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우리나라 업계는 언제까지 이런 차보다 더욱 뛰어난 차들을 계속 컨셉트카로 남겨놓으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뭣들 하는 거냐!!!
특히 업계에 계신 모씨께서는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치게 경영자에게 한 소리를 하셔야 합니다!!(쿨럭)
과거 기아라면 이런 것 하나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더만, 이게 뭐냐고요!!
정확히 10년 전만해도 한국차는 정말 화끈했다. 소형차에도 2.0ℓ 엔진을 가뿐하게 얹었고 터보는 물론, 에어로 파츠도 양산 모델에 달려 나왔다. 한마디로 폭스바겐 골프 GTI에 버금가는 포켓로켓이 우리에게도 있었단 말이다
1992년 현대 스쿠프 터보가 나올 때만 해도, 2000년에는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에 버금가는 국산차들이 나올 줄로만 알았다. 97년 에디터의 첫차였던 스쿠프는 지금 생각해봐도 훌륭했다. 그 차는 터보가 무슨 버튼을 누르면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던 무지한 대중들에게 과급 튜닝이란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다. 92년 스쿠프에 올라갔다던 가레트 T2 터빈을 구하려 전국 폐차장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인터쿨러를 달아 본다고 스테인리스 배관 짜는 공장을 한달 내내 찾아 다니기도 했다. 좀처럼 꺼질 줄 모르는 'Check Engine' 경고등을 두고, '이 차는 원래 그래요'라고 넘어가던 정비사와 싸운 기억도 난다. 그래도 미래의 강인해질 한국차를 생각하며 꾹꾹 참았다. 더 재미있는 차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때는 벌써 2006년. 하지만 진보된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지금 모델들을 가만히 보면 10년 전 향수만 떠오른다. 물론 성능이나 디자인, 품질 등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진 게 사실이다. 다만 애타게 바라던 스포츠 컨셉트는 언제나 제자리만 걸을 뿐, 매일 공장에서 찍어대는 평범한 자동차만 득실대는 세상이 되었다.
91년 등장한 대우 르망 이름셔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그만한 스포츠 컨셉트를 시도한 국산차가 있는지 묻고싶다. 안타깝게도 이후 15년 동안의 양산모델을 전부 꺼내본들 그에 대한 정답은 찾을 길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스쿠프 터보나 현대 엑센트 TGR 정도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름셔의 시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어쨌든 불행한 이야기지만 이들 이후로는 정말 한 대도 없다.
물론 날 때부터 스포츠카라고 외쳐대는 세단 베이스의 국산 스포티 쿠페들은 언급하지 않겠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시도했던 즐거움이다. 이름셔 같은, 폭스바겐 골프 GTI 같은 야누스들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몇 달 전 현대 엑센트 SR 컨셉트(신형 베르나 3도어 컨셉트)가 인터넷에 떴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2.0ℓ 터보 엔진을 얹은 당돌한 핫 해치. 하지만 네티즌들의 댓글을 냉정했다.
'어차피, 저렇게 나오지 않음.' '기대하지 마세요. 절대로 저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물론 컨셉트카와 양산 모델 사이의 간극은 큰 게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국산차 메이커들이 스포츠 컨셉트를 대중적인 모델에 선보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참 재미있는 차라고 추켜세우는 폭스바겐 골프 GTI도 미운 오리새끼 이상으로 멸시당했던 탄생 일화를 지니고 있다. 만일 폭스바겐이 스포츠 골프에 관한 컨셉트를 끝까지 거부했다면 양의 탈을 쓴 늑대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일이다.
물론 국산차 메이커들에게도 이 같은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10년 아니, 15년 전만 해도 재미있는 국산차가 훨씬 많았다. 대표작으로 꼽은 대우 르망 이름셔를 살펴보자. 이 차는 당시 대우자동차로서는 모험이었다. 대중성에 집착하자면 골프 GTI를 제안 받았던 폭스바겐보다 더 절박하지 않았을까. 스포츠카 시장이 불 붙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르망의 판매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기념해 한 번쯤 만들어볼 입장도 아니었다. 사정이 어려웠기에 과감한 시도는 더 빛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우는 91년 9월, '르망 임팩트'와 같은 엔진을 쓰면서 에어로 파츠 등을 독일 이름셔에서 들여와 스포츠 모델을 만들었다. 양산 모델이 에어로 파츠를 달고 나온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앞선 시도였다. 이름셔는 3도어 해치백과 4도어 세단으로 라인업을 꾸몄다. 차 값은 놀랍게도 당시 프린스와 맞먹는 1천만 원대.
르망 중 유일한 2.0ℓ TBI 엔진으로 최고출력 120마력/5천500rpm, 최대토크 19.0kgm/3천400rpm을 냈다. 최고시속 185km는 당시 소형차 중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솜씨. 물론 92년 최고시속 205km를 자랑했던 스쿠프 터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기에 에어로 파츠와 레카로제 버킷 시트를 운전석은 물론 조수석에까지 달고 나왔으니…, 지금 같으면 아마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름셔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원래 다수를 위한 차가 아니었지만 소수마저도 이 차를 외면했다. 실패의 원인을 두고 너무 앞선 시도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작은 차가 1천 만원을 넘는 사실도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었다. 이후 대우자동차가 GM대우로 넘어갈 때까지 특별한 시도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름셔가 사라지고 97년 등장한 현대 엑센트 TGR도 정말 재미있는 차였다. 지금도 튜닝 입문용으로 없어서 못 구하는 귀하신 몸이다. 3도어 프로 엑센트를 베이스로 만든 TGR은 스쿠프가 사라진 이후, 작고 잘 달리는 모델에 열광하는 오너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TGR 전용 앞 범퍼를 달고, 사이드 에어 스커트를 달아 순정 엑센트보다 강한 인상을 지녔다. 1.5ℓ DOHC 엔진으로 최고출력 105마력/5천800rpm, 최대토크 14.3kgm/4천rpm을 냈다. 사실 뉴 엑센트 유로나 세단에도 같은 엔진이 쓰였지만, TGR에는 가속형 트랜스미션을 달아 이들과 차별화했다. 막연하게 TGR이라는 이름에 열광할 지도 모르겠으나, 약해빠진 순정 엑센트에 카리스마를 부여한 점은 지금 생각해도 현대가 만든 몇 없는 작품 중 하나다.
이름셔와 엑센트 TGR. 이 둘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은 거의 비슷하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것. 그럼 지금은 어떤가? 우리가 아무리 원한들, 재미있는 차를 만들려는 메이커의 시도는 해가 갈수록 이익논리에 빠져 뒷걸음치고 있다. 현대 클릭 3도어나 GM대우 칼로스 3도어가 수출길에만 오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지나간 한국형 스페셜리스트를 꺼내보려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옛 추억을 떠올리자는 건 아니다.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도 소수를 위한 즐거운 차를 만들려는 시도, 그 열정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려보려는 것이다. 이 짧은 기사로 메이커들을 움직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최소한 <톱기어> 독자들만이라도 '우리에게도 GTI같은 모델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