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말도 안되고 무모하고 그리고 답이 없는 두 자동차의 대결을 보게 되실 겁니다. 영국판 톱기어 저리가라가 될지도 모를 충공깽의 대결, 준비 되셨나요? 그럼 시작합니다!!!!

아. 이 대결은 예전에 올렸던 서울 24시간 레이스로부터 1년 뒤에 벌어진 대결입니다.

당시 올린 문제의 글.
2008/11/08 - [Auto/정보] - Seoul 24Hr. Race








 

강원도 영월, 정선, 양양 일대를 도는 총 380킬로미터가 넘는 코스. <톱기어>의 무모한 도전이 또 다시 시작됐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알지도 못하는 길을 달리라는 황당한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잠 한숨 못잔 채 운전대만 잡고 있는 그들. 체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눈은 저절로 감긴다. 과연 역경을 뚫고 완주할 수 있을까?


Photography by Studio UP

 

“고갯길에서는 똑똑한 액티브 서스펜션이나, 어드반 네오바 이상의 그립을 자랑하는 타이어를 끼고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지. 차의 제원 이야기가 아니야. 훈련 받은 레이서에 관한 것도 아니지. 다운힐에서 괴물 같은 존재. 바로 그 동네에 사는 '지역 드라이버'지. 낯선 곳에서 그를 이길 확률은 로또 당첨 가능성보다 낮아. 행여나, 그의 근거지에서 한판 붙을 생각은 하지 마시게.'

 

 

저녁 숟가락을 놓자마자 중미산으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은 내 젊음을 불살랐던 곳이자 나를 산 타는 사나이로 만들었던 원흉이기도 했다. 한때 고갯길 배틀 전문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름도 찬란했다. ‘블랙선즈.’ 당시 팀 리더는 내게 지역 드라이버의 무서움을 강조했다. “어떤 수퍼카를 끌고 와도, 타막의 황태자 랜서 에볼루션일지라도 힘들 거야.' 실제로 당시 중미산에는 괴물 기아 캐피탈이 살고 있었다.

 

순정 모델이었지만 날고 긴다는 스포츠카들을 여지없이 뭉갰다. 이 말을 교훈 삼아 나는 지금껏 지역 드라이버와는 절대 대결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말이다. 새벽 5시. “취익, 취익!” 변속할 때마다 블로 밸브에서 공기를 방출해내는 소리가 요란하다. 푸조 207RC를 다그치며 어두컴컴한 길을 미친 듯 달린다.

 

“볼보 C30 T5 정도면 해볼만한 상대 아냐?” <톱기어> 편집팀이 WRC를 재연해보자며 펼친 ‘톱기어 랠리 챔피언십’에 푸조 드라이버로 참가한 나는 C30을 상대로 207RC를 다그치며 어드밴스 랠리 포인트를 얻기 위해 분주히 달리고 있다. SS1이 치악 휴게소에서 영월, SS2가 영월에서 강원랜드, SS3와 SS4는 태백에서 정선을 지나 양양으로 이어지는 험준한 여정이다.


30분 간격을 두고 푸조 팀이 먼저 출발. 손에 꽉꽉 쥐어지는 207RC라면 구간별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다. 코드라이버로 동승한 <톱기어> 편집장은 드라이버를 믿는 듯 지도를 내팽개쳐놓고 앉아있었다. 이 새벽에, 어딘지도 모를 곳에 버려진 우리들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C30? 그 차로 207RC를 따라잡겠다고? 강원도 고갯길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너무 빨리 가도 문제니까 슬슬 달릴게요. 따라나 오겠어요?”

 

그렇다. 너무 달리면 기름만 먹을 것이고, 게다가 C30 드라이버들은 편집팀 내에서도 길눈 어둡기로 유명하지 않던가. '자 달려라 푸조야.' SS1의 우승은 우리 것이야! 이건 어디까지나 자만이었다. 나는 정말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그런데, 요 근처가 최윤섭 기자네 고향 아냐? 이 동네는 가도가도 모르겠네.' 편집장의 아무 생각 없는 한마디.

 

 

순간, 머리 속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누군가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아무리 수퍼카를 끌고 와도 지역 드라이버는 이길 수 없어…”. 지역 드라이버, 그러니까 뒤따르는 C30의 메인 드라이버는 이 지역을 거의 밥 먹듯 돌아다닌 경력을 갖고 있지 않나. 그러고 보니 지난번 코스 답사 때도 지도 한 장 없이 제천, 영월 일대를 안방 드나들 듯 달렸던 장본인 아닌가.

 

비록 30분 늦게 출발한다고 하지만, 교차로를 만날 때마다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점점 망설여지는 우리 팀의 솜씨로 볼 때 승리에 대한 낙관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지역 드라이버라는 그의 존재를 의식한 탓에 신경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었다. 룸미러에 헤드램프 불빛이라도 보이면 오른발에 더욱 힘이 들어가고, 스티어링은 과격해진다. 지도는 무시하고 며칠 전 그와 함께 왔던 코스 답사의 기억을 떠올리며 달린다. 무조건 쭉쭉 가라고 했던 그의 충고만을 길잡이로 삼을 뿐이다.


계속 직진으로 달리는 우리. 애매한 교차로에서 오른쪽이 영월, 직진은 평창이라는 표지판도 완전히 무시한 채, 무조건 직진했다. 새벽안개가 자욱하다. S자에 이은, L자 곡선이 연달아 이어진다. 계속해서 표지판은 평창을 가리킨다. 낌새가 이상하다. 그제서야 지도를 폈다. 잘못 들어와도 한참을 잘못 들어왔다. 무려 23킬로미터나 코스에서 이탈했다. 재빨리 차를 돌리고, 물 안개 자욱한 험한 도로를 WRC 드라이버 뺨치게 거슬러간다.

 

우리는 코스 중간중간마다 약간의 미션을 가미했다. SS1 구간에서는 한반도 모양을 띤 선암 마을 사진을 찍어야 한다. C30도 이미 출발했을 것이고, 이 지역 지리를 눈감고도 찾아내는 상대편 드라이버의 실력을 놓고 봤을 때 이미 선암 마을에 도착했을지 모른다. 알게 모르게 타오른 경쟁심은 207RC를 더욱 강하게 몰아붙이게 만든다. 이 차의 그립이 이렇게 끈적하고, 1.6 터보 엔진이 이토록 감탄할만한 순발력을 지녔다는 사실은 그 와중에도 반가운 재발견이다.

 

선암 마을에서 아직 아무도 없음을 발견한 우리는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불과 4분 정도 지났을까? 볼보가 나타났다. 결국 우리는 30분이나 뒤진 셈이다. “이미 올라서 다 봤는데 안개 때문에 안보여.” 방금 도착한 우리는, 짐짓 도착한지 한참 지난 척해야 했다.

 

 

별마로 천문대야 기다려라! 벌어진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올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푸조를 다그쳤다. 이번엔 코드라이버도 확실한 지도잡이로 나섰다. 산길보다 매끈한 도로가 펼쳐지고, 이어 천문대로 향하는 난공불락의 커브길 잔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왜 푸조가 앞바퀴굴림 최고 핸들링이라는 찬사를 받는지 알 수 있다. 통통대며 살아있는 승차감을 유지하면서도 극한으로 치닫는 하체는 더욱 단단해진다. 명백한 이중성이다. 그리고 푸조만이 이런 타협을 이루어낼 수 있다. 실제 WRC에서 쌓은 노하우는 RC 버전을 통해 순진한 207을 가차없이 몰아붙인다. SS1 구간의 마지막인 천문대가 시야에 들어오자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그리곤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꿈에서 까마귀가 짓누른다. 거대한 초대형 까마귀. 그 눈이 꼭 C30을 닮은 게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이건 랠리의 중간 베이스캠프가 아니라 아수라장이다. 차마다 거의 실신한 자세로 누워있는 우리들. C30도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시체놀이가 한창이다. 어젯밤에 단 한 시간도 못 잔 탓에 SS1 구간 96킬로미터는 마치 960킬로미터처럼 버거웠다. 2시간8분38초의 기록을 보면 그 새벽 시간에 얼마나 내달렸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SS2 구간의 시작점에서부터는 지역 드라이버를 무시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태백과 강원랜드, 그리고 준용 서킷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나 자신도 나름 지역 드라이버라고 자신할 만하니 말이다. 경쾌한 푸조는 내리막에서 천문대의 지그재그 수수께끼를 보란 듯 풀어헤친다.

 

강원랜드로 향하는 길은 정말 우습게 보았다가 낭패를 본 구간이다. 태백산도립공원에 들르라는 미션을 미처 보지 못했다. 쭉 달리면 30분이면 닿을 거리 아닌가? 태백산도립공원, 천문대에 버금가는 커브구간과 강원도 동강 지류의 하천들이 구비구비 천혜의 경관을 만들어내는 길. 그러나 여기에서 이제껏 만나본 최고의 지역 드라이버와 마주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SS1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푸조를 있는 힘껏 밟아댄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모닝. 그것도 유럽식 하체 튜닝을 거친 뉴 모닝도 아닌, 종이로 접어놓은 듯한 구형 모닝. 시야를 가리며, 점점 성질머리를 돋군다. ‘추월할까? 말까? 바짝 붙어보면 알아서 비켜주지 않을까? 모닝을 상대로 푸조 207RC가 촐싹거리면서 추월하는 것도 우습지. 바짝 붙으면 알아서 비켜 줄 거야.’

 

오판이었다. 내가 따라붙자, 모닝은 딱 그만큼 달아난다. 4연속 헤어핀 커브 구간에서 반대차선을 아주 능숙하게 요리해가며, 아웃-인-아웃-인을 반복하는 모닝의 뒷모습은 도저히 순정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오직 경사로 구간에서만 힘이 모자란 듯 주춤하는데, 여기서 따라잡으면 그야말로 배기량 때문에 이긴 것이니 그럴 수는 없었다. 다시 이어지는 S커브 구간에서 모닝은 다시 저만치 달아난다. 점점 멀어지는 은색 모닝.

 

역시 지역 드라이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태백산도립공원을 찍고 강원랜드를 가는 도중에 막 주차하고 있는 바로 그 모닝을 발견했다. 순간 나와 코드라이버는 놀라 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엄지손가락이라도 들어줄까 싶어 다가섰는데, 모닝에서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가 내리다니. 그녀는, 정선 고갯길의 달인이었다. '푸조야, 빨리 가자. 얼굴 화끈거린다.'

 


강원랜드에서는 황당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카지노에서 칩을 바꿔서 오란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사복을 갈아입기 위해 도로에서 옷을 벗는다. 원피스 레이싱복은 입고 벗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바지를 벗다가 한쪽 다리에 걸렸는데, 하필이면 그 때 팬티만 입은 채 막 주차하려는 쏘나타 아가씨와 마주쳤다. ‘봤음 뭐라고 말을 하든가.’ 아마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SS2 구간에서는 사실상 푸조가 랠리 포인트를 얻은 듯하다. 구간목표는 1시간30분이지만, 모닝 아줌마를 따라잡기 위해 과하게 달렸던 게 원인이었다. 영월에서 여기까지 약 99.7킬로미터를 달려왔다. 소요시간은 1시간 59분. 태백산도립공원 주변을 달리는 여행객들에게 경고한다. 그대가 꽤 잘 나가는 차를 타고 있을지라도 지역 드라이버에게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간 포르쉐 911이라 할지라도 민망한 꼴을 면키 어려울 게다.

 

 

아,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 천문대에서의 달콤한 한 시간의 취침도 약발이 다한 듯, 눈꺼풀이 감겨오면서 병든 닭마냥 비실비실댄다. 이제 SS3 구간이다. 이번에는 C30이 먼저 출발한다. 코 드라이버도 지도 챙기기에 한창이다. 백석폭포. 이름은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기이한 절경 중 5위안에 넣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장관이다.

 

마치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하다. 진부에 자리한 부일식당에 도착했다. 먼저 출발한 C30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드라이버의 휴대폰과 지갑을 루프에 얹은 채 출발했다가 뒤늦게 그걸 찾느라 다시 강원랜드로 거슬러 갔었단다. 아무리 졸려도 정신줄 놓지 말라니까…. 덕분에 SS1 구간에서 헤맸던 23킬로미터를 거의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과자에 물만 마시며 여기까지 달려와서인지, 곡기가 들어가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문제는 레이싱복을 입은 채 밥 먹기가 정말 곤란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약간 작은 사이즈 때문에 다리 사이가 꽉 껴서 죽겠는데 이대로 앉아서 밥을 먹으니, 이거 원 산채비빔밥 먹다가 산 채로 죽을 수도 있겠다.

 


마지막 SS4만 남았다. 무슨 도령들이 그렇게 많은지, 운두령을 지나 구룡령 휴게소를 거쳐 양양 동호 해수욕장까지 달려야 한다. 사실상 C30과 거의 비슷한 시간대로 접어들었다. 중간에 시간 안배를 너무 여유롭게 잡은 탓이다. 미션인 방아다리 약수를 한 모금 삼키고, 운두령으로 향했다. 구름이 항상 걸려있는 듯한 운두령에서 푸조는 제 실력을 맘껏 발휘한다.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 밥심으로 기어를 인간 더블클러치로 다룬다.

 

1단에서 3단 다시 5단으로 널뛰듯 변속해가며 미친 듯 달려나간다. 우리가 하드코어적인 랠리의 디테일을 따를 필요는 없었기에 마지막 피날레는 함께 하기로 했다. 급기야 SS4 구간을 달려나갈 때는 잘 나가는 푸조 한번 타보자는 C30 드라이버의 간곡한 요청으로 난 C30의 핸들을 쥐어야 했다.

 

C30으로 옮겨 타니 쉽사리 적응하기 어렵다. 수동기어의 짜릿함도 없고, 이 넓고 광활한 소파는 뭐지? 배기량은 분명 푸조보다 크고 마력도 앞서지만, 육중한 몸매를 컨트롤한다거나 코너에서 민첩하게 구사하는 능력은 RC보다 떨어진다. 이렇게 편하고 안락한 차로 랠리를 하니, 지갑을 루프에 얹고 달릴 수밖에....

 


드디어 우리의 피날레, 양양에 자리한 동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정말 미친 짓이었다. 서울 24시간 레이스나, 미니에서 하루종일 버티기는 비할 바가 못됐다. 그 새벽에 꽉 끼는 레이싱복과 헬멧을 뒤집어 쓰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달리기 시작한 게 무려 399.3 킬로미터. 총 소요시간 12시간이라는 대장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새벽에 휴게소에서 레이싱복 군단을 만난 매점아저씨. 강원랜드에서 옷 갈아입다 마주친 쏘나타 아가씨와 갑자기 파랗고 붉은 차를 마주한 정선역장 아저씨. 그리고 레이싱 팀에서 단체 회식을 나온 거라 믿었던 부일식당 아줌마. 그들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달려왔는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만큼은 뿌듯하다. 주마등처럼 어제 새벽부터의 일이 스쳐가는가 싶더니, 이제는 되돌아갈 걱정뿐이다.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톱기어> 10월호를 보는 독자들이 즐거울 수 있다면, 도전은 계속된다.


에디터/황인상

 

 

터지고야 말았다. 아주 간단히, 흉내만 내고 끝낼 생각이었다. '맛만 보여줄' 의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졌다. 멋진 가을경치를 배경 삼아 드라이브나 하고 오자던 계획은 뼈대가 생기고 살이 붙더니 어느새 'WRC'로 바뀌고 말았다. '한 번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코스를 정해야 했고, 랠리를 위한 차도 마련해야 했다. 폼생폼사라고 레이싱복도 필요했다. 모든 게 딱 들어맞는 날짜를 정하기도쉽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은 오고야 말았다.


새벽 4시 중앙고속도로 치악 휴게소.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비장감도 배어있다.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다. 졸린 얼굴이고 배고픔에 찌든 모습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새벽 1시에 출발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출발에 앞서 레이싱복으로 갈아입고 레이싱 슈즈로 바꿔 신느라 부산하다. 압권은 헬멧. 과연 헬멧을 쓰고 장시간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이번 랠리에서 확인해야 할 일 중 하나다.

 


SS1. 04시 30분 푸조 207RC가 별마로 천문대를 향해 출발했다. 6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다. 이론상 시속 120km로 달리면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만 하면 심심하지 않은가? SS1에서 해야 할 미션은 '로드킬'과 별마로 천문대 가는 도중에 있는 '한반도 지형마을'에서 사진촬영하기.

 

일반국도에서는 밤사이 수많은 짐승들이 차에 친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그래서 준비한 미션이다. 여기에, 빠른 속도에서는 로드킬을 확인할 수 없고, 한반도 지형마을도 가본 적이 없기에 과속을 해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05시 출발. 조용한 시골길에 볼보 C30의 엔진과 배기 사운드만이 울려 퍼진다. 207RC가 30분 먼저 출발했지만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밝히지만 치악휴게소에서 영월 별마로 천문대까지는 눈 감고도 갈 수 있다. 여기저기 볼거리가 많아 안방 드나들듯이 다녔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다. 미션을 수행하지 못하면 페널티가 주어진다. 로드킬을 찾아야 한다. 속도를 낼 수 없다. 아무리 눈을 비벼도 찾을 수 없다. 안개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는가? 어느새 한반도 지형마을 입구까지 왔다. 찾았다. '뱀'이다. 차에 꼬리만 치인 것 같다.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미션 하나 완수.

 


한반도 지형마을까지 가는 길은 비포장길이다. 희뿌연 먼지를 뒤로 날리며 액셀 페달을 끝까지 밟는다. WRC 분위기가 물씬하다. 그리고 207RC마저 잡았다. 한반도 지형마을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갖은 인상을 다 쓰고 있는 폼이 미션을 수행하지 못한 것 같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날도 어두운 데다가 안개까지 자욱해 한반도인지, 세계전도인지 보이지도 않아!' 그러나 우리는 30분 늦게 출발한 덕을 볼 수 있었다.

 

어둠과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서서히 드러나는 한반도.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아 '남한' 쪽만 보이지만 분명 한반도 지형을 그대로다. 장관이다. 주어진 미션 완벽히 완수. 아무 것도 하지 못해 울상을 짓고 있던 207RC 드라이버가 생각난다.


별마로 천문대까지 달리기만 하면 된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시간. 눈이 감겨온다. 코드라이버는 이미 곯아 떨어졌다. 선배가 핸들을 잡고 있는데 후배가 옆에서 코를 곯다니.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 선글라스는 끼지 못하게 했다. 선글라스 낀 척 하며 눈을 감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군대보다도 더 군기가 세다는 잡지업계에서.... 하지만 봐주기로 했다. 일 하랴, 애 보랴, 게다가 밤까지 샜으니. 천문대로 올라가는 약 2킬로미터의 와인딩 코스만 남았다. 그런데 수면제를 먹은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고, 도저히 떠지지 않는다. 그 꼬부랑 길을 어떻게 올라갔는지 기억이 없다. 올라가자 마자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총 주행거리 71킬로미터. 1시간 44분이 걸렸다.

 


모두들 푸석푸석하다. 밤 사이 라면 두 개 정도는 끓여먹고 잔 얼굴이다. 퉁퉁 부었다. 헬멧이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 핑계로 헬멧을 벗어야 할 것 같다. 뇌를 심하게 압박하고, 얼굴은 좌우로 밀리고, 코는 찌그러져 숨쉬기가 어렵다. WRC 선수들은 어떻게 헬멧을 쓰고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을까? 결론이 났다. 일반 운전에서는 안전을 위한답시고 헬멧을 썼다가는 큰 일 난다. 머리 압박하고 얼굴 조이고, 숨 막힌다. 헬멧 운전 절대 불가!


SS2. 7시 30분. 207RC가 길을 떠난다. 그래도 끝까지 헬멧을 눌러 쓴 황인상 기자. 머리 사이즈 때문에 압박이 이만저만 아닐 텐데, 그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헬멧이 벗겨지지 않으면 119라도 불러야 하나?' 강원랜드가 목적지다. 미션은 태백산 도립공원에 들렀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야 하고, 강원랜드에서 칩 바꾸기.

 

 

여기서부터는 지도를 봐야 할 것 같다. 이번 랠리의 두 번째 목표. 과연 지도만으로 초행길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코스는 기가 막히다. 최고속도를 낼 수 있는 직선코스, 핸들링을 시험해볼 수 있는 와인딩 길이 고루 섞여 있다. 주변경치에 넋을 잃을 정도로 모든 게 푸르고 또 푸르다. 갑자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강가에 텐트를 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고 싶다.

 

잡생각을 하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코드라이버가 또 슬슬 정신을 놓기 시작한다. 뜬금 없이 졸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르지 않나, 지나치는 동네 이름이 '아시내'라면서 그렇다면 옆 동네 이름을 맞춰보란다. 정답은 '모르시내'라나. 자기 혼자 질문하고 자기 혼자 답하다니, 한참을 웃는다. '정신줄 놓기 일보직전'이다. 답답하다.


볼보 C30 T5는 직렬 5기통 2.5리터로 최고출력 230마력에 최대토크 32.6km를 낸다. 터보랙이 약간 느껴지기는 하지만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터보 사운드가 귓가를 자극한다. 앞쪽에 에어스커트가 스포츠 패키지로 달려있어 다운포스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몸을 적당히 조여 주는 세미 버킷 타입도 매력적이다.

 

특히 외관 모습 만큼은 최고다. 빨간색 차체에 흰색 라인. 완벽한 스포츠카다. 낮은 차체 덕에 코너도 매끈하게 돌아 나간다. 요철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조심조심 넘는 수밖에. 그렇지 않으면 에어 스커트가 작살이 날 것 같다. 날이 밝으면서 차가 많아졌다. 대형 덤프 트럭이 석 대가 앞을 가로 막고 있다. 고갯길이라서 추월이 쉽지 않다. 한 대는 지나쳤지만 나머지 두 대 꼬리만 따라가는 형국이다. 앞뒤로 갇힌 샌드위치 꼴이다. 20분을 잡아먹었다.

 


'왜 태백산 도립공원을 미션으로 넣었을까.' 가도가도 끝이 없다. 시속 80~120km를 넘나들며 달리고 또 달린다. 드디어 태백산 도립공원 도착. 구경할 시간이 없다. 태백산 도립공원 이정표와 태백산이라는 간판이 즐비한 식당 앞에서 한 컷 찍고 바로 출발. 가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해도, 코드라이버가 지도 하나는 기가 막히게 본다. 그가 알려주는 대로 핸들만 돌리면 된다. 길을 읽는 감도 괜찮은 것 같다. 미션 하나가 남았다. 칩 바꿔오기. 푸조 팀이 먼저 도착했지만 쭈뼛쭈뼛하고 있다. '칩 바꿔왔어?' '이 옷을 입고 어떻게 들어가요?' 모두들 빨간색, 파란색 레이싱복을 입고 있다.

 

이대로 들어가자니 보통 민망한 게 아니다. 청바지에 티셔츠로 재빨리 갈아 입고 푸조 팀과 사이 좋게 강원랜드 입장. 게임 방법도 모른 채 무작정 '룰렛' 판에 앉았다. 딜러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1만 원짜리 지폐를 칩으로 바꾼 뒤 바로 게임에 착수. '23'이라는 숫자가 괜히 마음에 든다는 푸조 팀 메인 드라이버. '아싸, 대박이다'. 23에 걸렸다. 1천 원을 걸었는데, 3만6천 원을 준다. 더 할 필요가 없다. 칩 두 개만 남겨둔 채 바로 퇴장. 이래서 일확천금을 꿈꾸고 이곳을 들락거리나? 한 가지 생각이 더 들기는 했다. '1만 원 걸었으면 36만 원 받을 수 있을 텐데....'


총 주행거리 103.4킬로미터에 두 시간이 걸렸다. 먼저 출발한 푸조 팀이 마지막 미션을 완수하지 못한 채 우리 팀과 같이 들어갔으니, 그들이 걸린 시간은 2시간 30분. 쉬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본 결과 달린 코스는 일치했다. 그러나 방법은 달랐다. 푸조 팀은 메인 드라이버 감으로 길을 찾은 반면 우리 팀은 코드라이버의 지도분석이 유효했다. 우리 팀은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는 반면 푸조 팀은 두 번 정도 길을 물어봐야 했다고. 지도만 있다면, 가지 못하는 길이 없음이 증명됐다. 가끔은 지도만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

 


SS3. 마지막 확인할 사항은 체력이다. 이제부터는 체력 싸움이다. 눈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고, 몸 속으로 곡기가 들어간지도 오래다.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간다. 극복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출발했다. 그러나 사고가 터졌다. 한참을 달렸는데, 휴대폰과 지갑이 없어진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출발하기 전 차 지붕에 올려놓았다. 강원랜드로 복귀. 왔던 길로 되돌아가던 중 저 멀리 내팽개쳐진 휴대폰이 보인다.

 

액정이 나가고 액세서리로 매달아놓았던 USB가 박살이 났다. 그렇다면 지갑은? 10미터 뒤쪽에서 쓸쓸히 나뒹굴고 있다. 신용카드는 거기서 10미터 뒤에 펼쳐져 있고. 난리도 아니다. 액땜이라고 생각하라는 코드라이버. 짜증이 슬슬 밀려온다. 다시 출발. 거의 30분을 까먹었다. 한참을 달린 뒤에야 발견했다. 지갑 안에 있던 운전면허증이 사라진 것을 말이다. 아마 지갑이 떨어지면서 빠졌으리라. '진짜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든다. 랠리를 위해 면허증은 과감히 포기.

 

정선역 첫차와 막차 시간 확인 미션 완료. 31번과 56번 국도를 번갈아 달리며 백석폭포 앞에서 촬영 미션까지 끝낸다. 운전대를 잡은 지 벌써 세 시간이 넘었다. 날은 찌고 햇빛은 강렬하다. 경치 구경할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다. 그저 이번 스테이지만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빨간색에 흰색 줄이 들어간 C30이 스포츠카 자세는 나오는가 보다.

 

앞서 달리는 차에 C30을 들이대면 바로 비켜준다. 시내를 통과할 때면 동물원 원숭이 쳐다보듯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는다. 목적지 진부 부일식당 도착. 푸조 팀이 먼저 도착해있다. 휴대폰 사건이 시간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이번 코스에서 달린 거리는 총 87.8킬로미터. 1시간 53분이나 걸렸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덥다. 배고프다. 그리고 졸린다.

 


SS4. 마지막은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는 얘기다. 미션은 오대산 방아다리 약수터 물맛 알아오기와 운두령 정상에서 찰옥수수 사먹기. 지금부터는 산을 넘어야 한다. 굽이의 연속이다. 헤어핀 코스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완벽한 스티어링을 갖춰야 한다. 드라이버를 교체했다.

 

푸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웅을 겨룬다. 직선도로에서 파워를 무기로 C30이 뛰쳐나가면 코너에서 207RC가 뒤진 거리를 만회하는 레이스의 반복이다. 207RC는 덩치가 작아 코너를 재빠르게 파고드는 전략을 택한 듯하다. 거기다가 수동기어이기 때문에 엔진 브레이크도 기가 막히게 드는 것 같다. C30의 무기는 힘. 최고속도는 절대 따라오지 못한다.


방아다리 약수터에서 약수를 나눠 마신 뒤 다시 출발. 지그재그 길의 연속이고 헤어핀 코스가 밥 먹듯이 나타난다. 이때부터 푸조 팀이 치고 나간다. C30이 쫓아가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C30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다. C30 역시 코너를 돌아나가는 솜씨가 보통 이상이다. 스티어링 반응도 괜찮아 드라이버가 원하는 방향으로 깔끔하게 고개를 돌린다. 하체도 꽤나 단단한 느낌. 17인치 타이어가 조금 밀리는 인상이지만 접지력도 괜찮다.

 

상대가 207RC이었다는 게 운이 나쁠 뿐이다. 우선 푸조 팀 메인 드라이버의 운전실력이 탁월하다. 하기야 한 때 '중미산 일대를 주름잡았다는 전설'이었다고 제 입으로 떠들고 다니지 않았던가. 사실인 것 같다. 통통 튀듯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순발력, 스티어링과 서스펜션 등이 조화를 이룬 핸들링이 207RC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드라이버는 이를 무기로 더욱 화끈하게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 같다. WRC의 내공이 207RC에 그대로 옮겨진 느낌이다.

 

 

굽이를 무사히 넘어 다시 직진 코스. 이곳에서는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마지막 목적지 강원도 양양의 동호 해수욕장. 산길만 달리다가 바다를 보니 가슴이 확 트인다. 87.8킬로미터를 2시간 32분만에 달려냈다.

 

도착시간 오후 4시 37분. 새벽 4시 30분에 랠리가 시작됐으니 거의 12시간을 달린 셈이다. 모두들 죽을 지경이었지만, 계획대로 해냈다는 자부심에 뿌듯해졌다. 체력 문제도 정신력만 있으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축구여! 정신력을 키워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물 채우기 전에.'


모두들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한다. 한이 맺힌 모양이다.


'이번 랠리 누가 하자고 했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미션을 다할 지는 정말 생각도 못했어. 그냥 대충 운전하고 끝낼지 알았거든. 산속 약수터에 기어올라가서 진짜 약수까지 마실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그런데 약수는 녹슨 물 마시는 기분이던데. 앞으로 우리 이런 거 그만하자. 몸으로 때울 생각은 그만 접고, 머리로 기사 쓰는 거 어때? 그나저나 서울까지는 어떻게 가냐? 내일이 추석이라 차 엄청 막힐 텐데.'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서울로 출발하려는데, 어딘가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선배! 다음달엔 차 몰고 운동회 한판 뛰는 거 어때요?' 이런....


에디터/최윤섭









이 양반들아! 몸 관리 좀 하라고!!! 그러다 당신들 전원 병원 신세 언젠가 먹을걸???


기사& 사진 : 톱기어 2008년 10월호

  1. 그러고보면 확실히 지역 토박이란 참 대단한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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