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한국판 톱기어 취재진들은 인간이 아니라 용자일 겁니다. 으허허허. ㄱ-
님들이 짱 드세요. ㅠ.ㅠ 그나저나 이 인간들, 이번 11월 호에는 란에보와 비행기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대결도 있던데... -_-;;;;
차 안에서 24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자동차도 사람 위해 만든 주거공간인데, 그 안에서 하루를 살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뚱이만 차에 던져 놓고 1만 원 한 장 달랑 쥔 채 서바이벌 체험을 해볼까? 아니면 먹을 것과 놀 것 다 챙겨주고 어떻게 차 안에서 적응하고 생활하는지 관찰해볼까?
결국 후자에 초점을 맞춰 ‘정말로’ 차에서 24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외부에 공개된 유리상자에서 생활하는 실험마냥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았다(우리의 열혈 사진기자는 24시간 동안 물경 2천 장에 가까운 사진을 찍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차종 선정. 미니밴이나 SUV는 너무 편하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실험 대상자의 편의를 어느 정도 고려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잘 갖춰진 중형 세단으로 정했다.
하지만 기획 의도를 살리는 데는 ‘서바이벌’ 개념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좁은’ 작은 차가 적당했다. 결국 작은 차를 타기로 계획 변경. 대신 컨버터블로 정해서 숨통은 틔어 주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된 차가 미니 컨버터블이다.
꼼꼼하게 준비했는데 중요하다고 할 수 휴대폰과 충전기를 연결하는 젠더를 빼먹었다. 자동차용 휴대폰 충전기는 있으나마나다. 설상가상으로 24시간 도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배터리도 죽어버렸다. 완전히 일상과의 격리였다. - 급한 전화는 사진기자의 것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먹고 마시는 건 미리 준비한 것과 차 안에서 사먹거나 배달하는 것으로 해결. 차 안에만 머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딱 다섯 번 화장실 가는 것만 예외로 두기로 했다. 물론 용무를 마치는 즉시 바로 차로 돌아오는 조건으로 말이다. 자, 그럼 출발!
1일차
13:00
대망의 24시간 도전을 시작하려고 주차장에 세워둔 미니에 다가갔는데 왠걸, 앞유리에 단단히 붙여둔 내비게이션이 ‘똑’ 떨어져서 대시보드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세 시간 넘게 땡볕에 세워 놓은 게 화근이었다. 차는 대기권을 뚫고 지표면으로 향하는 우주선마냥 뜨거워져 있었다.
내비게이션 흡착고무는 불 판 위의 고기처럼 쭈글쭈글하게 오그라들었다. 내비게이션은 쓸 수 있지만 고정은 불가능. 이런! 이곳 저곳 다니려면 꼭 필요한데…. 불길한 징조. 말복의 불볕 더위는 비좁은 실내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복병이었다.
13:20
무박으로 남해바다나 갔다 와서 한 방에 끝내 버릴까 하는 유혹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잔머리를 간파한 ‘24시간 버티기 실행위원회(회장: 김우성 편집장)’는 이동 범위를 서울과 그 일대로 제한했다. ‘여름에는 바다가 빠질 수 없지. 해수욕장이라도 가서 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 가까운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어차피 차에 있으면 물에도 들어가지 못할 텐데 시원한 바다 풍경과 ‘시원한 사람들’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출발할 때 부근 온도는 자동차 외부 온도계에 의하면 섭씨 42도. 헉! 순간 온도계 고장인줄 알았다. 강변북로로 나가서 외곽으로 빠지기 시작하니 온도가 좀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섭씨 35도. 온도계 고장은 아니었군.
13:40
차에 탄지 정확히 40분 지나니까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거 너무 이른데. 잘 알려진 대로 미니는 승차감이 썩 좋지가 않다(신형은 승차감이 다소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시승차는 구형 미니다).
무슨 해저 지형 탐사선도 아니고, 도로 탐사선 마냥 바닥이 어떻게 생겼는지 스티어링 휠과 시트를 통해 아주 생생하게 알려준다. 남자들이 미니를 잘 타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허리!
14:10
해수욕장은 차를 대고 쉴만한 곳이 없어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차를 돌렸다. 손바닥만한 비키니는 구경도 못하고 그냥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모래 언덕에 차를 대고 쉬기로 했다. 뚜껑을 열고 파라솔을 꽂으니 근사한 휴식처가 생겼다. 햇빛은 따가웠지만 바닷바람은 파라솔이 날아갈 정도로 시원하게 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도 읽고 잠시 낮잠 자기에는 딱 좋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편한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앉아서 읽자니 허리가 아프고, 다리를 차 어느 부분인가에 걸치고 보자니 자세가 제대로 안 나오고. 그래서 시트와 트렁크에 걸터앉기도 해보고 갖은 방법을 연구해보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시간 때우려고 만화책도 열 권이나 빌렸는데 어디 한 권이나 제대로 읽을 수 있으려나?
15:50
차는 역시 달려줘야 제 맛이다. 영종도 남로를 따라 신나게 달렸다. 멀리 송도대교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볼 때마다 점점 웅장해지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위대함을 느낀다.
16:30
미니 탐구 첫 번째. 미니 컨버터블은 소프트톱 방식이다. 직물로 된 톱은 트렁크 속으로 완전히 수납되는 방식이 아니라 트렁크 위로 살포시 얹히기 때문에 공간 손실이 적다. 그래서 트렁크가 컨버터블 치고는 상당히 넓다.
열림 버튼을 누르면 일단 소프트톱이 반 정도만 개방된다. 선루프 모드다. 여기서 한 번 더 누르면 완전히 톱이 젖혀진다. 다 열리는 데 15초 걸린다.
18:00
차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집에 바래다 주기’ 미션을 생각해냈다. 왕복 세 시간쯤은 꿀떡 삼킬 수 있는 대작 미션이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아는 동생’을 집에 바래다 주기로 했다. 직장은 서울 충무로, 집은 목동. 막상 데려다 주려고 하니 거리가 너무 가깝다. 막혀도 한 시간이면 상황종료 되겠다.
좀더 같이 시간을 보내고자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흔쾌히 수락. 마침 목동에 맥드라이브가 있어서 그곳으로 갈까 하다가 계획을 바꿨다. 명색이 손님인데 근사하게 대접해야지. 저녁 메뉴는 중국음식으로 결정했다.
19:10
첫 번째로 화장실을 갔다. 날이 더워 땀을 많이 흘린데다가 의식적으로 마실 것을 덜 마신 덕분에 평소보다 화장실에 가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차에 탄지 여섯 시간 만에 땅을 밟았다. 땅에 발을 내딛는데 자가용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 아스팔트를 밟는 기분이다. 걷는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하지만 그런 행복은 5분만에 끝났다. 이제 화장실 갈 수 있는 횟수는 달랑 네 번. 물병이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19:30
저녁식사 장소는 경기도 일산에 있는 킨텍스 주차장. 해수욕장이나 한강 공원 같은 데서도 자장면 시키면 기가 막히게 잘 찾아 온다. 킨텍스 주차장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당구장에서 먹는 자장면이 제일 맛있다고 하는데, 저녁노을의 붉은 기운이 슬슬 바닥에 깔리는 텅 빈 주차장에서 시원한 저녁 바람을 쐬며 먹는 자장면 맛도 그에 못지않다.
20:30
배부르게 먹었겠다 소화는 시켜야겠는데···. 미니는 차의 진동을 몸으로 전달해 마치 식사를 마친 뒤 가벼운 산책할 때처럼 위에 적당한 자극을 주는 방법으로 소화를 촉진 시키는 훌륭한 기능이 있었다(또 달렸다는 얘기다). ‘아는 동생’을 집에 데려다 자동차 극장이 있는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으로 향했다.
혼자서 왠 청승이냐 싶지만, 시간 때우자면 영화라도 봐야지.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장소인 프로방스도 가보고 예술인 마을 헤이리도 지나가고 영어마을도 지나치고(시승 때문에 자주 오는 곳이다)…. 거창하게 24시간 보내기를 계획했는데 맴도는 곳은 평소 행동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2:20
처음 가보는 자동차 극장. 설렌다. 입장하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차들을 보니 동지 의식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 ‘이 사람들도 두 세시간은 차에서 내리지 않겠구나.’ 영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허리에 이상신호가 왔다. 영화 보는 내내 뒤척였다. 미니는 선팅이 되어 있지 않았다.
화면이 밝아지면 미니 속도 밝아졌다. 그 때마다 허리 통증 때문에 요상하게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사람들의 눈에 포착됐을 것이다. 나는 무슨 이상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본의 아니게 눈치를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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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01:00
평소 같으면 자고 있을 시간인데 잠이 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금요일 밤. 홍대 클럽이 북적거리는 날이다. 평소 홍대 근처에서 일하면서도 잘 가보지 않는 홍대 야경을 감상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한 바퀴 돌고 나니 다시 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 무지하게 막힌다.
01:50
두 번째로 화장실에 갔다. 이렇게 오래 참을 수 있었던가? 나 스스로도 놀랐다. 이제 남은 횟수는 세 번.
02:30
잠은 어디서 잘까? 어디든 차만 대면 그곳이 잠자리라고 생각하니 세상이 내 것이 된 기분이다. 시원한 강바람 쐬면서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한강 고수부지 성산지구에 자리를 잡았다.
피로는 몰려 오는데 스페셜 이벤트 진행 중이라 잠이 바로 오지 않는다. DMB를 보았다. 그런데 평소에 잘 보지 않는 TV가 재미있을 리가 없다(케이블 방송은 종종 본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취향에 맞아서). 에이, 잠이나 자자!
03:00
24시간 버티기에서 더위에 이은 두 번째 복병은 모기였다. 몸이 허해서 모기에게 피를 헌납했다가는 24시간 끝나기도 전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모기망과 모기 퇴치제를 준비했다. 보건소에서 말라리아 모기 조심하라고 받은 모기 퇴치제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그런데, 모기 퇴치제가 매우 독하다. 한꺼번에 많이 뿌렸다가 숨막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잘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 봤지만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는 방법밖에 없다. 뒤척일 공간은 부족하지만 앞뒤로 길어서 생각보다 편하다.
04:40
거의 부동자세로 잤더니 몸이 석고상처럼 돼버렸다. 굳어가는 몸이 스스로 경고를 보냈는지 한 시간 반 남짓밖에 자지 못했는데 절로 눈이 떠졌다. 동해바다에 가면 해돋이에 목을 매듯이 이왕에 일찍 일어난 거 도심의 아침이 구경하고 싶어졌다. 이 시간이면 상쾌와 불쾌가 공존하는 시간 아니던가.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날 밤의 피로(쉽게 말해 술…)에 절어 온갖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피로에 취한 채 아침 일찍 유난 떠는 나는 후자?
06:20
압구정동을 지나치다가 맥드라이브를 발견했다. 차를 몰고 들어가 직접 주문하는 드라이브-스루(drive-thru)는 차와 합체한 사람들에게는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그 동안 관심도 갖지 않았던 맥드라이브가 새삼스럽다. 오래 전 미국에서 맥드라이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는 마이크에 대고 주문한다.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입으로 시켰는지 코로 시켰는지도 모른 아픈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살짝 긴장되었다. 여기서는 종업원이 직접 주문 받는다. 역시 한국적 시스템이 좋다.
06:50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부터 설쳤더니 기운이 쏙 빠졌다. 쉴 곳이 필요했다. 상암동 월드컵공원 주차장의 그늘 좋은 곳으로 자리 잡았다. 물 티슈로 간단히 세수를 했다. 어제 ‘아는 동생’이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진정시키라며 팩을 주고 갔다(본인이 홍보 담당하는 ‘미*’ 브랜드란다). 꼭 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지 멀쩡한 젊은 놈이 아침부터 공원 주차장에서 자기 몸에 꼭 끼는 작은 차에, 그것도 뚜껑 따고 앉아서 얼굴에 팩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쾌한 기분으로 산책 나온 시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아침을 불쾌하게 만들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07:20
아침식사는 맥모닝 세트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차에서 두 끼째.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빵 쪼가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역부족이었다. 양도 부족한데다 느끼해서 준비한 컵라면으로 더부룩한 속을 시원하게 달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리 인버터와 전기포트도 준비했는데, 인버터가 말을 듣지 않는다. 우씨! 라면은 물 건너 갔다.
08:10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스스로 생각해도 먹고 자고 싸는 원초적 본능에 너무 충실한 거 아닌가 싶다. 뚜껑을 연 채 아침 바람을 맞으면 잠시 눈을 붙였다. 그러나, 태양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어찌나 순식간에 후끈 달아오르는지···. 잠은커녕 육포 되는 줄 알았다.
09:00
시간 보내기는 차 타고 돌아다니는 게 최고지만 지칠 대로 지쳐서 차 타고 돌아다닐 컨디션이 아니었다. 다행히 차 안에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하니 허리 통증은 좀 가셨다. 좀더 편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해 보았다.
뒷좌석에 누워도 보고 뒷좌석에서 앞좌석 쪽으로 발을 뻗고 앉아도 보는 등 온갖 노력을 다 했다. 원하는 자세는 나온다. 그런데 어느 한 부분이 꼭 걸리거나 꺾이거나 부대낀다. 이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를 쓰고 큰 차를 사려고 하나?
09:50
아, 드디어 좁은 공간이 인간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미치기 시작했나 보다. 갑자기 미니가 운동기구로 보이기 시작했다. 불룩 솟아오른 롤오버 바가 링처럼 보인다. 게다가 뒷좌석은 접히고 트렁크도 위에서 아래로 열리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이 연결된다는 것.
직접 실현해 본 것만 팔굽혀 펴기, 윗몸 일으키기, 평행봉 자세 잡기, 상체 움직이기 등. 운동효과가 대단했다. 그런데, 요즘 운동 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서 온몸에 쥐가 났다. 미니가 사람 잡네.
11:00
원래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당사자 모르게 관찰하면서 찍어야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오겠지만, 기사 만드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최상의 기사를 독자 여러분께 보여주기 위해 마지막 남은 힘과 정열을 불살라 사진 만들기에 돌입했다. 인터넷에서 유치하게만 느껴졌던 시체 놀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퍼지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12:00
오전에 한가하게 쉬려고 했는데 몸을 너무 많이 움직였다. 땀을 비오 듯 흘렸더니 아침까지만 해도 새파랗던 하늘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한다. 한 시간만 버티면 되는데 뻗기 일보직전. 아침도 부실하게 먹었더니 배고프다. 게다가 세 번째로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방출 했더니 몸의 수분이 바닥났다. 24시간 버티기의 마지막은 남은 힘을 다해 달리는 걸로 장렬하게 끝맺기로 했다.
13:00
끝났다. 뿌듯하다. 해냈다. 이제 길거리에서 미니를 보기만 해도 허리가 지끈지끈 쑤실 것만 같다. 그래도 24시간을 같이 있었더니 많이 정들었다. 지루할 줄 알았던 24시간은 돌이켜보니 금방 지나갔다. 고생은 했지만 지루함만 해결되면 48시간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만약 정말로 다음 번에 48시간 버티기를 하게 된다면? 나 혼자 눈여겨봐두었던 ‘편집부 밉상’을 실험 대상자로 적극 추천해야지….
의사는 말했다
<톱기어>가 24시간 동안 차에서 버티기 실험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불볕더위에 기자들이 드디어 더위 먹었군!’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어찌 보면 가장 <톱기어>답다는 생각도 들었다(어쨌든 가장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 잡지라고 생각한다). 몸소 맥도날드 햄버거만 24시간 먹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모건 스퍼록 감독도 아니고···. 게다가 캠핑카도 아닌 미니라니!
앞좌석은 그나마 낫겠지만(사실 앞좌석도 조금 덩치가 있는 사람은 코너를 돌 때마다 어깨가 부딪힌다) 뒤에 앉는 경우는 그야말로 쪼그린 자세로 수시간을 군대에서 기합 받듯이 앉아 있어야 한다. 더욱이 실험 대상이 키 180센티미터에 덩치가 좀 있는 임유신 기자라면 더욱 비좁았을 듯하다.
실험 대상자는 열대야에 잠자기 위해 앞좌석에서 다리를 대시보드에 올렸다, 다른 데로 뻗었다 하며 발버둥치다 지쳐서 쪼그리고 잤을 것이다. 모 잡지에서 보았던, 질 좋은 푸와그라를 만들기 위해 목만 내밀고 나무박스에 갇혀있던 애처로운 거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작은 차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지나친 상상을 해버린 것 같다.
본격적으로 증세를 체크해보자. 상황을 종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극심한 요통과 후경부동통. 정형외과의 특성상 허리환자를 많이 보는 처지지만, 정작 나 자신도 디스크가 있다. 특히 요추 보호장치가 없는 차는 2시간만 타도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 아이러니컬하지만 허리를 굽히고 장기간 수술을 많이 하는 외과의사들은 허리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의사들 중 골초도, 의외로 호흡기내과나 흉부외과 전문의인 경우가 많다.
허리는 앉는 자세가 되면 자연스러운 S라인이 망가져 앞으로 굽어지게 된다. 그러면 뒤에 있는 척수가 불편하게 된다. 따라서 오래 앉아 있게 되면 다리로 가는 신경이 눌려 디스크환자와 같이 저린 느낌이 오게 된다. 더구나 오른발은 쉴새 없이 엑셀 페달과 브레이크를 반복해서 밟느라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게 된다. 주로 오른다리, 특히 뒤 허벅지를 타고 오는 저림 증세는 아마 장거리 운전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미니의 시트가 스포츠 시트에 가깝고 허리를 어느 정도 받쳐주는 형태지만, 단단한 서스펜션을 떠올리면 노면의 충격이 그대로 엉덩이를 타고 허리를 강타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 비록 2세대 미니는 이전 모델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내가 시승해본 차 중 가장 단단한 서스펜션을 가진 차 가운데 하나였다.
목도 마찬가지, 구부린 자세로 계속적으로 운전을 하다 보면 경추부에 무리가 오게 된다. 경추부는 팔로 가는 신경들이 나오게 되므로 일단 경추 뒤 관절과 경추 뒤에서 길게 가는 근육에서 오는 근육통이 뒷목을 덮친다. 시간이 흐르면 스티어링 휠을 오래 쥐고 있는 상박부의 삼두근이 저려오면서 “저 아파요, 조금만 쉬다 가세요” 하는 신호를 보낼 것이다.
시간이 4~5시간 더 지나면 아마도 좁은 차체에 한정된 공기를 지속적으로 마시기 때문에 산소가 희박해져서 가벼운 두통과 산소부족에 의한 나른한 졸림 증세에 시달릴 것이다. 긴장한 상태로 눈을 부릅뜨고 운전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에 쉬더라도 마지막에는 눈이 말라 뻑뻑하게 충혈된 눈과,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부의 시각뇌가 피로를 느껴 뒷골이 아프게 된다.
차가 컨버터블이라 지붕을 계속 열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요즘처럼 따가운 햇살과 찌는 더위, 그리고 이따금씩 쏟아지는 게릴라성 폭우에 계속 지붕을 열고 다녔을 리는 없다.
마지막으로 세 끼를 구부린 채로 식사를 하게 되면 불편한 자세 탓에 장이 눌리게 되기 때문에 소화가 잘 안돼 더부룩할 것이다. 24시간이 다 지난 뒤에 바닥을 딛게 되면 마치 오랫동안 경비정에서 생활하다 육지로 오면 육지멀미를 하는 해군병사처럼, 서스펜션 위에서 24시간 동안 적응된 내이의 평형기가 딱딱한 육지에 잠시 적응을 하지 못해 땅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잠시 시달리게 될 것이다. 술 취한 뒤 땅이 나에게 덤벼드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취재도 좋지만 지난해 이맘 때의 푸조 대 아우디 24시간 레이스 대결도 그렇고, 계속 다이하드식 테마를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정형외과 병동을 제집 드나들듯 다니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전지성(정형외과 전문의)
에디터/임유신 사진/김범석
이런 막장 of 막장들!!!
이들의 막장 실험은 2008년 10월호의 Volvo C30 vs Peugeot 207RC로 이어지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기사&사진 제공 : 톱기어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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