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가 2005년 4월부터 새로 판매하고 있는 대형차 ‘스테이츠맨’의 뒷모습이 단종된 차량인 ‘씨에로’와 닮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라고 한다.
‘스테이츠맨’은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탤런트 박신양이 몰고 나와 눈에 익은 승용차이다. ‘스테이츠맨’의 전체적인 스타일링은 약간 보수적인 편이다. 감각적인 스타일 보다는 안정성과 품위를 지키는 데 중점을 둔 듯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특히 최대한 단순하게 디자인한 뒷모습에서 보수적인 디자인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 ‘르망’의 플랫폼을 이용해 제작한 ‘씨에로’ 역시 ‘르망’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보수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어서 ‘스테이츠맨’과 디자인 면에서 닮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자동차 전문가들은 ‘스테이츠맨’에서는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회사인 카로체리아 이탈디자인의 감각이 느껴진다면서 ‘씨에로’ 역시 디자인 측면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르망’에서부터 ‘씨에로’까지의 개발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자.
대우자동차는 지금은 GM으로 흡수 통합되었지만, 1980년대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하면서도 역시 GM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르망’은 1986년부터 1997년까지 100만대가량 생산된 대우자동차의 대표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우자동차의 수출신화는 1986년 12월 미국에 수출된 ‘르망’에서 시작된다. 그 후 ‘르망’은 1987년 미국에 1천대, 대만에 250대, 1988년에는 뉴질랜드 1천대, 사우디아라비아 298대, 그리고 1989년 국내 최초로 동구권인 체코에 3천대를 수출하는 등 세계 각국을 누비며 1997년 5월까지 총 49만4천대의 수출실적을 올렸는데, 그 결과는 말도 많은 대우자동차가 GM과 인연을 맺은 뒤 ‘월드카’라는 개념으로 양사가 합작한 최초의 작품덕분이라 할 수 있다.
‘르망’은 대우자동차의 독자모델이 아니 당시 GM계열인 독일 ‘오펠 OPEL’ 회사에서 개발한 소형차 ‘카데트 KADETT’를 재생산한 차이다.
'르망'의 베이스 모델인 카데트는 1970년대 자동차 업계의 공력연구 결과의 최초 결과물이 반영되어 1984년에 출시되었으며, 당시 폴크스바겐 골프 Golf에 맞먹는 인기차종이었다고 한다.
카데트는 소형차로서는 드물게 독일 자동차의 맛을 보여준 명차였다. 또한 당시 대우자동차에서 생산되었던 레코드, 로얄, 프린스 등 중형차들이 모두 오펠의 모델들이었는데 원산지 보다는 엔진이 지나치게 작아져 그 맛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지 못하였으나 르망은 독일 자동차의 장단점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독일 자동차의 장점인 고속도로에서의 안정적인 주행성능, 높은 차체 강성, 잘 튜닝된 서스펜션 등 당시 스피드를 즐기는 젊은이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험로주파능력이 떨어진다거나, 다소 높은 소음, 다소 떨어지는 정비성, 딱딱한 승차감 등의 단점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오펠의 카데트를 베이스로 제작된 ‘르망’은 스타일면에서 당시 현대자동차의 ‘포니’나 대우자동차의 소형차인 ‘제미니’에 비해 매우 혁신적인 모습으로 공기 저항계수가 CD 0.32라는 이전의 우리나라 자동차들은 생각치도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그 후 ‘르망’은 라인업을 통해 3도어의 레이서, 5도어 모델인 펜타5 그리고 화물용으로 개발된 르망밴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1.6엔진을 얹은 1.6TBI, 2.0엔진을 얹은 임펙트, 외관을 바꾼 이름셔 irmscher 등의 특이한 모델도 선보였다. 특히 최상급 모델이었던 이름셔의 경우는 오펠을 전문적으로 튜닝하는 메이커인 이름셔에서 튜닝파츠를 들여와 생산하는 상당히 앞선 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개념을 보여준 ‘르망’은 원래 프랑스의 도시이름이다. 르망은 인구는 1999년 기준으로 14만 6105명이며,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15km 떨어진 사르트강과 윈강의 합류점 부근에 있다. 노르망디에서 루아르강 연안으로 향하는 도로와 브르타뉴와 파리를 연결하는 도로의 교차지점에 발달한 로마시대부터의 도시로, 당시의 성벽 터가 생쥘리앵 대성당의 주변에 남아 있다.
1836년에는 인구가 1만 8000명이었는데, 철도건설에 따라 공업이 급속히 발달하였으며, 전자,·전기,·기계제조, 공업 외에 자동차,·철도,·제철,·농기계 공장이 많으며, 농산물인·대마,·사료작물,·소,·포도주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우자동차가 결정적인 ‘르망’이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해마다 6월에 이곳에서 개최되는 ‘르망 24시간 그랑프리’ 자동차경주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된 ‘르망의 등장은 당시 우리나라의 모터리제이션의 혁신을 예고한 것이었다.
이전의 국내 자동차의 주류였던 이른바 현대자동차의 ‘포니 스타일’이라고 불리던 포니 문화에 충격을 가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외제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일반인들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이었으나 르망은 이런 일반인들의 염원을 풀어준 승용차라 할 수가 있다.
필자 역시 참고차로 들여온 카데트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앞에서도 얘기하였지만 르망의 기본모델은 독일 오펠사의 카데트이다.
그리고 오펠 회사는 미국 GM의 독일내 자회사이며, GM의 경우 소형차의 기술 지원이나 엔진은 일본의 이스즈와 협력체제를 이루고 있었는데, GM은 주로 대형차만을 생산해서 소형차에 대한 경험이 적었기 때문이다.
‘카데트’는 배기량 1.6과 2.0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서 ‘르망’은 1.6 모델을 기본 모델로 개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는 이 카데트의 기본 모델의 라인을 도입하여 르망을 생산하기로 하였으나, 1.6엔진은 국내 세제상 불리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대우자동차는 국내 실정에 맞게 엔진의 실린더 보어를 약간 줄이는 설계변경으로 1.5엔진의 ‘르망’을 1986년 7월 등장하게 된 것이다.
스타일면에서 당시 인기가 있었던 ‘포니’나 ‘제미니’에 비해 매우 부드러운 모습이면서 혁신적인 모습으로 공기 저항계수가 CD 0.32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전의 국산 승용차들은 박스 같은 모습으로 공기 저항계수라는 것을 생각치도 못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르망’의 엔진은 처음에는 MSTS라는 전자점화식 캬뷰레타 방식을 적용하였고, 1988년도부터는 TBI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전자제어방식의 직접 연료 분사 엔진을 사용하였다.
각 기통마다 연료를 분사하는 MPI엔진에 비해 컴퓨터제어가 용이하였고, 아이들링 시에 미량의 연료를 알맞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과 제조단가가 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르망의 엔진은 기존의 차량들에 비해 매우 부드러웠다. 고속주행시도 정숙성이 뛰어났고 저단의 가속성과 고 rpm에서도 엔진에 무리가 없었다.
‘르망’은 엔진의 반응이 상당히 부드러웠으며, 고속주행시의 정숙성도 뛰어 났고, 저단 기어의 가속성이 높고 고회전 영역에서도 엔진에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얘기지만 르망의 경우 최고속도가 4단에서 나오도록 세팅이 되어있었다. 당시 대우자동차 측이 발표한 최고속도는 165km/h, 르망은 이 수치를 무난히 넘기는 엔진과 고속주행 시 차체가 바닥에 달라붙어 달리는, 당시의 소형차로서는 최고의 성능을 보였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뛰어난 스타일과 성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엔진 자체의 소음은 엔진의 특성 차이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니 문제는 아니었지만 코너링시의 하체의 잡음은 운전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였다. 특히 쇽업 쇼버의 소음은 거의 그대로 실내에 유입되는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파워 스티어링의 반응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었다. 최근의 차종들은 속도 감응식 파워스티어링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르망’의 경우는 고속주행 시에도 저속시의 반응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자칫 운전 감각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문제였으며, 실내에서 들리는 잡소리 특히 글로브 박스의 소음은 ‘르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스타일면에 있어서 ‘르망’은 디자인의 변신을 계속하면서 자리를 지켜 왔었다.
초기의 1세대 ‘르망’은 폰티액 르망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르망’은 GM과 함께 미국 수출전략차종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초기의 모습은 수출 차와 같을 수밖에 없었다.
가로로 쌓아 올린 듯한 프론트 그릴과 트렁크 테일을 기준으로 양분되어있는 테일램프의 이미지는 당시 우리나라 자동차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바디 컬러도 투톤으로 처리해 고급스러움을 살렸다.
인테리어의 레이아웃도 기본 모델인 오펠 회사의 ‘카데트’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또한 헤드램프의 스위치가 컴비네이션 스위치에 있지 않고 운적석 좌측 패널에 붙어 있었으며, 시간 조절식 외이퍼의 조절 스위치도 역시 컴비네이션 스위치가 아닌 우측 패널에 붙어 있었다.
냉난방을 컨트롤하는 공조스위치 역시 조작이 조금 애매한 유럽식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오디오의 위치가 공조 컨트롤 스위치 위에 위치해서 오디오 조작 시에 운전자의 시야를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의 초기 르망에서 2세대 모델 ‘르망’은 1990년에 모습을 바꾸고 등장하였다. 기본적인 레이아웃은 1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프론트 그릴을 시원스럽게 넓게 뚫린 디자인으로 바꾸고 차폭 등의 컬러도 흰색으로 변경하였다. 후면부의 디자인도 테일 램프와 일체화된 듯한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리어 가니쉬의 디자인을 변경하고 대우 르망이라는 로고를 크게 집어넣었다.
그리고 1세대에 붙어 있던 왕관 표시가 들어간 엠블렘은 앞뒤 모두 없애버렸다. 차체의 컬러도 1세대의 아랫부분 회색빛의 투톤 컬러를 폐지하고 원 톤으로 통일하여 깔끔한 이미지를 주었다. 인테리어의 레이아웃은 1세대와 같은 것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마지막 변경모델인 3세대 모델 르망은 1991년 11월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완전히 바뀐 모습으로 기존의 르망에 비해 한결 날렵한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가늘게 보이는 앞부분의 디자인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슬림형의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그리고 프론트 에어덕트를 강조한 범퍼의 디자인이었다.
후면부는 2세대 르망의 모습을 둥글게 처리한 디자인으로 무난한 모양이었다.
외형의 변화만큼이나 인테리어의 디자인이나 장비도 많이 변경되었는데 헤드램프의 스위치가 컴비네이션 스위치와 통합되고 공조컨트롤 스위치 역시 현대나 기아와 같은 방식으로 변경 되었다.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던 글로브 박스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턱을 만들었고 센터페시아 가운데 붙어 있던 아나로그 시계도 디지털로 바꾸어 대시보드 쪽으로 위치를 바꾸었다.
외형적인 디자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메커니즘과 안전성을 위한 개량도 이루어졌는데 유압식 클러치의 채용으로 클러치의 반응이 부드러워졌으며, 당시 인기가 있었던 ‘에스페로’ 용의 9인치 싱글 점핑 부스터를 적용하여 제동성도 향상시켰다.
수출 사양에만 적용되던 도어 임팩트 빔을 모든 도어에 적용하여 충돌 안전성도 향상 시켜 고객의 안전에도 신경을 썼다.
3세대 모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1993년 모델의 엔진 방식이 TBI에서 MPFI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MPFI방식은 MPI와 같은 방식으로 MPFI 엔진을 장착한 ‘르망’은 90마력으로 기존의 88마력엔진보다 2마력이 상승되었다.
그리고 DOHC엔진도 탑재하였다. ‘르망’의 DOHC는 에스페로의 DOHC엔진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최고출력 100ps/5,000rpm, 최대토크는 14.8kg/3400rpm으로 중 저속의 실용구간에서 좋은 성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3세대를 거친 ‘르망’은 다른 여러 변형모델이 많은 차종이었는데, 1986년 9월에 등장한 3도어 모델인 ‘레이서’와 1988년 3월에 등장한 5도어 모델인 ‘펜타5’ 그리고 화물용으로 개발돼 1992년 11월에 등장한 ‘르망 밴’으로 다변화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2세대의 ‘르망’에도 특이한 모델들이 있었다. 1.6엔진을 얻은 ‘르망 1.6TBI’, 2.0엔진을 얻은 ‘르망 임팩트’ 그리고 임팩트의 외관을 바꾼 ‘이름셔’가 바로 그것이다.
‘르망 1.6TBI’는 원래 수출용이었지만 고성능의 모델로서 1989년 6월 국내에 시판 되었지만 세제상의 불이익 등으로 인해 많은 양이 판매되지는 못하였다.
그 후 ‘르망 1.6TBI’의 대체 모델로 1990년 6월에 등장한 2.0 임팩트 Impact는 당시로서는 국내 최초로 소형차에 중형의 엔진을 얻은 획기적인 차량이었다고 한다.
3도어와 4도어모델의 최상급 모델로 시판된 ‘임팩트’는 TBI엔진과 유사한 방식인 CFI/ Central Fuel Injection 방식의 2.0엔진으로 스피드를 즐기는 카 매니어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임팩트’의 2.0엔진은 그해 1990년 9월에 등장한 ‘에스페로’의 엔진과 같은 것이었다. 기본적인 외형은 일반 ‘르망’과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보닛과 지붕을 지나 뒤로 이어지는 ‘임팩트’ 로고가 새겨진 데코레이션 테이프와 역시 차체측면에 붙은 임팩트 로고는 고성능임을 내세울 수 있는 ‘임팩트’만의 자랑이었다.
인테리어 역시 크게 변경된 것 없이 스티어링 휠이 약간 각진 듯한 3 스포크로 변경되었다. 휠은 터빈형의 변형으로 ‘임팩트’의 강한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르망’의 최상급 모델이며 가장 특이한 모델이었던 이름셔는 오펠의 차를 전문적으로 튜닝하는 메이커인 이름셔의 파트를 들여와 생산하였던 모로 1991년 9월에 등장하였다.
기본적으로 ‘르망 임팩트’의 업그레이드 모델로 같은 엔진과 차체에 외장 튜닝 즉 흔히 말하는 드레스 업을 실시하여 좀더 고출력차라는 이미지를 높여준 차라 할 수가 있었다.
‘르망’의 많은 베리에이션 중 하나였던 ‘르망 GSI’와 비슷한 형상의 두툼한 앞뒤 범퍼와 사이드스커트, 클래식한 이미지의 원형 헤드램프는 고출력과 디자인의 적절한 조화라고 볼 수 있었다.
당시 국내 여건상 드레스 업 관련 시장이 전무하였던 것을 감안하면 대우자동차라는 대 메이커에서 ‘이름셔’를 내놓은 것은 상당히 앞선 시도였다고 볼 수 있었다.
‘이름셔’는 3도어와 4도어 모델만 생산 되었으며, 가격은 당시로서는 중형차와 맞먹는 1천만원대였다고 한다.
그리고 레이서를 변경시킨 ‘이름셔’는 흡사 외국차량을 보는 듯하였다. 르망 레이서 베이스지만 2.0TBI 엔진이 얹었으며, 이름셔 에어로 파츠로 멋을 더하고 있다. 또한 인테리어에는 래카로 버킷시트를 운전석은 물론 보조석까지 장착되어 있을 정도로 고급사양이었다.
이처럼 ‘르망’은 초기의 멋스런 독일 차의 이미지에서 점점 멀어져가더니 끝내는 조금은 아쉬운 모습으로 퇴장하게 된다.
변화된 중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미국형 5마일범퍼인 GTE의 범퍼이다. 안전 면에서는 물론 바람직하지만 1.5리터 이하의 국내 사양에 부담을 주는 무게와 가볍고 경쾌한 모양의 카데트 스타일을 상당히 무겁게 만들어 전체적인 차의 모양새와 성격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차에 비해서 범퍼가 크고 무거워 보였다.
그 다음 모델인 GTE 프론트 그릴은 GSI의 것을 모방한 모습으로 되었다. 그리고 ‘르망’의 그릴은 항상 아래로 빠져 그릴 하단이 범퍼에 묻혀 보이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르망 GTE의 새로운 테일 램프 모양을 만드는 리어 가니쉬 디자인도 그 둥그런 모습은 르망에 어울린다고 할 수는 없었다. 르망은 날카로운 모양이지 둥그런 모양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바로 GSI 모습이었는데 클래식이나 이코노미형이 아닌 스포츠 지향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매우 호평을 받았다. 대우자동차가 북미지역에 수출하고 있는 르망Lemans이 미국 유수의 자동차구매 지침서인 '더 카북 The Car Book'에서 1990년도 최우수 5개 소형차 중의 하나로 선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The Car Book‘은 미국 내에서 매년 말에 1회씩 발행되는 차량구매를 위한 소비자들의 지침서로 상당한 권위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전문서적인데, 이번에 ’르망‘이 독일 오펠회사의 카데트를 베이스로 생산하는 소위 라이센스 모델인데도 미국시장에서 나름대로의 영역을 인정받은 것은 고무적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The Car Book'은 그 해의 최우수 차종과 나쁜 차종을 정면충돌시의 안정성, 연료 소모율, 정비 서비스, 품질 보증, 보험비용, 소비자 불만 등의 6개 요소 종합 평가하여 각 등급별로 순위를 매겨 최우수 차종과 가장 나쁜 차종을 선정하는데, 여기서 대우자동차의 ’르망‘이 라이센스 모델로서는 유일하게 소형차 분야 최우수 5개 차종에 선정된 것이다.
르망의 계보를 잇는 씨에로
1994년 5월에 출시된 씨에로는 대우자동차의 야심작이었던 ‘르망’의 계보를 이어받은 자동차라 할 수 있다.
‘르망’ 4도어 모델의 후속 모델인데, 탁월한 주행성능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켰다. 특히 ‘씨에로’는 내구성이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중앙아시아의 나라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생산되기도 하였다. 춥고 도로의 상황이 좋지 않은 중앙아시아에서 잔고장이 없는 것으로 정평이 났으며,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독일의 벤츠를 제외하고는 제일 고급 차량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년 동안에만 생산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모델 체인지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전체 디자인은 ‘르망’의 외관에서 조금 바뀌었고 전체적으로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ABS/ 에어백 등의 고급사양이 추가되어 준중형급으로 팔리다가 1996년 11월까지 판매되다가 중단된다.
르망 3도어, 5도어의 후속모델인 넥시아 Nexia
‘넥시아’는 르망 5도어인 펜타 5와 3도어인 레이서 모델의 후속모델로서 1995년 3월 생산되어 다음해인 1996년 10월에 단종된 승용차이다. 편의사양은 거의 씨에로와 비슷하였으며, 유럽 스타일의 외관 디자인을 강조하였지만,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어 약 1년 반 만에 국내 판매가 끝났으며, 유럽 등지에는 계속해서 수출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제 분위기를 반영하듯이 발표 당시의 ‘르망’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 많은 변화를 주었지만, 8년여 간의 생산 기간동안 다른 자동차회사들의 신 차종들과 비교하여 품질 및 성능이 변화하지 못해 단종될 때까지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다양한 시도와 노력으로 인해 많은 르망 매니아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화려함과 우아함을 지닌 르망은 1997년 2월 단종 될 때까지 100만대가 넘게 생산되었다. 대우자동차는 소형승용차 ‘라노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지난 1986년부터 판매해 온 ‘르망’ 승용차는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르망’은 1986년 6월 첫 시판 후 10년 4개월간 총 1백2만3천22대를 생산하였고, 내수 53만8천8백54대, 수출 47만9천6백36대 등 1백1만8천4백90대가 판매되었다.
현재 GM대우자동차는 GM계열 속에서 한 회사로서 생산하고 있는데 당시에 비해 품질이나 성능에서는 상당히 발전 하였지만 그 당시의 ‘르망’과 같은 신선한 충격은 많이 반감된 듯하다.
세계 속으로 발전하는 GM대우가 과거의 ‘르망’과 같은 멋진 모델을 디자인해주길 기대해 본다.
박귀동 [trend@daumtrend.com]
기사&사진 제공 : 오토조인스(http://www.autojoin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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