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206 RC와 미니 쿠퍼 S. 유럽을 대표한 두 대의 핫해치가 정면으로 마주쳤다. 성능과 사이즈, 컨셉트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너무나 많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유한다.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는다. 뜻밖에 남성적인 206 RC와 그래도 여성스러운 쿠퍼 S의 풀 스토리
벼르고 벼르던 순간이다. 적어도 핫해치 추종자라면, 한번쯤은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을 장면이 지금 막 펼쳐지고 있다. 몇 달 전, 푸조 206 RC의 운전석에 처음 앉았을 때부터 마음으로는 이미 몇 차례고 마주쳤던 두 대의 차. 때로는 승부에 관심이 가지 않는 빅 매치가 있다. 이기고 지고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둘이 한 자리에서 맞서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뛸 때가 있다. 미니 쿠퍼 S와 푸조 206 RC가 드디어 마주쳤다.
푸조 206 RC의 뜨거운 매력은 몇 달이 지나도록 잊을 수가 없었다. 길이 3.8미터의 조막만한 차체에 4기통 2.0ℓ 180마력 엔진을 얹은 괴짜. 조그만 3도어 해치 보디는 온통 커다란 도어와 17인치짜리 타이어, 두툼한 듀얼 머플러로 꽉 들어찬 것만 같다. 도무지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암팡진 첫인상. 난생 처음 이 차를 타보았던 건 몇 해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였다. 잠시 타보았을 뿐인데, 그러고 나서 지구 북반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열 시간 내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앉아있었다. 그 휘몰아치는 핸들링이 오죽 충격적이었으면, 그 촌스러움을 떨기까지 했을까.
206 RC는 반드시 직접 타보아야 할 차다. 비단 이 차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이는 바로 핫해치의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핫해치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면 반드시 타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심지어 우습게 여겨지기까지 할 차가 바로 핫해치니까 말이다.
206 RC의 도어를 열면 온통 시트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차를 밖에서 보면 타이어만 커다랗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4인승이지만 이 차는 4명의 탑승자를 일일이 배려할 생각은 그리 없어보인다. 풀 버킷 스포츠 시트로 꾸며진 앞 시트는 이 차의 성격을 대변하는 핵심 요소. 정통 레이싱 머신에 쓰는 것과 똑 같은 타입의 시트를 한결 고급스러운 스웨이드로 감싸 스포티함과 승차감을 고루 살려준다. 앉는 순간 등허리와 엉덩이, 양 옆구리와 심지어 어깨, 목덜미까지 찰싹 붙들어매는 듯한 착석감은 '이 차를 신나게 타고 싶으면 더 이상 살찌지 마!'라고 경고라도 보내는 것 같다. 그만큼 타이트하다. 차는 작은데 운전석에서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다. 그만큼 철저히 운전자 중심이라는 말이다.
이 차를 두고 푸조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절절이 담고 있다고 하는 이유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컴팩트 해치라는 스타일 자체가 그렇고, 작은 차지만 퍼포먼스에 역량을 집중했다는 점이 그렇다. 운전자 중심으로 배치했다고는 하나, 근본적으로 운전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편의장비 자체가 무척 많지는 않다는 것도 다분히 푸조다운 구석이다. 푸조는, 온갖 편의장비들이 오히려 차의 본질을 해친다고 굳건히 믿고 있는 집단이다. 206 RC는 푸조의 양산차 중 가장 원초적인 차에 가깝고, 그런 만큼 푸조의 본질에 다가서 있는 셈이다.
아주 간결한 구성이나, 그렇다고 해서 아주 아쉬운 건 아니다.그렇다고 해서 아주 아쉬운 건 아니다. CD 플레이어의 위치도 적절하고, 푸조 특유의 터널 같은 글러브 박스는 스포츠 버전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애초에 깊은 관심을 두지는 않았던지 인테리어는 아무리 봐도 매력적이진 않다. 뒷시트 공간은 이날 나란히 등장한 라이벌보다 나은 편. 결국 우리는 이 차의 퍼포먼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건 바로 206 RC 스스로가 바라던 바이기도 할 것이다.
미니 쿠퍼 S는 206 RC와 모든 면에서 완벽한 매치를 이루지만, 그런 만큼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차다. 206 RC는 교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는 왜소한 체구의 학생 같다. 워낙 작은데다 꾸미지도 않는지라 평소에는 친구들이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년에 한 번, 운동회 때 릴레이 순서가 다가오면 그제서야 모든 친구들의 시선이 그리로 향한다.
체구는 비슷하나, 쿠퍼 S는 정반대다. 넉넉하고 유서 깊은 집안에서 태어나 극성 맞은 부모의 적당한 치맛바람까지 등에 업은 아이다. 부티 나게 차려 입은지라 작은 체구가 그리 왜소해 보이지도 않는다. 친구들은 모두 '작은데도 옷이 잘 받는다'고 말할 뿐이다. 여자친구도 수두룩하고 운동회 때는 옆 반 206 RC와 어깨다툼을 할 정도로 달리기도 기막히다. 만능이다. 작은 체구만 빼면 말이다.
프랭크 스티븐슨이 뽑아낸 레트로 디자인은, 찬찬히 뜯어보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알렉 이시고니스의 오리지널 미니 컨셉트를 고스란히 담은 듯 희한한 라인을 보여준다. BMW 사상 최초의 앞바퀴 굴림 모델이라는 점은, 이 차의 화려한 스타일링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긴, 이 차에서 스타일링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게 어디 그뿐이랴. 가장 중요한 건 성능. 하지만 대다수 여성 미니 오너들은, 이 차의 보닛 아래에 얼마나 강력한 기질이 숨어있는지 아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눈에 이 차는 그저 뻥튀기 해놓은 장난감 차일 뿐이다.
보닛을 열면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까지 모조리 따라 올라가 버린다. 이 차 말고는 볼 수 없는 장면. 미니를 몰 때는 가벼운 추돌에도 조심하고 볼 일이다. 3.6미터 정도의 '미니' 사이즈에 역시 17인치 타이어를 한 가득 채우고 있다. 차체 사방의 맨 가장자리에 네 개의 타이어를 배치한 건 오리지널 미니의 성격 그대로. 극단적으로 몰아낸 타이어 포지션 때문에 오버행은 아예 무의미해진 지 오래다.
인테리어는 스타일링 못지않게 화려하다. 검은 플라스틱과 크롬장식, 알루미늄 색감을 입힌 플라스틱을 적절히 섞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속도계와 rpm 게이지는 3스포크 스티어링 휠 뒤에 두고, 오리지널을 연상케 하는 센터미터에는 연료계와 수온계 등 기타 게이지를 모았다. 눈에 잘 들어오는 배치지만, 현란한 센터페시아 구성과 더불어 조금은 산만한 느낌을 준다. 206 RC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으나, 쿠퍼 S에도 스포츠 시트가 달려있다. 착석감은 한결 여유로운 편. 뒷좌석은 없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운전석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독특한 디자인의 6단 자동기어 노브. 마치 중세 투사의 투구처럼 크롬 장식을 두른 모양이 사뭇 예기치 못한 멋을 풍긴다. 수동모드로 옮기면 스티어링 휠에 달린 패들 시프트로 기어변속을 할 수 있다. 206 RC와 달리 쿠퍼 S는 보는 순간 '꺅!' 소리가 절로 나오고, 누구든 한번 더 되돌아 보게 되는 멋쟁이다.
206 RC의 아이들링 음에는 박진감이 넘친다. 좀 과장하자면, 차체 주변 바닥의 먼지가 들썩일 것만 같다. 지름 작은 스티어링 휠은 묵직한 손 맛을 전하고, 클러치는 약간의 적응기를 요구한다. 독일차와 같은 절도는 없지만, 생각보다 유연하게 맞물려 들어가는 기어 조작감은 타이트한 이 차가 뜻밖에도 다루기 쉬운 차임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작은 차체에 180마력 엔진을 올렸으니, 어디 평범할 수가 있겠나. 최고출력은 7천rpm에서 나오고, 20.6kg·m의 최대토크는 4천750rpm에서 나온다. 수치만 봐도 고회전 엔진이다. 터질 듯한 엔진 사운드가 들려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6 RC의 액셀 페달은 독특하다. 일반적인 운전 때처럼 살짝 밟으면 rpm이 올라가지 않는다. 발에 힘을 주면서 어느 정도는 꾹 눌러 밟아야 반응을 보이는 식이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잠시 다른 생각만 해도 시동 꺼뜨리기 십상이다.
치고 나가는 맛은 일품이다. 이 차의 제원상 최고시속은 220km. 물론 상당한 수준이지만, 최고시속이 중요한 차는 아니다. 3단에서 시속 140km를 넘어서는 가속력은 실제보다 더 힘차게 전해온다. 최고출력이 고 회전대에서 나오는지라, 펀치력을 즐기려다 보면 rpm을 계속 높이게 된다. 물론 연료소비량이 늘어나겠지만 이 차를 얌전하게 타느니 차라리 타지 않는 편이 낫다. 206 RC의 강점은 역시 기막힌 핸들링. 선대 205의 WRC 전통을 잘 물려받았고, 퍼포먼스 명가 푸조의 테크닉을 잘 담고 있다. 차체가 작아서인지 차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와인딩 로드를 뛰어다는 것만 같은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 댐핑 스트로크를 극단적으로 줄인 앞 맥퍼슨 스트럿, 뒤 토션 바 서스펜션은 노면의 아주 작은 요철까지 그대로 전달해 운전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만든다. 앞바퀴 굴림임에도 오버스티어가 나타나고, 핸들링은 낚아채듯 날카롭게 진행된다. 조금만 지나고 나면 급코너에 들어갈 때 일부러 핸들링 타이밍을 한 박자 늦춰가며 약한 오버스티어를 즐기게 된다.
아직도 쿠퍼 S를 귀여운 여성 전용 차라고 생각하는가. 저런, 큰일날 소리. 쿠퍼 S 또한 푸조 못지않게 쟁쟁한 랠리 역사를 담고 있는 차다. 과거 몬테카를로 랠리는 오리지널 미니 쿠퍼 S를 위해 마련된 무대에 다름 아니었다.
4기통 1.6ℓ SOHC 엔진은 언뜻 허약해 보일 지 모르지만 튜닝을 거쳐 최고출력을 170마력까지 끌어올렸다. 최대토크는 21.7kg·m. 정속주행을 하면 시속 100km에서 엔진 회전수는 2천rpm을 살짝 넘어선다. 엔진과 6단 자동기어의 매칭은 흠잡을 데 없다. 3단에서 시속 130km를, 4단에서는 이미 시속 180km를 향해 치닫는다. 200km 도달은 어렵지 않겠다. 조금만 가속하면 바로 들려오는 수퍼차저 작동음은 취향에 따라 쿠퍼 S의 매력이 될 수도 있고,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썩 매력적인 사운드까진 아니더라도 운전재미를 더하는 역할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206 RC에 비해 액셀 페달 감각은 즉각적인 편. 다만 스티어링은 아주 무겁고 예민하다. 고속으로 달릴 때도 스티어링은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다. 미니의 운전석에 앉아있는, 미니만큼이나 귀여운 그녀들은 도대체 어떤 팔뚝을 갖고 있단 말인가. 쿠퍼 S에는 BMW의 장점이 많이 살아있다. 완성도 높은 안팎 마무리도 그렇고, 명확한 컨셉트도 그렇다. 탄탄한 달리기 성능이나 트랙을 따라 달리는 듯 정확한 핸들링 성격도 천상 BMW다. 206 RC를 타면서는 오직 RC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 쿠퍼 S를 타면서는 'BMW는 차를 참 잘 만드는 메이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BMW에서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한 미니는 분명 행운아다.
이들은 모두 4기통 엔진을 쓴다. 206 RC는 2.0ℓ 180마력, 쿠퍼 S는 1.6ℓ 170마력 유닛이다. 최대토크는 각각 20.6kg·m와 21.4kg·m. 제원상 최고시속은 220km(206 RC)와 222km(쿠퍼 S)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206 RC는 0→시속 100km 가속을 7.4초에 끝내고 쿠퍼 S는 7.7초에 끊는다. 모두 앞바퀴 굴림에 차체 무게는 1천160kg(206 RC) 대 1천180kg(쿠퍼 S). 연료탱크 용량은 둘 다 50ℓ고, 연비는 206 RC 12km/ℓ, 쿠퍼 S 11.1km/ℓ다. 최소 회전반경은 206 RC 4.9미터, 쿠퍼 S 5.1미터로 둘 다 체구에 비해 큰 편이다. 값은 206 RC 3천700만 원, 쿠퍼 S 3천800만 원. 제원상의 우열 가리기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쿠퍼 S의 너무나 귀여운 스타일링은 정말 강력한 무기다. 적어도 이 차를 보며 눈살 찌푸릴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운전 집중도 측면에서는 206 RC를 앞서기 어렵다. 206 RC의 풀 버킷 시트에서는 '운전을 통한 해탈'을 경험할 수 있다. 실용성 측면에서는 랠리만 생각할 것 같은 206 RC가 뜻밖에도 우위를 보였다. 캐빈룸이나 트렁크 공간 모두에서 푸조다운 강점을 한껏 과시했다. 이 둘 사이에서의 선택은 너무 가혹하다. 206 RC를 몰고 마음껏 드라이브를 즐긴 다음,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줄 때는 쿠퍼 S의 도어를 열고 싶다. 206 RC는 생각보다 남성적인 차였고, 쿠퍼 S는 기대 이상으로 여성적이었다. 승부를 가려서는 안 될 일이다.
글/김우성 사진/최대일
SPECIFICATION
- PEUGEOT 206 RC
값: 3,700만 원 엔진: 4기통 1997cc 180마력/7000rpm 20.6kg·m/4750rpm 무게 1160kg 성능: 0→시속 100km 가속 7.4초 최고시속 220km 연비12km/ℓ 기어: 5단 수동
- MINI COOPER S
값: 3,800만 원 엔진: 4기통 1598cc 170마력/6000rpm 21.4kg·m/4000rpm 무게 1180kg 성능: 0→시속 100km 가속 7.7초 최고시속 222km 연비 11.1km/ℓ 기어: 6단 자동
기사&사진 제공 : TopGear 한국판 9월호(http://www.topgearkore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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