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전문 히스토리 채널에서 제작한 얼티메이트 오토스(명차열전) 시리즈는 '자동차 매니아'라면 누구나 봤을 법한 명작 중의 하나이다. 물론 현대의 그랜드 밸류를 가지고 있는 BMW나 일본의 혼다나 도요타 자동차가 등장하진 않지만 자동차의 '역사'속으로 들어가 보기엔 충분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얼티메이트 오토스는 크게 4부로 나뉘는데 개인적으로 Volume 3인 독일의 '벤츠'와 '아우디'의 전신이 되는 'Silver Arrow' 전설을 관심있게 보게 되었는데, 과연 '독일의 명차'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감탄할 만한 스토리였다.
독일의 자동차는 '히틀러'가 빠질 수가 없다. '폭스 바겐'이 독어로 Volks Wagen, 앞의 폭스는 국민을, 바겐은 웨건, 마차 즉, 국민자동차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며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게 만드는 정책을 펼치고, 그 이용을 위한 '아우토반'을 건설해내며 독일 공업화의 주도적 역할을 이루어낸 통치자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전 세계의 평화를 생각해 볼 때, 참으로 악인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지만 그가 펼친 과업이 '조명'받는 것도 분명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이젠 독일 국민을 넘어서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명차로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관찰해 본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히틀러가 과연 똑똑했는가라고 생각되는가는 각자의 판단이겠지만 흔히 얘기하는 정치로 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려대고, 국민을 '비겁하게' 통합시키는 방법은 적절하게 굴려댔다. 흔히 얘기하는 3S, Sex, Screen, Sports 중에서 히틀러는 Sports, 그것도 '레이싱'이라는 스포츠에 국민적 관심사를 돌려놓고, 그 세계적인 레이싱에서 '독일'의 독주를 보여주며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이미지를 부숴버리고 국민에게 '독일인'의 의식을 심어주려 했던 것이다.
자동차 쪽 산업을 주력으로 잡고 있던 독일이 세계적 무대를 통해 독일 국민에게 스스로의 자긍심을 심고 국민적 통합을 이루게 만드는 방법으로 '레이싱', 즉 '포뮬러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시키기 위해, 참여하는 자동차 메이커에게 국가적 '보조'를 진행하기로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로 유명한 '다임러 벤츠'와 패전을 통해 경영난에 빠져 아우디, 데카벨, 포르히, 반데르 4개의 회사가 합병한 '아우토 유니언(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아우디가 되며, 아우디의 심볼인 동그라미 4개는 최초 합병된 4회사를 의미한다)'. 이렇게 두 개의 회사가 참여하게 되는 '경쟁' 구도는 전 세계 '포뮬러 그랑프리 대회'에 '독일 신드롬'을 낳게한다.
아우토 유니언은 병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뮬러'에 참가할 금전적 여유가 없었으나 그들에게는 천재적 '포르쉐' 박사가 디자인한 엔진이 존재했기에 히틀러를 잘 구슬러 '지원'을 받아 포뮬러에 참가할 수 있었다.
아우토 유니언의 첫 포뮬러용 차였던 Type A는 엔진을 차의 후미에 둔다는 '독창적' 발명을 하였는데 이는 주행중에 차의 중심이 후미에 집중됨으로 인해 뒤가 밀리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오토바이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차체의 무게 중심이 후미에 있는 데다가 그 엔진의 추진력이 전달되는 부분마저 후미에 있게되면 제동이나, 커브에서 무게 중심이 높은 부분이 '밀려나는' 슬립의 경험을 하게된다. 물론 차체에 익숙해지면 그런 무게중심의 이동도 쉽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지만 엄청난 마력을 자랑하는 '포뮬러'용 자동차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쨋든, 두 제작사가 결국 '포뮬러'에 출전하게 되면서 얻은 별명은 '실버 애로우'의 의미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아우토 유니언의 경우, 아예 차체에 '도색'을 하지 않아서 은색이었는데다가 다임러 벤츠의 경우엔 백색으로 도색을 한 경주용 차량이 750Kg 으로 경기차량 한계무게인 748Kg 보다 2Kg 이 많은 이유로 '도색'을 벗겨내어 중량테스트를 통과함으로 인해 두 대의 차량이 모두 '도색'없이 철제 색깔 그대로 '은색'을 유지한채 '최고 속도'로 1,2위를 다투게 됨으로 인하여 생겨난 별칭인 것이다.
그들이 '쏜살같이' 달려나가며 독일국민들과 세계의 '자동차 애호가'들을 열광시키며 둘의 '차량 개발 경쟁'에 대한 열의를 이끌어 낸것은 어쩌면 예측하지 않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런 '불같은' 경쟁도 사고를 부르니, 아우토반에서 열린 '최고속 경신대회'는 안전벨트도, 안전헬멧도, 그 어떤 보호장치도 없이 시속 4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의 결과를 보여주듯, 어떤 악천후 속에서도 부동의 1위를 지키던 국민적 영웅 드라이버 한 명의 죽음으로 '과잉경쟁'을 억제하게 되는 슬픈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역시 인간이란 '피'를 봐야 하는걸까?
과잉되었던 독일 국민의 축제도 한 국민적 영웅의 죽음과 2차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마감되었지만, 그들이 전세계에서 독보적인 자동차 설계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열의와 관심을 '자동차'로 모은 히틀러의 '혀'와 그 기회를 빌어 치열한 경쟁을 해나간 제작사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