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는 산만한데 간은 콩알만하다.’ 누구를 겨냥한 이야기일까? 물론 스스로도 뜨끔하지만,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소심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에게 하는말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준중형차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물에 담가 조금만 불리면 중형차 크기를 넘볼 수 있는게 요즘 준중형차 모습이다. 소위 폼 좀내고 고개 좀 뻣뻣이 들고 싶어하는 소비자를 위해서 국내 자동차 메이커는 기꺼이 준중형차의 덩치를 키워주었다(왜 이럴 때만 생각해 주는 거야!).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짓이기도하다. 덩치가 커지면 그에 비례해 힘도 강해져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서있어도 역동적으로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디자인이지만 딱 디자인만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답답함이 하늘을 찌른다.
이런 전반적인 시장 의견을 주의 깊게 들은 르노삼성이 SM3에 2.0리터 휘발유 엔진을 얹었다. SM5에 들어가는 엔진과 같다(중형차에 2.0리터 엔진이 들어가는 것도 준중형차에 1.6리터 엔진을 넣는 것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지난 4월 부산국제모터쇼에서 2.0 모델을 쇼카 형식으로 선보였고 반 년이 지난 뒤 시장에 뛰어들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야 할 부분이 있다. ‘왜 지금 2.0 모델을 출시했는가?’다. 르노삼성에서 국내 언론에 보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중형차와 준중형차에서 고민하는 고객에게 폭 넓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SM3 2.0을 출시한다.’ 그런데 툭 까놓고 이야기해보면 르노삼성의 속마음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시승기를 쓰는 김에 고쳐봤다. ‘경쟁사의 새로운 1.6 모델이 SM3 1.6 모델보다 출력이 높기에, 출력전쟁(판매)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SM3 2.0을 출시한다.’[각주:1] 어쨌든 르노삼성은 개선된 1.6엔진으로 맞불작전을 펴지 않고 2.0엔진으로 큰불 작전을 세웠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수치를 확인하면 경쟁사의 1.6 모델보다 출력이 크게 높은 것은 아니다(아반떼 1.6 최고출력 140마력[각주:2], SM3 2.0 최고출력 141마력). 작은 엔진으로 큰 힘을 내는, 요즘 유행하는 다운사이징 바람에 편승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자동차라는 게 웃기게도 수치만으로 말할 수 있기도 하고, 수치가 전부가 아니기도 하다. 이제 가만히 앉아서 숫자만으로 SM3 2.0을 평가하는 것을 멈추고 몸으로 느껴볼 차례. 2.0엔진을 올렸으면 박력있게 치고 나가리라 생각해 방바닥을 기어가는 바퀴벌레 잡을 때처럼 액셀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그냥 보통 보통 정도. 엑스트로닉 무단 변속기를 사용하기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부드러운 주행이기는 하지만, 힘이라고는… 흠, 글쎄다. 3천500rpm을 넘기고 탄력을 받으니 2.0 모델의 최대토크 19.8kg·m가 이제서야 느껴지기 시작한다(사실 토크도 그다지 높지 않다). 4천850rpm을 넘겨야 최대토크가 뿜어지는 경쟁차와 달리 SM3 2.0은 3천700rpm에서 소위, ‘토크빨’이 최대에 이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1.6 모델에서 출렁거리던 승차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스펜션의 변화가 있었고 조금 단단해졌기 때문. 덕분에 장시간 운전에도 피로도가 적었고, 안정적인 주행을 할 수 있었다. 다만 비교시승이 아니어서 경쟁모델과 수치 차이만큼 주행성능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할수는 없었다. 두 차를 운전해본 예전 기억을 되살려본 결과, 차이는 없다. 오히려 직분사 엔진을 홍보 전면에 내세우는 차가 시속 140km 이상에서의 가속력이 더 좋은 것 같다.
달릴 만큼 달려봤고, 몸이 달아오를 만큼 올랐기에 마무리 운동 겸해서 차를 세워놓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자세히 살펴봤다. 먼저 17인치 알로이 휠이 눈에 띈다. 풍차 혹은 바람개비 같은 모양에서 스포티함을 살린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시선을 살짝 올려 도어 손잡이를 보면 눈이 부신다. 운전자가 유연하고 부드럽게 잡을 수 있도록 곡선이 추가된 디자인으로 바뀌었고, 크롬으로 마무리했다. 뒤쪽으로 가보자. 이럴 수가.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싫어했던 투톤 리어 범퍼가 보디 일체형으로 바뀌었다. 자동차가 물과 기름도 아니고 섞이지 못해 경계선을 그어놓은 투톤이 너무 싫었다. 페인트를 칠하다 만 것도 아니고…. 아무튼 정말 잘 바뀐 것 같다. 리어램프 밑으로는 2.0 모델임을 알리는 엠블럼이 반짝인다. 익스테리어는 여기서 끝.
실내로 들어가 보자. 앞좌석에 앉으면 스티치로 한 뜸 한 뜸 박음질한 가죽 시트에 마음이 동하고 2.0 모델에만 있는 대시보드 카본 파이버 패널에 남은 마음을 다 주게 된다. 또한 보스 오디오 시스템과 아이나비와 공동개발한 스마트 i 내비게이션까지 만져보면 르노삼성이 왜 그토록 '프리미엄, 프리미엄' 했는지 수긍이 간다. 준중형차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 높은 실내가 아닐까 싶다. 이때 구석에서 바뀐 부분을 찾아냈다. 이건 정말 찾기 어려웠는데 트렁크 안쪽에 홈이 파인 손잡이가 생긴 것. 트렁크 사용 편의성을 높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트렁크 안쪽에 손을 넣고 빠르게 닫을 때, 손이 박자를 맞추지 못하면 비명을 지르게 될 지도 모른다.
르노삼성의 말처럼 2.0 모델 출시는 좀더 많은 고객에게 SM3의 우수한 상품성을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라인업을 다양하게 한 르노삼성의 노력에 일단 박수를 쳐준다. 그래도 할 말은 있다. 다른 경쟁모델과 비교해 SM3 2.0 모델이 출력이 월등히 뛰어난가? 공인연비가 높은가? 모두 아니다. 그런데 소비자가 더 비싼 세금을 내며 SM3 2.0 모델을 선택해야 할까? 유러피언 감각을 지닌 프리미엄 준중형 세단이라는 이유 하나에 2천만 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 하는가? 글쎄, 이것저것 따지는 현명한 소비자라면 고개를 저을 것같다. 르노삼성은 당연히 멈추지 않고 모델추가를 계속해서 해야 한다.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을 고쳐야 한다. 기술력 변화가 그것이다. 르노삼성하면 떠오르는 기술력 하나쯤은 갖춰야 한다. 경쟁모델과 어깨를 맞대기 위해 비슷한 출력의 큰 엔진을 내놓는 것이 아닌, 같은 배기량으로 조금 더 높은 출력을 내는 엔진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파워트레인에 변화까지 더해주면 금상첨화. 이런 기술력으로 르노삼성만의 성격을 만들어가야 한다. 무난함으로 경쟁하기에 이미 세상은 개성으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