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이것을 안 썼군요. 톱기어 막장 신화의 첫 탄인 서울 24시간 레이스입니다. 두번째는 푸조 307 vs 볼보 C30의 레이싱입니다. __-;
톱기어 한국판... 이 양반들 대형사고 쳤군요. 그래도 봐줄만 합니다. 낄낄
기사&사진 : 톱기어 2007년 11월호
Photography by Dae Il Choi / SAM Studio 오후 4시 30분이 다가온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톱기어> 한국판이 사상 처음으로, 그것도 달랑 혼자서 시도하는 서울 24시간 레이스의 스타트 시간이기 때문이다. 르망 24시를 본떠 서울 도심을 24시간 동안 달린다는 이 황당한 기획은, 점차 살을 붙여가더니 급기야 현실로 옮겨졌다. 그 날이 바로 오늘, 10월 15일. 레이스 시작 시점은 이제 채 10분도 남지 않았다. 레이스를 위해 <톱기어> 로고와 '서울 도심 24시간 레이스' 문구를 새겨넣은 스티커가 차에 붙여지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라면 시작도 말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톱기어> 팀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만 같다. 메인 드라이버와 보조 드라이버가 정해졌다. 에디터 담당은 푸조 쿠페 407 HDi. 이유가 황당하다. 내가 평소에 푸조 잠바를 잘 입기 때문이란다. 오직 '완주만이 살 길'이라는 일념 하나로 주차 브레이크를 풀고 서서히 액셀 페달을 밟는다. 멋스러운 쿠페 407은 매끄럽게 흘러나간다. 자신의 앞길에 어떤 위기와 고난이 벌어질지 모른 채 말이다. 본격적인 퇴근길 정체를 앞둔 전초전. 양화대교가 가까워지면서 마포대교까지 18분을 예상하는 도로안내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 정도는 막히는 축에도 끼지 못한다. 1랩을 돌고 나면 본격적인 퇴근시간, 이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다. 사실, 푸조 쿠페 407을 탄다고 주장한 이유는 장시간 주행을 고려한 선택이다. 초강성 스포츠 쿠페였다면, 절대 고개를 흔들었겠지만 럭셔리 쿠페는 장거리 운전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게 몸을 조여 주는 세미 버킷 시트와 다양한 편의장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충분한 힘을 내주는 푸조 디젤의 부드러움은 덤이라고 해야 하나? 마포대교를 지나 동작대교에 가까워지니 흐름이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이 때부터 정말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차에는 앞뒤, 양 옆으로 서울 24시간 레이스를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톱기어>를 아는 이에게든 모르는 이에게든, 구경거리인 것만은 확실하다. '얼굴이 팔린다. 그것도 엄청나게.' 올림픽대로를 타고 행주대교로 향하는 동안, 역시 영동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는 상습정체구간이란 표현이 딱 맞다. 행주대교를 건너 이제 탁 트인 자유로로 들어선다. 본부에서 내려온 지침에 따르면 레이스 최고속도는 시속 150km를 넘어서는 안 된다. 자유로 최고속도가 시속 90km인 것을 감안할 때, 단속구간을 제외하고 대체로 시속 130km 정도를 유지하면 될 듯하다. 쿠페 407의 2.7리터 HDi 엔진은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린다. 최고출력 205마력에 최대토크 44.9kg·m. 0→시속 100km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8.5초다. 성능은 휘발유 V6 3.0 모델과 비슷하지만 토크는 한수 위다. 오른발 반응은 조심스럽지만 타코미터의 반응은 경쾌하다. 어쩔 수 없이 연비도 계산하며 달려야 하지만, 달리는 재미가 우선이다. 자유로도 이제 옛날의 자유로가 아니다. 오후 6시가 가까워진 자유로는 일산으로 빠지는 차들의 증가로 순식간에 주차장으로 변해간다. 지금보다 다음 랩이 두려워진다. 임진각까지 신나게 달린 뒤 차를 돌려 자유로, 강변북로를 내달린다. 상암동 난지 캠핑장으로 빠지면서 24시간 레이스의 첫번째 랩을 무사히 끝냈다. 출발은 오후 4시 30분이었고, 도착은 저녁 7시 20분. 1랩에 걸린 시간은 2시간 20분이었다. 규정상 반드시 베이스 캠프로 들어올 필요는 없다. 쉬지 않고 지나친 뒤 체크리스트에 기록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생리현상과 배고픔은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겠다. 동승한 스튜디오 포토그래퍼의 생각도 마찬가지. <톱기어>의 최대일 사진기자가 두 번째 랩 드라이버를 자청하며 바통 터치, 우리는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베이스캠프로 들어섰다. 이번 행사를 지휘한, (그래서 밉살스러운) 편집장이 소감을 묻는다. 시작부터 재 뿌려서 좋을 건 없다 싶어 '해볼만하다'고 대답은 했다만.... 저녁 7시 40분에 출반한 두 번째 랩 드라이버는 밤 9시 59분이 돼서야 들어온다. 초특급 정체 시간을 택한 만큼 고생은 각오했겠지만, 운전석 도어를 열고 내리는 얼굴은 사망 일보 직전이다. 세 번째 랩은 편집장이 직접 스티어링 휠을 잡았다. '연세'도 있으시고, 그냥 베이스 캠프만 지키고 계시면 좋으련만, 에디터들의 고생을 덜어준다며 직접 핸들을 잡겠단다. 걱정이 앞선다. 두 번째 랩까지는 워밍업을 생각해서, 중간중간 베이스캠프로 올 때마다 시동을 꺼두었지만 세 번째 랩부터는 시동을 안 끄고 곧바로 운전자만 교체하며 계속 돌아나간다. 편집장이 출발한 시간은 밤 10시 12분, 돌아온 시간은 자정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1랩은 도로 정체의 전초전임에도 2시간 20분이 걸렸다. 그리고 세 번째 랩은 밤 10시를 넘긴 시간인지라 비교적 정체가 덜했으니 1시간 48분 걸린 게 이해된다. 그런데 두 번째 랩의 시간을 보니 2시간 29분이다. 그때는 정체의 절정이 아닌가? 막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구간에서 엄청나게 속도를 올렸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랩을 맡았던 최대일 기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렇다면 목적지를 이탈했거나 중간에 돌아왔다는 얘기? 동승한 스튜디오 팀원들도 모르쇠로 일관.... 네 번째 랩은 내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어느덧 날짜는 바뀌어 10월 16일 새벽 0시 14분. 그 많던 차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한산하다. 하지만 이때부터 도로에는 진짜 위험 요소들이 많아진다. 총알택시다. 특히 신촌에서 연결되는 양화대교, 강남에서 나오는 성수대교 북단 합류지점은 조심해야 할 구간. 그리고 거대한 SUV들의 속도 경쟁도 주의해야 한다. 이상하게 이들은 밤만 되면 속도를 높이는 것 같다. 물론 모든 SUV 오너들이 그런 건 아니니 오해는 없기를. 밤길을 달려보니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속화도로에는 문제점이 적지 않다. 우선 애매하게 그어놓은 합류지점이다. 대표적인 게 반포대교 북단에서 강변북로로 합류하는 지점. 대교에서 빠진 차들은 강변북로로 진입하기 위해 갈수록 갑자기 좁아지는 차선을 타야 한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운전자들은 1차선에서 무섭게 달려오는 차들과 합류 지점 끝에서 늘 위험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합류하는 차에서 볼 때 강변북로가 오른쪽으로 굽어진 코너이기에 잘 살필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또 이 길을 따라 계속 달리다 보면 경기도 분당으로 빠지는 청담대교를 타게 된다. 이 연결 도로는 웃기게도 달리는 도로에서 따로 빠져 나오지 않고 잘 달리던 1, 2차선이 갑자기 다리 합류 도로로 변하는 모양새다. 물론 도로에 화살표로 진행방향이 그어져 있지만 초행자나, 운전이 미숙한 사람들은 '구리로 가려다가 분당으로 빠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혹시 '랩 타임 조작 의혹에 휩싸인' 최대일 기자가 분당으로 빠진 뒤, 중간에 골목길로 돌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우리 사회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예산낭비의 현주소도 만날 수 있다. 물론 문제가 있는 도로였을지도 모르지만, 천호대교 진입로에 느닷없이 아스팔트를 새로 깔기 위해 공사차가 모여든다. 이미 몇몇 구청들은 보도블록을 들어 엎기 시작했다던 데, 문제는 공사가 아니라 이로 인해 교통혼잡이 유발된다는 거다. '휴~우.' 행주대교까지 무사히 직진. 자유로에 들어서자 그 많던 일산 방면 차들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취객이나 밤늦도록 야근을 한 이쪽 주민들을 실어 나르는 일산 콜택시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통일동산을 지나자 가로등은 사라진다. 암흑천지가 따로 없다. 하이 빔을 켜도 앞은 여전히 깜깜하다. 오직 나를 앞질러 가는 수많은 튜닝카들의 제논 램프만 보일 뿐, 임진각을 향하는 길은 외롭다. 더욱이 조수석에 동승한 신혜진 기자는 타자마자 졸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꿈나라다. 때때로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해댄다. '저 안 잤어요.' 임진각에 도착하니, 요즘 이곳에서 '친목을 다지는 드래그 레이스 동호회'들이 튜닝카로 한판 질펀하게 벌이고 있다. '쿠페 407로 한번 들이대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일었다. 돌아오는 길. 위험하다. 임진강이 가까이에 있는 탓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두꺼운 안개가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을 가득 덮고 있다. 다시 난지도 캠프장으로 돌아오니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킨다. 3랩과 비슷한 시간이 걸린 셈이다. 5랩 드라이버는 스튜디오의 안종우 팀장. 외롭게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왜 그렇게 처량해 보일까? '캠프로 돌아오니 폭탄이 하나 떨어진 듯하다.' 음식은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텐트 안에는 아우디 팀과 푸조 팀이 뒤섞여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잠이 와? 이 배신자들아.' 새벽 4시 10분에 5랩 드라이버가 복귀하고, 이번에는 어제 저녁 출발 때부터 밤잠 자듯 충분히 잠을 자둔 신혜진 에디터가 6랩 드라이버로 나선다. 이때까지의 총 주행거리는 789.2킬로미터. '게이지가 바닥을 가리키기 전에 미리 준비한 경유 20리터'를 넣는다. 그렇게 자고도 잠이 덜 깬 그녀. 걱정스러운 마음에 동승자로 나섰다. '내가 미쳤지, 졸려 죽겠구만!' 도로는 한산하지만 훨씬 위험하다. 졸음 운전이 분명해 보이는 차들이 많고, 음주운전인가 의심될 정도로 비틀거리는 차들도 눈에 띈다. 아무래도 이 시간이 단속이 끝난 시간이라 기다렸다가 차를 몰고 나온 모양이다. 임진각을 돌자 새벽 기운이 서서히 전해진다. 6랩은 새벽 6시 14분에 끝을 맺었다. 새벽이라 빨리 달릴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조심할 시간이 이때다. 오전을 대비해 미리 잠을 자둔 팀원들이 복잡한 출근길을 뚫는 임무를 맡는다. 그렇게 새벽 6시45분에 7랩이 시작됐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7랩 드라이버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창피해 죽겠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출근길에 우리를 보는 시민들의 마음이야 뻔하지 않겠나. 벌레와 먼지로 만신창이가 된 외관, 차에는 <톱기어> 프로젝트, 서울 도심 24시간 레이스라는 큼직한 스티커까지 붙였으니.... '그래도 그 무료하고 짜증나는 출근시간에 우리의 불행이 그들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것 아닌가?' 엄청난 정체다. 이번 레이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까먹었다. 추돌사고는 왜 그렇게 많은지. 거의 출근시간에 출발한 7랩 팀은 낮 12시가 다 돼서야 돌아왔다. '부산 갔다 온 것도 아니고, 내 참!' 8랩은 다시 내가 나선다. 배가 너무 고파 식어 빠진 통닭과 라면을 와구와구 먹었더니 속이 거북하다. 낮 12시 3분에 출발, 그런데 놀랍게도 출근길 정체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 창피함이 몸으로 느껴진다. 정말 장난 아니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꽉 막힌 차들은 오후 1시가 가까워짐에도 좀처럼 빠질 생각을 안 한다. 양화대교에서부터 막히는 이유는 순전히 마포대교로 빠지는 진입로 때문이다. 잘 달리는 1차선과 2차선이 마포 진입로에서 줄어들고, 뒤에서는 마포대교에서 빠져 나온 차들이 강변북로에 합류한다. 빠지는 차와 들어오는 차, 그리고 진행하는 차들이 모두 엉겨버리는 곳이 바로 이곳. '서울시장은 한강 르네상스만 외치지 말고 한강 진입로 개선이 시급함을 알아달라!' 밤새 운전해서가 아니라, 밤새 너무 먹은 탓에 졸음이 몰려온다.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중간에 비상회피구역에 차를 세우고 딱 3분만 잠을 청한다. 수면을 청하고 보니 갑자기 방향감각이 없다. 분명 임진각에서 돌아 나온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직진 판문점, 오른쪽 문산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얼마 전 초소를 무시하고 판문점까지 직진했다가 군인한테 총 맞을뻔했다는 유머를 본 기억인 터라 판문점이라는 표시에 화들짝 문산으로 빠졌다. 이곳은 반구정 가는 길이 아닌가? 임진각에서 턴을 한 것이 아니라 아직 임진각까지 가지도 못했던 것. 피곤한 몸과 머리가 착각을 일으킨 셈이다. 돌아오는 길에 자유로에는 대형 사고와 함께 장항IC 공사관계로 극심한 체증이 계속됐다. 그 모두를 뚫고 돌아온 시간이 오후 4시 10분. 어느 새 24시간 레이스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지금 출발한다면, 기껏 마포 부근 강변북로 어디쯤에서 '24시간 레이스 끝났어'라는, 편집장의 배째라 식 연락을 받을지도 모른다. 9랩으로 모든 레이스를 마쳤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올 거라 걱정했지만 그렇지 않다. 푸조의 시트는 장거리 운전에도 피로를 덜어주었고, 시종일관 부드러움으로 일관한 2.7리터 HDi 디젤 엔진은 정말 엄청나게 조용했다. 쭉 뻗은 새벽의 자유로에서도 푸조 특유의 쫀득한 핸들링은 매력을 잃지 않았다. 복잡한 서울 도심,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모두 뚫고 달린 24시간 레이스에서 쿠페 407 HDi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에디터/황인상 한편, 같은 시각 아우디 A6 3.0 TDI를 몰고 있던 임유신 기자는 어땠을까? '미친놈들의 미친 드라이빙.' 플래카드에 쓸 문구를 적어내라는 지시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문구다. 어디 제정신으로 할 일인가? 프로젝트가 확정된 후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시승차를 빌릴 때 메이커의 홍보 담당자에게 사실대로 얘기할까, 모른 척 그냥 빌릴까? 달리다가 퍼지는 거 아냐? 드라이버 지원자 없으면 24시간 내내 차에 있어야 되는데···, 차 막힐 때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오래 탈 텐데 음악 CD는 무엇을 준비하나 등등.' 정말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미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임무는 아우디 A6 3.0 TDI 메인 드라이버.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아우디 출입기자이기 때문이었다. 보다 확실하게 아우디에 몰입하기 위해 복장부터 아우디로 치장하려 했지만, 내게 있는 건 아우디 로고가 박힌 검은 반팔 셔츠 하나 뿐. 중간중간 차디찬 야외 천막 본부에서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반소매를 입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모 일본 메이커의 검은색 재킷을 걸쳐 입었다. 물론 사진 찍을 때는 브랜드 로고를 가리는 조건으로 말이다. 반면 푸조 메인 드라이버인 황인상 기자는 그럴듯해 보이는 푸조 재킷을 걸치고 있다. 지금까지 황인상 기자가 사무실에 푸조 옷을 여러 차례 입고 왔지만 한번도 같은 옷을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저 인간은 자동차 기자인가, 푸조 옷 콜렉터인가. '역시 푸조는 옷에 강하다.' 아우디 TDI와 푸조 HDi가 올해 르망에서 맞붙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결과는 경험에서 앞선 아우디 승. 하지만 한국판에서는 초반 기싸움부터 밀린다. 드라이버 복장도 그렇고, 차 생김새도 그렇다. 푸조 쿠페 407 쿠페는 내가 보기에도 훨씬 잘 빠졌다. 하지만 기본기는 생김새와는 무관하니까···. 그리고, 주행거리도 407은 7천 킬로미터 정도인데 반해 A6는 2만7천 킬로미터나 달렸다. 길들이기가 거의 끝났다는 얘기다. A6 3.0 디젤은 직분사 디젤 엔진인 TDI를 얹었다. TDI는 완전에 가까운 연료 연소로 디젤의 문제였던 소음, 매연, 진동 등을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세계 최초의 디젤 레이싱카인 R10 TDI는 데뷔 후 2년 연속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1위에 오른 지존 중의 지존이다. A6에 올라간 3.0 TDI 엔진의 배기량은 2천967cc. 최고출력 233마력, 최대 토크 45.9kg·m의 범상치 않은 파워를 자랑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시간은 7.1초. 최고시속은 247km로 푸조 쿠페 407에 한참 앞선다. 디젤이지만 스포츠 세단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말이다. 정부 공인연비는 리터당 10.4킬로미터로 1등급. 보통 휘발유 3리터급 엔진의 연비가 리터당 7~9킬로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높은 편이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생각했던 것 만큼 그렇게 높지는 않다. 드디어 1랩이다. 퇴근시간 전이지만 예상대로 곳곳에 정체구간이 길다. 그래도 시작이라 견딜만하다. 동승자는 스튜디오 팀의 김범석 군과 <톱기어> 신혜진 기자. 강변북로 구간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던 범석 군은 '올림픽대로에 접어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든 닭마냥 고꾸라졌다. 선배 눈치 보느라 억지로 졸음을 참던 신 기자도 자유로 구간에서 곯아 떨어졌다.' 분명 나의 부드러운 운전 솜씨 때문이리라! 한참 후에 깨어난 그들은 하나 같이 디젤차답지 않게 조용하고 안락한 A6 때문이었다고 하더라만…. 제한속도로 맞춰 달리면 시간상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열 번 정도만 타면 되니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다. 화이팅! …그런데, 그게 아니다. 고작 한 시간이 지나자 허리가 아프다. 럼버 서포트를 조절해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 처음에는 편안했던 시트도 오랜 운전 앞에는 별 수 없나 보다. 역시 장거리 운전 때는 차에서 내려 몸을 움직여 주는 게 최선의 피로회복제. 10월이지만 낮에는 에어컨이 필요하다. 그래도, 연비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에어컨을 끄려니 온오프 스위치가 없다. 풍량 1까지는 줄어 드는데 끄는 방법을 모르겠다. 결국 에어컨을 계속 켜고 달린다. 2랩. 아우디 홍보대행사 크로스 커뮤니케이션의 양숙진 씨가 격려차 방문했다. '당연히 한 바퀴 돌아야지.' 나는 뒷좌석에 앉는다. 중형급이지만 뒷좌석도 넓고 편하다. 역시 다른 사람이 운전해주는 차에 타는 게 제일 편하다. 운전대를 잡은 최윤섭 기자와 양숙진 씨, 이렇게 셋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눈다. 1시간 반 정도가 지나자 대화는 점점 잦아든다. 할말도 다 떨어지고, 급기야 입을 떼는 것조차 피곤하다. 아, 그리고 아우디 홍보 담당자가 동승한 김에 에어컨 끄는 법을 알아냈다. 'ECON 스위치를 길게 누르면 에어컨 시스템 전체가 꺼진다.' 가장 막힐 시간이었는데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모두 잘 뚫렸다. 올림픽대로 일부구간에서 잠깐 지체가 있었던 것만 빼고는 이상하리만치 막히지 않는다. 정체 끝물인가 보다. 그러나 어떤 진출로는 한가한 때도 차들이 두 세 줄로 모여들어서 뒤 차의 흐름을 막는다. 여기에 끼어 드는 운전자들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다. 차에서 담배꽁초며 쓰레기를 밖으로 내다 버리는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도로에 있는 꽁초며 쓰레기를 전부 수거해 그런 사람들의 안방에 쏟아 부어야 정신 차리지 않을까 싶다.' 불쑥 끼어 드는 차도 많고 얌체 짓 하는 운전자도 상당하다. 평소 같으면 하이 빔으로 응징 했을 텐데, 참기로 했다. 차에 무수히 붙은 <톱기어> 스티커 때문이었다. 3랩. 이번에 쉬는가 했더니, 한바퀴 더 돌란다. 차에만 계속 있어서 그런지 눈이 뻑뻑하다. 점안액을 챙겼어야 되는데 깜빡 했다. 대신에 한강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이 아픈 눈을 달래 준다. 밤은 깊어 가지만 졸리지는 않다. 하지만 계속 차만 타니까 집중력과 판단력이 흐려지는 느낌이다. 속도감이나 거리감이 둔해진다. '예전에는 10시간도 문제없이 운전했는데, 이제 나이 먹으니까 힘들다. 에고···. 운전 중 휴식은 필수다.' 정체가 풀렸겠거니 했더니, 이번에는 공사 때문에 도로가 막힌다. 쉬고 싶은 생각도 들고,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다 보니 빨리 본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속도를 높이고 싶은 유혹을 견지지 못한다. 토크가 좋다 보니 속도를 높여도 힘이 펄펄 넘친다. 그 맛을 들이고 나니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시속 150km를 넘길 수 없다는 자체 규정이 나의 오른 발목을 잡았다.' 요란하게 튜닝한 차들이 떼지어 다닌다. 자유로에서 기아 쏘렌토 여섯 대가 칼질을 하면서 달려간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시커먼 매연을 뿜어댄다. 친환경 디젤이 되기 위해서 아직 갈 길은 먼 것인가···. 아침 주행은 출퇴근 시간과 맞물리기 때문에 피곤하면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된다. 그래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교체 운전자가 4, 5랩을 도는 4시간 동안 잠을 청한다. 한숨 자고 일어난 아침의 첫 랩. 아직도 연료 게이지에 여유가 있다. 디젤차의 연료계를 쳐다보고 있을 때는 정말 흐뭇하다. 그래도 막힐 때를 대비해 기름을 보충한다. 연료계 바늘이 절반까지 올라간다. 마음이 든든하다. 네 시간을 잔 관계로 오전 운전은 쉬지 않고 2랩을 연달아 뛰었다. 다행히 극심한 체증은 없다. 아니 계속해서 같은 길만 달리니까 단련이 돼서 그런지 느리더라도 흐름만 유지되면 막힌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유로 일산 부근에서 도로 포장을 하는 바람에 본부를 단 20분 남겨두고 엄청 막힌다. 그래도 '우리 동네(우리 집은 일산이다!) 잘 되라고 하는 일이니까 기꺼운 마음으로 정체를 즐긴다.' 마지막 랩은 쉬는 타임. 진행차 안에서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잠을 청한다. 문득 눈을 뜨니 한참을 잔 것 같은데도 아직 차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바퀴가 길긴 길다. 과자 부스러기로 빈속을 달래고 있는 사이 마지막 랩을 마친 A6가 당당하게 본부로 들어온다. 24시간을 달린 A6는 별다른 문제 없이 쌩쌩했다. 양산차의 내구성도 믿을만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무모한 도전에 지친 것은 우리였지, A6는 지치지 않았다. 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완전히 쓸데없는 기우였다. 24시간 드라이빙을 무사히 마친 우리는 샴페인 대신 주차장에 펴져 앉아 볶음밥과 잡채밥을 시켜 먹었다. 음식은 정말 '꽝'이었다. '아무리 한강에서 시켜먹는 음식이라지만, 한번 먹고 말 사람들이라지만 장사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데···.' 자동차는 온갖 테스트를 거쳐 나오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운전자에게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무한 아우디 교'의 믿음을 얻었다. A6 3.0 TDI로 말이다. 에디터/임유신 '서울 도심 24시간 레이스,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작고, 깔끔하게 끝내자는 게 목표였는데,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다. 실전을 뛰어야 하는 팀원들의 눈초리가 시간이 갈수록 무서워진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는 숨어있어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사고 없이 끝났으니 다행 아닌가? 서울 순환도로를 눈감고 달릴 수 있을 만큼 길눈도 밝아졌지만 고맙다는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이스 규정도 마련했다. 코스는 마포구 상암 난지도 캠핑장을 출발해 강변북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 천호대교를 건넌 다음 다시 올림픽 대로를 탄다. 행주대교까지 달린 후에 다리를 건너 다시 강북으로 넘어온 후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까지 올라간 뒤 다시 자유로, 강변북로를 거쳐 난지도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약 152킬로미터 구간. 10랩 정도를 예상했지만 9랩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 차에는 최소 2인 이상 동승한다. 졸음운전을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새벽 시간이 되면서 모두들 지쳤고, 드라이버 혼자 타는 경우도 있었다. 피트레인을 제외한, 그 외 어떤 곳에서도 멈춰서는 안 된다. 하지만 황인상 기자는 너무 졸린 나머지 자유로 피상회피구역에서 잠시 잠을 청했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넘어간 줄 알았단다. 제한 최고속도는 시속 150km. 최고속도는 단속 카메라를 피해 눈치껏 올려야 하며, 카메라 적발 시 범칙금은 본인 부담으로 한다. 최대일 기자가 막히는 시간에도 3시간이 걸리지 않은 걸 보면, 자유로에서 엄청 밟은 듯. 범칙금 꽤나 나올 것 같다. 메인 드라이버는 24시간 레이스가 끝나는 순간, 총 주행거리, 연료소비량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번 레이스 총 주행거리는 아우디 A6 3.0 TDI가 1천381.1킬로미터, 푸조 407 쿠페 HDi가 1천375킬로미터. 연료소비량은 A6 3.0 TDI 89.2리터, 407 쿠페 HDi는 97리터. 연비를 계산해보면, A6는 리터당 15.5킬러미터, 407은 14.2킬로미터다. 한번 따져보자. 24시간 동안 달리기로 했지만, 푸조가 9랩을 마친 순간 거의 24시간이 다 되었고 곧 아우디 A6도 9랩을 마쳤다. 비슷한 시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서울 시내의 교통흐름 상 앞서 가기 힘들고, 새벽에 운전을 할 경우 졸음을 막기 위해 서로 격려해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행을 했던 때문이다. 안전문제를 고려해 속도싸움을 하지 않았던 탓에 두 차의 총 주행거리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두 차에서 발생한 약 6킬로미터의 오차는 무엇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추측하건대, 드라이버 중 한 명이 코스를 잘못 들었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온다. 별순검을 동원해서라도 주범이 누군지 밝히고야 말리라. 연비 차이는 운전습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액셀 페달을 꽤나 밟은 것으로 보이는 407 드라이버들 탓이다. 조금 밟은 게 아니라 엄청나게 밟았다는 후문도 24시간 내내 떠돌아다녔다. 위에서 잠깐 말했지만 행사 규모는 불길 치솟듯 커졌고, 비용도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예산에 맞추자면 먹는 걸 줄이는 게 상책. 눈물을 머금고 컵라면과 햇반, 과자, 물 몇 개만 준비했다. 먹어본들 졸음만 올 테니 배고프게 달리자는 거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톱기어>를 응원하는 격려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우선 <톱기어> 광고팀 이종호 부장이 햄버거, 그것도 빅맥 스무 개를 한아름 갖다 주셨다. 디자인 팀 이영주 실장이 거침없이 쏜 통닭 여섯 마리를, 이은희 팀장과 이정현 씨가 몸소 들고 본부를 찾았다. 마감 중임에도 자매지 <테니스 코리아>의 박원식 편집장이 보조 드라이버를 자원해 <톱기어> 편집장과 함께 1랩을 도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테니스 코리아> 아트 팀 박현화 과장과 역시 자매지인 축구잡지 <인사이드>의 박정훈 기자도 본부를 찾았다. 만약 크라이슬러코리아 이동희 차장이 없었다면 <톱기어> 팀은 난지 캠핑장에서 얼어죽었을 지도 모른다. 평소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떠나 '황건적 같은 생활'을 즐겨온 그는 침낭을 비롯해 캠핑 장비 일체를 빌려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MTB를 몰고 바람처럼 달려와서 직접 불까지 피워주고 돌아가기까지 했다. 아우디 홍보대행사 크로스 커뮤니케이션의 양숙진 씨 역시 추운 날씨에도 캠핑장을 찾아 늦은 시간까지 1랩을 도는 등 <톱기어> 팀을 응원해 주었다. 지면을 빌어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24시간을 꼬박 몸으로 뛴 스튜디오 팀의 김대웅 실장, 안종우 팀장, 김범석 군. 이들이 없었다면 이번 이벤트는 절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유일한 여성 드라이버로 밤을 꼴딱 샌 신혜진 기자와 후배 아끼랴, 선배 챙기랴 고생에 고생을 뒤집어 쓴 임유신, 황인상 기자도 너무 고맙다. 하나 더. 엄청나게 무모한, 미련스럽고 또 미련스러운 이번 이벤트를 마친 <톱기어> 팀이 자랑스럽다. 에디터/최윤섭 |
톱기어 한국판... 이 양반들 대형사고 쳤군요. 그래도 봐줄만 합니다. 낄낄
기사&사진 : 톱기어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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