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까 스토리가 왕창 밀렸네요? 이거 큰일인 듯.... 빨리 진도를 빼겠습니다.
스토리는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사범님.”
“오랜만은 무슨. 전년도 겨울에 만나서 나와 같이 직접 검을 잡았던 사람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겠소?”
“별 말씀을요.”
유카의 당혹한 말을 들은 젠가가 화통하게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래. 지금이라면 오카야마에 계셔야 할 마츠자와 지사장이 직접 이 남쪽 끝 가고시마까지 먼 길을 오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소? 무슨 일인지 한 번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아, 소피아. 당신도 앉고, 중요한 사안입니까?”
“네, 좀 중요한 사안이라서 가족 분들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으흠, 쉽지 않겠지만, 알겠소. 소피아, 이루이를.”
“알았어요.”
가나가와현 가나가와시 츄오쵸에 있는 젠가의 집에 유카가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22분, 마침 젠가는 그의 양녀인 이루이가 집에 온 덕에 그녀를 대신 돌보고 있었다. 소피아가 유카의 마중을 나간 상황에서 젠가는 도복에서 막 사복으로 환복한 뒤였다.
이 때문인지 거실에는 젠가와 소피아, 그리고 양딸인 이루이까지 앉아 있었다. 유카는 그녀의 앞에 놓인 녹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대표님께서 한 시즌이라도 드라이버로 뛰어달라는 요청을 해 오셨습니다.”
“송미옥 대표가 직접 말입니까?”
“네.”
젠가는 유카의 말을 듣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당혹해 했다. 젠가 본인은 시현류의 사범으로서 활동하지만 가고시마를 넘어선 전 규슈 내에서 그의 드라이빙 실력은 날카로운 칼 그 자체라는 평을 받을 만큼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자랑했다. 그 소문을 송미옥이 어떻게 들었는지 드라이버가 부족한 팀의 전력 향상을 꾀하는 것도 모자라 드라이버들의 정신 수양을 담당할 드라이버를 필요로 한 것이다.
이는 이미 유카가 시즌 중에 젠가에게 오우카의 정신 수양 등에 관한 것을 맡긴 것에서 봐도 알 수 있었다. 2010년 겨울, 시즌을 마치고 규슈 지방으로 휴가를 떠난 팀원들은 휴가지에서 한 여성을 구한 전력이 있었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로 발견된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오우카 나기사라고 소개했지만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여자를 덥석 맡기 어려웠던 팀원들로서는 고민이 이만 저만 아니었고 결국 그녀를 조사한 소피아 네트 박사의 허락을 받아 가고시마에 있는 젠가의 집에 있게 한 것이다.
“지사장, 송미옥 대표께서 나 같은 이에게 이런 일을 맡긴 것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었던 겁니까?”
“모르겠어요.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요.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지사장님께서는 단 한 명의 드라이버를 놓치실 성격이 아니란 거죠. 그 분이 지정한 드라이버는 더더욱 말이죠.”
젠가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확실히 송미옥 대표가 어떠한 조건을 내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송미옥이 전에 젠가에게 오우카의 교육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시즌 중의 생활을 맡긴 것을 보면 뭔가 있긴 한데, 그녀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사장님, 일단 이건 그 사람 혼자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에요. 송미옥 대표님께서 어떠한 생각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안은 세다고요. 게다가 애 교육도…….”
소피아의 발언에 유카도 당혹해 했다. 확실히 이건 일리가 있는 내용이다. 아동기의 잦은 이사는 오히려 교우관계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는 유카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자위관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요코스카에서 태어난 그녀는 6세 이후 소학교[각주:1]를 졸업하기 전까지 이사를 꽤나 했는데 요코스카 → 요코하마 → 마이즈루[각주:2] → 도쿄 → 요코하마 순이었으니, 말 다 한 셈. 더 큰 문제는 가장 길었던 생활이 초등학교 입학 후 2년간 요코하마에서 살았던 것이 가장 길었다고 할 정도, 이 때문에 그녀는 한동안 트라우마를 앓아야 했고, 이 때문에 소학교 당시의 추억이 많이 없는 편이었다.
“일단 시간을 좀 줄 수 있겠소? 확실히 결정을 해야 하니.”
“네. 그럼 전…….”
“저, 지사장님?”
유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유카가 돌아보니 거기에는 은색과 검은색을 메인 컬러로 한 유카타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던 것이다. 녹빛이 감도는 흑발과 금색의 눈동자. 바로 2011년에 이곳으로 온 오우카 나기사였다. 본래 유카 자신이 보호자로 등록했지만, 그녀의 직업이 문제가 되어서인지 다른 신변 보호자가 필요했고 결국 그녀는 송미옥 대표가 보는 앞에서 소피아 네트 박사를 겨우 설득해 오우카의 또 다른 신변 보호자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등재시킬 수 있었다.
“에, 나기사?”
“오랜만이시네요.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오우카의 웃음을 본 유카는 그저 눈만 깜빡 거릴 뿐이었다.
“일단, 뭐 그럭저럭 지냈지만……, 뭐야? 그 유타카?”
“아, 이거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잠옷용으로 만든 거지만요.”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재봉 실력을 본 유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얘가 가고시마에서 이런 것을 또 언제 배운 건지 놀란 유카가 젠가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거 나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지만, 지역 문화센터의 교육에 참가한 이후 틈틈이 만들더군. 그러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서 이루이의 유카타를 완성하고 그러더니 자기 것도 만들더군. 보는 내가 놀라웠어.”
“지역 문화센터의 교육이라, 의외네요?”
“아무래도 내가 사범인 관계로 다른 수련생들을 지도해야 하고 그녀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니 같이 있어주기 어렵기도 하지. 이루이가 학교에 갔다 오면 오우카 양과 같이 있어 주겠지만, 솔직히 뭘 해줄 수 있겠나. 그러니 그렇게라도 해 주고 싶지.”
사실이다. 시현류의 사범인 젠가는 사범으로서의 일이 끝나면 집안을 돌보게 된다. 다만 실제적으로 볼 때 피곤함이 많이 쌓인 것은 사실인 게, 그가 한 번에 훈련시키는 수련생이 약 4~50명이다. 그들을 일일이 지도하는 것이 사범으로서의 역할. 한 차례의 수련 시간은 대략 3~4시간, 이러한 것을 감안해 볼 때 수련생이나 사범이나 지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젠가의 말에 의하면 하루에 수련을 3~4회를 한다고 하니 하루의 일이 마칠 때 되면 본인도 상당한 체력 소모를 느낀다고 한다.
이러니 젠가 본인으로서도 미안해질 정도였고 한번은 아예 젠가가 오우카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기 직전까지 갈 정도였다. 오히려 오우카는 소피아와 젠가 앞에서 지금이 편안하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는데, 사실 그녀의 말도 이해가 갔다.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돌리고 다른 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넘어가 보자.
2013년 1월 24일, 이탈리아 북부, 이클립스 레이싱 스포츠의 본부. 단장인 제이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엔트리가 결정되었지만 나현화를 통해 들어온 정보는 충격 그 자체였다. 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글이 영국 쪽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송미옥의 인터뷰 기사가 결정타였던 것이다. 이미 송미옥은 금년 1월 초부터 계속 전방위적 공세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로 인해 송재혁의 영입도 사실상 이 선언의 연장선이라고 본 사람이 많았다.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나현화 디렉터, 아시아권에서 신규 드라이버를 영입할 수 있을까요?”
“어려울 수도 있어요. 아시다시피 저도 언어 문제로 처음에 크게 고생했으니까요.”
“그래도 나현화 디렉터의 외국어 능력은 다들 인정하잖아요? 문제가 뭔데요?”
“일종의 향수병이죠.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유학생들이 처음에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다가도 나중에 유혹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가 외국에 아는 이가 없기 때문에 그렇죠. 어쩌면 그것이 더 나을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향수병이 심해지면 오히려 손해가 되는 법이에요.”
현화의 말에 제이나는 고민에 빠졌다. 2012년 시즌에 이클립스는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젊은 드라이버를 모아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전역에서 활동을 전개했다. 현재 이탈리아 몬자에는 각 대회에 쓰인 경주차들이 모두 몰려와 있었다. FIA GT3 European Championship에 쓰인 아우디 R8과 페라리 458, 슈퍼레이스에 쓰인 GM대우 젠트라 T250이 있었다. 그리고 인근 서킷에는 한 대의 스포츠카가 달리고 있었다.
“낭패인데요?”
“별 수 없어요. 현재의 인원으로 계속 달리든지, 아님 단장님이나 에키나씨, 판도라씨의 인맥을 동원해서 충원해야 해요.”
“현화양 인맥도 있잖아요?”
“안 돼요. 사촌 오빠는 이글 모터스포츠 팀에서 활동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애시 당초 이쪽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나현화의 사촌 오빠인 나형일은 본래 아마추어 레이서로 클릭스피드페스티발과 그 후신인 KSF에서 활동했지만 11시즌 이후 DDGT에서 활동을 전개했다. 제네시스 쿠페를 타면서 GT500에서 이름 있는 강자들과 싸운 그를 지켜본 것은 나현화 뿐 아니라 이글 모터스포츠도 마찬가지였다. 나현화가 시즌 중에 아시아 쪽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어지자 강일준 이글 모터스포츠 코리아 대표대리와 박금석 이글 모터스포츠 최고 고문이 이맹근 MK 대표를 통해 나형일과 접촉했고, 그의 서포트를 맡기로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이클립스 레이싱의 나현화가 급하게 나형일에게 조건을 제시했지만 이글의 요구 조건이 워낙 셌던 탓일까? 나형일이 거부하면서 협상이 결렬된 일이 있었다. 당시 이글은 드라이버의 차량 정비, 장기적인 드라이버의 교육, 프로 전향시 1년간 국내에서 뛰고 바로 해외의 계열 팀에서 활동하거나 해외 계열 팀의 리저브로 먼저 뛴 다음 해외 무대에서 뛰는 것, 향후의 학습 문제에 대한 지원 등을 실제로 내걸었다. 이 부분들은 실제로 이글 모터스포츠가 내거는 것 중 하나였다. 드라이버의 은퇴 후 문제까지 생각해야 했던 송미옥 대표는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다른 드라이버들의 경험을 토대로 해 볼 때 문제는 은퇴 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은퇴 후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이러한 조치를 취할 것을 처음에 제안했고 이것은 현재 이글의 드라이버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었다.
“이글이 내는 요구조건이 너무 세니, 답답하네요. 일단 작년의 드라이버 엔트리를 계속 쓸까봐요. 차만 좀 바꾸고.”
“판도라씨와 에키나씨에게도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해야죠. 근데 에키나씨는 지금 세니아 양과 함께 프랑스에 가 있어요. 아르문드 가의 자녀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갔는데 잘 될지는 몰라요. 더 두고 봐야 아는 거겠죠.”
2013년 1월 23일, 서울 이글 모터스포츠 본사. 송미옥은 누군가와 전화통화 중이었다.
“그럼 거기서 미국행은 무리겠네?”
“네, 아무래도…….”
“알았어. 다른 카드를 써야겠네.”
“죄송해요. 대표님.”
“아냐, 어차피 그 녀석의 실력이 좀 필요했거든. 걔를 대신 파견할게.”
“네.”
누군가와 전화한 후 미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2013년 1월 24일 오후 12시,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국제공항.
재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공항에 와버린 자신의 신세에 한탄감을 느꼈다.
‘미치겠다. 공항에 또 오다니. 영국 갔다 온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젠 또 미국이야?’
송미옥이 다른 사람도 아닌 송재혁을 보낸 것은 유카가 아직도 일본에서 스카우트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미옥은 재혁을 먼저 미국으로 파견하고 자신은 일본을 들렸다가 미국에 있는 재혁의 행보가 길어지면 미국에서 합류해 영국으로 간다는 계획을 세웠기에 발생한 일이다.
‘아, 진짜 마츠자와 지사장님은 스카웃 문제 하나 해결 못하고, 재연이 형은 정보 잘못 줘서 욕먹은 대표님에 의해 업무 해결하라고 독일로 강제 출장 명령받고, 난 뭐야?’
비행 시간표를 본 재혁은 표정이 완전히 뭐 씹은 표정이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로스 엔젤레스 국제공항까지 11시간, 그리고 거기서 안젤라 시티 특별구까지 가는데 또 비행기로 40분. 직항편이 있다지만 문제는, 타임을 놓쳤다. 송재혁이 이것 때문에 당혹해 했고, 문제가 있다면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타이항공,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를 타면 100% 톰 브래들리 국제선 터미널에 내리게 되는데 운이 좋아서 델타 항공의 것을 뽑는다 해도 델타 항공의 특성상 100% 대한항공으로 돌릴 것은 불 보듯 뻔하고, 직항편이 아니면 100% 환승 노선이었다. 그렇다고 아시아나? 유나이티드 에어와 코드쉐어를 하는 중이라 유나이티드 에어로 끊어도 아시아나로 굴리거나 아님 경유노선이다.
그렇다고 타이항공은 아무래도 타 본 적이 없던 노선이니……, 결국 재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한항공 직통 편을 끊은 상황인데 일단 TBIT에서 내린 후 5번 터미널까지 걷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적어도 LA까지 가보고 후일을 도모할 수밖에.
2013년 1월 25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송재혁보다 1일 먼저 독일로 출국한 이재연은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포르쉐 본사 앞에 서 있었다. 송미옥에게 한 보고가 사실상 잘못된 바람에 보고자였던 이재연은 한 소리를 듣고서는 독일로 날아가야 했다. 출국 전날에 독일 현지의 관계자와 통화한 재연은 자세한 설명을 독일에서 하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용인 죽전에서 인천공항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독일행 비행기에 긴급하게 올랐다.
독일로 오는 국제선의 대부분은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국제공항을 이용하며 일부 노선은 아예 베를린으로 진입하지만, 한국에서는 현 시점 상 프랑크푸르트를 통해 진입하는 것 밖에 없었다. 독일에 팀 캠프가 있기 때문에 이재연도 프랑크푸르트는 몇 차례 온 전력이 있었다. 팀 전세기를 타고 움직일 때에는 바로 라인란트 팔츠 주로 진입했지만, 이번엔 사정이 복잡했기에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야만 했다.
슈투트가르트까지 진입하는 것은 항공기의 역할이고 그곳부터 주펜하우젠의 포르쉐 본사까지는 열차로 이동할 방침이었다. 독일의 S-Bahn은 상당히 열차 시간이 잘 맞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재연에게 중요한 것은 열차를 중간에 갈아타야 한다는 점이다. 환승 지점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이곳에서 S6으로 갈아타는데 굳이 S6의 출발점인 슈바브스트라쎄(Schwabstraße)에서 갈아타지 않고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서 환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이 상당히 크기 때문 아니었을까? 유럽에서 중앙역이 가지는 위치는 말 그대로 철도 교통의 요지라는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역시 마찬가지. 독일 남부 바텐뷔르템베르크 주의 주도인 슈투트가르트의 특성상 중앙역은 교통의 요지라고 볼 수 있었다.
최종 종착지는 포르쉐광장(Porscheplatz)라는 부역명이 붙은 Neuwirtshaus역. 총 시간 46분 내외. 슈투트가르트 공항에서 열차를 타야 했고 이재연은 그 일을 그대로 해냈다. 그리고 인근의 한 카페에서 포르쉐 모터스포츠 사업부 담당자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어렵죠.”
“아니, 어렵다뇨?”
“아니, Helmut 당신이 생각해 봐요. 1년 뒤에 신형 경주차로 경주를 하는데 돈 버릴 작정하고 997을 도입해요? 올해 한다 해도 내년이면 바꿔야 하는데.”
“Hans, 우리 회사 대표님 성격 아시잖아요.”
“송미옥 대표의 성격은 알지만, 이번엔 좀 심한 것 같은데, 다른 드라이버에게서 구할 수 없겠습니까?”
“드라이버 대 드라이버로 말입니까?”
“네, 개인적으로 말이죠. 그 대신 내년 카레라 컵 저팬에도 그 드라이버가 뛴다면 직통으로 전해드릴 의향은 있습니다.”
제안은 나쁘지 않다. 사실 997은 포르쉐 입장에서 볼 때 저무는 해였다. 996에서 부정적이었던 차의 디자인을 과거의 스타일로 환원했고, 성능도 996에 비해 더 좋아졌고 게다가 후기세대에 등장한 911 GT2 RS라는 변태적 성능(……)을 가진 차량도 나와서 악명을 날린 것은 이재연도 잘 아는 내용이었다. 무슨 6기통 주제에 12기통 슈퍼카와 맞먹는 성능이란 말인가? 아, 물론 911 GT1 Straßenverion은 이야기가 또 다르다. 그 차는 완전히 GT 레이스에 나서기 위해 만든 차였으니까. 1990년대 BPR Global GT Series은 경주에 참전하기 위해서 25대의 로드 고잉(Road-Going) 경주차를 만들 것을 요구했고, 포르쉐는 수평대항 6기통 3.2리터 트윈터보 엔진을 얹은 911 GT1의 스트리트 리걸 버전을 만들어 정말로 팔았다. 그렇지만 이미 포르쉐는 최신형 991을 2011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했다. 수평대항 6기통 3.4리터 350마력의 자연흡기 엔진과 수평대항 6기통 3.8리터 400마력의 자연흡기 엔진이 먼저 공개되었다.
이미 공개된 991 GT3 Cup Car의 성능도 괜찮았지만, 문제라면 역시나 올해까지는 Typ 997로 쓴다는 점이었다. 보통 한 시즌에 공개될 신형 레이싱 카는 그 전년도에 공개되었는데 이를 감안하면 신형 991은 2014년도 카레라 컵에 참전한다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13년도 시즌에는 종전의 997이 재투입되는 셈.
고민하던 재연은 잠시 대화를 중단한 채로 어디론가 전화했다. 목적지는 서울, 이글 모터스포츠 본사였다.
“네, 대표 송미……, 아 이 팀장. 결과는?”
‘아, 저 그게 말입니다. 포르쉐 측에서는 Typ 997을 개인자격으로 사라는군요. 대신 Typ 991 경주차는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이유는?”
‘내년 카레라 컵부터 신형 991 기반의 경주차가 쓰이는데, 997 경주차를 도입한다는 것은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제안을 한 것으로 압니다.’
“그렇군. 그럼 말이야, 드라이버의 계약이 우선인가?”
‘그럴 필요 없이 차를 도입하는 것이 우선일거 같습니다. 도입 문제는 이쪽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알았어. 실수 없도록 할 것.”
“네.”
2013년 1월 26일, 서울에 있던 송미옥은 때마침 이클립스 레이싱 스포츠가 드라이버를 발표하는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작년도 이클립스의 엔트리를 잠시 검토해보자. 위쪽이 드라이버, 아래쪽이 경주차이다.
Eclipse Racing Sports 2012 Line Up
대회 |
드라이버 명단 |
리저브 | ||
FIA GT3 European Championship[각주:3] |
Silver Lunar (Ger) |
Cynthia Khasandra (ROK) |
- |
- |
Zerai Khanazeph (Rus) | Frei Lunar (Ger) | |||
BTCC[각주:4] |
Dakini Zernia (Ita) |
- | ||
Super Race |
Shina Serith (ROK)[각주:5] |
대회 |
경주차 |
FIA GT3 European Championship |
Audi R8 LMS Ultra(1호차) |
Ferrari 458 Italia GT3(2호차) | |
BTCC |
Volkswagen Golf Mk5 |
Super Race |
GMDAT Gentra X[각주:6] |
엔트리 발표자는 제이나 루나 이클립스 레이싱 스포츠의 대표 겸 단장이었다. 제이나는 먼저 작년 시즌 팀의 성적을 발표했고 작년 시즌에 응원해준 팬들의 성원에 감사한다는 말을 먼저 한 제이나는 금년 시즌을 월드 챔피언에 도전하는 해라고 선언한 후 드라이버와 차량 명단을 공개했다. 사실상 아르문드 가에 대한 스카웃이 끝났는지, 아르문드 가의 자녀들이 한꺼번에 등재된 것이 이번의 특징이었다.
Eclipse Racing Sports 2013 Line Up
대회 |
드라이버 명단 |
리저브 | ||
FIA GT Series |
Silver Lunar (Ger) |
Cynthia Khasandra (ROK) |
- |
- |
Zerai Khanazeph (Rus) |
Frei Lunar (Ger) | |||
BTCC |
Dakini Zernia (Ita) |
- | ||
Super Race |
Shina Serith (ROK) | |||
Super GT GT300 |
Tsukiya Akako (Jpn) |
(Team Mach 소속) | ||
Xenociria Arcadius (UK) |
(JLOC 소속) | |||
Blancpain Lamborghini Super Trofeo Europe |
Camollone Allemund (FRA) |
Aurore Allemund (FRA) | ||
WTCC |
Senia Kisen (Ita) |
Pabianne Allemund (FRA) |
대회 |
경주차 |
FIA GT Series |
Audi R8 LMS Ultra(1호차) |
Ferrari 458 Italia GT3(2호차) | |
BTCC |
Volkswagen Golf Mk5 |
Super Race |
Chevrolet T300 Aveo 5Dr |
Super GT |
Ferrari 458 Italia GT3 (Team Mach) |
Lamborghini Gallardo GT3 (Team JLOC) | |
Blancpain Lamborghini Super Trofeo |
Lamborghini Gallardo LP570-4 Super Trofeo Stradale |
WTCC |
SEAT Leon Mk2 |
(양 쪽 모두 굵은 글씨는 2013년도 신규 출장 차량 및 드라이버)
드라이버 발표를 지켜보던 송미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드라이버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방송이 전 세계에 나간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일본에 있는 마츠자와 유카나 미국에 있을 송재혁, 독일에 있을 이재연이 이걸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을 봐도 뻔했다.
‘역시나’였을까? 미국에 출장을 가있던 송재혁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미옥이 받아보니 이미 호텔에 도착해서 숙박 중이라고 했고 현지시간으로 익일 아침에 바로 델타 로지스틱스 대표와 대화할 거라고 밝혔다. 이미 연락이 다 되었지만 본인의 안젤라 시티 도착 시간도 늦었고 회사 대표가 자리를 비운 관계로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LA 구경 및 안젤라 시티 구경 잘 했다고 너스레를 떤 재혁은 본론으로 돌아가서 상당히 긴장했다고 말한 다음, 드라이버 스카웃 문제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미옥도 이에 대해 동의한다고 하면서 일단 일본 쪽은 유카에게 맡기고 재혁에게는 신형 경주차의 도입 문제를 마무리 지으라고 했다.
곧 이어 마츠자와 유카에게 전화가 왔다. 미옥은 유카에게 스카웃 문제를 물었는데 여기서 놀라운 정보를 입수했다. 같이 TV를 보고 있던 젠가가 선수로서의 출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엔트리를 발표하던 모습을 지켜 본 젠가가 드라이버 중 한 명인 츠키야 아카코의 발언이 어째 자신에게 던지는 도발적인 멘트 같다는 발언을 했고 유카는 이에 그런 생각을 할 드라이버가 한 명 더 있다고 말했다는 것을 들은 미옥은 설득을 좀 더 시켜볼 것을 촉구, 그 뒤에 바로 본인이 일본으로 가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독일에서 온 이재연의 전화는 별 내용 없었지만 보다가 물을 뿜었다고 한 다음 1일만 기다리라고 했다.
송미옥은 달력을 봤다. 드라이버 명단 발표 스케줄의 조정이 필요했다. 당초 계획은 2월 중순에 발표하는 것이지만, 차후 경영 일선에 나설 송재혁의 경영수업이 빠른 스피드를 내고 있고 주장인 이재연이나 일본 지사장인 마츠자와 유카 모두 의외로 빠르게 행동하고 있었던데다 종전 드라이버들의 연봉 문제가 해결되었다. 일본 쪽은 작년 12월 말부터 시작한 연봉협상이 올 1월 중순, 난관으로 예상되던 유경진(슈퍼다이큐 GT3 출격 예정)이 가장 늦게 끝났을 정도로 빠른 연봉협상이 이뤄졌는데 이는 대부분의 드라이버가 연봉 협상을 회사에 위임했고 사측에서는 그에 맞게 연봉을 조정해줬는데, 최하가 동결이었고 인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동결된 경우도 다른 부분에서 더해줌으로써 실상은 올리는 효과를 보여줬다.
다만 복병이 있다면 한국의 설연휴 기간, 빨라도 2월 8일 오후부터 시작될 연휴를 감안하면 설 연휴 전에는 모든 드라이버와 경주차가 결정되어야 했다.
미옥은 일단 지금까지 확정된 엔트리를 이면지에 적기 시작했다. 신규 드라이버는 계약 일자를 포함한 것이었다.
드라이버 |
12시즌 |
13시즌 |
협상(계약) 현황 |
이재연 |
FIA GT3 European Championship |
FIA GT Series |
2012년 연말 협상 완료 |
박영준 | |||
송재혁 |
- |
FIA GT Series(?) |
2013년 1월 6일 입단식 |
박준혁 |
ADAC GT Championship |
FIA GT Series(?) |
2012년 12월 21일 입단식 |
박수현 |
Netz Cup Vitz Race |
Super Taikyu (GT3) |
2012년 11월 9일 입단 계약 |
유경진 |
전일본 더트 트라이얼 | 2013년 1월 11일 협상 완료 | |
다나카 미츠히로 |
- |
2012년 12월 27일 입단 계약 | |
윤지은 |
Super GT GT300 |
2013년 1월 9일 협상 완료 | |
황태현 |
2013년 1월 7일 협상 완료 | ||
나형일 |
Hankook DDGT Championship |
2013년 1월 2일 협상 완료 | |
노원일 | |||
차은주 |
Korea Speed Festival Forte Challenge |
2012년 11월 20일 협상 완료 | |
윤희진 | |||
윤혜은 |
Super Taikyu (ST3) |
2013년 1월 10일 동시완료 | |
나카타 히데아키 | |||
마츠하라 미야코 | |||
채미연 |
Super Race/GTSprint |
Super Race |
2012년 12월 21일 이적 |
채서인 |
Super Race |
2013년 1월 9일 협상 완료 |
※ 박준혁 : 12시즌 FIA GT3 European Championship 스폿 참전. 이벤트 현장에서 즉석으로 입단식 치름.
박수현 : 12시즌 슈퍼다이큐 파이널 대회 스폿 참전
대부분의 멤버들은 작년과 같은 활동을 하기로 되었지만, 일부 드라이버는 확실히 경주차를 바꿔야 했다. 특히 아예 팀을 옮긴 채미연은 초반 적응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당장 경주차가 바뀌는 쪽만 해도 박준혁, 박수현, 유경진, 윤혜은, 나카타 히데아키, 마츠하라 미야코에다가 팀이 바뀐 채미연까지 7명. 12 시즌에 이글 모터스포츠가 쓴 경주차는 다음과 같았다.
FIA GT3 European Championship – Porsche 911 GT3 R Typ 997
Super GT – BMW Z4 E89 GT3
Hankook DDGT Championship – Hyundai Genesis Coupe
Super Taikyu ST3 – Mazda RX-7 FD3S
Super Race – Kia New Pride 5Dr
Korea Speed Festival – Kia Forte Koup
GTSprint – Kia Shuma(팀 챔피언스 소속으로 참전.)
이런 경주차들을 탄 이글이었지만 2013년에는 대규모의 변동이 불가피했다. 일단 채미연이 이글로 이적한 이상 클래스를 다시 잡아야 했고, 더군다나 RX-7 FD3S도 사실상 퇴역이 불가피해 ST3 부분의 신형 경주차 도입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게다가 신 경주차 도입 문제까지 겹쳐서 송미옥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게다가 북미 지역에 본거지를 둔 팀들이 엔트리를 발표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서 그녀는 더욱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참고사항
● 로드 고잉 경주차란?
본디 경주차는 일반 도로에서 달릴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로드 고잉 경주차란 말 그대로 도로에서 달릴 수 있는 경주차를 의미하는데, 성능상 다운그레이드가 있지만 실제로 도로에서 운영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차들은 대부분 대회나 클래스 규정에 의거해 양산대수가 결정된다. 예시를 들면 25대 이상 생산해야만 랠리에 나설 수 있었던 1990년대의 FIA GT(이후의 르망 GT1) 규정. 이 규정에 의거해 벤츠의 CLK-GTR이나 포르쉐 911 GT1이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도로용으로 순수하게 만들어진 경주차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모터스포츠용 카테고리의 적용을 받는 차와는 다르다.
아마 이 이야기도 1~2회는 더 지나간 후에 본 시즌으로 접어들겠네요. 본 시즌이 메인인데, 이렇게 질질 끌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덤 : 왜 이진석 협상 내용은 없나요? 하실 분들을 위해 설명 드리자면 이진석은 따로 한 파트를 할애할 겁니다. ㅠ거기 S군님 좀 뭐라 하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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