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글은 2004년에 쓰인 겁니다. 콜록. 요즘 책으로 나왔죠.
앞에서 고급차에 대해 살펴 보았는데 자동차 시장에서 이러한 고급차의 대척점, 즉 반대편 끝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경차다. 당연히 차에 대해 요구되는 특성도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요사이 경차의 개발 추세를 보면 오히려 고급차의 특성을 따라가 시장 내 경차의 기반을 스스로 허물고 있는 듯하다. 어차피 경차라는 것이 시장에서의 자연스러운 요구가 아니라 환경이나 교통, 주차 등 공공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그멘트고, 21세기 들어 그런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경차는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중요한 기반으로 남아 있어야 하므로 경차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고 과연 바람직한 경차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잘 알려져 있다시피 경차라는 컨셉은 일본에서 보다 검소하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유도하기 위해 60년대에 일본정부가 만들어낸 일본 특유의 제도였다(자동차와 문화 IV-II 일본편 참조). 차체 크기와 엔진 배기량으로 규제를 하여 당초에는 차 길이 3m와 차 폭 1.3m 그리고 엔진 배기량 360cc를 최대치로 시작하였으나, 그 후 수십 년간 일본사회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 정도를 감안하되 경제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점차 크기를 늘려 현재 차 길이는 3.3m, 차 폭은 1.4m, 엔진배기량은 660cc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는 자동차시장이 미성숙된 상태라 차체를 좀 더 키우고 엔진 배기량도 좀 더 크게 할 필요가 있어 차 길이 3.5m, 차 폭 1.5m, 엔진 배기량 800cc로 규정하였다. 물론 초기 유일한 경차였던 Tico는 Suzuki의 모델을 그대로 들여왔는지라 일본의 구형 경차 사이즈라 좀 작았고 Full Model Change를 통해 좀 커진 지금의 Matiz가 제대로 우리나라 경차 사이즈에 맞춘 모델이다. 크기를 키웠다 해도 여전히 경차는 윗 세그멘트인 소형차에 비해 차체가 작고 엔진 파워도 떨어지는지라 통상적인 자동차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점들이 발생한다. 그래도 차량 가격을 대폭 낮추면 일정 수요는 발생하겠으나 사실 경차라고 해서 기본 개발비가 소형차보다 그다지 덜 들어가지는 않기에 공급가격을 메이커측에서 시장 수요를 대량 발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낮추기에는 원가면에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소비측면과 공급측면에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라는 시장 외적인 요인 없이는 자체적으로 생존하기가 어려운 것이 경차의 태생적 한계다. 일본에서 경차가 전체 자동차시장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여 꾸준히 그 수요가 유지되면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독자 세그멘트를 형성하게 된 데에는 길도 좁고 차 값이 저렴한 것도 한 몫을 했으나, 차량 구입 시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되어 있는 차고지증명(주차 공간이 확보되어 있음을 관할 경찰서에서 확인 받는 제도)을 면제해 준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필자도 90년대 중반 東京에서 주재할 때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을 월 4만엔 주고 빌렸었는데 당시 대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초봉이 월 18만엔 정도였으니까 차고지증명을 면제해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91년 Tico가 최초의 경차로 등장한 이래 연간 4~5만대에 불과했던 경차 수요가 96년에 10만대를 돌파한 뒤, 98년에 16만대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은 97년 외환위기에 의한 가처분소득의 감소, 현대 Atoz(97년)와 대우 Matiz(98년) 등 신규 차종의 진입 등에 힘입은 바가 컸으나, 보다 결정적인 원인은 정부가 과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96년부터 시행하였던 1가구 2차량 중과세의 대상에서 경차를 제외시켜 주고 각종 공공요금을 감면해 준 덕분이었다. 이러한 정부시책과 건전소비의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판매가 대폭 늘어난 경차는 Market Share 측면에서도 98년에 전체 승용차시장의 35%를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99년에 1가구 2차량 중과세가 폐지되면서 13만대로 한 풀 꺾인 경차 판매는 2000년에 9만대로 줄어든 뒤, 내수진작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정책변화에 따른 과소비 풍조 속에 급속히 수요가 감소되어 2004년에는 약 4만대 정도로 다시 축소되고 말았다. 전체 승용차시장 내 Market Share도 8% 로 축소되어 급기야는 현대 Atoz(2002년), 기아 Visto(2003년)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사태까지 빚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정부의 정책에 의해 수요가 급변하는 경차의 태생적 한계 이외에 최근 경차의 부진을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바로 경차 자체의 잘못된 진화방향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차의 최대 장점은 저가격/낮은 유지비의 경제성인데도 불구하고, Maximum Economy Car로 출발했던 경차가 점차 차체가 커지면서 각종 고급 편의사양들이 추가되어 Fashionable Compact Car를 지향하게 되고 기계적 성능의 향상까지 추구하게 된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진화에 의해 비로소 경차도 차다운 차가 된 게 아니냐고, 그래서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기도 하나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경차의 가격이 올라가면서 국내 시장에서 소형차와 가격차별이 없어져 동일 소비자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여기서 경차와 소형차의 상대적인 가격수준의 변화를 살펴 보자. 98년 Tico의 가장 많이 팔린 SX Grade의 가격은 412만원으로 Lanos의 가장 많이 팔린 Juliet 고급형 625만원의 66%에 불과했다. 그런데 2003년 Matiz의 가장 많이 팔린 MX Grade의 가격은 637만원으로 Kalos의 가장 많이 팔린 1,500cc LK 789만원의 81%까지 상승했고, Kalos 1,200cc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MK Grade 705만원의 90%까지 육박했다. Kalos 1,200cc의 기본 모델인 EK Grade의 가격이 669만원에 불과하니 이래서는 경차가 시장에서 견뎌낼 수가 없다. 가격 측면에서 소비자들이 Entry Car나 Second Car로 경차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성의 다른 한 축인 연비는 어떨까? Tico에서 Matiz로 바뀌면서 우선 차 길이가 3.5m로 16cm 가량 길어지고 높이와 폭도 각각 10cm 정도 커졌고 따라서 당연히 차 무게도 640kg에서 790kg으로 150kg이나 무거워졌다. 그러나 동일한 엔진 배기량에서 출력을 41마력에서 52마력으로 높여 마력당 무게지수는 15.6에서 15.2로 그다지 줄지 않아 동력성능에서의 손실은 그다지 없었고, 연비는 수동 기준 1 Liter당 24.1km에서 22.2km로 약간 낮아졌을 뿐 Matiz CVT의 경우에는 23.8km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차체를 대폭 키워 자동차로서의 기본적인 편의성을 상당히 늘리면서도 동력성능이나 연비 측면에서 후퇴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차 역사에 남을만한 기술적 개가라고 할 수 있다. 동일 측정기준에 의한 소형차의 1 Liter당 연비가 수동 기준 16 ~ 17km, 자동 기준 14 ~15km정도임을 감안할 때 연비 측면에서 우리나라 경차의 경쟁력은 아직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08년부터 경차의 폭을 10cm, 엔진 배기량을 100cc 더 키우기로 한 최근 정부의 방침은 결국 경차를 소형차화 시키는 것으로 이는 저가격/고효율 연비라는 경차의 경제성을 약화시켜 경차를 평범한 소형차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경차가 소형차가 되면 경차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 보조라 하여 선진 수출시장에서 무역마찰을 초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긴 경차가 소형차가 되어 공공성이 약해지면 구태여 정부가 특별히 지원할 이유도 없어지겠지만 말이다. 2008년쯤 되면 국내 소득수준도 상당히 높아져 지금의 일본 경차처럼 Second Car 위주의 실용적 소비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 오히려 지금보다 더 경제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경차가 개발되어야 할 터인데, 이번 정부의 조치는 당초 공공성 확보라는 경차의 도입 취지를 정부 스스로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른 경차의 자연스러운 진화의 방향을 거스르는 정책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경차는 왜 각종 고급 편의사양을 잔뜩 달게 되었을까? 참고 삼아 잠시 일본의 경차 역사를 돌아다 보자. 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경차는 70년대 들어와 Oil Shock를 역이용하여 일본경제가 급성장함에 따라 국민소득 수준이 급상승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준중형으로 분류되는 대중차( Toyota Corolla, Nissan Sunny, Mazda Familia 등)에 밀려 점차 수요가 줄어드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지금 우리나라 경차 시장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여기서 初心(초심)으로 돌아가 경제성을 강조한 Suzuki Alto가 79년에 나오면서(이 Alto가 Tico의 기본이 된 모델이다.) 경차는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Suzuki Alto는 승용차의 형태를 갖되 Rear Seat를 좁게 설계함에 의해 商用車(상용차)로 분류되어 각종 세금도 싸지면서 배기가스 규제 부담도 가볍게 하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47만엔의 저가격을 실현하였다. Suzuki Alto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자 각 경쟁업체들도 비슷한 제품들을 출시하여 경차는 일본시장에서 다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경제성이 경차의 강력한 경쟁요소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일대 사건이었다. 이렇게 저가격으로 순항하던 일본의 경차는 90년대 들어 다시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기존 승용차를 무서운 속도로 대체해가는 RV의 등장이었다. 그 전까지는 RV라고 하면 트럭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각진 스타일의 대형SUV(현대 Galloper - 갤로퍼, 1991~2003 - 가 이 때 만들어진 차종이다)나 대형 Camping Car밖에 없어 승용차와는 확연히 시장이 구분되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Mitsubishi의 chariot(우리나라에는 현대 Santamo - 싼타모, 1995~2002 - 로 출시됨)와 RVR을 필두로 승용차 Underbody를 활용하여 승용차의 안락함과 정숙성에 RV의 Utility와 개성을 더한 승용형 RV가 봇물 터지듯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RV에 대해서는 차후에 좀 더 상세히 다루도록 하자). 여기서 Suzuki는 경차 전문업체다운 저력을 발휘하여 RV 컨셉을 재빨리 경차에 도입,기존 경차규격을 최대한 활용하되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Mini Van 스타일의 Wagon R을 출시하여 공전의 힛트를 기록하게 된다. 다른 경차업체들이 따라서 유사한 제품들을 출시한 것은 물론이고 Suzuki는 다시 한 번 일본 경차의 구세주로 칭송받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 경차업체들이 자만심에 빠져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경차의 다기능화와 고급화였다. RV라는 것이 원래 보다 많은 효용을 주기에 동급의 승용차보다 가격이 보통 20%이상 높아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RV 스타일의 경차를 만들어 값을 좀 비싸게 했는데도 잘 팔려나감에 따라, 경차업체들은 경차를 고부가가치화 해서 비싸게 만들어도 잘 팔린다는 생각에 엄청난 개발비를 들여 다양한 종류의 경차 모델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쟁이 치열하니 뭔가 독특한 모델을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승용차를 베이스로 한 輕Sports Coupe, 輕SUV(경스포츠쿠페, 경 SUV)를 내놓은 것까지는 보다 풍부한 경차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으나, 4WD나 4WS, Inter-cooler Turbo(인터쿨러 터보)같은 고기능을 경차에 붙이고 각종 고급 편의사양을 추가한 것은 분명 경차로서의 기본자세에서 크게 어긋난 것이었다. 차체도 커지고 사양도 늘어 무게가 늘어나니 연비가 나빠진 것은 물론 가격이 100만엔을 훌쩍 넘어 윗 세그멘트인 소형차와 가격분포가 겹쳐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곧 일본경제가 다시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내수 시장이 침체에 빠짐에 따라 판매도 부진해져 의욕적으로 개발해 놓은 신제품들은 각 자동차업체들에게 커다란 짐만 되고 말았다. 게다가 아무래도 경차는 Underbody(하체)가 취약하고 파워가 떨어지니 싼 맛에 고기능성 경차를 타 본 소비자들, 특히 젊은 계층이 Performance(성능)에 실망하게 되어 경차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결과도 초래되었다. 따라서 요사이 일본의 자동차업계에서는 기존의 진화방향에 대한 반성과 함께 경차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모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과연 또다시 경제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컨셉의 경차가 조만간 나오게 될지 자못 흥미롭다.
이처럼 일본 경차의 고급화는 주로 일본 경차업체들의 자만과 과다한 경쟁의식, 그리고 대당 수익성 향상을 추구한 경영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제한된 모델 수와 사실상 Matiz에 의한 시장 독점의 상황(2003년 Matiz의 경차 시장내 Market Share는 80%)으로 인해 시장경쟁의 압력이 별로 높지 않았고 자사 소형차와의 시장중복도 고려해야 하는 상태에서 자동차업체로부터의 요구는 사실상 그리 크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의해 경차의 고급화가 유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아직 제대로 숙성되지 못한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후진성이 다시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통계를 보면 선진국과는 달리 한 가족의 First Car로 판매된 비율이 47%(2003년)로 거의 전체 수요의 절반에 육박하고, ‘이왕 사는 거 이것 저것 넣어서’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통 큰 구매성향에다가,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제대로 사양을 갖춘 근사한 모델을 사서 돈 모자라 경차 샀다는 창피한 얘기를 듣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의 비합리적인 구매성향에 의해 주로 고급사양에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Matiz의 기본 모델인 ME Grade는 2인승 Van과 합쳐도 전체 판매량의 5% 미만이고 중간 모델인 MX Grade가 55%, 상급 모델인 Best가 40%다). 물론 Aluminum Wheel이나 Roof Rack, CD Changer, 무선시동 리모콘키, Sun Roof 같은 고급 사양들의 장착비율도 상당히 높다. 그래서 욕심을 좀 부리면 경차의 실 구입가격은 1,000만원에 육박한다. 전체적인 판매대수는 계속 줄고 있는데 말이다. 이래서는 우리나라에서 경차문화가 제대로 형성될 수가 없다.
물론 경차의 핵심이 경제성이라 해서 차량으로서 기본적인 안전도나 편의성까지 무시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도시의 젊은 계층을 위한 일부 First Car 수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Second Car나 Third Car로 사용되는 일본의 경차 시장과는 달리, 초보운전으로 예상되는 신규구입 고객비율이 반이나 되고, 여성운전자 비율이 50% (2003년)에 달하는 우리나라 경차 시장의 특성상 A/T, Power Steering, Air Conditioner, 운전석 Air Bag, ABS, 핸즈 프리 정도는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나 그 외의 편의사양들은 사실 경차에게는 사치다. 물론 전편에서 누누이 밝혔듯이 후진국 자동차문화의 특성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의 특성상 기본적인 스타일 요소들( 내외관 형태, 색깔 등)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이 같은 스타일 요소들도 차량의 원가를 크게 높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만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 경차의 존재 의의는 어디까지나 Maximum Economy Car로서 생활의 일상적 수요를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도와 주는 Town Car, 즉 가죽 신발이 아닌 쇠 신발이 되는데 있다. 어떤 짧은 거리를 가고자 할 때 Mercedes-Benz와 경차는 이동시간에 별 차이가 나지 않지만 경차와 걷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나지 않는가? 따라서 경차에게 요구되어야 할 주요 특성은 승하차가 용이할 것, 간단한 짐을 싣고 내리기 편할 것, 작은 아이들 태우고 다니기 편리할 것, 노인들도 타고 다니기 쉬우면서 누구라도 운전하기 쉬울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싸고 연비가 뛰어날 것 정도다. 경차는 개성과 레져를 위한 RV가 아니며, 안락함을 위한 중형차도 아니고, 성능을 위한 Sports Car는 더더욱 아니다. 경차는 경차일 뿐이며 그 자체로서 우리나라의 자동차문화를 건전하게 형성해 나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경차의 메리트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경차에 의해 습득할 수 있는 소형차 개발 기술이다. 현재 세계 자동차업계는 환경이라는 21세기 화두를 앞서 실현하기 위해 소형차 개발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단순히 차를 작게 만드는 게 아니라 외형은 작게 하면서 내부 공간은 최대화시키고, 최적 설계와 신소재 사용 등으로 차 무게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물론 스타일과 안전성 확보는 기본이고 연비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져 3 Liter Car(3 Liter로 100km 주행이 가능한 차)의 출시도 멀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소형차 개발에 있어 핵심은 엔진룸과 차 내부의 최적설계 (자동차업계 전문용어로는 Packaging이라 함) 기술과 엔진(Hybrid, Diesel 등) 기술이다. 우리가 보통 우스개말로 벼룩의 배를 가르나 코끼리 배를 가르나 안에 보면 있을 건 다 있다고 하는데, 차를 작게 만든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넣을 건 다 넣어야 되고 적당한 공간도 확보해서 정비성도 좋게 해야 하니 사실 소형차의 설계가 대형차의 설계보다 더 어렵다. 따라서 우리나라 자동차업체들이 경차 개발에 매진한다면 Packaging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며, 잘 만들어진 우리나라 경차들이 선진국에서는 Second Car로, 후진국에서는 First Car로 당당히 선진국의 소형차들과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이미 Matiz가 Italy와 중국에서, Visto가 인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 않은가?
일본정부의 주도로 만들어져 일본의 하향식 자동차문화의 상징으로 되어 있는 경차는 일본 내에서는 일본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성격과 어우러져 차가 작더라도 그에 맞는 일상 용도, 즉 주부들의 장보기나 학생들의 통학용, 마을모임 참가 등에 자연스레 국한되어 쓰여지므로 별 불편함이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나름대로의 경차문화가 확실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의 고속도로에서도 경차는 자주 보이나 대부분 저속차로에서 조심스레 운행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운전자들이 고속으로 과격하게 운전하고 다니는 걸 보면 어느 한 구석 아귀가 안 맞아 들어가는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고속도로 추월선에서 경차가 도대체 비켜 주질 않아 할 수 없이 오른쪽 주행선으로 추월해 나간 경험은 아마도 상당 수의 독자분들도 갖고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차로 5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자랑하는 신입사원의 무용담을 듣고 있으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귤이 淮水(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더니 일본에서 경차를 도입하면서 제도는 흉내를 냈지만 일본의 경차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기에 우리나라 나름대로의 건전한 경차문화 형성을 위한 정부의 적절한 지도가 수반되지 않았던 탓이다. 경차의 보급 확대를 위한 세제 상 혜택도 중요하나 경차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대대적인 홍보와 교육이 정부 차원에서 실행되지 않으면 앞서 10년의 시간이 그냥 흘러갔듯이 향후 10년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제대로 된 경차문화를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경차의 육성을 통한 건전한 자동차문화의 형성을 위해 정부의 좀 더 심도있는 고찰을 기대해 본다. 또한 정부는 차체와 엔진 배기량의 크기로 경차의 기준을 잡을 게 아니라 차라리 초저연비 소형차 개발이라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흐름에 맞추어 적어도 1 Liter 당 25km 이상 정도의 연비를 경차의 기준으로 삼아 이 기준을 맞추는 경차에 대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어떨까? 이렇게 하면 기준 연비를 지키는 선에서 차체 크기나 디자인, 사양 여부 등은 각 자동차업체들이 각자의 기술 수준이나 정책방향에 맞추어 알아서 할 터이니 시장의 힘으로 각 자동차업체의 기술개발을 유도하는 순기능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경차는 경차다워야 한다. 즉, 작고 가벼우며 작은 엔진 배기량에 각종 기능과 사양이 Simple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나라에서 輕車(경차)가 정부의 지원과 시장의 힘으로 제대로 육성되어 단순히 저소득층을 위한 차가 아니라 사회 공동체를 위하는 양식있는 사람들, 내실을 기하는 건전한 생활인들이 타고 다니는 차가 되어 주위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 주는 敬車(경차)가 되는 시대가 하루 빨리 오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 본문에 언급된 연비는 과거 Tico와의 비교를 위해 작년에 개정된 LA 4 Mode 방식에 의한 수치라 현재 팔리고 있는 차종들의 카타로그에 인쇄된 연비와는 차이가 있으나 차종간 상대적인 비교 수준은 거의 동일함.
기사&사진 제공 : 오토조인스(http://www.autojoin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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