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봉고에 대한 칼럼입니다. 어떻게 해서 봉고가 탄생됬는지 나옵니다.
기아자동차는 2005년 7월14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비롯한 많은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11인승 미니밴 `그랜드 카니발' 신차발표회를 갖고 본격 판매에 들어갔다.
‘그랜드 카니발’은 ‘월드클래스 프리미엄 미니밴’을 기본 컨셉트로 개발한 풀 모델 체인지 신차로 총 26개월의 연구개발기간과 총 2,500억 원이 투입돼 개발되었으며, 연간 내수 4만대, 수출 16만대 등 총 2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기존 차명인 ‘카니발’을 글로벌 브랜드로 지속 육성함과 동시에 세계적 수준의 프리미엄급 차로 차별화시키기 위해 ‘웅장한’, ‘훌륭한’이란 뜻의 ‘GRAND’를 붙여 ‘그랜드 카니발’을 신형 미니밴의 이름으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날 첫 선을 보인 ‘그랜드 카니발’은 국내외 고급 미니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스타일은 물론 최첨단 기능들이 대거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11인승의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3,020mm의 안정감 있는 롱 휠베이스를 적용하여, ‘혼다의 오디세이/ 3,000mm’, ‘도요타의 시에나/ 3,030mm’, ‘닷지의 그랜드 카라반/ 3,030mm’ 등 세계 유명 미니밴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상품성을 확보하였다고 설명하였다.
특히 ‘그랜드 카니발’에는 오토슬라이딩 도어와 오토 테일 게이트, 회전반경 제어장치 VRS: Variable Rack Stroke, 차체 자세 제어장치 VDC: Vehicle Dynamic Control, 운전자세 메모리 시스템 IMS: Integrated Memory System 등 고급 대형차에 적용되는 최첨단 기술들이 대거 적용되었다고 한다.
이밖에 모던하고 심플함을 강조한 디자인, 강력한 브랜드 가치, 다양한 공간 활용성과 엔터테인먼트 기능, 최고 수준의 충돌안전성 확보, 동급 최고 수준의 170마력의 엔진성능과 실내 정숙성 등이 주요 특징이며, 이를 통해 기존 미니밴 수요층뿐만 아니라 고급 SUV나 승용차 수요층까지 폭넓은 호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랜드 카니발은 2005년 5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봉고의 신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기아자동차의 미니밴의 계보를 잇는 자동차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봉고의 탄생배경을 살펴보자.
우리나라가 한창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하던 시절인 1975년 12월 현대자동차가 울산공장에서 국내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를 생산할 때, 기아산업은 1974년 10월 ‘타이탄’및 ‘복사’에 이어 경제적인 승용차 ‘브리사’를 개발함으로써 종합 자동차회사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을 얻은 기아자동차는 이탈리아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프랑스 푸조사의 최고급 모델 ‘푸조604’를 생산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77년 형 2,000cc급인 ‘피아트132’를 들여와 생산하게 되었으며, ‘피아트132’의 더블 원형헤드램프 사이에 적당히 돌출된 그릴과 알루미늄 휠 등은 당시 상당히 발전된 디자인이였다.
소형차 ‘브리사’를 비롯하여 ‘푸조604’, ‘피아트132’등은 기아자동차에 ‘성능이 좋고, 튼튼한, 경제적인 차를 만드는 회사의 이미지를 심어준 승용차들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79년을 넘기면서 세계적인 불황과 두 차례의 오일쇼크, 10·26사태 등의 사회혼란으로 국내경제는 휘청거리기 시작하였다.
1997년의 IMF체제의 기아자동차의 모습처럼 당시에도 자동차업계의 앞날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98년 7월15일 공개입찰을 거쳐 현대자동차 그룹에 인수된 현재의 기아자동차가, 당시에는 1981년 2월28일 이른바 전두환 정부의 ‘2·28조치’에 의해 자동차업계가 재편되기 시작하는 중심에 있었다.
‘2·28’조치의 하나인 기아산업과 동아자동차가 ‘한국자동차’란 회사명으로 통폐합되는 것은 다행히도(?) 기아산업의 노력으로 1982년 7월 백지화된다. 그러나 이 조치의 영향으로 승용차생산 중단 및 오토바이사업 포기 등 도산위기에 몰리게 된다.
1997년 IMF체제와 너무도 비슷하지만 당시 경영진들은 자본과 경영을 분리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도입을 시도하여 기업을 회생시킨다.
일본 마쯔다회사와 기술제휴로 1980년 9월에 소형화물트럭 ‘1톤 봉고’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유지비도 싸고 용도가 다양해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1981년 8월 봉고신화의 주역인 ‘봉고코치 12인승’을 개발하여 새로운 도시자동차로 부각시켰다. 동시에 전사원은 가슴에 ‘봉고’를 써 붙이고 인사말도 ‘봉고를 팝시다.’로 대신하였다.
이러한 전 직원의 노력으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봉고’의 등장은 경제 불황을 벗어나기 위한 나라 전체의 분위기와 다용도성과 경제적인 차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출퇴근용으로, 업무용, 수송용으로 그 용도를 만족시키면서 ‘봉고’라는 이름을 기억하여 지금도 모든 원박스카를 봉고차라 부르게 되었다. 마치 조미료하면 미원이고 맥주하면 OB처럼 말이다.
이처럼 1980년에 처음 등장한 봉고는 등장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미니버스 형태의 차종은 없었는데, 봉고는 대형차와 승합차의 사이 속에서 틈새를 뚫은 자동차로서 기동성과 적재능력에 있어서 매우 탁월하였다.
1980년 10월 봉고코치를 개발에 착수할 때 디자인 컨셉트는 ‘경제적이고 안전하며 도시형 감각에 맞는 다목적 승합차’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개발 방향은 ① 프론트 모습을 변경 ② 엔진은 일부부품을 제외하고 자체생산을 원칙 ③ 바디는 자체개발 ④ 차체는 일본 업체에 의뢰 개발하기로 하였다.
‘봉고’는 이동수단으로써의 자동차의미에서 레저생활을 끌어내는 의미로의 자동차로 새롭게 태어난 원박스카이다.
따라서 봉고문화를 이 땅에 탄생시킨 ‘봉고’는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원박스카의 대명사인 것이다.
봉고라는 의미도 원박스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아프리카 산림영양을 뜻하는 영어이다.
봉고는 소과 아프리카산 대형 영양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며, 세계적으로 진귀한 동물이다. 삼림에 사는 영양 가운데 가장 몸집이 크며, 전체적으로 묵직하게 생겼으며, 몸통은 굵고, 귀가 큰 것이 바로 봉고인데, 당시 우리나라를 찾아온 아프리카 가봉공화국의 대통령 이름이 봉고여서 다시 한 번 화제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 같은 아프리카 산양의 뜻을 가진 ‘봉고’의 스타일 디자인은 일본의 마쯔다회사의 봉고를 그대로 들여와 큰 의미는 없었으며, 바퀴가 차체에 비해 너무 아래에 위치한 타입이라 다소 불안한 구조였다.
그러나 당시 신진 미니버스나 현대 미니버스 포터 등은 트럭을 버스로 개조한 차들이었지만 ‘봉고’는 원박스 개념에 맞춰 디자인된 최초의 승합차라 할 수 있다.
자동차 색상은 불황에 큰 인기를 끄는 초록색, 연두색등이 인기가 있었다. 이후 봉고는 1983년 2월 3밴·6밴을 내놓고 5월 9인승을 선 보였으며, 1985년 5월 휘발유엔진인 ‘봉고타운’이 그 뒤를 이었다.
그 후 원박스카의 후속모델로서는 현대의 ‘그레이스’, 1986년 봄 후계차 베스타, 대우의 ‘바네트’가 뒤를 잇게 된다.
1986년에 나온 기아자동차의 베스타는 기존 봉고의 다목적 용도의 장점을 살리면서 봉고 자체의 약함과 안전성 등의 단점을 보완하고, 신기술, 고기능의 이미지를 갖춘 신형 코치이다. 그때까지의 기아자동차의 기술을 바탕으로 원박스 차량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기아의 최초의 원박스 고유모델의 신세대 자동차이었다.
이후 1990년의 ‘뉴 베스타’, 1992년 ‘하이 베스타’를 거쳐 1994년에는 새로운 미니버스 ‘프레지오’를 디자인하게 된다.
그러다가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현대자동차 그룹으로 합병을 한 기아자동차는 2세대에 해당하는 ‘봉고 프론티어 트럭’과 함께 ‘네오 프론티어’로 계보를 이어갔다.
이후 기아자동차는 25년간 계속된 봉고신화를 이어가기 위해 2004년 3월 3세대인 ‘봉고3’ 트럭과 버스의 판매에 들어갔다.
기아자동차는 3세대 봉고시리즈에서는 기존 12, 15인승 봉고버스 외에 글라스 밴 형태의 3, 6인승 모델을 신규로 투입하기도 하였다. 또한 기아자동차는 봉고시리즈에 상용차로는 처음으로 커먼레일 엔진을 탑재하여 기존 기계식 디젤엔 진의 문제점이었던 소음과 진동, 유해가스를 대폭 감소시키고 엔진성능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이러한 봉고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자동차는 1990년에 100만대, 2003년 7월에 200만대 판매를 돌파하기도 하였다. 지난 1992년에 최고 14만4163대가 팔렸던 봉고의 인기는 최근까지도 식지 않아 지난해에도 7만9740대가 팔렸다.
그중에서 봉고버스는 출시 5년만인 지난 1986년 국내 판매 10만대를 돌파한데 이어 1991년 30만대를 넘어섰으며, 지난 2003년 7월 총 60만대 판매를 돌파하여 현재까지 총 63만5천여 대가 팔렸다. 하지만 레저용 차량 붐과 함께 미니밴 시대가 열리면서 인기가 주춤해져 올 들어서는 4천대 남짓 팔리는 데 그쳤다.
따라서 봉고는 2003년 누적대수로 206만3072대가 판매되는 등 장수 모델로 자리 잡았지만 끝내 2005년 5월 단종 되는 아픔을 가지게 된다.
기아자동차 봉고 신화를 일궈낸 봉고 승합차가 생산 25년 만에 단종하게 된 것이다.
기아자동차는 광주 소하리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봉고Ⅲ 버스'의 생산대신 내년 출시할 예정인 소형 미니 밴인 프로젝트 명 ‘UN’의 전용 라인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서 판매가 시작된 ‘그랜드 카니발’인 프로젝트명 VQ의 11인승 모델과 12인승이 주력인 봉고버스의 시장이 상당 부분 겹친다고 판단하여 봉고버스 생산을 중단키로 하였다고 한다.
또한 기아자동차는 7-10인승 승합차 세금이 인상됨에 따라 9인승인 카니발 후속차량에서는 주력모델로 11인승을 추가하기로 하였다.
이제 지난 2003년 쌍용자동차의 '이스타나'와 현대차의 '그레이스'가 단종 된데 이어 기아자동차의 '봉고버스'까지 단종 됨에 따라 국내에서 미니버스 개념의 승합차는 `밴'에 밀려 사실상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박스형 미니버스가 사라지게 된 것은 11인승 이상 미니 밴의 경우 승용차에 비해 자동차세가 저렴한 데다 출퇴근과 나들이용으로 활용도도 높아 미니버스 수요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봉고는 11인승인 그랜드 카니발로 대체되어 다시 한 번 제2의 봉고 신화를 꿈꾸고 있다.
박귀동 [trend@daumtrend.com]
기사&사진 제공 : 오토조인스(http://www.autojoins.com )
그랜드 카니발 신차 발표 모습
‘그랜드 카니발’은 ‘월드클래스 프리미엄 미니밴’을 기본 컨셉트로 개발한 풀 모델 체인지 신차로 총 26개월의 연구개발기간과 총 2,500억 원이 투입돼 개발되었으며, 연간 내수 4만대, 수출 16만대 등 총 2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기존 차명인 ‘카니발’을 글로벌 브랜드로 지속 육성함과 동시에 세계적 수준의 프리미엄급 차로 차별화시키기 위해 ‘웅장한’, ‘훌륭한’이란 뜻의 ‘GRAND’를 붙여 ‘그랜드 카니발’을 신형 미니밴의 이름으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날 첫 선을 보인 ‘그랜드 카니발’은 국내외 고급 미니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스타일은 물론 최첨단 기능들이 대거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11인승의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3,020mm의 안정감 있는 롱 휠베이스를 적용하여, ‘혼다의 오디세이/ 3,000mm’, ‘도요타의 시에나/ 3,030mm’, ‘닷지의 그랜드 카라반/ 3,030mm’ 등 세계 유명 미니밴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상품성을 확보하였다고 설명하였다.
특히 ‘그랜드 카니발’에는 오토슬라이딩 도어와 오토 테일 게이트, 회전반경 제어장치 VRS: Variable Rack Stroke, 차체 자세 제어장치 VDC: Vehicle Dynamic Control, 운전자세 메모리 시스템 IMS: Integrated Memory System 등 고급 대형차에 적용되는 최첨단 기술들이 대거 적용되었다고 한다.
이밖에 모던하고 심플함을 강조한 디자인, 강력한 브랜드 가치, 다양한 공간 활용성과 엔터테인먼트 기능, 최고 수준의 충돌안전성 확보, 동급 최고 수준의 170마력의 엔진성능과 실내 정숙성 등이 주요 특징이며, 이를 통해 기존 미니밴 수요층뿐만 아니라 고급 SUV나 승용차 수요층까지 폭넓은 호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랜드 카니발은 2005년 5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봉고의 신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기아자동차의 미니밴의 계보를 잇는 자동차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봉고의 탄생배경을 살펴보자.
우리나라가 한창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하던 시절인 1975년 12월 현대자동차가 울산공장에서 국내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를 생산할 때, 기아산업은 1974년 10월 ‘타이탄’및 ‘복사’에 이어 경제적인 승용차 ‘브리사’를 개발함으로써 종합 자동차회사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을 얻은 기아자동차는 이탈리아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프랑스 푸조사의 최고급 모델 ‘푸조604’를 생산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77년 형 2,000cc급인 ‘피아트132’를 들여와 생산하게 되었으며, ‘피아트132’의 더블 원형헤드램프 사이에 적당히 돌출된 그릴과 알루미늄 휠 등은 당시 상당히 발전된 디자인이였다.
소형차 ‘브리사’를 비롯하여 ‘푸조604’, ‘피아트132’등은 기아자동차에 ‘성능이 좋고, 튼튼한, 경제적인 차를 만드는 회사의 이미지를 심어준 승용차들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79년을 넘기면서 세계적인 불황과 두 차례의 오일쇼크, 10·26사태 등의 사회혼란으로 국내경제는 휘청거리기 시작하였다.
1997년의 IMF체제의 기아자동차의 모습처럼 당시에도 자동차업계의 앞날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98년 7월15일 공개입찰을 거쳐 현대자동차 그룹에 인수된 현재의 기아자동차가, 당시에는 1981년 2월28일 이른바 전두환 정부의 ‘2·28조치’에 의해 자동차업계가 재편되기 시작하는 중심에 있었다.
‘2·28’조치의 하나인 기아산업과 동아자동차가 ‘한국자동차’란 회사명으로 통폐합되는 것은 다행히도(?) 기아산업의 노력으로 1982년 7월 백지화된다. 그러나 이 조치의 영향으로 승용차생산 중단 및 오토바이사업 포기 등 도산위기에 몰리게 된다.
1997년 IMF체제와 너무도 비슷하지만 당시 경영진들은 자본과 경영을 분리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도입을 시도하여 기업을 회생시킨다.
일본 마쯔다회사와 기술제휴로 1980년 9월에 소형화물트럭 ‘1톤 봉고’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유지비도 싸고 용도가 다양해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1981년 8월 봉고신화의 주역인 ‘봉고코치 12인승’을 개발하여 새로운 도시자동차로 부각시켰다. 동시에 전사원은 가슴에 ‘봉고’를 써 붙이고 인사말도 ‘봉고를 팝시다.’로 대신하였다.
이러한 전 직원의 노력으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봉고’의 등장은 경제 불황을 벗어나기 위한 나라 전체의 분위기와 다용도성과 경제적인 차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출퇴근용으로, 업무용, 수송용으로 그 용도를 만족시키면서 ‘봉고’라는 이름을 기억하여 지금도 모든 원박스카를 봉고차라 부르게 되었다. 마치 조미료하면 미원이고 맥주하면 OB처럼 말이다.
이처럼 1980년에 처음 등장한 봉고는 등장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미니버스 형태의 차종은 없었는데, 봉고는 대형차와 승합차의 사이 속에서 틈새를 뚫은 자동차로서 기동성과 적재능력에 있어서 매우 탁월하였다.
1980년 10월 봉고코치를 개발에 착수할 때 디자인 컨셉트는 ‘경제적이고 안전하며 도시형 감각에 맞는 다목적 승합차’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개발 방향은 ① 프론트 모습을 변경 ② 엔진은 일부부품을 제외하고 자체생산을 원칙 ③ 바디는 자체개발 ④ 차체는 일본 업체에 의뢰 개발하기로 하였다.
‘봉고’는 이동수단으로써의 자동차의미에서 레저생활을 끌어내는 의미로의 자동차로 새롭게 태어난 원박스카이다.
따라서 봉고문화를 이 땅에 탄생시킨 ‘봉고’는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원박스카의 대명사인 것이다.
봉고라는 의미도 원박스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아프리카 산림영양을 뜻하는 영어이다.
봉고는 소과 아프리카산 대형 영양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며, 세계적으로 진귀한 동물이다. 삼림에 사는 영양 가운데 가장 몸집이 크며, 전체적으로 묵직하게 생겼으며, 몸통은 굵고, 귀가 큰 것이 바로 봉고인데, 당시 우리나라를 찾아온 아프리카 가봉공화국의 대통령 이름이 봉고여서 다시 한 번 화제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 같은 아프리카 산양의 뜻을 가진 ‘봉고’의 스타일 디자인은 일본의 마쯔다회사의 봉고를 그대로 들여와 큰 의미는 없었으며, 바퀴가 차체에 비해 너무 아래에 위치한 타입이라 다소 불안한 구조였다.
그러나 당시 신진 미니버스나 현대 미니버스 포터 등은 트럭을 버스로 개조한 차들이었지만 ‘봉고’는 원박스 개념에 맞춰 디자인된 최초의 승합차라 할 수 있다.
자동차 색상은 불황에 큰 인기를 끄는 초록색, 연두색등이 인기가 있었다. 이후 봉고는 1983년 2월 3밴·6밴을 내놓고 5월 9인승을 선 보였으며, 1985년 5월 휘발유엔진인 ‘봉고타운’이 그 뒤를 이었다.
그 후 원박스카의 후속모델로서는 현대의 ‘그레이스’, 1986년 봄 후계차 베스타, 대우의 ‘바네트’가 뒤를 잇게 된다.
1986년에 나온 기아자동차의 베스타는 기존 봉고의 다목적 용도의 장점을 살리면서 봉고 자체의 약함과 안전성 등의 단점을 보완하고, 신기술, 고기능의 이미지를 갖춘 신형 코치이다. 그때까지의 기아자동차의 기술을 바탕으로 원박스 차량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기아의 최초의 원박스 고유모델의 신세대 자동차이었다.
이후 1990년의 ‘뉴 베스타’, 1992년 ‘하이 베스타’를 거쳐 1994년에는 새로운 미니버스 ‘프레지오’를 디자인하게 된다.
그러다가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현대자동차 그룹으로 합병을 한 기아자동차는 2세대에 해당하는 ‘봉고 프론티어 트럭’과 함께 ‘네오 프론티어’로 계보를 이어갔다.
이후 기아자동차는 25년간 계속된 봉고신화를 이어가기 위해 2004년 3월 3세대인 ‘봉고3’ 트럭과 버스의 판매에 들어갔다.
기아자동차는 3세대 봉고시리즈에서는 기존 12, 15인승 봉고버스 외에 글라스 밴 형태의 3, 6인승 모델을 신규로 투입하기도 하였다. 또한 기아자동차는 봉고시리즈에 상용차로는 처음으로 커먼레일 엔진을 탑재하여 기존 기계식 디젤엔 진의 문제점이었던 소음과 진동, 유해가스를 대폭 감소시키고 엔진성능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이러한 봉고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자동차는 1990년에 100만대, 2003년 7월에 200만대 판매를 돌파하기도 하였다. 지난 1992년에 최고 14만4163대가 팔렸던 봉고의 인기는 최근까지도 식지 않아 지난해에도 7만9740대가 팔렸다.
그중에서 봉고버스는 출시 5년만인 지난 1986년 국내 판매 10만대를 돌파한데 이어 1991년 30만대를 넘어섰으며, 지난 2003년 7월 총 60만대 판매를 돌파하여 현재까지 총 63만5천여 대가 팔렸다. 하지만 레저용 차량 붐과 함께 미니밴 시대가 열리면서 인기가 주춤해져 올 들어서는 4천대 남짓 팔리는 데 그쳤다.
따라서 봉고는 2003년 누적대수로 206만3072대가 판매되는 등 장수 모델로 자리 잡았지만 끝내 2005년 5월 단종 되는 아픔을 가지게 된다.
기아자동차 봉고 신화를 일궈낸 봉고 승합차가 생산 25년 만에 단종하게 된 것이다.
기아자동차는 광주 소하리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봉고Ⅲ 버스'의 생산대신 내년 출시할 예정인 소형 미니 밴인 프로젝트 명 ‘UN’의 전용 라인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서 판매가 시작된 ‘그랜드 카니발’인 프로젝트명 VQ의 11인승 모델과 12인승이 주력인 봉고버스의 시장이 상당 부분 겹친다고 판단하여 봉고버스 생산을 중단키로 하였다고 한다.
또한 기아자동차는 7-10인승 승합차 세금이 인상됨에 따라 9인승인 카니발 후속차량에서는 주력모델로 11인승을 추가하기로 하였다.
이제 지난 2003년 쌍용자동차의 '이스타나'와 현대차의 '그레이스'가 단종 된데 이어 기아자동차의 '봉고버스'까지 단종 됨에 따라 국내에서 미니버스 개념의 승합차는 `밴'에 밀려 사실상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박스형 미니버스가 사라지게 된 것은 11인승 이상 미니 밴의 경우 승용차에 비해 자동차세가 저렴한 데다 출퇴근과 나들이용으로 활용도도 높아 미니버스 수요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봉고는 11인승인 그랜드 카니발로 대체되어 다시 한 번 제2의 봉고 신화를 꿈꾸고 있다.
박귀동 [trend@daumtrend.com]
기사&사진 제공 : 오토조인스(http://www.autojoin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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