 일이 생기게 될 경우는 어찌될까? 이 경우에는 100% 사고가 터지게 된다. 그걸 감안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BMW는 제외, 그렇다고 닛산? 현지 메이커이긴 하지만, 이걸 골랐을 경우 송재혁이 떽떽 거릴 확률이 굉장히 높다. 사내 역사교육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닛산의 만주 진출에 대해 알고 있는 재혁이 이 사실을 알면 일본 지사와 본사가 뒤집히는 것은 순식간. 더군다나 사내 역사교육을 제안한 것이 재혁인데, 이걸 알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이걸 감안한 본사의 압박으로 이것도 취소. 결국 독일 벤츠의 차를 골랐는데, 이렇게 도입을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들여올지를 검토한 끝에 결국 Delta Logistics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그룹 내의 이글 로지스틱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른 회사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은 이글 로지스틱스가 이쪽 부분에 정통하지 못했기 때문, 그리고 주력이 국내 업무니, 별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제 성향 아시잖습니까?”
“압니다. 저희야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SLS AMG가 나온 배경도 아시는 분이니 뭐 할 말은 없습니다만, 별 수 없습니다. 이미 발표도 했고, 곧 있으면 출정식과 함께 등록 신청을 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저흰 예정된 셰이크다운(shakedown)도 못해요. 게다가 스폰서 문제도……”
셰이크다운, 말 그대로 시운전, 연습에 의한 조정 및 정비기간을 의미하는 레이스 용어였다. 당장 금년에 대규모 신 경주차 투입이 예정된 이글로서는 전 캠프에서 셰이크다운이 필요했고, 새로이 뛰는 차들은 특별히 한국에서 1회, 각 지역에서 1회 셰이크다운을 할 예정이었다. 계획상 2월 말 이전에는 셰이크다운 및 출정식이 마무리되어야 했다. 물론 이것은 유동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3월 초엽에는 끝나야 했다.
그럼 여기서 잠시 왜 SLS AMG가 나오게 되었을까? 본래 SLR McLaren은 메르세데스 벤츠와 고든 머레이가 있었던 맥라렌 오토모티브의 합작이었다. 전설적인 레이싱카 디자이너인 고든 머레이는 맥라렌에 있을 당시 McLaren F1의 설계자였는데 그는 혼다의 NSX를 상당히 극찬했던 인물로 SLR의 설계를 총 지휘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소속된 맥라렌에서 벤츠의 요청을 받아 만든 차량이 이 차였는데 당시 메르세데스는 맥라렌 F1 팀에 엔진을 공급해 오던 상황에서 모기업인 다임러 벤츠가 1998년 크라이슬러와 합병, 사명을 다임러크라이슬러로 고치고 구 크라이슬러 쪽에 메르세데스의 문화를 이식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투자자금이 필요했던 벤츠는 당시 자신들이 엔진을 공급하고 있던 맥라렌과 연합해서 고급 GT카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SLR McLaren이었다. 다만 판매대수, 그 방식을 놓고 벤츠와 맥라렌 간의 이견이 생겼는데, 맥라렌은 종전의 McLaren F1처럼 슈퍼 스포츠카의 희소성에 중점을 둬서 연 생산량을 제한하고자 했으나 벤츠 측은 돈이 급했던 상황이라 대량생산을 요구했다. 결국 벤츠의 엔진과 고든 머레이의 설계를 바탕으로 맥라렌에서 벤츠의 브랜드로 생산했지만 역으로 크게 안 팔리면서 실패를 맛 봤다. 이 때문에 벤츠는 맥라렌과 공동으로 스포츠카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백지화하고, 새로운 스포츠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6.3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얹은 벤츠 SLS AMG였다. 그리고 맥라렌도 독자적으로 슈퍼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MP4-12C.
이런 복잡한 과정 때문에 SLR을 과연 벤츠의 차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지만 메르세데스 벤츠의 M155 ML55 엔진(M113계 엔진)을 얹고 메르세데스의 이름으로 팔렸다는 것 때문에 메르세데스의 차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SLS AMG GT3……, 도입은 필연인가요?”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도 목표한 시점이 있으니 말이죠.”
재혁의 설득에 넘어갔기 때문일까? 3시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모두 지쳐서이기 때문일까? 사실, 어찌 보면 이건 마라톤협상의 끝을 달리는 일이었다. 차량 도입에 스폰서 문제가 완벽하게 겹치면서 여러 의견이 나왔다. 양쪽 다 갑론을박하면 한 수준 하는 정도였고, 노련한 사업가 대 젊은 이사의 대결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수행원들도 양쪽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당장 송재혁이 이번에 수행원으로 데려 온 사쿠라이 레이카는 일본 자위관 출신으로 상당한 정보력을 갖췄고, 지사 부사장 선발 당시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이글 모터스포츠 일본 지사 부사장에 손쉽게 올랐던 실력가였다. Dr. AD의 비서인 아그네스(송재혁은 그녀의 이름을 협상 중에 Dr. AD에게 듣고서야 알았다.) 역시 상당한 식견을 자랑하는 여성으로서 멀티 내셔널 기업 중 톱 급에 드는 물류업체인 델타 로지스틱스를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분명 이글 그룹 내에 물류 회사인 이글 로지스틱스가 있는데, 왜 굳이 이글 모터스포츠는 델타 로지스틱스에 운송을 요청한 것일까? 단순히 스폰서 문제와 얽어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는 법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글 그룹의 계열사인 이글 모터스포츠가 어떠한 경로로든 같은 계열사인 이글 로지스틱스에 일감을 준다면, 다른 계열사도 이글 로지스틱스로 일감을 줄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는 공정거래법에 의해 부당거래로 인정받아 법에 저촉된다.
대한민국 정부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조인 기업집단의 범위 제1항에 의하면 ‘동일인이 단독으로 또는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이하 "동일인관련자"라 한다)와 합하여 당해 회사의 발행주식[「상법」 제370조(의결권 없는 주식)의 규정에 의한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다. 이하 이 조, 제3조의2(기업집단으로부터의 제외), 제17조의5(채무보증금지대상의 제외요건), 제17조의8(대규모내부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및 제18조(기업결합의 신고등)에서 같다] 총수의 100분의 30이상을 소유하는 경우로서 최다출자자인 회사’라고 했고, 그 항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자, 그럼 여기서 이글 코퍼레이션, 이글 모터스포츠, 이글 그룹, 이글 로지스틱스의 대표들은 각각 어느 항목의 적용을 받을까? 답은 가항, ‘배우자, 6촌 이내의 혈족, 4촌이내의 인척(이하 "친족"이라 한다)’에 걸리게 된다. 이글 그룹의 총수는 사실 이글 코퍼레이션과 이글 로지스틱스 대표의 아버지이며, 이글 모터스포츠의 대표는 이글 코퍼레이션 대표의 아내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송재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짧은 기간 안에 대규모 내부거래의 발생 시 정식적으로 증권시장에 공시를 해야 했고, 만일 이를 어길 시 과태료가 붙게 되는데, 이 액수가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공시도 안 했을 시 7천만 원인지라 그룹 차원에서는 과태료를 내느니 차라리 법을 지킨다는 처신 때문에 다른 회사, 그것도 스폰서라 할 수 있는 델타 로지스틱스에 의뢰를 해 온 상황이었다.
이렇기에 이글로서는 계열사에 일감을 주는 것보다는 독립/중소기업에 개방하거나 경쟁 입찰하는 방식을 채용해오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국제 배송이기에 결과적으로 전문 배송 업체에 맡기는 편이 편했고, 델타 로지스틱스에도 이 일은 유리하게 전개되기에 양 회사 간의 거래는 사실상 윈윈이라 볼 수 있었다.
송재혁이 미국에서 협상을 마무리 지어가던 2013년 1월 29일 오전, 일본, 도쿄도 하네다 공항.
김포에 있는 전용기를 탄 미옥이 가고시마를 가지 않고 도쿄에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의외의 내용이겠지만 사건은 미옥이 재혁을 파견 보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옥은 재혁에게 여러 가지를 지시하는 상황에서 스폰서 문제를 언급했다. 당시 이글 모터스포츠는 델타 로지스틱스와 처음 맺었던 스폰서 계약의 기간이 만료되면서 연장을 하든지, 아님 신규 스폰서의 영입이 절실했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재혁은 스폰서의 추가적 영입과 함께 기존 스폰서와 추가 계약을 하는 것을 본사에 제안했고 이를 미옥이 수용하게 된 것이다.
당시 미옥은 이글 모터스포츠 일본 지사를 비롯하여 원 모기업이던 이글 코퍼레이션의 각국 지사를 통해 2013년 이후 스폰싱을 해줄 회사나 단체와 접촉을 해오고 있었다. 당시 사내에서는 일본 굿스마일 레이싱(이하 GSR)이 각 개인에게 1인당 1만 엔만 내면 당신도 팀의 스폰서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에서 착안을 얻어 우리도 그렇게 해 보자는 제안을 하는 직원이 꽤 있었지만 마츠자와 지사장의 반대로 무산된 바가 있었다. 그럼 GSR의 특성이 어떤지를 통해 잠시 이러한 사업의 특성을 살펴보자.
GSR의 모기업인 굿스마일은 본래 피규어 제작 회사이다. 피규어란 실제 사람이나 캐릭터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서 축소시킨 장난감인데, 굿스마일은 넨드로이드와 피그마라는 두 가지 브랜드를 가지고 사업을 전개해왔다. 이런 와중에서 2008년부터 회사가 모터스포츠에 도전하게 되자 이 회사다운 행보를 보였는데 1만 엔 이상을 내면 아예 개인 스폰서 명단에 올려주겠다는 것. 이것이 인기를 끌면서 2011년 시즌에 1만 명 이상이 몰렸고 2012년에도 확대되었다. 이런 방식을 채용하자는 의견이 이글 코퍼레이션/이글 모터스포츠 일본 지사에서 나왔지만 현재 국내에서 모터스포츠의 인기가 크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개인 스폰서 모집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 송미옥의 생각이었다. 특히 GSR의 모기업인 굿스마일 컴퍼니의 사업 영역을 확인한 이후 미옥의 이러한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비영리 재단인 카구라 재단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카구라 재단은 최근 몇 년 간 일본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여러 활동을 해오면서 인지도를 쌓아올린 이 재단이 이글 모터스포츠에 투자를 하겠다고 제의를 해왔다. 무슨 일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는데 그것은 현 이사장이 전일본 로드 레이스(MFJ All Japan Road Race Championship)에서 우승한 전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카구라 재단의 이사장이 오토바이 레이스 매니아라서 지원할 리가 없잖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터사이클 레이싱 팀을 지원하는 게 낫지 않아?”
하네다에서 바로 입국 심사를 마친 후 일본 지사에서 준비한 도요타 크라운 마제스타 URS206에 오른 미옥은 그 자리에 있던 마츠모토 슈이치(松本しゅういち)에게 한마디 던졌다. 마츠모토 슈이치는 이글 모터스포츠 저팬의 직원으로 근무 부서는 대외 협력팀. 본사에서는 송재혁이 있는 그 부서였다. 차이가 있다면 마츠모토 본인은 대회 출장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레이싱과는 문외한이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죠. 문제는 대표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잠잠할 때마다 들리는 황태현 선수의…….”
“스톱. 거기까지. 뭐,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군.”
이번 제안을 처음 확인한 것은 다름 아닌 마츠모토 본인이었다. 일본 지사 내에서 낸 의견이 본사의 반대로 반려 당하자 마츠모토 본인이 직접 작정하고 여러 기업체, 단체에 제안서를 제출한 결과 카구라 재단 측의 투자 제안이 의외로 상당했기에 본인도 경악하고 송미옥 대표에게 보고, 실무 접촉을 그가 거의 다 했고 중요한 조율만 남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카구라 재단은 최근 몇 년간 일본계 재단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행보를 보여서 산케이 같은 곳에서는 아주 비난을 퍼붓기도 했었죠.”
“그건 사실이지. 내가 마츠모토 군에게 지시한 거 기억나? 제안서 받자마자 바로 자료를 내놓으라고 압박해서는…….”
“대표님, 전 그 때 정말 제대로 지옥을 맛 봤습니다. 왜 한국 사람들이 그러잖습니까? 군대를 2번가는 것만큼의 악몽이 없다고요. 근데 전 자위대도 안 갔는데 그 고통을 겪게 하신 겁니까?”
차 운전석에서 그 말을 하는 마츠모토를 본 송미옥은 마녀의 미소를 지었다. 송미옥은 제안서를 받자마자 미국 출장을 준비하고 있던 사쿠라이 레이카에게 지시해서 마츠모토에게 카구라 재단의 현황, 자금력, 최근 5년 내의 활동 등에 관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한국어/일어로 만들어 대표인 자신에게 다이렉트로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마츠모토는 지시를 받자마자 2개 국어로 종합 보고서를 만들어 올렸는데, 워낙에 재작성 명령이 많았는지라 마츠모토는 재작성 명령이 떨어지면 자신은 집에 가기 다 틀렸다고 판단해 아예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속되게 말해서 보고서 자체가 직원을 갈아서 만든 보고서인지라 담당자는 죽을 맛이었고 그걸 본 다른 직원들의 멘탈도 무너지는 효과를 초래했으니 송미옥의 악마본색이 드러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온 보고서를 가지고 협상 계획안을 짜다보니 지금에 이른 거지만, 의외로 계획된 협상 내용은 알찼다. 실무 회의에서는 대략적인 계획이 나왔는데 대충 잡힌 내용을 보면 스폰싱 범위는 전 세계, 프라이머리 스폰싱은 사실상 불가능, 일반 스폰싱이지만 기간이 꽤 길다. 정확한 기한은 대표 협상에서 결판나겠지만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적어도 짧으면 5년? 길면 7년 내외이다.
‘장기적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편할지도 몰라. 아베 신조는 지속적으로 일본의 경기 부양과 엔고를 위해 돈을 풀고 있어. 이런 상황이라면 장기적으로 스폰싱을 받아오는 게 유리해. 물론 스폰싱 금액도 문제지만 말이야.’
스폰싱 협상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스폰싱의 규모, 기간, 그리고 스폰싱에 들어가는 금액이다. 스폰서는 말 그대로 어떠한 팀이나 행사 등에 기부금을 내고 그것을 후원하는 존재이다. 이글 모터스포츠의 현재 스폰서 중 중심 스폰서는 역시나 계열사인 이글 코퍼레이션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다른 스폰서들이 줄줄이 걸려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각 차의 제작사는 물론이거니와 타이어 공급체, 운송업체 등이 보통 모터스포츠 팀의 스폰서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글 모터스포츠는 팀 창단 초기에 스폰서 선택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본사에서 정한 조건을 맞춘 스폰서를 구하기란 어려운 수준이었다.
더욱이 일본계라면 더욱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더욱 까다로운 조건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2012년까지 이글 모터스포츠는 일본계 스폰서를 둔 전례가 없었다. 특히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부속하여 터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가 도쿄전력(東京電力, Tokyo Electric Power Company, TEPCO)의 엄청난 삽질로 인하여 터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적어도 한동안 일본계 스폰서를 구하는 일은 틀렸다라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의외의 제안이 나온 것이었다.
사실 카구라 재단으로서도 이번 이글 모터스포츠의 제안은 의외로 솔깃한 것이었다. 동일본 대지진과 연속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누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일본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덤터기 쓴 격이니 뭔가 대책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글 모터스포츠의 스폰싱 제안은 상당히 좋은 제안이었다. 즉 양측 모두 이런 저런 생각을 가지고 회담을 하게 된 것이다. 고민하던 미옥은 협상장소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장소는?”
“에……, 도쿄도 치요다구에 있는 제국호텔도쿄(帝国ホテル東京)입니다.”
“신본관인가?”
“네.”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 당시 제국호텔 도쿄의 본관이던 소위 라이트관은 270실, 제1신관은 170실, 제2신관은 450실로서 총 890실의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일본의 영빈관이라 불리는 곳이던 이곳의 위치상 본관의 객실수는 너무 작았다. 지역적으로도 긴자, 마루노우치 사이에 있는 곳으로서 교통의 요지였다. 우치사이와이초(内幸町)역에서 3분, 인근의 히비야역 등지에서도 도보로 올 수 있고 치바현 나리타공항에서는 차로 1시간 30분, 도쿄도 하네다공항에서는 45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였기에 아무래도 새로운 건물의 건설이 필요했다. 게다가 당시 본관은 누수와 지반 침하, 노후화 등으로 인하여 더 이상 사용이 어려워지자, 일본 정부는 현관을 보존한 뒤 1968년까지 건물을 철거한 후 2년 만에 새로운 건물을 지었는데 그게 지금의 제국호텔 본관인 셈이다.
다만 이 호텔은 미옥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웬수같은 곳인데, 여기서 협상하면 잘 안되던 징크스가 그녀에게 있었다.
오전 11시 30분, 제국호텔 본관 5층, Executive Service Floor. 1층의 로비에 선 크라운 마제스타에서 내린 송미옥 일행이 도착한 그곳에는 카구라 재단에서 온 사람이 서 있었다.
“이글 모터스포츠의 송미옥 대표님 맞으신가요?”
“맞습니다. 카구라 재단의 이사장님께선……?”
“지금 와 계시는데요, 두 분 모두…….”
“네? 그게 무슨 말이신지?”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카구라 재단의 구성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 카구라 재단은 이사장 외에 이사회 의장직이 하나 더 있다. 보통 대외적인 일은 이사장이 맡지만 실제적으로 이사회 의장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노릇. 다만 대외적으로 이사회 의장이 직접 나서는 일이 없기에 이번 일은 미옥의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울 노릇이었다. 현재 일본지사의 지사장과 부지사장이 전부 출장중(그나마 지사장인 유카는 거의 협의가 끝나서 도쿄에서 입단식을 치르겠다고 한 상황)이니, 일단 급하게 유카에게 데이코쿠 호텔로 오게 할 것을 지시했다. 협상은 식사 후에 시작하기로 결정되었기에 유카가 도착할 타임은 오후 1시였다.
유카는 미옥으로부터 문자를 받고 당혹해했다. 1시까지 제국호텔도쿄로 오라니. 지금 시간이 오전 10시인데, 도쿄까지 오라니? 이건 무리수였다. 아무래도 밟으라는 것도 아니고.
“5분 만에 가는 것은 무리겠죠?”
“10시 50분 것을 타는 수밖에 없어요. 출발하시죠.”
마침 젠가도 이날은 수련이 있어서 먼저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 즉시 출발이 이뤄졌다. 이동하면서 그녀는 항공권을 예매하고 있었다. 유카의 머릿속에는 이런 계획이 잡혀 있었다.
10시 50분발 하네다 행을 타고 12시 30분 하네다 공항 도착, 체크 완료와 동시에 주차장으로 나와서 준비된 닛산 스카이라인 KV36 세단을 몰고 전속으로 달리는 것. 현실적인 한계였다.
오후 12시 58분, 도쿄도 치요다구 제국호텔 1층, 은색 스카이라인 세단이 재빠르게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여성은 빠른 속도로 5층으로 올라가 도착 신고를 했다.
“유카, 조금 늦었어.”
“알아요. 그렇다고 10시에 문자를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미리 주셨어야죠.”
“그건 일단 미안하다고 해두지. 어쨌든, 유카. 좀 골치 아파졌어.”
“무슨 문제죠?”
“카구라 재단 이사장과 이사회 의장이 모두 왔어.”
“네?”
유카마저 당혹한 상황. 사실 그녀도 이러한 전력은 처음이었다. 즉 대처 방안을 준비하지 못한 것, 더더군다나 이사회 의장과 이사장 직책이 분리된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만 했지만 이런 경우는 이글 모터스포츠 창사 이래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부딪혀본 다음에 그 자료를 가지고 다음에 유사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회사에서 이런 일이 터질 때 대비할 수 있는 기록이 되지 않겠는가?
이번 편에 등장한 차량이 2대인데, 한 대는 일본 지사의 업무용 차량인 닛산 스카이라인 KV36(국내명 : 인피니티 G37)이며 한 대는 회사 중역용 차량으로 쓰이는 도요타 크라운 마제스타 URS206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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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스카이라인 세단 KV36. 국내에서는 인피니티 G37로 팔린다. 플랫폼은 닛산 페어레이디 Z Z34(370Z)와 공유중이며 엔진은 V형 6기통 3.7리터 330마력과 V형 6기통 2.5리터 225마력의 자연흡기 엔진 2종. 변속기는 7단 자동, 후륜구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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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쓸데 없이 높은 고증은 어떤다??? ㄱ-
- 실제 법조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아 이 빌어먹을 고증력. ㅠ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