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550i / 현존 최고의 V8 조율사
550i가 무시무시한 고성능 세단이라는 사실은 이미 단단히 자리잡은 상식. 367마력의 최고출력은 4단에서 시속 200km를 넘기고, 코너에서는 뒷바퀴굴림차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테크닉을 뽑아낸다. 듀얼 머플러가 뱉어내는 묵직한 배기음이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한다
친절하게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가 현재의 속도를 스티어링 휠을 움켜쥔 손등 너머 윈드실드에 비춰준다. 굳이 속도계를 내려다 보지 않고도 시속 185km로 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액셀러레이터는 밟은 만큼 정확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엔진을 좀더 다그칠지 이쯤에서 멈출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들짐승 같은 배기음은 '어디 한번 멈추기만 해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억센 차의 기세에 지레 겁먹은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기어레버를 쥔 선에는 어느 틈엔가 살짝 힘이 들어간다. 기어를 4단으로 내린 다음, 액셀러레이터를 한번 더 밟는다. 차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무섭게 튀어나간다. 그래도 불안하다거나 시속 200km 이상의 속도에 대한 두려움이 일지 않는다. 이 차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상의 궁극적 드라이빙 세단. M버전을 뺀 BMW 5시리즈의 맏형. 바로 550i다.
550i가 무시무시한 고성능 세단이라는 사실은 늘 머리 속을 맴돈다. 하지만 스포츠성이 가미된 실내 장식이나 과격한 에어로 파츠 따위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휠 디자인으로 숨은 고성능을 엿볼 수 있다지만, 전체 실루엣은 일반적인 5시리즈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 점이 맘에 든다. 이 차가 M5처럼 우람한 에어로 파츠를 지녔다면, 멀리서도 금세 고성능을 알아챌 수 있었을 거다. 잘난 티를 줄줄 내고 돌아다녔다면 그 누구도 어울리려 들지 않았을 거다. 메르세데스 벤츠 E 55 AMG 정도라면 달려들지도 모를 일이다. 드러내지 않은 고성능은 몇 배는 더 짜릿한 법이다.
스타트 버튼을 눌러 시동음을 듣노라면, 이 차의 성격이 모호해진다. 분명히 무시무시한 차라고 했는데…. 예전 750i에서 만났던 V8 5.0ℓ 엔진은 순간순간 커다란 차체를 놀라게 했지만 결론은 역시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같은 엔진을 쓴 550i 역시 BMW 특유의 부드러운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역시 BMW야. 미소가 입가에 스민다. 하지만 이 차의 부드러움은 딱 여기까지. 게다가 7시리즈처럼 육중하지도 않으니 잠시라도 마음을 놓아선 안된다.
스티어링 휠을 쥐고 기어레버에 손을 올리면 550i의 운전석은 달리고 싶은 욕구를 정신없이 자극한다. 날개 모양으로 펴지는 헤드 레스트는 목 부위를 살며시 감싸준다. 그 와중에도 i드라이브 등 편의장비 챙기기를 빠뜨리지 않은 걸 보면 희미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시속 200km로 질주할 때조차 손가락 하나로 모든 편의장비를 다룰 수 있다는 건 단지 편리성에만 초점을 둔 의도가 아님은 분명한 일.
BMW의 페달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액셀러레이터는 무겁지만 반응이 빠르다. 브레이크 페달은 가벼운 대신 차체를 묵직하게 잡아준다. 필요한 만큼 정확히 나눠 밟을 수 있다. 따라서 스포츠 드라이브의 핵심인 정교한 액셀링을 손쉽게 구사할 수 있다.
낮고 떡 벌어진 체구의 550i를 좁은 주차장에서 끌고 나오기가 생각보다 수월하다. 스티어링 휠을 끝까지 돌려보면 돌린 방향으로 앞 바퀴가 살짝 올라가는 느낌이 난다. 액티브 스티어링 시스템은 저속에서는 돌린 방향보다 큰 각도로 차체를 움직인다.
게다가 대시보드 중앙의 온보드 모니터는 차체 앞뒤 장애물의 위치와 범위, 반경까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마치 소형차 몰듯 좁은 길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더 쉬울지도 모른다.
550i를 도로에 올리고 보니 367마력(6천300rpm)의 최고출력을 어떻게 요리했는지가 정말 궁금해진다. 머리 속으로는 레드존(6천500rpm)까지 팽팽하게 끌어올리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충분한 거리가 필요할지를 계산한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최대토크 49.0kgm/3천400rpm 정도면 2.2톤의 차체를 민첩하게 모는데 큰 무리가 없다. 오른발에 힘을 주면 시속 70km 부근에서 변속해 4천500rpm을 가리킨다. 변속이 일면 3천500rpm으로 떨어뜨리고 다시 시속 100km에서 기어를 바꾼다. 이후 3단에서 시속 130km로 이어진다. 이런 가속은 3천500~4천500rpm 사이에서 일어나며 생각 이상으로 빠르다. 최대토크 구간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의도. 굳이 최고출력을 뽑아내지 않아도 궁극의 고속 주행이 가능하다.
수동모드로 전환, 2단에서 6천300rpm까지 몰아대면 시속 90km 부근을 지나면서 3단으로 강제 변속이 이뤄진다. 그렇게 다시 밀고 들어가면 시속 160km, 역시 레드존 가까이서 4단으로 올라가고 거침없이 시속 200km에 이른다. 특히 높은 엔진 회전수에 가까워질수록 듀얼 머플러는 시종일관 낮게 깔리는 스포티한 사운드를 뱉어낸다. 앞뒤좌우에 있는 모든 차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신형 M5의 요란한 사운드에 비하면 꽤 순진한 편이다.
마치 탄력 좋은 두꺼운 고무줄을 친친 감아두었다가 한번에 풀어 버리는 느낌이랄까? 끈적하면서도 빠르게 달려나간다. 레드존에 치고 오르자면 얼마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냐는 생각은, 그래서 어리석은 것이었다. 550i는 6천rpm을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자주 들락거렸다.
앞만 보고 달리자니 조금은 심심해진다. 솔직히, 누군가 뒤에 바싹 따라붙어 하이빔을 켜대며 시비라도 걸어주기를 바랬지만, 이 속도에 시비를 걸 차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 기어레버 앞 ABWA(Active Backrest Width Adjustment) 버튼을 켜고 오른쪽으로 심하게 굽은 인터체인지를 돌아나간다.
ABWA는 차의 회전에 따라 운전자의 몸이 쏠리는 방향으로 시트 등받이 좌우를 부풀려 허리와 옆구리를 잡아준다. 완만한 코너에선 거의 1:1의 반응을 보인다. 편안한 세단의 시트를 유지하면서 버킷의 기능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너무 똑똑한 반응에 은근히 부화가 치민다. 일부러 정신없이 차체를 좌우로 비틀어 보았다. 역시 급하게 연속되는 회전에는 한 박자 느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심술을 앞세워 첨단장비를 시험해선 안 될 일. ABWA의 성능은 사실상 의심할 필요가 없겠다.
550i는 뒷바퀴굴림차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코너 공략 지침서다. 노란 딱지 초보자가 아닌 이상, 누가 몰든 코너에서 자신감을 심어준다. 접지력의 출발점은 단단하게 도로를 잡아주는 245/40 R18인치 런플랫 타이어. 승차감보단 주행안정성을 잡겠다는 의도다.
액티브 스티어링은 고속에서 조향 각도를 최대한 억제한다. 뒤에서 강하게 미는 550i를 생각할 때 오버스티어를 줄이려는 노력에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차체의 모든 상황은 BMW의 조율사 DSC(Dynamic Stability Control)가 맡는다. 550i에서 새로 손본 DSC는 경사가 심한 언덕에서도 차체 밀림을 막아주는 기능과, 긴급상황에서 제동 시간을 줄이는 스탠바이 브레이크, 그리고 빗길 등 브레이크 표면에 물기가 있을 때 이를 주기적으로 말려주는 드라이 브레이크 시스템 등을 더했다.
코너 진입 때 속도를 줄이자면 무거운 엔진을 얹은 프런트가 걱정이지만, 제동에 따른 무게배분이 기대 이상으로 원활하게 이어진다. 브레이크 디스크가 로터를 마찰하는 동안 4단에서 3단으로 힘을 모으고, 코너 아웃이 보일 때쯤 재빠르게 탈출을 시도한다. 주춤하는 찰나 샐 틈 없는 토크가 뒷바퀴에 전달되고 너무도 시시하게, 그것도 심하게 굽어있는 코너를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나간다. 물론 시트는 연신 내 오른쪽 옆구리를 단단히 받쳐준다.
뒤에서부터 쭉쭉 밀고 올라오는 힘과 의도한대로 돌아가주는 앞머리는 와인딩 로드에서 더욱 신뢰감을 준다. 심하게 요동치는 경우가 아닌 이상 DSC의 개입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DTC(Dynamic Traction Control)을 켜면 낮은 속도에서 완만한 커브를 돌아나갈 때 DSC의 개입이 줄어든다. 예민하게 사사건건 개입하는 몇몇 모델들에 비하면 550i는 드라이브를 즐길 여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BMW다운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
너무 내달리다 보니 550i를 마치 M5의 감각으로 대한 것 같다. 하지만 잔잔한 시동음을 지닌 부드러운 세단으로만 550i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승하는 도중 뒤에서 달려들던 몇몇 섣부른 도전자들이 금세 꼬리를 내리고 말았던 가장 큰 이유는 트렁크 리드에서 반짝이는 '550i' 로고의 위압감이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차라리 4천만 원을 더 주고 M5를 사는 게 어떠냐고 한다. 하지만 그 차는 오직 달리는 데만 모든 신경을 모았을 뿐, 일반적인 세단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은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 생각해 보자, M5의 우렁찬 배기음을 뿜어대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주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기는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세단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수퍼파워의 뿌듯함에 빠져들어 도로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차. 550i는 바로 이 때 최상의 선택이 되어준다.
글│황인상 사진│최대일
V8 4.8
Verdict : V8 조율 능력이 뛰어나다. HUD는 현재 상황을 연신 윈드실드에 비추고, 시트의 ABWA 기능은 코너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세단의 의무와 고성능을 모두 충족시킨다
Price : 12,600만 원
Performance : 0→시속 100km 가속 5.6초, 최고시속 250, 연비 - km/ℓ
Tech : V8 4799cc, 367마력, 49.0kg·m, FR, 2200kg
에어컨(O), 네비게이션(X), CD(O), 알루미늄 휠(O, 18), 가죽시트(O), 선루프(O)
기사&사진 제공 : 톱기어 2006년 3월호(http://www.topgearkore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