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승용차를 기본으로 한 고성능 스포츠 모델을 만드는 이유가 궁금하다. 사람들 눈에 너무 쉽게 띄는 스포츠카 보다는 승용차인양 쉽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언제든지 고성능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차를 원하는 묘한 심리 때문인지, 평상시에 늘 타고 다니는 자신의 편한 승용차가 가끔은 스포츠카처럼도 달려 주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정말 보다 다양한 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자 하는 메이커의 수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갈수록 이런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BMW의 M,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아우디의 S, RS, 재규어의 R, 캐딜락의 V, 크라이슬러 그룹의 헤미, SRT, 포드 SVT 등은 공식적인 스포츠 버전들이며 이들 외에도 폭스바겐의 GTI, 혼다의 타입 R, 오펠 아스트라 GTC, 르노 클리오 V6 스포츠, 푸조 206RC, 미니 쿠퍼 S, 시보레 코베트 Z06 등등등… 정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스페셜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모델들은 역시 BMW의 M,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그리고 아우디의 S, RS 모델들이다.
현재까지 국내에는 BMW M시리즈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BMW M 시리즈는 M3, M5, M6, M 로드스터, M 쿠페가 현재 판매 중이거나 모델 체인지 중이다. 과거에는 M1이 있었고 2003년 단종된 Z8은 M시리즈는 아니지만 M5와 같은 엔진을 얹은 럭셔리 스포츠 로드스터였다. 이들 중 M3와 M5가 국내에 공식적으로 소개되면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Z8은 소수가 공식 수입되었고, M 로드스터와 M 쿠페는 비 공식적으로 소수가 들어와 있다. 99년 여름 국내에 선보인 M5는 일반 5시리즈와 거의 흡사한 4도어 세단 형태이면서 당시로서는 범접하기 어려웠던 400마력의 강력한 파워와 역동적인 주행성능을 선보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포르쉐 911이 300마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파워였다. 국내에서 스포츠카의 영역이 서서히 넓어질 즈음인 2001년에 들어온 M3는, 포르쉐처럼 튀지 않으면서도 쿠페형의 멋진 디자인과 포르쉐에 버금가는 폭발적인 성능으로 수많은 젊은 스피드 매니아들을 사로 잡았다. 최고의 엔진으로 손꼽히는 직렬 6기통 3.2리터 343마력 엔진은 물론, 수동베이스의 반자동 변속기 SMG의 개량형인 SMG II와 함께 선보인 것 또한 큰 인기 비결의 하나였다. 국내에 공식적으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곧이어 M3 컨버터블이 더해졌고, 레이스를 위해 V8 엔진을 얹고 등장한 M3 GTR의 스트리트 버전이 2001년 가을에, 그리고 2003년 초에는 경량 바디에 기존 직렬 6기통 3.2리터 엔진으로 360마력을 발휘하는 M3 CSL등이 추가되었다.
M3 CSL
이처럼 BMW가 먼저 국내 스포츠 세단 시장을 주름잡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메르세데스-벤츠 AMG 모델들은 외국 모터스포츠에서의 화려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어서, 그레이 임포터를 통해 들어온 E55 AMG를 비롯한 몇몇 SL AMG 모델 들이나, AMG룩으로 튜닝한 모델들이 고작이었다. 특히 2001년 이전 AMG 모델들은 서스펜션이나 브레이크 등 섀시와 관련된 업그레이드에는 많은 비중을 두었지만 엔진의 출력면에서는 경쟁 모델에 한 수 뒤쳐지는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E, S, CL, SL 등에 장착된 대표적인 AMG V8 5.5 리터 엔진의 경우 대 배기량에도 불구하고 360 마력 전후를 발휘하였는데, 이는 보다 낮은 배기량인 V8 5.0 리터 엔진으로 400마력을 발휘하는 BMW M5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V12 6.3 리터 AMG 엔진 정도라야 444마력을 발휘하였는데 이도 리터당 마력수에서는 BMW를 앞서지 못하는 수치였다.
스포츠 모델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세단 라인업에서도 경쟁관계에 있는 BMW에 비해 출력에서 조금씩 열세를 보이던 메르세데스-벤츠는 이 때쯤부터 출력에서 우위에 서고자 하는 처절한 행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첫 신호탄이 2001년에 등장한 C32 AMG, SLK32 AMG였다. 비장의 무기는 바로 수퍼차저 엔진. 이들은 3.2 리터 엔진에 수퍼차저를 더해 리터당 100마력을 훨씬 뛰어 넘는 강력한 354마력을 얻어냈다. 물론 자연흡기인 M3에 비해 수퍼차저라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M3의 3.2 리터 343마력을 앞설 뿐 아니라 토크에서는 더 큰 차이를 벌여 자존심을 세우기에 충분해 보였다. 수퍼차저는 V8에도 더해져 같은 해 SL55 AMG의 V8 5.5 리터 컴프레서 엔진은 500마력을 발휘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M5의 400마력을 100마력이나 앞서는 수치다. 이 후 S55 AMG, CL55 AMG가 차례로 선을 보였으며 E55 AMG에는 똑 같은 엔진을 476마력으로 낮추어 얹었다. AMG의 공격은 디젤엔진에도 이어져 C30 CDI AMG도 선을 보였다.
AMG 버전에서 자손심을 회복한 메르세데스-벤츠는 이제 기함인 S 클래스로 눈을 돌렸다. 이전까지 기함 S600은 V12 5.8리터 367마력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는데, V12 5.5리터 엔진으로 바꾸면서 트윈터보를 더해 500마력으로 성능을 대폭 향상시켰다. 최고의 안락성을 추구하는 럭셔리 세단에 500마력이라니…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곧 이어 최강의 AMG 라인을 추가했다. 바로 CL65 AMG로 V12 6.0 리터 트윈터보 엔진이 612마력의 출력을 뽑아낸 것이다. 이는 최강 페라리 575M 마라넬로의 515마력을 바로 기죽게 만드는 파워다. 이 AMG 엔진은 S65 AMG, SL65 AMG로 확대됐다. 아주 스페셜한 모델로, 예의 V8 5.5 리터 수퍼차저 엔진으로 582마력을 발휘하는 CLK DTM AMG도 등장했다. 최근에 카브리올레 버전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회심의 카운터 펀치는 F1 명문 멕라렌과 손잡고 선보인 울트라 럭셔리 수퍼카 SLR 멕라렌이다. 예의 V8 5.5 리터 수퍼차저 엔진으로 626마력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렇게 출력 경쟁의 장을 초토화 하다시피 한 메르세데스-벤츠는 다시 자연흡기 엔진을 개량하면서 약간의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신형 CLK55 AMG, SLK55 AMG, C55 AMG에 360마력대 V8 5.5 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얹은 후 최신 ML63 AMG에도 V8 6.3 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얹은 것이다.
이처럼 현재 스포츠 모델에서 가장 강력하고 화려한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는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AMG이지만 국내 실정은 이와는 정반대다. 2002년 347마력의 ML55 AMG를 선 보인 이 후 V8 수퍼차저 엔진의 AMG 모델 수입은 바로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한성자동차가 AMG 라인업 확대에 뜸을 들이고 있는 동안 그레이 임포터를 통해서 들어온 SL55 AMG는 큰 인기를 누렸으며, E55 AMG도 공식적으로 수입되기 전 이미 여러 대가 들어온 것으로 알려 졌다. 현재는 E55 AMG와 CLS55 AMG가 공식 수입되고 있지만 더 이상의 AMG 라인업 확대 계획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결국 또다시 SLK55 AMG와 SL65 AMG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최신 AMG 모델들이 그레이 임포터를 통해 소수이긴 하지만 속속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며, SLR 멕라렌도 이미 최소한 4대 이상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L65 AMG
한편, 아우디 코리아의 최근 동향이 심상치 않다. 2004년 5대 한정으로 RS6를 선보인 이후, 아우디 코리아 출범과 함께 시장을 급격히 확대하던 아우디는 최근 TT 3.2 콰트로로 선전포고를 한 데 이어, S4로 스포츠세단 시장에 포문을 열었다. 이제 곧 그 뒤를 이어 S6, S8, RS4로 이어지는 융단 폭격을 감행할 예정이다. 아우디의 이들 스포츠 모델들은 강력한 엔진은 물론, 최고의 장기인 콰트로로 무장한 만만치 않은 실력의 소유자들인 만큼 국내 시장 판도가 어떻게 변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S4는 구형의 V6 2.7 트윈 터보 250마력 엔진을 버리고 소형 차체 임에도 V8 4.2리터 344마력 엔진을 얹었다. M3의 343마력을 능가(?)하는 수치다. 물론 상대적으로 무거운 V8 엔진과 자동 변속기라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아우디의 장기인 4륜 구동 콰트로로 무장했을 뿐 아니라 M3가 2도어인데 비해 S4는 4도어여서 실생활에서의 실용성 또한 앞선다.
S4도 충분히 강력하지만 아우디는 더 강력한 복병을 대기시키고 있다. 같은 V8 4.2 리터로 420마력을 뿜어내는 괴물 RS4가 그것이다. 이는 포르쉐 911 터보와 같은 파워다.
그리고 윗급의 S6와 S8도 내년에는 국내에 모두 소개된다. 이렇게 되면 아우디가 보유하고 있는 전 스포츠 모델을 풀 라인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행보로 볼 때 가장 강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형 RS6는 물론이고 미드십 수퍼카인 R8도 국내에 소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RS4
가장 먼저 시장을 선점하고 또 가장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었던 BMW M시리즈의 행보는 최근 지지부진이다. F1 기술이 투입된 최신형 V10 5.0 리터 엔진으로 최고 500마력을 뿜어내는 강력한 M5와 M6가 이미 세계 무대에 선을 보인지 오랜데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세계 무대에서는 Z4 M 로드스터와 Z4 M 쿠페, 보다 강력한 V8 심장을 이식 받을 것으로 보이는 신형 M3의 개발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어 국내 M 시리즈 팬들은 군침만 삼키고 있는 상황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가장 강력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으면서도 국내에서 E55 AMG와 CLS55 AMG, 두 모델을 선보인 이후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
이 틈을 노려 가장 후발 주자라 할 수 있는 아우디가 국내 스포츠세단 시장을 노리고 있다. 전례가 없었던 스포츠 풀 라인업 구축으로 시장을 장악할 태세다. 물론 아우디가 노리는 것은 스포츠라인에 국한 된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들은 결국 스포츠 라인을 통해 얻은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업고 럭셔리 카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옛말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지만 기자는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고 싶다. BMW M, 메르세데스-벤츠 AMG, 아우디의 S, RS. 이들 강력한 전사들이 이 땅에서 싸운다면 물론 누군가가 승자가 되겠지만, 이 땅의 고객들 역시 그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글 / 박기돈 (메가오토 컨텐츠팀 실장)
기사&사진 제공 : 글로벌 오토뉴스(http://global-autonews.com )
'Auto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기능이 이런 곳에, 생뚱맞죠? (8) | 2005.12.17 |
---|---|
엔진 테크놀러지로 보는 BMW와 그 미래 (4) | 2005.12.14 |
완벽한 힐앤토 구사하는 TT 3.2 콰트로 DSG (14) | 2005.11.28 |
경차(輕車) 이야기 (8) | 2005.11.13 |
한국시장과 일본차 업체 (6) | 2005.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