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피아의 자동차 연구소

지난 시간에 전일본 그랜드 투어링카 챔피언십(약칭 JTC/JTCC)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시간에는 일본 슈퍼 스포츠 세단 레이스(ジャパン•スーパー•スポーツ•セダン•レース, 영:Japan Super Sports Sedan Race, 약칭 JSS)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1. 이 경기는 대체 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1980년대 열린 실루엣 포뮬러의 연장선으로 열린 경기였다. 당시 닛산 실비아 터보나 스카이라인 DR30 터보 등이 참가했던 이 경기에 닛산 실루엣 포뮬러가 참가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셈. 1982년 당시 국제자동차연맹의 경주규정 개정으로 인하여, 그룹 5 규정이 그룹 C로 재편되었는데, 그 영향을 짙게 밭은 것이 바로 JSS였다.

2. 열리던 장소는?
본 경기는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열리던 후지 그랜드 챔피언십의 서포트 레이스라는 특성 때문에 다른 서킷에서는 개최되지 않았다.
(후지 그랜드 챔피언십 : 후지 스피드웨이가 메인 스폰서로서 진행한 자동차 경주, 개최 초창기에는 배기량에 제한이 없었고, 2좌석 레이싱카~특수 그랜드 투어링카까지의 혼주로 진행, 1979년부터는 엔진 배기량이 2리터까지의 2좌석 레이싱카에 챔피언십이 걸렸음. 싱글시트 레이싱카는 1979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했고,1987년에 배기량이 3리터로 늘어났다. 1989년까지 개최되었다.)

3. 규정
기본적으로는 그룹 A와 같은 시판차를 베이스로, 개조범위는 그것보다 넓었다. 즉, 오버 휀더나 에어로 파츠도 장착되었고, 엔진 사양도 완전 개조를 근간으로 진행, 일부의 흡기 제한이 있지만 시판차의 사양을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개조가 가능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으며, 엔진 배기량은 아래와 같다.

DOHC - 3,500cc
SOHC - 4,000cc
로터리 엔진 - 일반적인 레시프로 엔진으로 환산시 3,000cc(12A 한정으로 페리페럴포트 사양 허가됨)

4. 주요 참전 차량
닛산 스카이라인을 위시하여 당시 그룹 A 규정에 의해 JTC에 참전하지 못하던 사바나 RX-7 FC3S, MZ11형 소아러 등이 참전, 특히 스카이라인 GTS-R R31과 FC3S형 RX-7의 참전은 60~70년대 하코스카와 사반나 RX-3의 대결 이후 맞대결로 치닫는 분위기를 보여줬다.

5. 사라진 이유
이 경기는 1993년 이후로 더이상 열리지 않게 되었는데, JTC&JTCC 이야기에서 언급한 대로 JTC가 JTCC로 바뀌면서 특히 R32 스카이라인 GT-R과 같은 그룹 A 경주차들은 갈 곳을 잃었고, 이 차들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 열린 JGTC에 통합되는 형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다만 1993년에는 JGTC와 동시 개최로 열린 후 1994년에 JGTC와 함께 발전적으로 막을 내렸는데, 초창기 GT2(이후 GT300)의 경주차들이 JSS 계통이던 스카이라인이나 RX-7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6. 관련영상

베스트모터링 1992년 JSS 경기 영상(츠치야 케이이치 참전)

1991년 당시 JSS 경기 영상(경기 장소 : 후지 스피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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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채팅방에서 이야기 나누다가 나온 이야기를 글로 풀게 되었습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로는 전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Japanese Touring Car Championship)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배경
일본의 자동차 경주는 1962년 혼다 기연공업이 미에현 스즈카시 스즈카제작소 인근에 트랙[각주:1]을 지은 것과 1966년 후지 스피드웨이가 문을 연 것으로부터 현대적인 서킷 레이스가 태동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부터 자동차를 브랜드들이 생산해왔지만 큰 경기라 할 수 있는 것의 시작은 1963년, 스즈카 서킷에서 열린 제1회 일본 그랑프리였다.

이때의 일본 그랑프리는 우리가 지금 보는 스포츠카 또는 투어링카 경주였고, 1971년부터 포뮬러카 경주 대회로 전환, 이후 1976년에 처음으로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포뮬러 1이 열렸지만, 1977년에 열리고 한동안 열리지 않았고, 여기에 1970년대를 강타한 머스키법의 등장으로 각 업체의 모터스포츠 활동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이 때 열리기 시작한 대표적인 대회가 후지 스피드웨이가 프로모터가 된 후지 그랜드 챔피언 레이스(富士グランチャンピオンレース, 약칭 富士GC).

이후 1980년대에 들어와서 국제자동차연맹은 국제 스포팅코드 부록 J를 개편했는데 그 개편된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1969년 개정안 1971년 개정안 1982년 개정안
그룹 1 : 양산형 투어링카, 12개월 동안 5천대 이상 생산 그룹 N&그룹 A : 12개월 동안 2,500대 이상 생산
(1993년 이전에는 5,000대 이상)
그룹 2 : 투어링카, 12개월 동안 1,000대 이상
그룹 3 : 그랜드 투어링카, 12개월 동안 500대 이상 그룹 3 : 양산형 투어링카, 12개월동안 1,000대 생산 그룹 B : 12개월 동안 200대 이상
그룹 4 : 스포츠카, 12개월 동안 25대 이상 그룹 4 : 특별 그랜드 투어링카, 12개월동안 500대 생산[각주:2]
그룹 5 : 스페셜 투어링카 그룹 5 : 스포츠카, 12개월 동안 25대 이상[각주:3] 그룹 C
그룹 6 : 프로토타입 스포츠카

이 영향으로 인하여 일본에서 그룹 A 경주차가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 이에 포뮬러 선수권과 스포츠카가 중심이던 일본 모터스포츠 계에서 오랜만에 투어링카 대회가 열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전일본 투어링카 선수권(全日本ツーリングカー選手権, Japan Touringcar Championship)의 시작이다.


2. 규정
그룹 A를 기반으로 해서, 3개의 클래스로 나눴다. 배기량 2.5리터 이상의 Div.3, 1.6 이상 2.5 이하의 Div.2, 1.6 이하의 Div 1이다. 이 이름들은 1988년 Div.3이 클래스 1, Div.2가 클래스 2, Div.1이 클래스 3으로 개정되었고, 이해부터 FIA의 터보 계수가 1.4에서 1.7로 개정되었으며, 차량 배기량마다 중량이 정해졌다.

3. 차량들은 무엇이 나왔는가?
1989년 닛산 스카이라인 GT-R R32가 나오기 전까지 최상위 클래스인 클래스 1에서는 BMW M635CSi나 닛산 스카이라인 R30, 토요타 수프라, 미츠비시 스타리온, 포드 시에라가 도전장을 내밀었고, 특히 포드 시에라는 1987~1988 2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중간급인 클래스 2는 닛산의 실비아와 미쓰비시 미라쥬 터보, 폭스바겐 시로코, 마쯔다 RX-7 등이 참전했는데 1987년 시즌 중에 BMW M3가 참전, 이 이후의 시즌을 사실상 씹어먹게 된다.
국산차의 장으로 열린 클래스 3은 토요타 카롤라 레빈과 혼다 시빅의 대결구도로 진행, 스타렛이나 펄사도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4. 아니 그럼 왜 JTC가 JTCC로 바뀐거야?
간단히 말한다면, 규정의 변동이 컸다. 그룹 A를 중심으로 하는 경주를 1994년에 클래스 2로 전향한다고 했는데 이 클래스 2의 근간은 당시 영국에서 열리던 브리티시 투어링카 챔피언십의 경주 규정이었다. 유럽에서는 이미 이 규정에 맞춘 경주차가 많았기에 국제자동차연맹은 이 규정을 1993년에 클래스 2라는 규정으로 넣었고, 일본 역시 이에 발빠르게 대응했던 것이다.

여기에 JTC판이 완전 한 차종 중심으로 흘렀으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었을 것이니 변경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이 클래스 2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면, 뒤에 슈퍼 투어링(Super Touring)이라 불리게 된 규정으로 두 바퀴로 조항 및 구동을 해야 하고, 2리터 엔진[각주:4]에 차체길이는 최하 4.2m. 최소한 준중형급 세단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이에 새로운 규정으로 이행하기로 하면서 아예 대회의 영문명도 기존의 Japan Touringcar Championship에서 Japan Touring Car Championship으로 변경되었다.

5. JTCC의 규정은?
단일 클래스 레이스이다. 4도어 4인승, 4륜에 2리터 이하의 자연흡기 엔진을 차량 앞쪽에 얹은 차량을 베이스로 하는 경주로 진행되었으며, 구동방식에 의해 차량 중량이 결정되었다.[각주:5]
여기에 엔진 회전의 제한을 뒀는데 최대 회전수는 8,500rpm, 경기 진행방식은 주행거리 약 100km의 2히트제 스프린트 레이스로 진행되었고 각 레이스 중간에 쉬는 시간을 두면서 미캐닉들의 차량 정비도 진행하게 했다.

6. JTCC의 종막
1994년에 야심차게 시작한 JTCC였지만 그 결말은 초라했다. 당시 일본 모터스포츠 내에서 양산차를 개조해서 참가하는 대회로는 전일본 GT 챔피언십[각주:6]과 슈퍼다이큐가 자리를 매김하고 있던 상황이니, JTCC로서는 완전히 끼인 꼴이 된 것이다. 게다가 전년도인 1997년 말에 터진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였을까? 닛산이 회사의 사정을 이유로 철수했고, 혼다도 F1에 전념하게 되면서 JTCC는 토요타 원메이크판이 되었고, 결국 대회는 막을 내렸다.

이후 운영권을 넘겨받은 일본 투어링카 운영협회는 독자적 파이프 프레임 섀시에 V6 3리터 양산엔진에 트윈 터보를 얹는 등의 개조를 해서 슈퍼 실루엣[각주:7] 방식의 시리즈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참가자의 부족으로 단념하게 된다. 당시 폭등하는 참가비 절감을 위해 참가 차량 공통의 파이프 프레임의 사용이나, 엔진 개조 부품, 기어 박스나 브레이크 등에 공통의 공인 부품을 설정하는 등의 비용 경감이 계획되었으나 전술한 대로 다른 양산차를 개조해서 참가하는 대회가 있고, 메이커의 관여가 규제되는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7. 다른 레이스와의 관계?
그룹 A로 열린 JTC는 사실 슈퍼 GT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사실 JTC가 JTCC로 넘어가면서 종전의 그룹 A 경주차들을 포용할 경기가 없었던 것이 사실인지라, 이에 당시 JTC의 규정을 조금 손 봐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니 이때 JTC에 뛰었던 차들이나 팀들이 JGTC에 참가했는데 이들이 GT1(이후 GT500)에 참가한 것이다.

8. 영상

1987년 그룹 A시절의 전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


1990년 닛산 스카이라인 GT-R이 활동하던 시절의 전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

 

1994년 JTCC(베스트 모터링 제공)



출처 : 일본어 위키피디아 및 영문 위키피디아

  1. 스즈카 서킷 [본문으로]
  2. 1976년에 24개월동안 400대로 개정 [본문으로]
  3. 1976년에 스페셜 프로덕션카로 개명 [본문으로]
  4. 6기통 2리터도 가능했다. [본문으로]
  5. 종전 그룹 A 시절에는 배기량에 따라 최저중량이 정해졌다. [본문으로]
  6. 현재의 Super GT [본문으로]
  7. 1976년에 등장한 스페셜 프로덕션 투어링카 클래스를 일본에서 부르는 명칭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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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원인이 된 영상부터 보고 가자.


포뮬러 1계에서 아주 악명 높은(?) 라디오가 바로 이 발언이다.

GP2 engine..... GP2... ARGH!!!

한마디로 'GP2[각주:1] 엔진이잖아!! GP2!! 으아아아!!'라는 말인데, 이 말의 유래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건가 하면, 바로 2015년 포뮬러1 일본 그랑프리였다.

때는 바야흐로 2015년, 포뮬러1의 팀 중 하나인 맥라렌은 그동안 쭉 써온 메르세데스를 버리고 혼다기연공업과 다시 손을 잡게 된다. 전년도에 하이브리드 터보 차져가 돌아왔고, 또 당시에 로터스 F1이 메르세데스와 계약함에 따라 맥라렌은 새로운 공급처를 찾아야 했으니, 과거의 영광 재현을 위해 혼다와 계약한 것이다.

그리하여, 맥라렌은 자신들의 신형 경주차인 MP4-30 경주차를 새로 제작하면서 여기에 혼다의 RA165H 파워유닛을 얹은 것이다. V형 6기통 1.6리터 엔진에 동력 에너지를 회수하는 MGU-K와 열 에너지를 회수하는 MGU-H가 들어간 파워유닛을 얹고 여기에 8단 반자동변속기를 맞물린 경주차가 나오면서 승산이 있을 것임을 생각했지만....

패키징 문제인지 엔진 문제인지, 스타트부터 재앙이었다. 개막전이던 호주 GP, 페르난도 알론소는 직전의 테스트에서 발생한 사고로 불참했고, 그 자리를 메운 건 당시 리저브 드라이버인 케빈 마그누센이었지만 경기 시작도 하기 전에 차가 퍼지면서 영국 출신의 젠슨 버튼 혼자 참전해야 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GP에서는 알론소와 버튼 둘 다 리타이어하면서 올 시즌이 혹사의 시즌임을 보여줬다.

중국과 바레인에서는 완주하는데 그쳤지만, 고향인 스페인 GP 이후, 오스트리아 GP까지 4연속 리타이어[각주:2][각주:3]라는 초유의 성적을 받은 알론소의 속은 타들어갔을 것이다. 심지어 직전 그랑프리인 싱가포르 GP도 동반 리타이어라는 결과를 받은 알론소의 화는 부글부글 끓어올랐을 것이고, 결국 일본 GP에서 문제의 발언을 터뜨린 것이다.

문제는.... 장소가 장소였으니, 일본 GP가 열리던 곳이 스즈카 서킷. 바로 혼다가 소유한 곳이었다.

대놓고 팀 라디오로 분통을 터뜨렸는데, 이게 방송으로 퍼졌고, 모든 팬들이 경악했다! 그러나 알론소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GP2 엔진이라 한 것은 지금까지 말한 것 중 좋게 말한 축에 든다고 하며, 지금까지의 팀 라디오가 전부 공개됐다면 납득할 것.


이 정도면 도대체 2015년의 혼다 엔진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그렇기에 이 발언은 사실상 혼다 팬들에게는 금기어가 되었으니....

필자도 2019년에 일본 그랑프리 직관 차 구경갔을 때 저 말 해보라는 사람에게 '나 죽는 거 보고 싶어?'라고 응대했다. 혹시라도 F1 직관을 위해 스즈카로 가실 분 계신다면, 저 말 절대 쓰지 말자.

더보기

전술한 대로, 2015년 혼다 엔진이 아주 개판이다보니, 알론소가 시즌 내내 혼다 엔진을 극딜했다. 이 밑으로는 그 내용들 중 일부다.

엔지니어 : ERS가 정상적으로 충전되고 있으니 에너지를 사용해
알론소 : 니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있는거 같은데. 아무것도 충전되지 않았어.
(스페인 GP, 충전 되어 있겠지만, 쓰나 안쓰나 느릴거 같으니......)

엔지니어 : 엔진에 큰 문제가 생길거 같으니 연비주행을 해달라.
알론소 : 그렇게 하기는 싫어. 이미 큰 문제가 있다고. 이딴 걸로 레이스하면 아마추어같이 보일 거야.
(캐나다 GP, 여담이지만 이 경기는 맥라렌이 업데이트 된 엔진을 가져온 경기였다. 그런데도 리타이어.)

"마싸가 쫓아오고 있으니 우리가 막아야 해."
"너 유머 감각이 좋다."
(러시아 GP, 당시 마싸는 윌리엄스 소속이었는데, 이는 이런 차량으로 어떻게 윌리엄스 차를 막냐는 뜻. 여담이지만, 이 경기에서 알론소는 10위로 들어왔으나 코너에서 수차례 숏컷함으로 인해 포인트를 반납했다.)


아, 그럼 그 뒤는 어찌되었냐고? 르노 엔진을 쓰던 레드불/토로로소가 2018년 시즌부터 혼다와 계약하면서 맥라렌이 르노와 결합했다. 그리고 레드불은 그 시점부터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지만....

  1. 현재의 F2로 포뮬러1의 하위 카테고리, 당시 엔진을 르노에서 공급했다. [본문으로]
  2. 특히 캐나다와 오스트리아가 심했는데 이 두경기는 버튼도 동반 리타이어했다. [본문으로]
  3. 오스트리아 GP는 업데이트 엔진을 가져왔는데도 리타이어였다. 뭐한거냐? 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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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6일, F1은 안토니오 지오비나치[각주:1]가 알파 로메오 올렌과 결별하고 알핀 아카데미[각주:2] 소속인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드라이버 저우관위(Zhou Guanyu,  周冠宇)와 계약했다고 밝혔다. 1999년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 출신인 이 드라이버는 2021년 현재 FIA Formula 2 Chapionship(이하 F2라 표기)과 F3 Asian Championship에 참전해서 이 중 F3 Asian Championship에서는 우승을 차지, 2021년 F2에서는 2위를 기록하고 있다.[각주:3]

그런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 이유는 그가 페이 드라이버라는 것. 그런데, 명색이 F2에 참가 중인 드라이버가 단순한 페이 드라이버일까? 아니면 중화인민공화국 사람이라는 이유에서일까? 한번 그의 이력과 경력 등을 통해 자세히 파헤쳐 보자

1. 저우관위의 프로필

생년월일 1999년 5월 30일(현재 22세)
출신지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
데뷔 2008년(중국 카트 무대)
2012년(유럽 카트 무대)
2015년(포뮬러 대회)
시리즈 챔피언 기록 2021년 F3 Asian Championship
수상 이력 2019년 Anthoine Hubert Award[각주:4]
2021년 현 소속팀 UNI-Virtuosi(FIA F2)



2. 이력[각주:5]
저우관위는 1999년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8세인 2008년 경에 카트에 입문, 레이싱을 시작했다. 2010년 Kartmasters British Grand Prix의 Rotax Mini Max 클래스에 참가해 14위를, 2011년 Trent Valley Kart Club의 Mini Max 클래스에 참가해 10위를 기록한 그는 2012년, 본격적인 경쟁을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카트 대회에 도전장을 내미는데, 2013년에는 셰필드에 본거지를 둔 Strawberry Racing team 소속으로 카트 대회에 참전, 그해 영국 Super 1 National Championship의 Rotax Max Junior 클래스와 Rotax Max Euro Challenge의 Junior 클래스에서 1위를, 거뒀고, 로탁스 엔진으로서는 국제대회인 Rotax Max Challenge Grand Finals의 Junior 클래스에 출전해 3위를 기록했다.[각주:6]

다만 카트로 참전한 마지막 시즌인 2014년에는 Rotax Max Wintercup과 유로 챌린지에서 2위를 기록했고 KF급 대회에는 라운드를 골라 참전하게 되었고 이해 전년도의 성적에 힘입어서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

2015년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의 멤버가 된 그는 이탈리아 포뮬러 4 챔피언십에 프레마 파워트레인[각주:7]팀 소속으로 참전, 제2전인 몬짜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로베르트 슈바츠만과 데이비드 벡먼을 제치고 그해 신인상을 따내는 기염을 토해냈으며 드라이버 순위 2위를 기록, 또한 독일 ADAC F4 챔피언십의 레이스에 지정된 라운드에 참전해 스필베르크전과 스파 전에서 두차례 포디엄에 오르기도 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FIA Formula 3 European Championship에 참가했는데 첫 시즌은 Motopark 팀으로 참전, 허나 이해 최고 성적은 2번 포디엄의 끝자락을 차지한 것이 전부였을 정도로 상당히 헤멨고, 이후 F4에 참전했던 프레마로 건너가 5회 포디엄에 진입하면서 8위로 마무리, 이 시즌 스파전에서 현 맥라렌 소속인 랜도 노리스의 발목을 잡는 주행을 보여주면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018년에는 F2 진입 설이 흘러 나왔지만 그는 F3에 다시 도전했고, Pau R1, 호켄하임 R1에서 1위를 하면서 시즌을 8위로 마무리했다. 다만 이해에는 운도 지지리 없었는데 예선의 좋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스파 R1-R2-실버스톤 R1-미사노 R3으로 이어지는 연타석 리타이어의 불운을 제대로 맛 봤다.[각주:8] 여담이지만 2017년에서 2018년에 Formula E에 참가하는 Techeetah팀의 Development Driver로 참가했다고 한다.

2019년에는 F2로 올라왔는데, 이해에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를 떠나 Renault Sport Academy로 이적, 동시에 Luca Ghiotto를 파트너로 해서 UNI-Virtuosi 소속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첫해 총 22회의 경기에 모두 참전하여[각주:9] 카탈루냐, 모나코, 폴 리카르 스프린트 레이스, 실버스톤 피쳐, 야스마리나 피쳐에서 포디엄에 올랐고 특히 실버스톤에서는 폴포지션, 야스마리나에서는 패스티스트랩을 기록하면서 7위에 올랐다. 이해 시즌 종료 후 앙투안 유베르트가 사고로 사망하면서 신인 드라이버 중 가장 잘한 드라이버에게 주어지는 Anthoine Hubert Award를 수상했다.

2020년에도 UNI-Virtuosi 소속으로 F2에 참전했는데 파트너는 과거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 소속인 Callum Ilott. 이해에 르노의 테스트 드라이버를 겸직 하면서, 소치 스프린트에서 1위를 차지, 소치 스프린트를 포함한 6개의 레이스에서 포디엄에 오르고, 4회의 패스티스트 랩을 기록했다. 2021년에도 F2에서 참전하였는데 대회가 종료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바레인 피쳐, 모나코 스프린트 1, 실버스톤 스프린트 1레이스에서 우승하면서 소치 레이스가 종료된 현재까지 2위를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이해 초, F3 Asian Championship에 출장하면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성적은 15경기 출장, 4승, 5회 폴포지션, 5회 패스티스트랩, 11회 포디엄으로 총 257 포인트를 기록했다.


3. 저우관위의 문제점? 정말 페이드라이버일까?
- 기록만 보면 나쁜 편은 아니다. 허나, 문제는 그의 나이, 최근에 F1에 진출하는 드라이버들의 나이가 어려지고 오랜기간 하위 레이스에 있는 경우, F1에 들어가는 확률이 낮아지는 편인 관계로 다른 클래스로 나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실제로 2020년에 저우관위와 파트너를 이룬 캘럼 아일럿의 경우 2021년 시즌 중 인디카 레이스에 나가고 있었고 한세용 선수 역시 인터컨티넨탈 GT 챌린지에 참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저우관위의 스폰싱을 위해 중국의 기업들이 500억원에 육박하는 돈을 투자한다는 기사도 나오면서 자본력이 달리는 알파 로메오가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버린거 아니냐! 라는 반발을 사고 있다. 게다가 저우관위가 알핀 아카데미 출신인 관계로 '페라리 아카데미 출신을 안 쓰고 돈을 따라간 거 아니냐!'라는 반발도 나오니, 저우관위 입장에서는 이를 타개할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절실해 진 것이다.

4. 결론
- 왈가왈부하는 상황은 스토브리그동안 진행될 것은 뻔하고, 모든 것은 당사자가 실력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물론 알파로메오의 차량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당사자가 좋은 실력을 보여준다면, 팬들이 바라보는 눈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나, 그보다 나쁜 성적을 거두게 된다면, 페이드라이버 아니냐는 논란은 더욱 붉어질 것이다.

저우관위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일단 그는 2021년 F2에서 최대한 좋은 성적을 내고, F1으로 올라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 2022년 F1의 개막일은 2022년 3월 20일, 바레인 사키르에 있는 바레인 인터내셔널 서킷이다. 과연 새로운 규정에 맞춰 만들어질 알파로메오의 차량과 저우관위는 어떤 궁합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1. 당일에 포뮬러 E 드래곤 레이싱으로 이적한다고 발표가 떴다. [본문으로]
  2. 옛 르노 스포츠 아카데미가 이름을 변경한 것, 2002년 가동 [본문으로]
  3. 현재 대회 진행 중. [본문으로]
  4. 그 해에 가장 잘했던 신인에게 주어지는 상 [본문으로]
  5. 이상의 기록은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조했음을 알린다. [본문으로]
  6. 이해 이 클래스 우승자는 미국의 후안 마누엘 코레아. 2019년 8월 F2 스파전에서 사고로 크게 부상을 입었던 그 드라이버 맞다. [본문으로]
  7. Prema Powertrain [본문으로]
  8. 사유는 타이어 펑쳐 및 다른 드라이버와의 충돌 등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9. 원래 스프린트-피처 레이스를 모두 합쳐서 24회지만, 이해 스파-프랑코샬에서 대형 사고가 발행, 앙투안 유베르트 선수가 사망하면서 스파전이 취소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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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4일에 내가 본 사진이다. 후배 한 놈이 보내준 트윗에 있는 사진인데, '류시원 선수가 저래 강해보였나?'하는 농담이 들게 만드는 사진이지만 정확히 보면 류시원 선수 뒤에서 누가 헹가레 받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거 알고보면 14년전? 그 정도로 꽤나 오래된 사진이다. 배경같아보이는 CJ로고(?)도 그렇고, 서킷 자체도 예전 용인 같고, 류시원 선수가 입은 슈트는 그렇다 치고, 심지어 류시원 선수 앞에 있는 분이 쓴 모자인 GM대우 모자, GM대우 레이싱이 한참 활동할 때의 모자다. 그리고 저 남성분, 뒷머리가 저리 길던가??? 찾아보면 느낌상 오일기 선수[각주:1] 같긴 한데, (근데 오밟아형님 뒷머리가 저리 길었던 적이 있던가?) 저 뒤의 S오일 팀원들에게 헹가레 받는 선수는 누군지 모르겠단 말이다.

기사 찾아보니, 가톨릭상지대학YB팀이 S오일의 후원을 받았다고 하니, 그팀 소속 드라이버인가???

여하튼, 류시원 선수가 다시 슈퍼 6000으로 올라오길 바라는 아는 후배가 써버린 트윗이 조금 짠한데........ 잠깐, 근데 이거 사이트 레이아웃이 DC인사이드 아냐??? 으에에!! 워이! 워이!!



  1. 1976년 대구 출신, 현 퍼플모터스포트 소속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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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인적으로 정리해 본 글로 약간의 뻘글(?)입니다. 전자는 규정 변화 부분을 다룬 거고 후자는 제네시스 쿠페의 단종 5년 도과로 인한 규정 변화를 요구하는 짧은 글입니다. 대상은 일단은 슈퍼레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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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모터챔피언십~BAT GT 챔피언십 시대
2000년 : 프로드라이버들의 전장으로 GT 클래스 등장
- 4기통 2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사용하는 것이 골자. 개조 범위가 종전의 투어링 A보다 더 넓었고 ECU까지 건드릴 수 있었음

2002년 : 2001년에 등장한 N+1 클래스가 GT2로 변경, 종전의 GT는 GT1로 변경
- GT2의 차량 배기량은 1,601~2,000cc. FIA 호몰로게이션을 받은 차는 가능하다는 규정으로 발표. 티뷰론 및 티뷰론 터뷸런스가 득세.

2004년 : 4기통 제한규정 삭제, 인젝터 수만 실린더 1개로 제한, 엔진 회전수 제한을 7,500rpm에서 8,000rpm으로 변경

2005년 : GT1의 엔진 회전수에 변화, 종전에는 기통수에 상관 없이 모든 엔진이 8,000rpm이었으나 이해부터 4기통은 8,500rpm, 5기통은 8,750rpm, 6기통은 9,000rpm으로 변경. 동시에 GT1에는 동일 메이커에서 2,000cc로 생산되는 자동차의 섀시와 엔진을 바꿔 얹을 수 있음. GT2는 엔진 회전수를 종전 7,000rpm에서 7,500rpm으로 변경

2) CJ코리아 GT 챔피언십 시대
2006년 : 2드라이버 내구레이스 시스템

3) 슈퍼레이스 시대
2007년 : 1인 드라이버 시스템으로 회귀

(이후 2008년~2011년까지 열리지 않음)

2012년 : 슈퍼 2000클래스와 슈퍼 3800 클래스(=제네시스 쿠페 클래스)를 통합해 새로이 등장, 5인승 이하의 양산차량 베이스로 2리터 터보+2륜구동 차량 체제
- 2010년 당시 GM대우 레이싱이 슈퍼 2000 클래스에 라세티 프리미어 디젤 터보 차량을 등판시키면서 다른 팀의 반발이 컸고 2011년에 슈퍼 2000 클래스에 가솔린 터보 차량이 등장하는 원인이 됨. 이 규정은 2015년까지 유지, 단, 2014년 시즌 중에 제네시스 쿠페 3.8리터 차량이 참전하기도 함. 이때에 르노삼성의 SM3도 참전했고 닛산 실비아도 참전했다.

2016년 : GT클래스를 4개로 세분화, 배기량과 엔진 형식에 따라 구분. 2리터 터보의 GT-1, 3.8리터 N/A의 GT-2, 1.6리터 터보의 GT-3, 1.6리터 N/A의 GT-4로 구분. TCR 규정 일부 도입으로 인하여 같은 GT-1 클래스 차량이라도 모습이 달라지긴 했음.
- 이 규정은 2017년까지 유지

2018년 : 위와 동일한 규정이었으나 GT-3/GT4를 슈퍼챌린지로 보내고, GT-1이 차량 부족으로 인하여 사실상 폐지, GT-2를 GT로 올려서 진행
- 이 때문에 사실상 제네시스 쿠페 원메이크화함.

2019년 : GT-2 클래스의 부활, GT-1 클래스의 참가가능 차량을 수정, 전륜 구동일 경우 2리터 터보로, 후륜일 경우 3.8리터 자연흡기로 세분화. GT-2는 1.6리터 이하 전륜구동으로 명문화
- 2021년 현재까지 유지됨. 2021년 시즌에 KMSA 모터스포츠 팀이 i30 N TCR 차량을 등판시킴.(드라이버 : 장현욱 선수)

(출처 : 카라이프 기록, 인터넷 웹진 등 당시 기록 및 슈퍼레이스 규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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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차가 거의 없는 GT-2는 일단 두고, GT-1만 보면, 제네시스 쿠페가 2016년 10월경에 단종된 고로, 단종 5년이 지난 차량의 참가를 불허하는 규정[각주:1]이 2021년 현재도 유지된다면, 당장 2022년부터 GT-1 클래스는 차량이 대거 빠질 것입니다. 2021년 슈퍼레이스 GT-1은 현재 결선 진출자 기준으로 80% 이상이 현대 제네시스 쿠페를 쓰고 있습니다.[각주:2]

따라서 차후에라도 규정 변경을 진행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몇몇 팬들은 아예 '2002~2005년의 BAT GT 챔피언십 때로 돌아가자. 그때가 황금기였다!'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본인도 끌리는 부분이긴 한데, 그 시기에는 혼다 S2000, BMW 3시리즈, 렉서스 IS[각주:3]도 나왔으니, 그렇게 보는 분들도 있을 거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좀 무리수일 수도 있으실 거 같고[각주:4], 아래는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생각해 본 것입니다.

1. 2012년 엑스타 GT 때의 2리터 터보 및 2륜구동 체제로 돌아가자.
2. TCR 차량의 참가를 확대하자.

1의 경우에는 팀 사이에서 "당시의 규정으로 돌아가자고? 차가 없어요!"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나올 수 있는게 이쪽이라 생각됩니다. 고성능 차량이 대부분 4륜구동으로 나오는 현실(실제로 국내에 팔리는 벤츠나 아우디, BMW는 동급에서 탑 레인지 모델은 전부 4륜구동으로 내고 있습니다.)이 문제이긴 하지만, 이 경우에는 2륜구동으로 개조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이 부분은 국내 미출시 모델들이 꽤나 걸려 있어 이 차들의 출시 여부가 변수라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차를 팔지도 의문이고 말입니다. 현재 고성능 컴팩트 모델이나 서브컴팩트급에 해당되는 차량이라면 토요타 GR 야리스라든가, 르노 메간 RS라든가, 알파로메오 줄리에타 QV라든가 혼다 시빅 타입 R 같은 차량들인데, 문제가 있다면 알파로메오 줄리에타는 2021년 현재 단종됐고 시빅 타입 R도 기본형 나오고 한 1년 지나야 나오는 상황입니다.

2의 경우는 현재의 규정상 충분히 가능하나, 이를 기존 GT-1 위에 올리든지, 아님 지금처럼 GT-1과 혼주 주행을 프로모터가 정해야 합니다. 다만 문제는 TCR 차의 비용인데, 필자가 들은 바로는 차량의 비용[각주:5]이 2억 5천만원인고로 소규모 팀에는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각주:6]

다만 해외에도 TCR 차량을 가지고 하는 대회가 열리고 있고, 또한 TCR 차량의 내구성은 종전의 GT 클래스 차량보다 좋은 관계[각주:7]로 안전성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현재의 GT를 투어링으로 내리고 투어링-TCR-스톡카로 이어지는 로열로드 루트를 만들자고 하는데, 다만 그 구조가 가능한 것이 자금력이 충분한 빅팀이기 때문에 중간에 차량이 많이 등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변수가 있습니다.[각주:8]

이외에도 '전기차를 등판시켜보자.'라는 아이디어도 있겠지만 이쪽은 현실적으로 좀 더 시간이 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전기차 레이스는 초창기 단계이고, 특히 투어링카급 레이스는 ETCR 하나 뿐인고로 각국으로 확대하는데에는 좀 더 지켜봐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외에 대안이 하나 더 있다면 N 페스티벌에 등장할 아반떼 N 베이스 경주차의 교차 참전을 허용하는 것인데, 플레이그라운드[각주:9]와 슈퍼레이스가 이를 허락할지 모를 일이고 또 2016년 KSF의 운영 문제로 서한-퍼플모터스포트와 솔라이트 인디고가 KSF에서 슈퍼레이스로 넘어온 적이 있다보니 KSF의 실질적 후신인 N 페스티벌이 이를 용납할지는 모를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봐도 누가 써먹겠어? 하는 글입니다만, 한번 보고 진지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2021년 8월 4일 오전 9시 5분에 일부 내용 수정)
(2021년 8월 4일 오전 11시 6분에 2차 수정)
(같은 날 11시 33분, 표현 등을 수정했습니다.)
(2021년 8월 5일 오전 9시 13분에 연대 구분 및 각주 추가)



  1. 이게 아마 2007년 또는 200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참고 :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전산등록시스템 [본문으로]
  3. 정확히는 일본 슈퍼타이큐 ST-N클래스에 참가한 토요타 알테쟈 모델을 대회 규정에 맞게 일부 손 본 모델. [본문으로]
  4. 당시에는 자연흡기 차량의 주류였습니다. 전술한 '한국 모터스포츠 GT 클래스의 변화'를 참조해주세요. [본문으로]
  5. 단순히 차량만 사는 것이 아니라 부품 등을 사는 것을 포함합니다. [본문으로]
  6.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제네시스 쿠페를 개조하는 경우에는 운영비 등을 합쳐서 1억원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7. 모클릭 김학수 기자에 의하면 해외에서 열린 경기에서 TCR 경주차가 타이어월을 들이받았는데 그대로 다시 주행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8. 이는 2018년에 열렸던 TCR 코리아가 1년만 열리고 더이상 열리지 못한 것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본문으로]
  9. 현대 N 페스티벌의 프로모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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