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보시죠.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거나 묻혀 있던 보물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은 배가 된다. 최근 기자를 들뜨게 했던 보물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아우디 TT 3.2 콰트로의 DSG 변속기가 그것이다.
특히나 예쁜 차를 좋아하는 기자이다 보니 아우디 TT 쿠페는 등장과 동시에 기자의 드림카 리스트 맨 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차였다. TT쿠페가 수입되고 뒤이어 TT로드스터가 소개되고, 그리고 수동변속기 모델만 있던 라인업에 팁트로닉 변속기가 더해지면서 TT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져갔다. 하지만 애정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 TT는 오랫동안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관심은 조금씩 식어갔다. 그 즈음 아우디는 TT에 3.2리터 엔진과 수동변속기 베이스의 DGS 변속기를 장착한 TT 3.2 콰트로 DSG 모델을 선보였다. 사진으로 소개된 야릇한 오랜지색 보디의 새 TT는 성능에 대한 기대를 더하게 했다. 하지만 TT 1.8 콰트로 모델도 들어오지 않았던 국내 시장인지라 3.2 콰트로에 대한 기대는 사뭇 기대에만 그칠 가능성이 높았다. 이 후 콰트로 스포츠 모델이 추가 되고 급기야는 차 세대 TT에 대한 이야기까지 새어 나오게 되었다.
그러던 지난 달 아우디에서 TT S 라인과 함께 3.2 콰트로 DSG 모델을 수입했다. 하지만 어쩌랴, 오랜 기다림으로 열망이 식어 가고 있는 것을.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난 옛 애인을 만나는 기분으로 TT 3.2 콰트로 DSG를 시승했다. 이미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수 많은 새로운 모델들을 만나본 터라 한 세대 전 모델이다시피한 TT는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예전에 다소 불편하거나 개선의 여지가 있었던 부분도 별로 개선되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였다. 새롭게 얹은 250마력짜리 3.2리터 엔진은 충분히 강력하지만 작은 차체에 3.2 리터 엔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같은 3.2리터 배기량으로 343마력을 내는 BMW M3나 포르쉐 911(996 초기)의 3.4리터 300마력 엔진에 비해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T는 여전히 예뻤고, 특히 오렌지색 보디 컬러와 티타늄 패키지로 장착된 티타늄 컬러 부품들은 식어 가는 열정을 다시 불태울 듯 자극적이었다.
강력한 엔진과 함께 3.2 콰트로 모델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콰트로 시스템과 DSG변속기다. 콰트로 시스템이야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아우디의 대표병기인 만큼 탁월한 안정감으로 보다 적극적이면서도 믿음직한 달리기를 선사해 주었다.
DSG 변속기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첫 번째는 폭스바겐 골프 TDI와의 만남이었는데 수동변속기를 베이스로 개발된 반 자동 변속기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부드러운, 아니 오히려 왠만한 자동변속기보다 더 부드러운 변속과 뛰어난 성능, 그리고 자동변속기를 쏙 빼 닮은 클리핑 기능 등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DI 디젤 엔진의 뛰어난 성능에 가려지고, 또 고회전을 사용하지 못하는 디젤엔진의 특성상 그 빛을 다 발하지 못했던 터였다.
사실 그런 이유들로 인해 이번에도 DSG 변속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고 3.2엔진과 매치된 콰트로 시스템의 성능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촬영을 위해 길을 떠나면서 아우디나 폭스바겐 차를 타면 으레 그랬듯이 변속기를 S 모드로 옮겼다.
그런데…
달랐다. 너무나 부드러운 변속과 자동변속기 같은 느낌은 여전했지만 기어 운영 방식이 저 번 TDI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과격했다. S 모드에서 엑셀을 깊이 밟으면 반드시 레드존 근처에 가서 변속이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는 S 모드에서도 엑셀을 밟는 정도에 따라 변속 포인트가 다르기 마련인데 이 DSG는 보다 과격했다. 거의 매번 레드 존까지 끌고 올라갔다. 더 이상 엑셀을 밟지 않고 유지해도 시프트업을 금방 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아니 어쩜…
고속으로 달리다 커브에 진입하기 위해 급 브레이크를 밟자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여주는가 싶더니 ‘윙’ 하는게 아닌가? 아니 이게 뭐지? 어떠한 충격이나 차체의 변화도 없이 엔진 소리만 높아졌기에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힐앤토(heel and toe)였다. 사실 힐앤토는 수동변속기에서 드라이버가 행하는 동작이지만 이 DSG 변속기는 스스로 힐앤토와 같은 동작을 한 것이다.
고회전을 사용하면서 주행하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회전수가 떨어지면서 4,000rpm을 약간 지나 3,800rpm 근처에 이르러 완벽한 힐앤토로 회전수를 5,000rpm 근처까지 올리며 기어를 한 단 내려준다. 이때 전혀 진동이 없이 부드럽게 진행되는 데 한 번 놀라게 되며, 힐앤토 특유의 ‘윙’하는 경쾌한 회전 상승음에 한 번 흥분하게 된다.
당연히 코너 정점을 지나면서 재 가속하면 강력한 토크를 뿜으며 탈출할 수 있다.
물론 수동 변속 모드에서 플리퍼나 기어레버를 이용해 기어를 내릴 때도 멋진 힐앤토를 선보인다. 실제 레이스라면 상황에 따라 드라이버가 기어를 선택할 수 있는 수동 모드가 더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굳이 레이스가 아니라면, 오히려 S 모드에서 더욱 멋진 힐앤토를 만끽할 수 있다.
아우디나 폭스바겐 자동변속기의 S모드는 상당히 다이나믹하면서도 편하게 운전 할 수 있게 해 주는 시스템으로 기자가 선호하는 변속모드다. 그런데 DSG에서의 S모드는 평범한 운전자로 하여금 말 그대로 프로 레이서 수준의 기술을 구사하게 해 준다.
뭐 그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이미 BMW 등의 자동변속기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회전수를 보상해 주는 변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경우와는 달랐다. DSG는 보다 더 세련되었을 뿐 아니라 수동모드는 물론이고 S모드에서 거의 완벽하고 강력하게 힐앤토를 구사해 준다.
게다가 일반 자동변속기가 아닌 수동변속기 베이스의 DSG가 아닌가? 유사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BMW의 SMG나 페라리, 마세라티의 F1 변속기와 비교해 보더라도 그 부드러움과 완성도의 차이는 더욱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잠깐 힐앤토에 대해 알아보자. 레이싱에서는 높은 토크를 추출하기 위해 고회전 영역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코너 진입을 위해 속도를 줄이면, 코너 정점을 지나 재 가속을 위해 엑셀을 밟아도 낮아진 회전수로 인해 높은 토크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기어를 내려줘야 하는데, 가속 해야 할 시점에서 기어를 바꿀 경우 그 만큼 시간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며 브레이킹에서 엑셀링으로 전환 시 불필요한 충격 또한 발생하게 된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힐앤토인데 코너 진입 시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는 동시에 변속까지 함께 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무게중심에 변화를 주지 않고 부드럽게 변속 하기 위해서는 클러치의 연결을 끊은 다음 기어에 맞게 회전수를 올린 후 클러치를 연결 시켜야 한다. 하지만 왼발은 클러치를 조작하고 오른 발은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는 회전수를 맞추기 위해 엑셀을 밟아줄 발이 없으므로 오른발의 발끝(Toe)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상태에서 발 뒤꿈치(Heel)를 틀어 엑셀을 튕기듯 밟아주면 된다. 이렇게 회전수를 높인 다음 클러치를 연결하면 충격 없이 변속을 마무리 할 수 있다. 이 것이 힐앤토 기술이다. 이 힐앤토 기술은 감속 시 굉장히 효율적이며 부드러운 변속이 가능해 레이싱에서는 필수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그런 기술을 DSG에서 만날 줄이야.
DSG 변속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더불어 아우디 TT 3.2 콰트로도 다시 보게 되었다. 강력한 엔진에 콰트로의 뛰어난 주행안정성, 수동 변속기와 같은 성능과 연비에 수동 변속기 운전의 재미까지 더했으니, 정말 자극적인 코너링 머신이 아닐 수 없다.
DSG 변속기는 최근 동경 모터쇼를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최강의 스포츠카 부가티 베이론 16.4에도 장착되었다고 하니 그 신뢰도 또한 확실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앞으로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에도 E기어 대신 DSG가 달리지 않을까?
이제 곧 폭스바겐 골프 GTI도 DSG를 달고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GTI 또한 놀랄 만큼 매력적인 가격에 소개될 전망이라고 하니 골프 GTI와 DSG 변속기의 뛰어난 하모니 또한 기대해 마지 않는다.
글, 사진 / 박기돈 (메가오토 컨텐츠팀 실장)
기사&사진 제공 : 글로벌 오토뉴스(http://global-auto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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