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본인이 표시한 화살표는 본인의 의견입니다.
프로덕트 매니징 혹은 테크니컬 트레이닝에 종사하는 수입차 메이커의 15인에게 '최고의 자동차 기술'을 물었다. 기대해도 좋지만 명심해둘 것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최고의 기술'은 생각보다 아주 소담하고 소박하다
TG 바쁜 와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준 점,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국내에 팔고 있는, 혹은 팔릴 차들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사람들이니, 어떤 게 최고인지 무엇이 부족한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질문은 간단하게 3가지. 첫번째 질문부터 해결하고 가자. 자동차 역사를 통틀어서 최고라고 꼽을 만한 기술을 얘기해달라.
원론적으로 접근하자. 자동차 그 자체가 최고의 기술 아니겠는가. 사실, 어느 한 가지 기술만을 들어 '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기술이든 또 다른 기술과 더불어 발전하는 것이지 않나. 자동차라는 물건이 없다면 이 토론부터가 무의미한 일이다. (강순구 과장. 푸조 테크니컬 매니저)
→ 오옷! 이거 까딱 잘못하면 토론 무산될 뻔 했습니다.
비슷한 입장이지만, 조금 범위를 좁혀본다면 포드의 일괄생산 시스템을 들 수 있겠다. 진정한 자동차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박강수 대리, 혼다 프로덕트 매니저)
→ 으흠. 그렇죠.
공감한다.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일컬어지는 양산화 시스템이야말로 최고의 자동차 기술로 꼽을 만하다. 포드 모델 T를 통해 생산라인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고 이 개념이 없었다면 폭스바겐도, 비틀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거다. 초창기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는 양산화를 통해 대중에 다가서게 됐다. 운송수단의 패러다임이 변화했고 이를 통해 산업도, 세상도 급변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윤석 차장, 폭스바겐 프로덕트 매니저)
→ 물론 그것이 인간 소외화 현상을 가져 왔지만 말입니다.
내연기관의 등장은 왜 거론하지 않는 건가. 이 세상에 엔진 없이 굴러가는 차는 없다. 최근 트렌드에 비춰본다면, 연료 직분사 기술을 꼽겠다. 자원이 한정되어있는 지금 현실에 비추어볼 때 열효율을 높일 수 있는 직분사 기술이야말로 현재 엔진기술의 정점이다. 하이브리드나 퓨얼 셀은 아직 너무 먼 얘기고, 가변 밸브 기구 등은 부수적인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최원석 과장, 아우디 테크니컬 트레이너)
→ 솔직히 차도 내연기관의 등장으로 발전의 가속도가 붙었죠?
직분사 기술에 한 표. 이를 통해 엔진을 더욱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고 퍼포먼스와 연소효율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고재용 과장, 볼보 프로덕트 매니저)
→ 그 덕에 모 업체만 살판 났죠?
하이브리드가 먼 미래의 얘기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하이브리드는 연비와 성능이라는 두 가지 상충된 분야를 조화롭게 충족시키는 최적의 기술이다. 수소연료나 연료전지차가 상용화되기 전까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김용태 대리, 렉서스 테크니컬 매니저)
나 역시, 하이브리드를 최고의 기술로 꼽고 싶다. 이 복잡하고 값비싼 시스템을 양산화했다는 것 자체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화석연료를 쓰는 지금 세대에서 수소차, 퓨얼 셀 등의 새 시대로 넘어가기 전까지 하이브리드 구동계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조기호 부장, GM오토월드 테크니컬 매니저)
TG 하지만,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너무 비싼 장비인데다 최첨단의 기술이다. 과도기적 수단으로만 활용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 렉서스와 GM오토월드의 테크니컬 매니저인 김용태 대리님(렉서스)과 조기호 부장님(GMAuto)에게 TG에서 질문한 것. 하지만, 김용태 대리님에게 혼 났다.
시장 흐름을 눈여겨봐야 한다. 일부 유럽 메이커는 디젤을 그 대안으로 내세우려 하지만, 전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도 하이브리드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개발·생산단가가 높다는 점은 인정하나, 하이브리드 방식을 쓰는 메이커가 늘어날수록 값은 내려갈 것이다. 수소·연료전지 기술과 하이브리드의 병용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김용태 대리, 렉서스 테크니컬 매니저)
자, 자. 하이브리드의 보편화 가능성을 논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 '최고의 자동차 기술'이라는 게 양산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F1 V10 엔진을 꼽고 싶다. F1 머신은 자연흡기 방식으로도 900마력 이상의 출력을 이끌어낸다. 과급기, 가변 밸브 타이밍과 바이 와이어 기술 등 현대 자동차 기술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VW-아우디의 DSG나 BMW SMG 같은 뛰어난 성능의 반자동 기어박스도 F1 레이스를 거쳐 양산차에 도입된 케이스다. (한형기 차장, 랜드로버 기술지원 매니저)
→ 여기서 랜드로버의 담당자님께서 하이브리드 이야기를 종료 시키신다.
자동차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온 기술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비단 지프에 몸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4WD 구동계의 등장을 계기로 자동차의 장르는 한층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1800년대부터 차가 만들어졌지만 형태 그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4WD가 선보이면서부터 SUV도 만들어지고 크로스오버도 탄생했다. 자동차 스타일링의 변화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다양한 장르의 등장으로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도 한층 다채로워질 수 있었다. (이동희 과장, 다임러크라이슬러 테크니컬 트레이너)
→ DCX.... 너네는 거의 4WD 모델이 인기를 끌잖아! 물론 국내에 들어오는 것도 그쪽 계열이지만.
브랜드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재규어 XJ에 쓰인 100% 알루미늄 모노코크 보디야말로 가장 획기적인 자동차 기술이 아닐까? XJ는 리벳 본딩 방식의 알루미늄 모노코크 섀시를 쓰면서 무게는 40% 정도 줄이고, 60% 가량의 성능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박성현 차장, 재규어 프로덕트 매니저)
자동차가 무엇을 위한 장비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차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사람을 안전하게 실어 나르는 도구다. 숱한 안전대책이 없었다면 고성능 자동차가 등장할 수도 없었을 거다. 안전장비라는 게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 중 꼭 하나를 꼽으라면 추돌·충돌 사고 때 차체에 전해지는 충격을 흡수해 승객을 보호해주는 크럼플 존을 들겠다. 벤츠가 1940년대에 고안해낸 이 개념은 이미 세상 모든 자동차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오한승 대리, 메르세데스 벤츠 테크니컬 트레이너)
→ 오옷! 자존심의 발로가 이것입니까? MBK... 알만 합니다.
현문 우답(賢問 愚答)이 될는지 모르겠는데, 역사상 최고의 기술을 꼭 하나만 꼽으라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수없이 많은 획기적인 기술이 어떻게 통합되고 관리되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차는 기하급수적인 데이터의 집합체다. 지금 자동차 기술의 관건은 엔진, 트랜스미션, 스티어링 휠 뿐만 아니라 외기 온도와 실내 온도, 수십 가지의 편의장비 등이 쏟아내는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며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광케이블을 이용한 CAN-BUS 시스템과 같은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동차의 첨단화를 이끄는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장성택 부장, BMW 테크니컬 매니저)
→ 이게 현문 우답(賢問 愚答)이라고요? 장성택 부장님, 농담 하시는 거죠?
장 부장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 CAN-BUS 시스템은 1980년대에 개발되어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기술이 등장하면서 전자제어장비도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운전자만이 아니라 차를 수리하는 입장에서도 CAN-BUS 시스템이 있으면 문제점을 찾아 대처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양정수 과장, 인피니티 테크니컬 트레이너)
→ 실질상으로 장 부장님의 의견에 동의표를 던진쪽은 한국 닛산! 장 부장님, 책임 지세욧!
TG 인내심을 발휘해 최대한 객관적이고자 한 모습, 높이 평가하겠다. 이제 활개를 쳐도 좋다. 당신들이 몸담은 메이커의 최고 자동차 기술을 공개해달라. 특정 메커니즘만이 아니다.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기업문화나 역사적인 유산, 그 어떤 것이든 좋다.
→ 화.... 활개를 치다뇨?
벤츠하면 역시 안전 아닌가. 벤츠의 역사는 '세이프티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선 크럼플 존은 물론이고 3점식 이전의 랩 벨트와 숄더 벨트, 최신 프리세이프 시스템과 SBC 브레이크 등이 벤츠의 이념을 대신한다. 바이 와이어 방식의 SBC 브레이크 시스템은 엔진이 꺼지더라도 한결 같은 제동력을 만들어내고, 프리세이프 시스템은 사람보다도 먼저 반응해서 사고를 미연에 막아준다. (오한승 대리, 메르세데스 벤츠 테크니컬 트레이너)
→ 오옷!! 자존심의 발로입니까? 메르세데스 벤츠?
TG '절대 권위의 럭셔리 브랜드' 벤츠치고는 너무 소박하지 않은가? 안전말고도 내세울 기술이 훨씬 많을 텐데….
내가 BMW 담당이라면 엔진이나 퍼포먼스를 먼저 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벤츠하면 안전이다. 안전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벤츠와 관련된 세이프티 얘기를 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판이다. (오한승 대리, 메르세데스 벤츠 테크니컬 트레이너)
→ 이런 말을 했지만, BMW쪽의 의견은 영 딴판이었다. 예측 틀리셨군요. 오 대리님. 후후
BMW 직원이다. 그러나 엔진, 퍼포먼스만을 얘기하고 싶진 않다. 나 또한 안전이 우선이라고 본다. 엔진, 서스펜션, 섀시 등도 한편으로는 안전과 직접 결부된 것들이다. 에어 서스펜션이나 서스펜션 제어장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에어 서스펜션의 1차 목표는 차의 무게중심을 골고루 맞춰주는 데 있다. 승차감은 부가적인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 유압 모터로 스태빌라이저를 비틀어 롤링을 줄여주는 액티브 보디 롤 시스템(ASR)도 궁극적으로는 차의 흔들림을 막아 안정된 코너링을 돕는 안전장비의 일종이다. (장성택 부장, BMW 테크니컬 매니저)
→ 오한승 대리님 겨냥용? 오 대리님께서 장 부장님께 참패하신 것으로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으하하하!
아까 4WD를 최고의 자동차 기술로 꼽은 분이 있었는데, 그 분야에서 랜드로버는 유럽을 선도해왔다. 4WD에 에어 서스펜션을 처음 쓴 브랜드도 랜드로버다. 최근의 얘기를 하자면 신형 디스커버리와 레인지 로버 스포트에 쓰인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을 들겠다. 전자장비 의존도가 지나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그 기능을 지님으로써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영국의 골수 마니아가 아닌 이상 전자장비를 더한 랜드로버가 거북스러울 일은 없을 것이다. 터레인 리스폰스는 랜드로버의 탄탄한 바탕에 조미료를 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형기 차장, 랜드로버 기술지원 매니저)
랜드로버의 라이벌로서 한 마디 하겠다. 그랜드 체로키에 쓰인 콰드라 드라이브Ⅱ야말로 진정한 최강의 오프로드 시스템이다. 이 기술은 다른 메이커의 4WD와 달리 로 모드에서도 전자식 TCS가 개입하지 않는다. TCS가 간섭하면 브레이크 계통에 과열이 오기 쉽다. 브레이크 제어가 들어가면 또한 험로를 탈출할 트랙션이 상쇄되기 십상이다. 콰드라 드라이브Ⅱ는 이런 문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또한 ELDS라는 디퍼렌셜 록으로 바퀴 하나에 100%의 구동력을 전달할 수 있다. 이때 역시 브레이크 제어는 들어가지 않는다. 지프는 가장 간단한 원리로 최적의 오프로드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동희 과장, 다임러크라이슬러 테크니컬 트레이너)
→ DCX와 랜드로버의 라이벌전? 두 회사 모두 자존심이 심하군요. 으하하하!
4WD 시스템이라면 혼다의 SH-AWD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혼다에는 IMA 하이브리드 시스템, VTEC 엔진처럼 자랑할 기술이 너무 많다. 그보다는 이 메이커를 지탱하는 힘인 '꿈'을 얘기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은 한다'는 것이 혼다의 기업 이념이다. 엔지니어 입장에서 이만한 업무환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혼다는 관료적인 조직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서로간에 직급도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실행에 옮길 수 있게끔 북돋아주는 문화. 그것이 최고의 기술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박강수 대리, 혼다 프로덕트 매니저)
→ 무섭다. 무서워. 박 대리님, 자부심 하나만큼은 세시군요.
닛산의 AWD 시스템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인피니티 FX35/45에 쓰인 AWD는 보통 때 구동력의 100%를 뒷바퀴로 보내 다이내믹한 주행을 돕고, 주행상황에 맞춰 앞뒤 50:50의 비율로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다. 미국 <워즈> 선정 '10 베스트 엔진'을 11년 연속 수상한 VQ 엔진의 우수성은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좋을 듯 싶다. (양정수 과장, 인피니티 테크니컬 트레이너)
→ 역시 닛산. VQ 엔진을 빼 먹지 않다니. 그런데, FX35/45는 이번달에 들어오는데요? 그걸 지금 이야기 하시는 것은 약간 심하신 듯 합니다.
지금의 도요타에게 있어 최고의 기술이라면 단연 하이브리드를 꼽을 수 있다. 앞서 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효율과 고성능의 양립, 그게 핵심이다. RX400h에 쓰인 시너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RX330을 능가하는 가속성능은 물론이고 2배에 이르는 연비를 기록한다. 0→시속 100km 가속 7.6초의 성능을 내는 3천cc급 SUV의 연비가 14.8km/ℓ 정도라면 말 다한 것 아닌가. (김용태 대리, 렉서스 테크니컬 매니저)
→ 하이브리드 엔진은 역시 도요타가 선두에 서 있죠. 으흠.......
기술력하면 역시 아우디다. 'Vorsprung durch Technik(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아우디의 슬로건이 이를 대변한다. 승용차 최초의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ASF)와 고유의 콰트로 시스템, FSI(휘발유)와 TDI(디젤) 같은 직분사 엔진이 아우디의 대표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최원석 과장, 아우디 테크니컬 트레이너)
→ 역시.. 기술력으로 먹는 아우디였습니다.(-_-;;;)
반드시 특정 기술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인가 보다. 그렇다면 폭스바겐의 가장 큰 힘으로 프로덕션 매니지먼트를 꼽을 수 있다. 모듈화와 플랫폼 공유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폭스바겐의 TDI 엔진은 종류가 무지하게 많지만 모듈화 된 엔진끼리 묶으면 두어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한 가지 소스로 여러 유닛, 다양한 차종을 만들어냄으로써 폭스바겐은 유럽의 매스 프로덕트 메이커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TDI를 처음 개발한 것은 아우디지만 이를 전 차종에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은 폭스바겐의 몫이었다. 폭스바겐은 결코 현실적인 부분을 잊지 않는다. (나윤석 차장, 폭스바겐 프로덕트 매니저)
→ 그러고 보니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같은 그룹 산하에 있죠?
대중성으로만 보면 푸조를 따라올 메이커가 없다. 특히 디젤 엔진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임을 자부할 수 있다. 푸조의 직분사 디젤 엔진의 퍼포먼스가 경쟁사에 뒤질 수는 있어도 일상적인 쓰임새로 보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첨단 미립자 분진 필터를 디젤 라인업 전체에 적용한 것도 푸조가 유일하다. (강순구 과장, 푸조 테크니컬 매니저)
→ 프렌치 라이온의 공격이로군요.
엔진 자랑을 하자면 크라이슬러도 빠질 수 없다. V8 헤미 엔진에 쓰인 MDS(Multi Displacement System)를 기억해달라. MDS는 가속과 정속주행 상황을 판단해 실린더 일부를 차단하는 기술이다. V8 대배기량 엔진의 넉넉한 퍼포먼스를 유지하면서 연비는 물론 환경보호에도 일조할 수 있다. (이동희 과장, 크라이슬러 테크니컬 트레이너)
→ 어, 이 과장님. 이건 반칙이에요! 이렇게 나오는 것이 어디 있어요?(현재까지 2회나 말하셨음.)
TG 실린더 제어 시스템이라면 과거 벤츠에서도 선보인 기술 아닌가?
맞다. 그러나 크라이슬러의 MDS는 V8 혹은 V12 엔진의 실린더 절반을 아예 죽여버리는 과거 독일 메이커의 기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진보된 시스템이다. 경우에 따라 절반을 작동시키지 않거나 2개 혹은 3개의 실린더만을 멈출 수 있다. 더구나 실린더를 차단하는 타이밍은 몇 밀리 초에 불과해 사람이 인지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일부 프레스티지 세단만을 위한 기술도 아니다. 미국 내에서 MDS를 쓴 헤미 모델은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동희 과장, 크라이슬러 테크니컬 트레이너)
→ 오호! 그런 기술이 있었다니!
세계 최고라고까지 강조하진 않겠다. 그러나 볼보의 저압 터보 기술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볼보 엔진은 경쟁사에 비해 배기량이 작지만 능수능란한 터보 매니지먼트로 결코 뒤지지 않는 퍼포먼스를 만들어낸다. 저압 터보라면 사브를 먼저 떠올리는 모양인데, 볼보의 터보 기술이 거기에 뒤진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굳이 한 가지를 더 들라면 안전에 대해 절대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말하겠다. 볼보 자산의 70~80%가 안전이다. (고재용 과장, 볼보 프로덕트 매니저)
→ 이 동네도 안전에서는 무시 못할 회사죠.
캐딜락과 사브를 대표해 한 가지씩 얘기하겠다. 양산차에 처음 적용된 캐딜락의 나이트 비전 시스템, 사브의 경추보호장치(SAHR)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GM은 '최초의 기술'을 가장 많이 내놓은 메이커이다. 시대를 앞서보고 자동차 기술을 선도해온 선구자적 자세가 최고라면 최고일 것이다. (조기호 부장, GM오토월드 테크니컬 매니저)
→ 세계 최대의 자동차 업체 답게, 자존심도 강합니다. 그려.
역사적인 유산과 품위를 얘기한다면 재규어가 최고 아니겠는가. 비록 최근의 재규어가 젊고 발랄한 이미지를 접목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는 해도 영국 왕실을 대표해온 전통적인 이미지와 라이온스 라인으로 일컬어지는 고유의 유려한 디자인은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재규어의 문화적 자산이다. (박성현 차장, 재규어 프로덕트 매니저)
→ 인정 하기 싫어도 인정을 해야 겠군요. 으흠.
TG 간단한 질문에 성심과 성의를 다해 답변해주어 감사하다. 분위기를 환기하는 의미에서 다소 엉뚱한 질문으로 이번 대담을 마무리하겠다. 웃어넘기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주길 바란다. 부럽고 탐이 나다 못해 훔쳐오고 싶을 지경인 다른 브랜드의 자동차 기술을 솔직하게 털어놓아달라. 이 질문은, 솔직하게 말해 당신들의 애사심과 자동차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시험하는 물음일지 모르겠다.
→ 드디어 시작됐다. (일명)BMW 뜯어먹기! 과연 몇 곳에서 BMW를 노릴지 기대나 해 봅시다.
재규어와 떼어놓고 본다면, BMW의 i-드라이브에 관심이 많다. 기능적인 면에서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획기적이다. 수없이 많은 편의장비의 스위치를 통합해 인테리어를 심플하게 꾸민다는 측면에서는 재규어의 기함인 XJ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 (박성현 차장, 재규어 프로덕트 매니저)
→ 으흠. i-드라이브라. 역시 BMW가 그것을 도입하면서 말이 많았지만 노리는 회사가 있을 줄은!
어떤 기술이 우리 브랜드 제품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단연 알루미늄 보디가 가장 탐난다. 크라이슬러는 벤츠와 합병한 이후 기술적인 부분에서 결코 굶주려본 적이 없다. 서로의 장기가 오가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루미늄 기술이라면 다르다. 크라이슬러가 유럽의 서브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해야 한다면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알루미늄 기술은 그런 면에서 대단한 이점이 될 수 있다. 차의 성능 향상은 부차적인 문제다. ASF를 쓴 아우디 A8, 알루미늄 모노코크 섀시의 재규어 XJ가 대표적인 경우다. 대상을 지프로 바꾸어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의 크라이슬러 디자인도 상승세에 있고, 전자제어기술은 벤츠를 통해 충분히 익히고 있다. 더 이상 아쉽거나 굳이 탐낼 만한 기술은 없다. (이동희 과장, 크라이슬러 테크니컬 트레이너)
→ 으흠? 알루미늄 보디가 탐난다면서 끝의 말은 뭡니까? 의심스럽네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굉장히 많다. 그 중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FR 구동계를 꼽겠다. 볼보가 FR 방식을 도입한다면 지금보다 한층 역동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볼보의 앞바퀴굴림 방식이나 AWD 시스템은 안정적인 반면 다이내믹함은 부족하다. 그렇다면 벤츠나 BMW의 FR 구동계 정도가 아닐까? (고재용 과장, 볼보 프로덕트 매니저)
→ 이봐요. 이건 벤츠도 타켓입니까? 그런 겁니까?
TG 하지만 볼보에는 P2X라는 매우 훌륭한 플랫폼이 있다. P2X는 더군다나 포드 500과 파이브헌드레드, 머큐리 몬테고 등에도 도입된, 포드가 인정한 글로벌 아키텍처 아닌가.
→ 그러게나 말이다.
물론 그렇다. P2X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플랫폼이다. 그러나 미국 브랜드와 플랫폼을 공유하다 보니 유럽차만의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볼보는 지금의 색깔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고재용 과장, 볼보 프로덕트 매니저)
→ 의외의 대답입니다. 아직은 더 갖고 싶은 기술이 있다니.
폭스바겐이 가지고 있지 않은 기술보다는 모델을 떠올려본다. 폭스바겐은 포르쉐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메이커임에도 911의 RR 섀시처럼 궁극적인 밸런스 감각을 지닌 모델을 갖고 있지 않다. 유저 패밀리카의 성격 때문이었는지 아직까지 그런 모델을 가져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조만간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폭스바겐은 지금,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나윤석 차장, 폭스바겐 프로덕트 매니저)
→ 오호! 그런 강력하신 발언을! 그러고 보니 페르난디트 포르쉐 박사께서 처음 오리지널 비틀을 설계하셨죠.(^^)
순수하게 드라이빙 플레저(driving pleasure)를 사랑하는 자동차 애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BMW의 직렬 6기통은 정말 탐나는 물건이다. V형 엔진과 직렬 구조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BMW 6기통 유닛은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의 퍼포먼스를 솔직하게 뱉어낸다. 그걸 벤츠에 도입한다면? 글쎄…. 신형 V6 3.5ℓ 엔진이 들어선 E350까지는 필요 없겠고, 굳이 쓴다면 C클래스 정도가 좋지 않겠나. 젊은 사람들을 위한 차인 만큼 그 정도의 자극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오한승 대리, 메르세데스 벤츠 테크니컬 트레이너)
→ 아니, 그럼 왜 벤츠는 엔진을 L6에서 V6으로 바꾼 겁니까? 이해가 안 가는군요.
개인적으로는 BMW의 엔진 기술력이 부럽다. 특히 최신 M5와 M6에 실린 V10 5.0ℓ 엔진과 밸브 트로닉 기술 등은 정말 놀랍다. 과급기 없이 507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는 엔진이라니. 도요타의 엔진 전략은, 하이브리드를 빼고는 아우디처럼 직분사 방식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신형 GS300에 쓰인 V6 엔진은 물론이고 9월 선보일 2세대 IS250도 최신 직분사 기술을 도입하게 된다. 아마도, 소문이 무성한 도요타의 수퍼카도 직분사 기술을 쓴 V10 엔진을 쓰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김용태 대리, 렉서스 테크니컬 매니저)
→ 그것도 모터스포츠의 공이지만, 도요타의 행보는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죠.
새로운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BMW의 그룹정신. 보수적인 관점에서 탈피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서 시장을 이끄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다. 푸조는 패밀리카 중심이기 때문에 BMW 같은 파격적인 도전이 쉽지 않다. (강순구 과장, 푸조 테크니컬 매니저)
→ 그 덕에 사실 과거 팬들에게 욕 많이 먹었지만, 역시 BMW는 BMW입니다.
정비 계통에서 뛰는 입장이라 그런지 DIS라고 부르는 BMW의 디지털 진단기가 탐이 난다. 1억 원 정도나 되는 고가의 장비지만 모든 매니지먼트 툴이 달려있어 고장을 찾아내어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대단히 유리하다. 차를 수리하는 사람들에게 이 장비만큼 도움이 되는 시스템은 아직까지 없었던 것 같다. (양정수 과장, 인피니티 테크니컬 트레이너)
→ 아니, 그게 부럽다뇨. 닛산에는 이런 것 없나요?
BMW를 높게 평가해주어 진심으로 고맙다. 타 브랜드의 시스템을 많이는 알고 있지만 속속들이는 모른다. 솔직한 얘기로 BMW 기술 중에서 도둑 당할까 염려되는 기술이 있다면 모를까, 딱히 부러운 다른 메이커의 기술은 없다. 굳이 하나를 들어야 한다면 모델 라인업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벤츠의 바리오 루프 같은 전동식 하드톱 시스템이 있겠다. 소프트톱의 단점인 방열, 방음, 쾌적성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수 있는 일종의 수륙양용차 같은 기술이다. (장성택 부장, BMW 테크니컬 매니저)
→ 의외의 대답이다! 엔진 잘 만들고, 동력 성능 최강인 회사에서 어떻게 이런 대답이 나오는가? 이건 푸조 겨냥용?
TG BMW처럼 충분한 기술력을 갖춘 메이커가 전동식 하드톱을 쓰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생산성의 문제 아니겠는가. 전동 하드톱은 세련되고 쓰임새가 많은 기술이긴 해도 개발 및 생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장성택 부장, BMW 테크니컬 매니저)
→ 아니, 그럼 푸조는 뭡니까? 이걸 만들고 있는데.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질문이다. 부러워서 훔쳐오고 싶은 타 브랜드의 자동차 기술이라니. 20세기였다면 모를까, 지금의 아우디에게는 딱히 아쉬운 기술이 없다. A4, A6 등에 쓰인 4링크 프런트 서스펜션은 걸작 중의 걸작으로 꼽히고 안전성도 유럽 NCAP와 미국 NHTSA 충돌테스트에서 최고 점수를 받을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르망 3연패를 주도한 FSI 기술은 이루 말할 것도 없겠다. 공격적인 성향에서 BMW에 뒤떨어지지 않느냐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아우디 그룹은 람보르기니를 거느리고 있다. 아우디는 람보르기니의 모든 모델을 직접 개발하고 생산한다. 대중적인 부분, 어그레시브한 측면 어디에서도 타 브랜드에 뒤지는 구석이 없다. 그래서, 단호하게 없다고 말하겠다. (최원석 과장, 아우디 테크니컬 트레이너)
→ 오옷! 웬일인가? 없다고 하다니!
VW-아우디의 다양한 엔진 라인업은 부러워 미칠 지경이다. 흔히 엔진 종류는 벤츠나 BMW가 가장 많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과 다르다. VW-아우디의 엔진 기술이야말로 최고로 꼽을 만하다. 투아렉에 실린 V10 5.0ℓ TDI 엔진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VW측 관계자 얘기를 들어보니 개발 당시 토크가 100kg·m가 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엔진이다. (한형기 차장, 랜드로버 기술지원 매니저)
→ TDI가 무섭죠. 그나저나 토크 100kg·m이라니......
TG 포드와 PSA가 함께 개발해 양쪽 그룹의 계열 브랜드가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V6 2.7ℓ 커먼레일 디젤 엔진에 대한 칭찬도 자자하더라.
→ 얘가 아마 레인지로버를 제외한 전 차량에 쓰이죠?
아, 물론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재규어의 것을 개선한 V8 4.4ℓ 엔진도 강한 퍼포먼스와 뛰어난 품질을 지닌 매우 우수한 유닛이다. 재규어는 1950년대에는 C타입, D타입 레이싱카로 르망을 휘어잡았고 한때는 700마력의 V12 엔진을 만들 만큼 앞선 기술력을 자랑했다. 지금은 거대 메이커와의 돈 싸움에 밀리고 있지만, 재규어는 분명 저력 있는 브랜드다. 과거의 활기 넘치는 모습이 하루 빨리 되살아 나길 기대해본다. (한형기 차장, 랜드로버 기술지원 매니저)
→ 열심히 힘을 내시길!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딱히 탐낼 만한 것이 없다. 혼다가 잘나서가 아니라 메이커에는 저마다에 걸맞은 기술이 있기 마련이다. 혼다는 다른 업체의 기술을 사오기보다 자체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굉장히 뛰어난 기술이 있더라도 그대로 가져오는 일이 없다. 필요하다면 자체적으로 개발해버린다. 상품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도 다른 브랜드의 탐나는 기술을 가져온다 해도 그게 우리 차에 맞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눈길을 돌릴 이유가 없다. 공격적인 태도로 보이겠지만 프로덕트 매니저로서는 가장 솔직하게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이다. (박강수 대리, 혼다 프로덕트 매니저)
→ 테크니컬 매니저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차의 첨단기술은 대동소이하다. ABS 시스템을 어떻게 세팅할 것인지, 무릎보호 에어백을 도입하고말고 등은 시장 수요와 상황에 따른 것이다. 메이커의 신기술이라는 것들이 사실은 보쉬나 델파이 같은 공급업체의 기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건은 좋은 기술을 자사 모델에 얼마나 탄력적으로 적용하는가의 문제다. 누군들 최고의 기술만을 쓰고 싶지 않겠는가. 어찌 보면 돈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조기호 부장, GM오토월드 테크니컬 매니저)
→ 결과적으로 인정합니다. 으흠. 그런데 과거 델파이가 어디 소속이었다가 지금의 독립 회사가 되었었죠?
TG 결국,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브랜드가 되려면 로또 복권 100만 번이라도 당첨되어야 한다는 말이군. 농담이다. 당신들의 의견을 듣는 동안 '최고의 기술'이란 최첨단을 내세우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까지의 과정임을 깨달았다. 이런 생각이 '제로백 몇 초' '최고출력과 최고시속 얼마'에 집착하는 일부 자동차 애호가들의 그릇된 사고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솔한 답변, 거듭거듭 감사한다.
기사&사진 제공 : 탑기어 2005년 9월호(http://www.topgearkore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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