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두 - 또다른 시작
2003년 한국 자동차 업계는 과거의 현대, 기아, 대우의 3강, 그리고 쌍용과 삼성의 2소 체제에서 IMF 전후로 크게 재편, 현재 ‘순수’ 국내 자동차 업체로 분류될 수 있는 것으로는 현대자동차 밖에 없다. 기아는 현대로, 대우는 미국의 GM휘하로, 삼성은 프랑스의 르노로 넘어갔으며 이제 쌍용도 중국 SAIC로 넘어가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이렇듯 3강2소 체제를 탄생시킨 창업주들의 원대한 꿈들 중 최소한 3개는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외국계 자동차 업체들에게 넘겨진 가운데 최근 GM그룹 내에서의 위치가 급부상하고 있는 대우에 대한 소식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1. GMDAT의 시동
사실 얼마 전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 가장 신경쓰이는 국내 경쟁사로 대우 자동차의 후신인GMDAT(GM Daewoo Automotive Technology의 약어로 이하 대우)를 뽑았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다. 사실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미국 자동차 하면 차체가 크고 기름을 많이 먹으며 세단의 경우 미국시장에서 일본업체들에게 밀리는 품질 수준으로 생각하겠지만 요즘의 GM은 많은 품질향상을 이루었으며 GM의 최고급 브랜드로 볼 수 있는 캐딜락의 경우 차량의 고성능화 - 캐딜락 CTS-V는 BMW의 M시리즈등과 비교되고 있다 - 와 뛰어난 디자인으로 미국 고급차 브랜드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는 가운데 GM은 그들이 오랫동안 원하던 대우를 손에 넣음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유럽시장등에서 중저가 브랜드에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되었음이 요즘 밝혀지고 있다.
1970년대부터 일본 업계들의 세단차량들에게 중저가시장을 내주고 SUV같은 고수익 차량개발에만 매달렸던 GM, 포드와 크라이슬러 등 빅3는 이제에 와서야 중저가 세단이야 말로 차량개발의 기반이며 자동차 판매에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다시 절감하고 있으며 트럭을 기반으로 한 SUV보다는 세단을 기반으로 한 크로스오버 차량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세단을 위시한 중저가 시장으로의 진입을 다시 꾀하고 있다.
사실 천하무적같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조차 갈수록 높아지는 본국의 노동비로 인하여 중저가 차량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한국 경쟁업체들에게 뺏기고 있었다. 하지만 토요타는 약 2년 전부터 유럽과 미국업체들의 선례를 피하기 위하여 사이언(Scion)이라는 중저가 브랜드를 따로 설립, 일본 내에서 팔리고 있던 1000cc대의 소형차들을 미국시장에 맞게 손을 보아 투입하여 연간 판매량 10만대의 계획을 차질없이 진행중이며 이는 한국 업체들을 비롯한 중국 등의 후발 업체들에게 중저가 시장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2. 치열해지는 중저가 시장
반면에 GM의 경우 렉서스와 사이언이라는 2개의 자회사를 보유한 토요타와 달리 미국의 쉐보레와 캐딜락, 스웨덴의 사브, 일본의 스즈키, 이스즈와 스바루 등 수많은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대우 인수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저가 시장에 맞게 저렴한 차량을 잘 만들어낼수 있는 구성원이 없었다. 그나마 스즈키가 일본에서 경차시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일본 외 시장에서 별로 적합하지 않으며, 스바루의 경우 4륜구동의 중가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굳어버린 상황이였다. 더욱이 한국 자동차 산업은 한참 성숙해져 가고 있는 단계에 있는지라 중저가 차량의 개발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 향후 최대의 시장이 된다는 중국과 비교해보자. 중국 자동차 시장의 경우 2020년경에는 미국의 연간 판매량인 1600만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자동차 시장은 외국 업체들이 참여하기에는 위기의 시장으로 볼 수 있다. 즉 시장에 참여하여 단기적인 이익을 최대한 내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들에게 위협적인 경쟁국이 되는 것에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허용되는 자동차 생산의 규제로서 국내 자본과 해외자본이 50:50의 합작회사(이하 JV)이여만 한다는 것과 해당 주정부가 항시 합작을 취소하고 그동안 이루어놓았던 성과물을 순식간에 압류해 갈 수 있다는 위험요소는 많은 외국계 회사들에게 그리 유쾌하지만 않은 것임은 분명하다. 더욱이 중국 자동차 부품업계의 수준은 아직까지는 초보적인 것이라 현지에서의 생산이란 외국에서 중요부품을 수입해서 해야만 한다는 제한적인 것이어서 중국 현지의 값싼 노동력이라는 메리트를 상쇄해버리는 약점이 있다.
그러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 중간에 인접한 한국의 자동차 업계는 이미 30년 이상의 역사와 세계시장에서 인정받은 상품성등으로 인해 매우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다. 중국처럼 강압적인 JV조항도 없고 GMDAT처럼 100% 투자도 가능하며 부품업체의 수준은 세계적이다. 인건비도 아직까지는 매력적이여서 GM에게 있어서 대우는 향후 전 세계 중저가 차량 시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게 될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3. 대우에게 놀란 GM임직원들
사실 GM임원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인수후 대우가 보여준 재빠른 부활은 매우 인상깊은 것이었다고 한다. GM이 $400 Million(한화 4800억원)을 투자하여 인수한 대우는 인수 당시인 2002년,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거의 정지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이후 대우는 쉐보레 브랜드로 미국시장에 약 40만대의 차량을 수출했고 대우에 주식을 보유한 스즈키 브랜드로도 팔고 있으며 동시에 GM에게 다음과 같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1. 여타의 GM계열사들보다 일을 빨리 처리한다. 일례로 대우측은 통상 1년이 걸리는 에어백 설계에 있어서 쉐보레 아베오(Aveo:국내에서는 칼로스) 용을 단 5개월만에 해냈다. 이는 매일 24시간동안 일을 한끝에 이루어낸 업적이었다.
2. 차체패널간의 간격이 매우 적다. GMDAT의 차량들은 평균 0.06인치의 간격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과 북미에서 생산된 GM차량들의 평균간격은 0.08인치에서 0.09인치이다. 패널간의 간격이 적으면 적을수록 상품성이 높아지거니와 공기유입이 적어서 방음효과도 있다.
3. 정보통신 분야를 잘 활용한다.
GM의 밥 루츠 부회장은 대우의 이러한 엔지니어링 능력과 제조 능력에 감명받았다고 하며 특히 금속표면을 다루는 데 있어서 매우 뛰어나다고 평을 하였다. (AutoWeek 기사 참고)
4. 대우의 미래
이러는 가운데 대우가 GM에게 인수된 이후 처음으로 나오는 제품중으로 최근 파리 모터쇼에서 선보인 시보레 브랜드의 S3X는 쇼의 최대 화제작 중 하나였다.
탄탄해 보이는 디자인과 당장이라도 양산하여 시판이 가능할 이 컨셉트 차량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있었다. 즉, 대우 브랜드가 유럽시장에서 시보레 브랜드로 전면 대체됨을 의미했으며 더 나아가 대우 제품들이 GM의 오랜 브랜드인 시보레로 대체될수 있을 정도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GM에게 있어서 대우 브랜드의 청산은 쉬운 일만은 아니였다. 유럽시장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에서 대우 브랜드는 계속적으로 크고 있었지만 실패한 초기 품질로 인한 낮은 브랜드 인식의 전환보다는 다른 브랜드로 재소개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
참고로 S3X는 GM의 자회사이기도 한 미국 새턴(Saturn)의 VUE라는 크로스오버 차량을 기반으로 개발, 2006년부터 한국과 유럽시장에서 판매될 7인승 레저 차량으로 이태리의 VM Motori와 함께 개발한 디젤엔진이 탑재될 예정이다 (여담이지만 얼마전 일로 방문했던 국내 모처에서 각종 시험 장비를 만재하고 달리는 대우자동차 연구소 소속의 새턴 뷰를 본 적이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S3X의 연구 그리고 생산등 모든 개발과정을 대우가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우가 GM에게서 연구, 개발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따라 GM은 앞으로 대우에 대해서 지금까지 투자한 약 $1 Billion (한화로 약 1조 2천억원)의 두배인 $2 Billion (2조4천억원)을 추가로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 적잖은 투자액은 단기적으로는 현대에 이어서 국내에서는 두번째인 자체적인 주행코스(Proving Ground, PG라고도 함)의 건설과 인천에 아시아 R&D센터 건립, 추가적인 연구인력 보충과 S3X와 같은 제품개발등에 투입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전세계 GM의 소형차를 대신 개발해주는 기반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현재 GM은 감마(Gamma) 아키텍쳐를 이용하여 독일의 오펠 코사(Opel Corsa) 같은 소형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금년내로 GM 임원회의에서 결정이 날 경우 대우는 감마 아키텍쳐의 변형을 개발하여 GM의 각종 소형차를 대신 개발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유력하게 해주는 증거로는 S3X와 함께 파리 모터쇼 전후로 공개된 마티스의 후속차량인 M3X가 미국시장에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소형차종인 스마트(Smart)에 대응하는 차량으로 투입될수도 있다는 대우의 닉 라일리 사장의 말이다. (AutoWeek).
5. 국내에 미치는 영향
하지만 정작 국내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동안 국내에서 저평가되어 왔던 대우 제품들의 업그레이드가 과거 국내시장에서 현대에 맞서던 3강중의 하나였던 대우의 위상을 다시 일으킬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상품성을 평가하는 입장에서의 필자는 대우의 제품을 참고하기도 하는데, 엔진 성능은 우수하다고 볼수 있겠지만 내장재의 품질이나 내구성은 그만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필자만이 아니라 최근까지 GM아시아의 디자인 담당을 했던 총괄 디자이너가 약 1년 전 외국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우제품에 대해 언급했던 것으로 이러한 부분은 자본과 시간의 투입을 통하여 해결될수 있는 것이다. 특히 대우가 GM으로의 인수전후를 통해 겪었던 진통을 생각하면 이러한 품질저하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싶지만 최근 GM제픔의 상품성은 자동차광이라고 불려지는 밥 루츠 GM 부회장의 노력으로 많이 나아졌으며 최근 파리 모터쇼에서 루츠 부회장은 한국제품은 이제 전세계의 어느 제품과도 비교될수 있는 품질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GM측이 최근 내놓은 각종 컨셉트카의 프리젠테이션에서 보여진 대우 마크를 한 어느 날렵한 컨버티블 컨셉트는 향후 대우가 나아갈 제품들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듯 하였다.
그럼 국내 소비자들에게 대우의 이런 새로운 모습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신선한 디자인과 유럽시장에서 동시에 판매될 정도로 세계 트렌드에 전혀 뒤쳐지 않을 S3X같은 대우의 신제품 등장은 현대와 기아의 과반수 독점으로 인하여 정체되었던 국내 자동차 시장에 신선한 바람 이상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우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이 인수된 후 수출이 내수보다 더 잘되는 바람에 국내시장 점유율은 과거보다 많이 낮아졌었다. 하지만 GM이라는 글로벌 그룹의 각종 자원, 예를 들어 이스즈의 디젤기술이나 GM의 휘발유 엔진기술, 오펠의 튜닝기술 도입이 용이해졌으며 S3X같은 신제품 개발등으로 국내 시장에 끌려다니기 보다는 오히려 주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6. 결론
대우의 이러한 도약이 거대 자동차 그룹에 편입됨으로서 가능해졌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이러니컬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미국과 독일계 업체들에게 완전하게 편입되어버린 영국 자동차 업계를 생각해보게 된다. 20세기 초반과 중반에 걸쳐 롤스로이스와 재규어같은 세계의 명차를 만들던 그들. 한세기가 지난 지금 포드 산하에서 빛을 찾아가고 있는 애스턴 마틴과 폭스바겐 산하에서 컨티넨탈 쿠페와 같이 뛰어난 제품으로 초고급브랜드로 재부상하고 있는 벤틀리의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한가지는 확실하다. 대우의 이러한 부상은 매우 가까운 시점에 국내 소비자들이 S3X처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차들을 구매할수 있게 됨으로서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기사&사진 제공 : 글로벌 오토뉴스(http://global-auto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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