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명, 트림 배지를 완전히 제거하고 인스트루먼트 패널까지 꽁꽁 가린 채 이 차의 블라인드 테스트에 도전해보라. 결과는 보장한다. X3 3.0d 다이내믹스를 맛보고 나면, 휘발유 엔진 버전은 눈에도 차지 않을 게 분명하다
눈 앞에 보이는 차는 X3. 태어나던 순간부터 보수적 관념과의 영원한 작별을 고한, 철저하게 진보적인 BMW의 컴팩트 SUV다. 이 차의 운전 감각은 무엇 하나든 남다르다. 드라이빙 포지션, 서스펜션의 움직임, 파워트레인과 핸들링 특성까지도 언제든 활활 타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BMW는 그것도 모자라 이 차에게 SUV가 아닌, '스포트 액티비티 비클(Sport Activity Vehicle, SAV)'라는 작위까지 선사했다. SAV나 SUV나 따지고 보면 그 말이 그 말일 텐데, X3에게는 이 말이 묘하게도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지금의 X3는 어딘가 불합리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아니, 부당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그 원인은, 전적으로 새롭게 추가한 엔진에서 비롯된다. X3는 국내에 선보인 이래 2.5ℓ와 3.0ℓ의 두 가지 직렬 6기통 휘발유 엔진만을 얹어왔다. 192마력과 231마력의 뚜렷한 출력 차이에도 아랑곳 않고, 한결 같이 카랑카랑한 가속과 유연한 움직임을 자랑하던 훌륭한 유닛들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 선보인 새 디젤 엔진 앞에서는 그 화려한 면모도 그다지 빛나보이지 않는다. 강건한 보닛 아래 3.0ℓ의 터보 디젤을 실은 X3 3.0d 다이내믹스는 같은 배기량의 휘발유 모델이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경제성을 챙겼으면서도 그보다 빨리 시속 100km까지의 가속을 끝마친다. 날카로운 회전 감각이나 파워트레인의 세련미도 직렬 6기통 3.0ℓ 231마력과 엇비슷한 수준. 데이터로 드러날 수 있는 성능이나 운전 감각적인 부분 모두에서 디젤 엔진의 한계를 착실하게 극복했다. 휘발유 유닛과 엇비슷하거나 더 나은 점이 있을지언정 모자란 구석은 거의 없어보인다. 디젤 엔진의 X3가 부당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물론 가용 엔진회전수, 진동과 소음 등에서는 여전히 휘발유 엔진과의 격차가 느껴질 수 있다. 218마력의 최고출력은 4천rpm에서 나오고 한계회전수는 4천500rpm에 머문다. 반면 직렬 6기통 3.0ℓ의 최고출력은 231마력/5천900rpm. 하지만 13마력의 출력 차이로 징징대며 우는 소리를 해댈 사람은 많지 않다. X3가 낼 수 있는 최고시속은, 디젤이든 휘발유든 시속 210km에서 제한된다. 활용할 수 있는 엔진회전수가 2천rpm 정도 부족해도 큰 문제가 못 된다. 자동 5단을 대체하는 신형 6단 기어박스가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한다.
아이들링 상태일 때부터 1천500rpm 정도의 저회전 영역에서는 액셀 페달로 디젤 엔진 특유의 진동이 잔잔하게 전해온다. 그러나 2천rpm을 고비로 칼칼한 사운드가 오버랩되면서 회전도 한층 부드러워진다. 드로틀 응답성이 빠르고 회전 감각은 날카로우면서도 치밀하다.
1천750rpm에서 2천750rpm 사이가 이 매력적인 6기통 디젤이 가장 팔팔한 추진력을 토해내는 구간이다. 최대토크는 V8 엔진의 구형 M5와 맞먹는 50.9kg·m. 스타트라인에서 액셀러레이터를 깊숙하게 찌르면 두 번의 기어 변환과 더불어 7.7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한다. 자동 5단 기어를 쓰는 X3 3.0i는 여기에서 6단 AT와 터보디젤을 조합한 3.0d의 성능을 뛰어넘지 못한다. 시속 100km 가속에는 0.4초가 더 걸리고 0→1km 거리 주행에 필요한 시간도 29.5초로 3.0d보다 1초 가량 늦다.
추월 가속성능의 가늠자가 될 시속 80→120km 가속(4단 혹은 5단) 역시 마찬가지. 낮은 회전수부터 큼직한 토크를 내뱉는 3.0d가 6.9초 만에 시속 120km에 도달해 고속도로의 다음 휴게소로 달려가고 있을 때, 3천500rpm이 되어야 30.6kg·m의 최대토크가 나오는 3.0i는 3.0d이 이미 훑고 지나간 자리를 3초 뒤에나 어물쩍거리며 지나치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면이 휘발유 모델보다 완벽하게 뛰어난 것은 아니다. 비좁은 가용회전수가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X3의 발목을 낚아챈다. 시속 150km까지 시원하게 내달리고 나서는 가속감이 떨어지고 시속 190~200km까지 이르는 과정도 휘발유 3.0ℓ 모델만큼 당차지 못하다. 속도를 자주 줄이고 트랙션을 충분히 살려서 달려야 하는 굽이진 산악도로에서도 활짝 트인 도로를 달릴 때는 몰랐던 부족한 면이 드러난다.
특히 가파른 언덕길을 힘차게 달려서 내려온 뒤에 코너로 들어설 때는 속도를 얼만큼 줄여야 할지, 어떤 기어를 골라 써야 할지 고민이 된다. 시속 80~90km를 커버하는 3단 기어의 트랙션으로는 모자란 감이 있고, 네 바퀴가 팔팔하게 굴러갈 2단으로 돌파해가려면 브레이크를 질끈 밟아서 속도계 바늘을 시속 65km 이하까지 성큼 줄여야 한다. 새로이 마련한 스텝트로닉 6단 기어박스는 엔진회전수가 3천500rpm 이하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시프트 다운을 허락하지 않는다.
운전감각은 한층 긴박해졌다. SUV로는 비상식적으로 낮았던 무게중심은 무거운 디젤 엔진을 얹으면서 좀더 내려앉은 데다, M 에어로다이내믹 패키지Ⅱ의 스포츠 서스펜션까지 마련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하체는 너그러움이나 여유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도심 골목의 과속방지턱, 심지어는 고가도로 교각 위의 작은 이음매를 지나칠 때에도 한치의 비틀림도 없이 재빠르고 강력하게 지면을 때린다. 운전하는 내내 긴장이 끊이지 않고, 시종일관 발끝을 따라 뒷덜미로 오르는 짜르르한 느낌이 이어진다.
하체에 비하면 스티어링은 한없이 부드러운 편. 무게감이 적절하고 노즈와의 피드백도 비교적 정확하다. 세차고 빠른 핸들링은 변함없다. 응답성을 치밀하게 제어하는 스티어링, 도로를 짓이길 것처럼 탄탄한 서스펜션과 강성 높은 섀시가 어우러진 결과. 시속 120~140km에서의 급차선 변경도 날카롭고 빈틈없이 마무리한다. x드라이브 풀타임 4WD 시스템은 급코너링 때 오버스티어를 인위적으로 이끌어내는 듯한 반응까지 보인다. 앞뒤 액슬의 정 중앙에 놓인 전자제어식 멀티 다판 클러치가 동력을 유기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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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X3의 긴박한 운전감각은 운전석 시트에 앉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손바닥 한 가득 차오르는 그립감이 그만. 가슴팍과의 거리나 절묘한 기울기, 혼 패드 너머로 시원하게 보이는 인스트루먼트 패널도 예사 솜씨는 아니다. 오른쪽 무릎을 휘저어보면 그 언저리까지 성큼 올라 붙은 센터터널과 맞부딪힌다. 구불구불한 지방국도를 세차게 휘젓고 다닐 때 무릎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믿을 구석'이다. 왼발을 뻗어보면 제대로 된 위치에 알맞은 크기의 풋레스트가 놓여있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페달은 능숙한 드라이버가 오른발을 놀려 힐 앤 토 기술을 쓰기에 딱 좋을 만큼의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어떤 BMW나 그렇듯 철저한 운동본위의 드라이빙 포지션. 그리고 등허리와 엉덩이를 단단하게 붙들어매는 스포츠 시트가 더해지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짜인 X3의 운전공간이 완성된다.
운전하는 사람의 가슴이 쿵쾅쿵쾅 두방망이질을 치는 그 순간 조수석에 앉은 인생의 동반자나 뒷자리를 차지한 어린 자녀들은 푸들만큼이나 입이 튀어나와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펀 투 드라이브와 평화롭고 안락한 여행을 모두 만족시키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스트로크가 짧고 댐핑 반응도 억센 스포츠 서스펜션까지 더한 X3라면 더더욱 그러할 터. 격정적인 운전을 즐기고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에는 뒷자리 승객의 허벅지 언저리까지 펼쳐진 파노라마 글라스 루프를 활짝 열어 자동차 위 세상과 시원하게 소통하는 게 좋겠다.
무엇이든 큼직큼직한 인테리어 구성은 과연 실용적인 SUV답다. 도어트림의 포켓도, 트렁크도 통이 커서 좋다. 센터콘솔에는 6CD 체인저가 담겨있고, 센터페시아에는 '다행스럽게도' 일반적인 오디오 시스템과 전자동 듀얼 에어컨이 마련되어있다. BMW의 통합형 인터페이스 시스템인 i드라이브는 아직도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 장비. i드라이브의 조그셔틀이 놓이는 센터콘솔 앞쪽에는 실용적인 컵홀더가, 대시보드 가운데에는 자잘한 소지품을 툭툭 던져놓을 수 있는 덮개 달린 수납공간이 디스플레이 모니터를 대신하고 있다.
i드라이브가 없어도 이 차는 명백한 프리미엄 SUV다. 헤드램프 워셔와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열선, 전동 가죽시트를 갖췄고 6개의 에어백에다 스티어링 휠에는 겨울에 특히 고마울 열선 장치까지 마련되어있다. 주행안정프로그램(DSC)을 기본으로 갖췄고 랜드로버를 거느릴 때 전수 받은 내리막 주행속도 제한장치(HDC)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편의성을 조금도 해치지 않았으면서도 가격은 3.0ℓ 휘발유 엔진의 X3와 똑같다. 더구나 EU4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시켜주는 미립자 분진필터(DPF)까지 달려있다. 사용하는 연료만 다른, 같은 배기량의 두 차를 앞에 두고 당신이라면 어떤 쪽을 선택하겠는가. 그래도 시원시원한 맛이 일품인 휘발유 엔진의 X3 3.0i? 아니면 퍼포먼스와 경제성을 한데 갖춘 디젤 유닛의 X3 3.0d? 실상 어떤 모델을 선택하건 간에, X3는 자상한 아버지가 온 가족을 위해 선택하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은 진보적 SUV다.
글 | 김형준 사진 | 최대일
3.0d Dynamics
Verdict: 세련된 디젤 엔진으로 SAV의 방향성을 완성했다. X3 라인업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모델이지만 보수적 SUV는 분명 아니다
Prices: 7,250만 원
Performance: 0→시속 100km 가속 7.7초, 최고시속 210km, 연비 11.0km/ℓ
Tech: 직렬 6기통 2993cc 직분사 디젤 트윈터보 218마력, 50.9kg·m, 4WD, 1930kg
에어컨(O), 네비게이션(X), CD플레이어(O), 알루미늄 휠(O, 18), 가죽시트(O)
기사&사진 제공 : 탑기어 2006년 1월호(http://www.topgearkore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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