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걸로 Round 0은 땡입니다. ㅋ
솔직히 말한다면 협상은 약간 늦게 시작되었다. 양측 간의 소개가 늦게 이뤄졌고 더군다나 유카가 식사도 못하고 호텔까지 냅다 밟는 바람에 잠시간의 식사 시간이 추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식사 중에 미옥이 유카에게 몇 km으로 밟았냐고 물어보자 유카는 수도고속도로에서 130km까지 밟았을 거라고 했다. 벌금이 상당히 많이 나올 거 같다는 생각을 한 미옥이었다.
어차피 회사에서 내는 거지만, 아무리 따져도 공사한지 오래된 그 도로를 유카가 무슨 배짱으로 밟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고속1호 하네다선(高速1号 羽田線)의 개통시기가 1966년이니 이미 40년은 넘긴 상태. 이 때문에 언제든지 붕괴 위험이 있을 수 있는 도로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고, 그녀도 그 길을 달렸다.
“어쨌든 들어가지. 너무 늦어도 손해니까.”
“네.”
협상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게다가 미옥은 카구라 재단으로부터 역제안까지 받았는데 이글 모터스포츠가 준비하고 있는 스칼라십에 상당한 지원을 해주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내용은 스폰서 계약과는 무관한 내용으로 제안자는 이사회 의장인 카구라 마키. 그녀가 왜 이런 제안을 했을까? 협상이 체결된 지 1개월이 지난 후 한국일보 도쿄 특파원인 한창만은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카구라 재단을 찾아가 그녀에게 질문했다. 과연 그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협상 초기부터 송미옥 대표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받았다. 그녀는 우리 재단에 대한 많은 조사를 해왔고, 우리 역시 그녀가 대표로 있는 이글 모터스포츠에 대해 조사를 해왔다. 우리에게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회사의 생존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표의 도덕성과 협상시의 눈동자와 눈의 위치이다. 눈동자가 떨리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한 거짓말을 할 경우 시선은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달랐다. 송미옥 대표의 일어 능력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말에 뭔가 힘이 있었고 또한 눈빛 자체가 살아있었는데 마치 그 눈빛은 사람을 유혹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모습이었다. 그 점이 나와 내 동생을 비롯한 모든 이의 마음을 잡았던 것이며 나 개인적으로는 동생(=카구라 치즈루 이사장)의 모터사이클 선수 활동에 있어서 자료의 부족으로 고생했던 것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끌렸다.’ - 한국일보 2013년 3월 4일자 15면
이 말이 과연 전부였을까?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인 김정석 기자는 그 해 6월, 송미옥이 드라이버 스칼라십 프로젝트를 서울에서 발표할 당시 어떻게 지원을 받아 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송미옥은 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당시 우리는 카구라 재단을 상대로 스폰싱에 대한 이야기만 전개했다. 그런 도중 나는 재단 이사장인 카구라 치즈루씨의 질문을 받고 당혹해 했는데 그 질문은 장기적인 드라이버 육성을 생각하고 있냐는 것이다. 나는 그 질문을 받고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지금은 계획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만들 것이고 또 그 엔트리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때 카구라 재단 쪽에서 모두 웃었는데, 아마도 날 시험해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이런 지원을 받아오는 것은 아마 어렵지 않았을까?”
2월 1일 오후 1시 30분, 영국 런던 인터컨티넨탈 런던 호텔
검은색 재규어 XFR-S에서 송재혁이 내렸다. 보통이라면 영국 현지에서도 웬만한 국산차를 직접 몰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특히 일본 도쿄에서 1월 30일에 젠가 존볼트의 입단식이 열렸고, 여기서 젠가의 모든 조건이 다 반영되었는데 이번 영국 현지 쪽도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내용은 비슷하게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송미옥 대표가 직접 참가했다는 것은 의외였다고 한다. 일본 지사 뿐 아니라 현지 언론 대부분도 송미옥이 직접 올까? 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송미옥 뿐 아니라 송태훈 이글 코퍼레이션 대표, 그리고 송민수 그룹 총수까지 방문하면서 충격은 더욱 컸다. 송민수 회장은 본래 런던 쪽에도 올 예정이었지만 건강 사정의 문제로 런던은 송태훈 이글 코퍼레이션 대표를 자신의 대리로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J, 여기야.”
“미안하군, Intercontinental London이라고 해서 조금 헤맸어.”
“어디까지 갔는데 그래?”
“Westminster.”
“이런, 하이드 파크라고 말했잖아. 웨스트민스터는 문 연지 얼마 안 되었다고.”
“거기까진 못 들었어. 그 부분에 있어선 유감이야.”
때마침 호텔에는 입단 예정자 중 한 명인 라이언이 송재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1월 31일, 런던에 도착한 재혁은 이슬링턴에서 전날 밤 늦게까지 협상 종료를 자축하면서 라이언과 코가 삐뚤어지도록 둘이서 술을 마신 다음 아침에 영국 정부에 사무소 설립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호텔까지 도착한 것이다. 본래는 송재혁이 히드로에서 송미옥을 맞아야 하지만, 카구라 재단의 협조로 히드로 공항에서 호텔까지 헬기를 이동해서 온다고 하니, 재혁은 그저 호텔의 위치만 알려주는 정도였다.
여기서 잠시 재혁이 타고 온 재규어 XF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본래 이글 코퍼레이션이나 이글 모터스포츠는 이 시점까지 영국에 지사를 둔 전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영국 쪽은 이글에게 있어서 거의 ‘미개척지’나 다름없던 상황이었는데, 이번 협상으로 인하여 영국에 지사를 세울만한 가치가 생기게 되면서 송미옥은 계획을 일부 수정하게 된다. 스피라의 호몰로게이션이 늦어지는 이상 금년만큼은 다른 전략을 짜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다른 엔트리는 그대로지만 박준혁과 송재혁 만큼은 이번엔 영국에 파견하는 길 밖에 없었다. 카레이서에게는 사실 휴식이란 것이 거의 없다. 아니, 휴식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겨울에도 연습을 필요로 했고, 이는 라이언을 비롯한 영국 현지의 드라이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예외적으로 송재혁은 입단 후 회사 일에도 참가하면서 연습량이 조금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고, 이 때문에 겨울에 개인 차량인 스피라를 끌고 KIC에서 달렸다는 소리도 종종 흘러나왔다.
이렇게 되자 송미옥 대표는 2013년 1월 말에 들어서면서 소위 말하는 ‘UK공략 플랜’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 플랜에 의하면 스피라의 드라이버로 내정되었던 송재혁을 영국 현지로 파견해 그를 영국 현지 팀장 겸 사무 감독위원으로 삼는데다 라이언의 파트너 드라이버로 지목하고 박준혁을 리저브 드라이버로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나머지는 동일한 대신 박준혁을 GT Series의 리저브 드라이버로 하는 방안이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2월에 가서야 가능해질 정도로 문제점이 많았던 플랜이었다. 그렇기에 미옥의 이 플랜은 드디어 시험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1시 50분, 대연회장에 서 있는 라이언과 송재혁, 데본과 데이빗은 현재 9층에 있는 객실에서 쉬는 중이었다.
“행사는?”
“3시 시작.”
“3시야? 그럼 적어도?”
“2시 40분 이전에 대표님께서 도착하실 거야. 언론 기자들은 2시 30분을 전후해 들어오겠지. 2시 50분쯤에 대표님을 포함한 당사자들이 입장하고 3시에 시작하는 거지.”
“쉽지 않겠어.”
“그렇지.”
재혁이 잠시 한숨을 쉬던 도중, 라이언이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의 손에는 마침 레모네이드 한잔이 있었고 라이언은 또 다른 한 잔을 받아 재혁에게 건냈다.
“그나저나 일본의 게히른 레이싱이라고 알아?”
“아, 들어서 알고 있어. 일본의 운동역학연구소에서 만든 카레이싱팀이고 현재는 슈퍼 GT와 슈퍼 다이큐에만 참가하고 있어. 근데 왜?”
“그 팀 출정식이 어제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었는데 지역제한이 걸렸더라고. 왜 그런거야?”
재혁은 라이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본사 측의 정보에 의하면 게히른 레이싱의 출정식은 단 2개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만 중계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하나는 일본계 사이트.
“유투브에서 본거야?”
“응.”
유투브라는 말에 또 당혹스러워진 재혁이었지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떴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의외였으니 그건 바로 ‘지역제한’이라는 조치였다. 특정 지역에서만 영상 시청이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제한을 걸면 특정 지역에서만 영상을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거 일본에서만 볼 수 있게 한거야.”
“엥? 일본에서만 본다고? 의외인데?”
“어차피 거긴 주 활동지가 일본이니까. 막 해외에도 나가는 우리와 다르거든.”
재혁은 웃으면서 라이언이 건낸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잠시 후 재혁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은 재혁은 그대로 미소를 지으며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옥상으로 올라가지. 보스께서 오셨어.”
이날 행사에는 슈나이더 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실질적으로 슈나이더 가의 협조가 아니었으면 이런 행사를 열 장소도 잡지 못했을 것이란 게 대표인 송미옥의 생각이었던 관계로 아마 행사 이후에 어떠한 방법으로든 대접할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 증거라고 한다면 현장에 도착하는 차량들이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최하가 복스홀 인시그니아였고, 그 위로 캐딜락 CTS, 그 위에 푸조 508, 재규어 X-Type, 그리고 그 위에 벤츠 E-Class나 재규어 XF, BMW 5시리즈, 그리고 가주의 경우 재규어 XJ가 눈에 띄였다.
“미치겠구만, 너넨 최하가 복스홀이냐?”
“쉐보레 차는 쓰지도 않아. 일제 차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독일차는 쓰네?”
“현실적으로 말해서 차가 없어서 말이지. 벤틀리, 롤스로이스는 예전부터 왕가의 차였고, 다이믈러도 역시 말이 필요 없잖아.”
“미제도?”
“글쎄, 크라이슬러나 포드 차 도입 계획은 있어. 근데 크라이슬러는 도입해봐야 대부분이 란치아 배지엔지니어링(Badge-engineering)이고, 그나마 믿을 만 한 것은 300C겠지만, 아마 펜타스타 엔진이겠지. 포드? 영국 포드의 승용차는 잘해봐야 몬데오가 한계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독일제구만.”
“그렇지.”
영국시간으로 2013년 2월 1일 오후 3시(한국 시간으로 2월 2일 자정)
송재혁의 사회로 이글 코퍼레이션 및 이글 모터스포츠 영국지사 개업식 및 라이언 슈나이더, 데이빗 로렌, 데본 슈나이더의 이글 모터스포츠 입단식이 열렸다.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글 모터스포츠 해외사업부 홍보실 소속 겸 드라이버 스카우터, 그리고 올해, British GT Championship에 나설지 모를 송재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송재혁의 인사. 턱시도로 환복한 재혁은 확실히 달라보였다. 175cm 밖에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체격 때문인지 턱시도가 의외로 어울린다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사무실에서도 정장을 입는 특성 덕에 재혁의 정장을 입은 모습은 의외로 많이 보였다.
재혁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의외로 물 흐르듯 진행되고 있었다. 입단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행했던 송재혁이기에 의외로 많은 이들이 그에게 질문을 주로 던졌다. 그때마다 송재혁이 직접 답하거나 송미옥, 송태훈이 각자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미옥이 한마디 꺼냈다.
“저희에 대해 조금이라도 조사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회사 본사가 한국 서울에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선수만 뽑고 출정식은 안 하냐고 하는데, 출정식은 인터넷 중계로 열릴 방침입니다.”
송미옥의 말에 사회를 맡던 송재혁과 현장에 있던 송태훈 회장의 표정은 모두 경악 그 자체로 바뀌었다. 이 이야기는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출정식을 인터넷으로 중계한다고? 설마 생중계란 말인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대는 틈을 타 송미옥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인터넷으로 2013년 2월 11일, 오후 4시,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행사를 진행할 것임을 선언했고 유투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할 것임을 밝혔다.
2013년 2월 3일, 인천국제공항.
“아니, 어머니. 말이 안 돼요. 어떻게 8일 안에 드라이버와 경주차를 다 영암으로 불러들여요. 게다가 해외에 있는 드라이버가 더 많은데요? 숙소는요?”
영국에서 귀국한 재혁은 당혹한 표정이었다. 2월 11일 오후 4시에 행사가 열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최하 3일전까지 드라이버들과 경주차들이 영암에 와야 한다. 근데 숙소는?
“일단은 전라남도 관광홍보과에 지원을 요청해야지. 1순위는 영암이지만, 안 되면 목포, 최대 광주까지 갈 수 있게 해야 하고, 한국공항공사에 지원 요청도 해야지. 어렵다면 인천국제공항에서 서해안고속도로 논스톱 주행이 될 수밖에 없어. 이글 로지스틱스, 델타 로지스틱스에 도움을 요청해봐.”
“광주는 조금 멀텐데요? 최대한 1시간 이내에 잡는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외국어도 어느 정도 되어야 하니까요.”
“일단은 당신이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 알아보고 재혁이 너는 일단 각 지사에 연락해서 비행기 티켓을 맞춰놓고. 델타 로지스틱스에도 전화해서 SLS AMG의 목적지를 한국으로 맞추라고 해.”
“네”/“알았어요.”
귀국 직후 서울 사무실로 바로 들어간 세 사람은 즉시 분담한 역할에 돌입했다. 송미옥은 본사에 출근하자마자 KIC 운영팀에 연락해서 2월 11일, 서킷의 사용이 가능한지를 확인했고, 송재혁은 해외사업부에 출근하자마자 바로 델타 로지스틱스 본사로 전화해 한국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마침 SLS AMG GT3은 델타 로지스틱스 유럽지사가 입수, 바로 한국이나 일본으로 보낼 상황이었지만 이글 모터스포츠에서 본사로 전화해 한국으로 빼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다.
“아, 송재혁 대리. 카구라 재단에도 연락을 좀 해달라는데? 그쪽에서 이번 출정식에 참석하고 싶다고 요청해서 내용을 보내줘야 한다네. 그것도 좀 부탁해 달래.”
“에, 알겠습니다. 황 차장님.”
재혁은 황 차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선 바로 스폰서 명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카구라 가는 본래 도쿄 외곽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는 집안이 본래 신사를 운영했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도쿄도 외곽에 본가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전 가주의 의견을 허락한 일본 왕실에서 치요다 구의 황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건물을 내주었고 그곳에서 카구라 재단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카구라 재단의 현 이사장인 카구라 치즈루는 언니인 이사회 의장 카구라 마키에 비하면 의외로 자유분방한 편이다. 그러나 본인도 집안의 힘이나 사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기에 그 자유분방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으나 언니인 마키는 치즈루의 로드레이스 실력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로드레이스 활동을 뒤에서 지원해주기도 해왔다.
재단 1층에 있는 혼다 NSR250R(1999년형)은 그녀의 이러한 활동을 보여줬지만 클래스를 올린 이후로는 좋은 활동을 내지 못한 그녀였다. 야심차게 준비한 듀가티였지만, 한계에 봉착한 것 같았고, 남자 레이서들과의 대결에서 밀리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한동안 모터사이클 레이스를 멀리했다. 사실 이것 때문이 이글 모터스포츠의 스폰싱 요청을 처음에 거절했지만 내용을 보고 마음을 바꾼 그녀였다.
“3월 말이라고 했나? 이글의 시즌 시작이?”
사실 3월 말도 유럽 기준이었다. 빠르면 2월 말에서 늦으면 4월 하순이면 각 캠프 소속 드라이버들이 참전하는 레이스 대회의 공식 테스트와 연습주행이 있을 것이고 이 시점이 지나면 바로 개막이다. 뒤집어보자면, 이 시점에서는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출정식이 지금쯤이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추리는 정확하게 이뤄졌다.
“들어오세요.”
들어온 사람은 이글 모터스포츠의 연락을 받은 직원이었다. 방금전까지 송재혁과 통화한 그 직원은 치즈루에게 이글 모터스포츠 측에서 보내온 공문을 치즈루에게 제출했다.
“2013년 2월 11일, 한국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orea International Circuit/韓国インターナショナルサーキット)에서 이글 모터스포츠의 2013년도 시즌 출정식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녀는 공문을 받고서 웃었다. 오후 4시, 유투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는 내용까지 있어서 아무래도 관리가 필요한 입장이었다. 숙소는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중흥골드스파&리조트인데, 이건 드라이버 전용이었고, 내빈은 광주광역시에 있는 프라도 관광호텔을 잡았다고 적혀 있었으니, 좀 의외인 상황,
“광주에서 영암까지 차가 있나요?”
“이동 차량은 이글 측에서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알았어요. 무안행 비행편을 알아보세요. 환승해도 상관없으니 말이지요.”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글의 전설을 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2013년 2월 11일 오전 11시,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
송재혁은 일찌감치 현장에 또 도착해서 현장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미 경주차와 드라이버들은 아침부터 도착해서 영암 셰이크다운에 나선 상황. 자기들끼리 타임을 나눴는지 지금 이 시간에는 두 대의 차만 달리고 있었다. 재혁은 차들을 보던 중 처음 보는 차 한 대가 달리고 있음을 확인했고 현장에 있던 한정권 메카닉(이글 모터스포츠 재팬의 메카닉)에게 물었다.
“한 메카닉님, 저 차 뭡니까?”
“아, 이번에 합류한 송재혁 선수 아닙니까? 대표님으로부터 이야기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입단 축하드리고요.(송재혁 : 아이고, 감사합니다.) 저거 복스홀(Vauxhall)사의 인시그니아(Insignia)란 차랍니다. 이번에 송 선수께서 직접 스카웃한 드라이버 중 2명의 차라는데요?”
“그래요?”
‘인시그니아라, 벡트라의 후속 아니었나? 라이언 녀석. 올 시즌엔 아예 신형인거야?’
재혁은 한정권의 말을 들은 후 그에게 목례로 인사하고 라이언에게 다가갔다. 역시나 라이언이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던 상황.
“라이언. 저건 웬 차야?”
“아, J. 올해 BTCC에서 쓸 차량이야. 작년까지 쓴 벡트라로는 성능에 무리가 와서 말이지. 신 규정에 맞췄어.”
“벡트라는 S2000 규정에 맞췄잖아. 그럼 이번 인시그니아는 NGTC인가?”
“맞아. 엔진은 2리터 에코텍 터보 기반이고. 300? 영국에서 테스트 했을 때에는 그 정도 나오더군.”
“300마력? NGTC는 300마력 이상 아니던가?”
“그렇지.”
“으흠…… 좀 딸리는데, 그건 그렇고. 그나저나 지금 인시그니아와 달리는 저거, Mazda RX-8 아냐?”
재혁의 말을 들은 라이언이 같이 달리는 차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RX-8? 분명 송재혁이 오기 전에 각 계열끼리 시간을 나눠서 투어링카 먼저 달리고 그 다음에 GT가 달린다고 했지만 GT에서 놀아야 할 차가 왜 저기 있을까?
“뭐지? 저 RX-8? 설마 저게 올해 참전하는 차야? 저거 작년에 단산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차가 없어서…… 아마 그것 때문 일거야.”
재혁은 한숨을 쉬고서 패독으로 들어가는 두 차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패독에 흰색에 갈색 스트라이프가 포함된 포르쉐 911 2대가 나와 서킷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오후 2시 30분, 송미옥이 현장에 도착해 담당 메카닉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1차 셰이크다운 해 보니까 어때요? 먼저 유재득 팀장부터.”
“일단 911 GT3 R은 차에 이상이 없었습니다. 고속 주행시 문제가 있는지 해서 조금 고속으로 달리게 했는데 딱히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SLS AMG GT3이나 Z4 GT3는 오히려 사람을 놀라게 하더군요. 특히 SLS는 갓 도입된 차임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버인 다나카 군이 달리는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RX-8은요?”
“고회전으로 올라갈수록 약간 쥐어짜는 듯한 사운드를 내고 있어서 그게 문제입니다.”
“일단 그 문제는 조금 더 검토해야겠군요. 추가적 정보 들어오는데로 주시고요, 911 컵 카는 어떻다던 가요?”
“최고라고 하더군요. 시트 포지션만 조금 손 봤었는데 처음 약 300m는 불안하게 주행해서 주행에 대한 설명을 이재연 선수가 해 준 이후에는 거의 포뮬러 카처럼 달리는 게……”
“예상한 대로군요. 한정권 팀장. 제네시스 쿠페는요?”
“지금 막 끝났는데, 노원일씨에게 물어보니, 좀 밋밋하다고 하네요. 사실 아시잖습니까. KSF는 직분사 엔진의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걸요.”
“그건 맞아요. 적어도 작년 DDGT에서는 터보로 달렸으니 이번 KSF전의 차량은 조금 밋밋하겠죠. 그러나 V6엔진의 배기량을 감안하면 I4 터보와는 또 다르다는 것을 좀 알려줬으면 해요.”
“네, 일단 그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슈퍼레이스 레이싱카 중 N9000쪽은 차후에 변동이 불가피할 거 같습니다.”
“그렇게 되겠죠. N9000 중 프라이드는 아무래도…… 알았어요. 크루즈는 드라이버가 클래스를 바꾸지 않는 이상 당분간 유지하세요.”
“네, 아 그리고 포르테는……. 뭐 똑같습니다.”
“그 차는 예상했습니다. 뭐, 드라이버인 두 사람이 변하는 게 있어야죠.”
오후 4시, 유투브를 통해 전세계로 송출되는 이글 모터스포츠의 출정식이 시작되었다. 3시 40분에 이진석이 사복차림으로 도착해 송미옥 단장을 비롯한 올 시즌 참전 드라이버들과 인사하고 관람석에서 관람하겠다고 한 것은 좀 의외였지만 최대한 숨겨달라는 요청 때문이었기에 미옥은 이를 수락했다.[각주:1] 12시즌에 대한 결산은 이미 12월 말의 팬미팅에서 했으니 안 해도 상관없었지만 송미옥은 굳이 처음에 그걸 언급하면서 12시즌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작년 시즌 이글을 잠시 상기시켰다. 그리고 나서 경주차와 드라이버 소개가 있었는데, 12 시즌의 이글이라고는 믿겨지지 힘든 엔트리였다. 잠시 2012년도 엔트리를 보자.
Eagle Motorsports 2012 Season Entry
대회 |
드라이버 명단 |
리저브 | ||
FIA GT3 European Championship |
이재연 |
박영준 |
- | |
Super GT(GT300) |
황태현 |
윤지은 | ||
Super Taikyu(ST3) |
윤혜은 |
나카타 히데아키 (Jpn) |
마츠하라 미야코 (Jpn) |
오우카 나기사 (Jpn) |
Super Race(N9000) |
채서인 |
- | ||
KSF Forte Koup Class[각주:2] |
차은주 |
윤희진 |
이진석 |
- |
Hankook DDGT Championship |
노원일[각주:3] |
나형일[각주:4] |
- |
대회 |
경주차 |
FIA GT3 European Championship |
Porsche 911 GT3 R Typ 997 |
Super GT |
BMW Z4 E89 GT3 |
Super Race |
Kia New Pride 5Dr |
Super Taikyu |
Mazda RX-7 FD3S |
Korea Speed Festival |
Kia Forte Koup |
Hankook DDGT Championship |
Hyundai Genesis Coupe |
“저희가 작년에 이 엔트리로 뛰고 나서, 제가 열 받았습니다.”라 말한 미옥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서려 있었다. 사실상 작년 이글 모터스포츠는 말 그대로 핵폭탄을 안고 뛰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황태현의 전향설로 인하여 시끄러웠던 이글 모터스포츠 저팬은 그야말로 엉망이었고, 다른 팀도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유럽 이글 같은 경우 강력한 경쟁 팀이던 이클립스에서 내놓은 2대의 차 때문에 곤욕을 치룬데다 USC Archangel Racing의 경쟁력이 커지면서 이래저래 위험 요소가 많았다.
그렇기에 송미옥은 이번 시즌에 엄청난 투자를 했고, 그 결과 드라이버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키 카드를 손에 쥐게 되었던 것이고 그 결과물은 충격과 공포의 엔트리였다.
Eagle Motorsports 2013 Season Entry
대회 |
드라이버 명단 |
리저브 | |||
FIA GT Series |
이재연 |
박영준 |
- |
박준혁 | |
Super GT(GT300) |
황태현 |
윤지은 |
나형일 | ||
Super Taikyu[각주:5] |
박수현 |
유경진 |
다나카 미츠히로 (Jpn) |
- | |
윤혜은 |
나카타 히데아키 (Jpn) |
마츠하라 미야코 (Jpn) |
오우카 나기사 (Jpn) | ||
Super Race |
채서인 (N9000) |
채미연 (Ventus) |
- | ||
Korea Speed Festival |
Gen.[각주:6] |
노원일 |
- | ||
For.[각주:7] |
차은주 |
윤희진 | |||
Vel.[각주:8] |
(?) |
- | |||
PCCJ[각주:9] |
젠거 존볼트 (Ger) |
- | |||
British GT Championship |
라이언 슈나이더 (Eng) |
송재혁 |
| ||
BTCC |
데이빗 로렌 (Eng) |
데본 슈나이더 (Eng) |
대회 | 경주차 |
FIA GT Series | Porsche 911 GT3 R Typ 997 |
Super GT(GT300) |
BMW Z4 E89 GT3 |
Super Race |
Chevrolet Cruze J300 Diesel |
Kia New Pride 5Dr | |
Super Taikyu |
Mercedes-Benz SLS AMG GT3 C197 |
Mazda RX-8 SE3P | |
Korea Speed Festival |
Hyundai Genesis Coupe 380GT |
Hyundai Veloster Turbo | |
Kia Forte Koup | |
Porsche Carrera Cup Japan |
Porsche 911 GT3 Cup Car |
British GT Championship |
McLaren MP4-12C |
British Touring Car Championship |
Vauxhall Insignia VXR-R NGTC |
엔트리 발표가 나자 현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송재혁이 사실상 유럽에 진출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영국에서 뛴다니, 언어 문제 등으로 성적이 안 나올 것이라 한 사람이 많았고, 더군다나 이렇게 전체적으로 다국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벨로스터 터보, 과연 누가 탈지에 대해서는 송미옥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떡밥을 던져서 팬들이 물게 만들기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5월을 기다리라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출정 뿐이다.
2013년도 각 대회별 출전 선수 명단
(출장하지 않는 대회는 ‘-’표시)
|
Eagle |
Eclipse |
USC Archangel Racing |
Gehirn |
FIA GT Series |
이재연/박영준 |
S.Lunar/C.Kansandra |
Laura V. Guelfi/Charlotte E. LeMay |
- |
Super GT |
황태현/윤지은 |
A.Tsukiya/X.Arcadius |
Carolline R. McMillan/ Koichi Yamamoto |
S.Ikari/R.Ayanami |
S耐久[각주:10] |
박수현/유경진/다나카 미츠히로 |
- |
T.Suzuhara | |
NASCAR |
- |
Andrew J. Murphy |
- | |
WTCC |
- |
P.Allemund/S.Kisen |
- | |
BTCC |
D.Lollen/D.Schneider |
D.Zernia |
- | |
British GT Championship |
송재혁 / R.Schneider |
- | ||
Super Race |
채서인(N9000)/채미연(Ventus) |
S.Serith |
- | |
Lamborghini Blancpain Super Trofeo |
- |
C.Allemund/A.Allemund |
- | |
Porsche Carrera Cup Japan |
S.Zombolt |
- | ||
KSF |
노원일/차은주/윤희진/?? |
2013 시즌 출장 경주차 명단
(출장하지 않는 대회는 ‘-’표시)
KSF
|
Eagle |
Eclipse |
USC Archangel Racing |
Gehirn |
FIA GT Series |
Porsche 911 GT3 R |
Audi R8 LMS ultra |
Ford GT GT3 |
- |
Super GT |
BMW Z4 GT3 |
Ferrari 458 Italia GT3 |
Nissan GT-R GT3 |
Porsche 911 GT3 R Hybrid/Toyota Prius |
S耐久 |
Mercedes-Benz SLS AMG GT3 C197/Mazda RX-8 SE3P |
- |
Toyota 86 | |
NASCAR |
- |
Ford Fusion |
- | |
WTCC |
- |
SEAT Leon WTCC |
- | |
BTCC |
Vauxhall Insignia VXR-R NGTC |
Volkswagen Golf Mk5 S2000 |
- | |
British GT Championship | McLaren MP4-12C GT3 |
- | ||
Super Race |
Kia New Pride 5DR/Chevrolet Cruze |
Chevrolet Aveo T300 |
- | |
Lamborghini Blancpain Super Trofeo Europe |
- |
Lamborghini Gallardo LP570-4 Super Trofeo Stradale |
- | |
Porsche Carrera Cup Japan |
Porsche 911 GT3 Cup Car |
- | ||
KSF |
Hyundai Genesis Coupe Kia Forte Koup Hyundai Veloster Turbo |
금일부로 Round 0가 끝났습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네요. ㅠㅠ
잠시 이번 편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사안이 있습니다. 바로 FIA GT Series나 British GT Championship에 참가하는 드라이버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 드라이버들은 단순히 저 2대회만 뛰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하나를 더 뜁니다. 바로 Blancpain Endurance Series인데, FIA GT Series, British GT Championship와 운영주체가 같습니다.
그래서 잠시 좀 올해 3개 대회에 같이 뛰는 팀이 있나 해서 보니, 거의 없더라고요. Blancpain Endurance Series와 FIA GT Series에 중복되는 팀 또는 British GT Championship와 Blancpain Endurance Series에 중복되는 팀은 있긴 한데, 세가지 대회를 다 뛰기란 어렵겠죠? 정비는 뭐...... orz
그래도 작가인 제가 약을 좀 빨고 한번 그렇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근데 만들고 보니 이글은 저렇게 되면 3개를 다 뛰는 꼴인데, 체력이 남아 날라나요? ㅠㅠ
어쨌든 이제, 라운드 1이 진행될 겁니다. 라운드 1은 프랑스에서 열리는 FIA GT Series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
- 원래 참가하는 드라이버들은 정장을 착용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진석은 깜짝 출전을 위한 카드였기 때문. [본문으로]
- 공식명칭 : Korea Speed Festival Forte Koup Challenge [본문으로]
- 클래스는 GT300 [본문으로]
- 클래스는 GT500 [본문으로]
- 위쪽이 ST-GT3, 아래가 ST-3 [본문으로]
- Genesis Coupe 20 Championship(Pro) [본문으로]
- Forte Koup Challenge(Amateur) [본문으로]
- Veloster Turbo Class(챔피언십과 챌린지 레이스 사이급) [본문으로]
- Porsche Carrera Cup Japan. 포르쉐의 원메이크 레이스로 911 GT3 Cup Car로 일본에서 여는 대회이다. [본문으로]
- 슈퍼 다이큐의 약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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