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des Benz CLK 350 / 화끈한 V6 272마력, 어서 주세요!
파워트레인을 통째로 바꾼 CLK 350은 그야말로 넋 나간 사람처럼 달린다. 주체할 수 없이 강력해진 V6 272마력의 퍼포먼스는 무척 감동적인데, 운전 감각은 여전히 백조처럼 우아하다
지금 나는 앞 차와의 거리며 움직임을 살피며 얼마 전 구입한 아이팟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차 안의 스피커보다 성능이 못한 걸 알면서도, 그 형편없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위험천만하게(?) 동영상도 꺼내어보고 있다. 터치 휠 패드에 손가락을 끝을 올려 살살 돌려 쓰는 재미가 쏠쏠해서 좀처럼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운전 중의 휴대폰 통화보다 더 위험한 짓을 하고있는 데 대한 변명을 해보자.
한시간 전의 일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로부터 CLK 카브리오와 쿠페의 키를 건네 받았고, 동료 기자는 쿠페 모델을 타고 먼저 떠났다. 카브리오로 서울 강남의 중심 도로에 나서자마자 꼼짝없이 퇴근 시간의 정체와 맞닥뜨렸다. 옆 창 너머로 보이던 건물이 10분 뒤에 겨우 10m 뒤로 물러나 앉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 신형 V6 3.5ℓ 엔진과 7G-트로닉 7단 기어를 올린 최신 모델이지만 272마력이나 되는 출력을 쏟아낼 형편이 아니었다. 짬이 난 김에 트립 컴퓨터의 생소한 기능과 조작법이나 익혀둘 심산이었는데, 생각처럼 쉽게 손에 익질 않았다. 스티어링 혼 패드의 네 귀퉁이에 달린 감각적 디자인의 버튼 4개로 다루는 방식인데 쉽게 손에 익지 않았다. 계기판 한 가운데의 다중 정보창에서는 어쩔 때는 라디오 방송국의 주파수가 나타났고, 운이 좋으면 평균 주행연비나 생소한 시스템 세팅 메시지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터치 휠 인터페이스를 쓰는 35만 원짜리 아이팟이 1억 원 가까운 고가의 메르세데스보다 다루기 쉽다니,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문득, 사무실 근처에서 있을 저녁 미팅에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지 조바심이 생겨났다. 시간이 궁금했다. 그러나 대시보드와 인스트루먼트 패널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스티어링 위의 서류 비슷한 그림이 그려진 버튼과 화살표를 꾹꾹 눌러봐도 시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CLK 카브리오의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탐독하는 동안 한 시간이 훌쩍 지났고 어느덧 사무실 근처에까지 이르렀다. 조급했던 마음이 누그러지자 시야도 넓어졌다. 함박만한 크기의 원형 속도계(다중 정보창이 있는 그 자리다) 왼쪽에 그보다는 약간 작은, 그래도 큼직한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아날로그 시계다. 내 아둔한 시야는 아랑곳 않고 입이 먼저 튀어나왔다. '도대체 운전 정보를 일러주는 계기판에 시계가, 그것도 저렇게 커다랗게 놓여있을 이유가 뭐람.'
이튿날 아침, CLK 카브리오와 쿠페를 한 대씩 나누어 타고 일찌감치 시승에 나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는 카브리오의 운전석을 차지했다. 한동안 영상 2~3도를 오르내리던 온도계 수은주는 때마침 불어 닥친 한파에 영하 10도까지 덜컥 떨어졌다. 밖은 정말 추웠다. 창문을 살짝 열 때마다 얼음장 같은 칼 바람이 날카롭게 귓볼을 할퀴었고 실내 온도도 성큼 떨어졌다. 소프트톱을 씌운 CLK는 그러나, 방한 대책이 철저했다. 직물 지붕의 앞머리는 윈드 스크린 프레임에 단단하게 여미어졌고 토노 커버에 밀착된 뒤 창 아래로도 따스한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았다. 풍절음 처리도 탁월했다. 주변 차들의 굼뜬 움직임을 틈타 단숨에 시속 190km까지 치달았지만 카브리오의 실내는 하드톱의 쿠페처럼 얌전하고 정숙했다.
CLK 쿠페를 타고 잠자코 뒤를 좇던 사진기자가 화사한 카브리오의 안락함을 방해했다. '지붕을 씌운 뒷모습이 썩 예뻐보이지 않더라.' 그는 톱을 열고 달려볼 것을 제안했다. CLK 카브리오의 실루엣은 지붕을 덮었을 때보다 활짝 열었을 때 훨씬 아름답다는 사실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날씨가….' 볼멘소리를 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그의 요구대로 앞뒤 양 옆으로 팽팽하게 당겨 맨 소프트톱을 젖혀야 했다.
'손발은 따뜻하되 머리는 차갑게. 그리고 뜨거운 여름보다 차가운 겨울에.' 오픈카를 타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털 모자가 달린 패딩 점퍼에 두 겹짜리의 두터운 장갑을 끼고 코듀로이 팬츠까지 껴입었지만 춥기는 매한가지였다. 윈드 스크린을 타고 넘어온 바람이 머리 꼭대기를 스치곤 뒷좌석에서 맹렬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소형 로드스터 SLK에 달린 에어스카프 시트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메르세데스는 그 시트의 타이트한 디자인이 CLK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뜨거운 공기를 팡팡 토해내는 전자동 듀얼 에어컨과 3단계로 열기를 조절하는 열선 시트가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냉엄한 환경에서 사진 촬영을 하다 보면 20초 남짓한 전동 접이식 소프트 톱의 개폐 시간도 하염없이 길게만 여겨진다.
하지만 지붕을 걷어낸 CLK가 훨씬 예쁜 건 명백한 사실이다. 여과 없이 쏟아진 햇살에 황금색의 인테리어가 찬란하게 빛난다. 카브리오의 운전석에 앉아있다가 쿠페로 바꿔 타면 회색 톤의 인테리어가 칙칙한 느낌을 준다. 카브리오는 도어 트림에 입힌 가죽 내장의 주름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이고, 가죽 소재를 엮은 한 땀 한 땀의 바느질조차 섬세하고 품위 있다. NECK-PRO 액티브 헤드레스트를 갖춘 버킷 시트는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어깨와 등골, 허리를 지나 엉덩이와 허벅지 끝부분까지 몸에 꼭 들어맞는 느낌이 좋고 쿠션 강도에 비하면 적당히 아늑한 기분도 괜찮다.
앞쪽 공간은 흠잡을 데 없는데, 뒷좌석은 영 불편하다. 양 옆구리를 타이트하게 압박하고 등받이가 솟아있어 앉은 자세가 썩 편안하지 않다. 이에 비하면 쿠페의 뒷자리는 안락한 소파나 다름없다. 카브리오가 지니지 못한 암레스트나 수납식 컵홀더도 갖췄고 등받이를 눕혀 트렁크와 이어지는 적재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카브리오의 뒤 시트 사이에는 쌍발 총의 총열을 닮은 하만/카돈 사운드 시스템의 우퍼가 자리잡는다. 쿠페는 그 자리에 소소한 짐을 놓아두기 좋은 수납공간이 있다. 카브리오와 같은 음향 시스템의 우퍼는 시트 뒤 선반으로 옮겨진다.
카브리오의 운전감각은 약간 거칠다. 무게 배분이 적절치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전동 소프트톱 시스템을 캐빈 뒤 공간에 올려두어 차가 무거워진 탓이다. 카브리오는 쿠페보다 140kg 더 무겁다. 몸무게 70kg의 성인 남자 두 명을 트렁크 안쪽 깊숙한 곳에 묻어둔(?) 셈. 쿠페처럼 세련되기가 쉽지 않을 일이다. 급코너를 돌 때는 특히 그렇다. 245/40 R17인치 타이어가 그립과 횡가속도의 한계를 만나기 전부터 뒤쪽이 묵직하게 쏠려나간다. 그래도 염치없이 엉덩이가 돌아가는 일은 없다. 바깥쪽의 뒷바퀴에 힘을 실었다가 튕겨 오르며 탄력 있게 코너를 빠져나간다. 앞머리의 움직임이나 서스펜션의 반응도 매끈한 편이 못 된다. 댐퍼는 몸을 수그렸다가 솟아오를 때의 반동이 세고 그 뒤에 이어지는 2차 진동도 깔끔하게 잡아내지 못한다. 메르세데스의 확고한 이미지가 한 순간 구겨진다. 화려하고 낭만이 가득할지언정 벤츠라는 명성에 걸맞은 컨버터블은 아니다.
쿠페는 다르다. 미묘한 감각의 차이지만 훨씬 안정감 있고 핸들링도 상큼하다. 하체가 소란스럽게 울리거나 코너링 때 엉덩이가 주춤거리는 일도 없다. 생긴 외모만큼 세련되고 유연한 동작이 돋보인다. 앞머리는 가볍게 돌아간다.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하게 스티어링 휠이 인도하는 방향을 찾아 들어간다. 하체가 탄탄하고 운전 감각은 메르세데스의 그 어떤 모델보다 긴박하다. 그래도 차분함을 잃는 법이 없다.
CLK의 스타일링은 주행감각처럼 다소곳하고 차분하다. 크리스 뱅글이 불을 붙인 이모셔널 디자인(emotional design, 감성 디자인)의 유행에서 한걸음 비껴서 있다. 보수적이면서 차분한 분위기가 오히려 유쾌하다. 보디 패널은 돌고래처럼 매끈하고 후드에서 윈드스크린, 루프를 거쳐 트렁크까지 이어지는 라인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지붕을 벗긴 카브리오의 뒷모습도 아름답긴 하다. 황금색 시트 뒤로 봉긋한 봉우리가 있는 토노 커버 디자인이 특히 돋보인다. 그래도 야들야들한 쿠페의 뒤 자태에 비할 건 못 된다. 출근길, 메르세데스의 소형 쿠페를 타고 도로에 나서면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한편으론 벤츠라는 브랜드의 무게 때문에 행동거지가 조심스럽기도 하다.
후드에서 그릴로 내려앉은 '스리 포인티드 스타(three pointed star)' 엠블럼은 메르세데스 스포츠 모델의 상징. 쿠페 라인의 엔트리 모델인 CLK는 파워트레인과 디자인 일부를 개선하고 '뉴'라는 수식어까지 달았다. 그릴을 가로지르는 네 개의 줄이 셋으로 줄고 스티어링 휠의 조작 방향에 맞춰 켜지고 꺼지는 코너링 라이트, 핸섬하고 갸름하게 바뀐 프런트 범퍼가 새로워진 부분이지만 이 정도는 변화를 위한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CLK는 구형 CLK 320의 V6 3.2ℓ 엔진과 5단 자동기어를 통째로 들어내고 최신형 파워트레인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벤츠의 찬란한 기술 창고 안에서 십 수 년 만에 꺼내어 쓴 더블 오버헤드 캠 방식의 V6 3.5ℓ 엔진이 7개의 변속 기어(전진)를 가진 7G-트로닉 기어박스와 짝을 맞춘다. 카브리오와 쿠페 모두 배기량에 맞춰 CLK 320이라는 이름 대신 CLK 350이라는 새 명함을 트렁크 리드에 올려두었다.
신형 V6 3.5ℓ 엔진은 어떤 벤츠에서건 매서운 성능을 뽐냈다. 세련미가 앞서던 SLK 로드스터에게 마초 같은 근성을 심었고, 덩치가 커진 신형 S 클래스에서도 엔트리 기함의 임무를 무리 없이 수행했다. CLK라고 다를 건 없다. 카브리오건 쿠페가 됐건 가속이 세차고 시속 200km까지도 힘들이지 않고 넘어선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카브리오보다는 쿠페의 주행감각이 안정적이고 정확하다.
ESP를 끄고, 기어 박스를 드라이브 모드에 둔다. 브레이크를 힘껏 밟고 액셀 페달을 때리면 뒤 타이어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자진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캘리퍼가 통풍형 디스크를 놓는 그 순간 CLK 350 쿠페는 찢어질 듯한 스키드 음을 만들어내며 열린 도로의 끝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나간다. 엔진 회전이 날카롭고 5천500rpm의 고회전대까지도 토크가 굵직하다. 6.4초 만에 시속 100km 가속을 끝낸다지만 눈으로 확인한 차창 밖의 풍경과 몸이 느끼는 체감 가속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몇 번씩 거듭거듭 차를 세우고 출발해봐도 어김없이 휠 스핀이 일어나고 인스트루먼트 패널에서는 ESP 경고등이 부산스럽게 깜박인다. 액셀러레이터를 질끈 밟아보면 안다. CLK 350에 실린 V6 272마력의 퍼포먼스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곱살한 외모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 욕심 부릴 것 없이 건조하게 드로틀을 열어도 속도는 어느새 성큼 올라가 있다. 바싹 긴장해서 과속단속 카메라의 위치를 살피게 되고, 유령처럼 도로를 굴러다니는 교통경찰의 동태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272마력 V6의 경이로운 성능에 비해 7G-트로닉 기어의 성능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컴팩트한 쿠페에 기어가 일곱 개씩이나 필요한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7G-트로닉의 변속 반응은 깔끔하고 매끈하다. 변속 충격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짜임새 있고 경쾌하게 움직여주어야 할 소형 쿠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크고 작은 코너가 쉴새 없이 이어지는 지방 국도에서는 기어를 내려 최적의 트랙션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단계가 많고 더디다. 기어 단수별 변속은 빠르다. 너무 높은 데서 아래까지 내려오려니 쓸데없는 시간이 들어갈 따름이다. 기어 레버를 왼쪽으로 바싹 당기고 있으면 4단 혹은 3단으로의 스킵 시프트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와인딩 로드에서 내가 원하는 기어는 2단이다. 기어가 늘어난 만큼 거쳐가야 할 절차도 늘어났다. 2단 기어로 시속 90km 부근까지 커버하고 4단으로는 시속 190km까지 가속한다. 1단에서 4단까지의 기어비는 여느 5단이나 6단 기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중고속 주행연비를 높이기 위해 오버 드라이브 기어가 세 개씩이나 달린 셈이다.
CLK 350은 자극적이지 않다. V6 엔진의 불 같은 성능, 팔꿈치 관절이 시큰거릴 정도로 강력한 브레이크 시스템을 떠올려보면 좀더 타올라도 좋으련만, 자꾸만 우아하게만 달리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게 메르세데스 벤츠가 추구하는 방향이라면 이 또한 합리적이다. 적어도, CLK 350은 솔직한 노면 정보를 받아들이며 스포티하게 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벤츠다. 그러나 여전히 내 손에는 최신형 아이팟이 들려있다. 스포티한 벤츠를 품에 넣기 위해서는 부담해야 할 돈이 적지 않다. CLK 350 쿠페는 9천30만 원, 카브리올레가 9천510만 원이다. 지금의 내게는 35만 원짜리의 30G 아이팟이 훨씬 매력적이다.
글 | 김형준 사진 | 최대일
Coupe(Cabrio) Avangard
Verdict: 새 파워트레인은 바뀐 이름 값을 충분히 한다. 화끈하고 매서운데, 우아한 습성까지는 버리지 못했다. 벤츠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난 소형 쿠페의 딜레마다
Prices: 9,030만 원(9,510만 원)
Performance: 0→시속 100km 가속 6.4초(6.7초), 최고시속 250km, 연비 9.1km/ℓ
Tech: V6 3498cc 272마력, 35.7kg·m, FR, 1550kg(1690kg)
에어컨(O), 네비게이션(X), CD플레이어(O), 알루미늄 휠(O, 17), 가죽시트(O)
기사&사진 제공 : 톱기어 2006년 2월호(http://www.topgearkore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