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증에 걸린 전직 CIA의 요원 제이슨 본(Jason Bourne)은 밤마다 알 수 없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 악몽이 바로 자신이 예전에 실제로 겪었던 일임을 확신하는 제이슨 본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CIA를 피해 연인 마리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자신이 쫓겨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던 도중 연인 마리는 CIA 요원에게 살해되고, 제이슨은 자신이 모종의 음모에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여러 가지 단서들을 이어가던 제이슨은 러시아 하원의원 네스키와 그 부인의 피살사건과 자신이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네스키는 러시아에 자본주의가 도입될 무렵에 카스피 해안의 석유개발 산업을 민간에 공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러시아 하원의원이었다. 그러나 석유채굴권을 차지하려는 막후에는 CIA가 개입된 자금 횡령의 계략이 숨어 있었다.
이번 영화는 맷 데이먼 주연의 「본 슈프리머시(Bourne supremacy)」이다. 이 영화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단어 ‘슈프리머시’의 사전적 의미는 최고, 최상권(最上權), 패권(覇權)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필자가 가진 영한사전에는 이 단어가 없었다. 물론 그 사전은 15년 전에 구입한 것이기는 했지만…. 결국 여기저기를 뒤져본 끝에 단어의 해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말의 부사형 단어 슈프림(supreme)의 뜻 거의 그대로이므로 의미를 대략 짐작은 하긴 했지만, 무언가 다른 뜻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영화 제목에서의 「본(Bourne)」은 주인공의 이름이지만, 처음에 필자는 뼈(骨)를 의미하는 본(bone)이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했기 때문에 얼른 의미를 떠올리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 궁금했었다. ‘최상급 뼈’ 라니?^^.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전편이었던 「본 아이덴티티(Borne identity)」라는 제목도 그냥 듣기만 했을 때는 ‘뼈의 정체(?)^^’ 라는 다소 으스스한 뜻으로 생각해서 혹시 공포영화의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의미(뼈!)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상 이런 ‘본 슈프리머시’ 라는 영화 제목을 영문법에 정확히 맞게 쓴다면 'Bourne the supremacy' 라고 써야 한다. 사람의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 뒤에 다시 일반명사를 붙여서 그 사람의 특징이나 직업 등을 설명할 때는 뒤의 명사 앞에 정관사 the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영화 제목이 이미 몇 개 있었는데, 지금 캘리포니아 주지사이면서 터미네이터의 주연 배우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아직은 무명이던 1980년대 초에 출연한 영화로, 그가 코난이라는 이름의 근육질의 전사로 나왔던 「코난(원제; Conan the destroyer)」이 그렇고, 하워드라는 이름의 오리가 주인공이었던 「하워드 덕(원제; Howard the duck)」이라는 영화 등이 그렇다. 만약 이들 영화 제목들을 원어 그대로 우리말로 음역하면 ‘코난 더 디스트로이어’, ‘하워드 더 덕’ 등으로 제목도 길어질뿐더러 말 자체도 조금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에 저와 같이 the를 빼고 줄여서 쓴 것일 게다. 하여튼…. 공연히 필자 역시 잘 알지도 못하는 영문법 이야기로 네티즌들을 따분하게 한 것은 아닐 지.^^
영화 속의 자동차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영화 ‘본 슈프리머시’에는 상당히 다양한 차들이 등장해서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와도 같았다. 등장한 차종들을 한번 따져 보면, 현대자동차의 뉴 EF 쏘나타를 비롯해서 기아의 프라이드, 스즈키의 지프형 차량 짐니(Jimmny), 구형 BMW 5시리즈, 푸조 607, 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와 그랜드 체로키, 벤츠의 S 클래스와 E클래스, G바겐, 사브 9-3 컨버터블, 폭스바겐 파사트와 아우디 신형 A4 그리고 슈코다 택시 등 이루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정말 많은 차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새로운 차종을 볼 때마다 기록하느라 필자는 약간 바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차들이 나오는 대신에 각각의 차들이 잠깐씩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비유하자면 마치 납작한 상자 안에 20여 대가 훤히 들여다보이게 포장된 중국산 미니카 장난감 세트 같은, 이를 테면 자동차의 가짓수는 많은데 미니카 하나하나의 디테일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은 느낌 같다고 해야 할까?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이들 중 눈에 띄는 차가 물론 있는데, 의외로 등장한 뉴EF쏘나타와 구형 프라이드도 그들일 것이다. 영화 속에 나온 뉴 EF 쏘나타는 은빛 차체로서 초기의 EF 쏘나타가 2001년도에 페이스 리프트(face lift)되어 뉴 EF 쏘나타로 나온 모델이다. EF 쏘나타는 쏘나타 Ⅲ에 이어 1998년에 등장한 모델인데, 처음 나온 모델은 중형 승용차로는 매우 젊은 취향으로 등장했고 중형 승용차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젊어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2001년에 바뀐 모습에서는 오히려 보수적인 크롬 도금된 장식적인 형태의 그릴을 달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상당히 역동적인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바뀐 쏘나타는 수출도 많이 되었는데, 아마도 네티즌들도 ‘모두가 잠든 사이 세상이 뒤집힌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뾰족한 미국의 고층빌딩이 뒤집히는 모습이 나온 뉴 EF 쏘나타의 TV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이 광고는 쏘나타의 품질 향상으로 미국에서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 광고에서 ‘뒤집힌’ 뾰족한 고층빌딩은 필자가 보았을 때는 분명히 미국 자동차 산업의 빅3 중의 하나인 다임러-크라이슬러 빌딩이었다. 이 광고에서 그 빌딩을 선택한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까? 아니면 광고 제작자가 그냥 우연히 그 빌딩을 골라서 ‘뒤집은’ 것이었을까? 사실 지금도 궁금하다.
영화 속에서 뉴 EF 쏘나타는 우리나라 메이커가 생산한 모델이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다른 차들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등장하기 때문에 강조되어 보인다. 더구나 맷 데이먼의 극중 대사에도 쏘나타를 가리켜 “that silver Hyundai” 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맷 데이먼도 우리나라의 쏘나타라는 차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등장한 우리나라의 차는 푸른색의 구형 프라이드인데, 사실 이 차는 영화 속에서는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고 배경 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필자도 처음 영화를 볼 때는 그 차가 프라이드인 것처럼은 보이는데 정확히 그렇다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자료를 뒤지다보니 영화의 스틸 사진(still cut)들을 볼 수 있었고, 마침 그 장면의 사진이 있어서 우리의 ‘프라이드’가 정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는 1987년 첫 등장 이후 10여 년 동안 무려 150만대 이상 시판된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 소형 승용차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차를 원래 개발했던 일본의 마쯔다는 6년 동안 96,000대밖에는 시판하지 못하고 말았다. 프라이드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시판되기 시작한 1988년에 프라이드는 국내에서는 가장 작은 배기량과 차체를 가진 차량이었다. 그렇지만 뛰어난 기동력과 1리터로 13km 이상을 주행하는 경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의외로 이 정도의 승용차 크기는 좀 어중간하다. 일본의 경승용차들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달리 배기량이 660cc밖에 되지 않는 정말로 작은 차들이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1,300cc의 소형 승용차로써는 ‘큰’ 편에 속한다. 그런 이유에서 의외로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가 샀던 첫 차도 바로 이 「프라이드」였다. 그 차를 처음 구입한 것이 1990년 5월 이었는데, 그 뒤로 5년간 13만km를 탔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것은 한번도 잔 고장 없이 그야말로 기름만 넣고 윤활유만 갈아주며 탔었다. 소형엔진의 내구성이 정말 좋았던 것 같다.(아니면 내가 차를 너무 혹사시킨 것일까?^^) 프라이드 이후로 몇 차례 다른 메이커의 다른 모델들로 차를 바꾸었지만, 그 이후의 차들은 스위치 같은 것이 망가져버리는 아주 사소한 고장에서부터 시작해서, 길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차가 서 버려 난감해 지는 등 말썽이 정말 많았었다.
기아의 프라이드는 포드의 「페스티바(Festiva)」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수출되었고, 그 이후 기아의 「프라이드」라는 이름으로는 대만에서 조립 생산되기도 하고, 중고차 형태로도 동남아와 인도, 중국, 아프리카 등지로 수출이 되었다. 아마도 이 영화에 등장한 프라이드도 인도에 중고차로 수출된 차량이 등장한 것인 듯하다. 사실 외국에서 조립생산 된 프라이드 모델은 국내에 시판된 여러 종류의 변형된 모델은 아니었고, 초기의 원형에 가까운 디자인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스쳐 지나간 푸른색의 차량은 1993년 이후부터 국내에 시판되었던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등이 바뀐 디자인의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중고차 형태로 수출된 것이리라.
영화에 등장하는 차들 중 대부분은 잘 알려진 ‘유명한’ 모델들 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차도 하나 등장한다. 그것은 지나가던 택시로 나온 흰색의 「슈코다(Skoda) 」이다. 슈코다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국영 자동차 메이커로써 지금은 폭스바겐 산하로 합병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소련 등의 동구권 국가를 위한 차량을 생산하기도 했다. 여기 등장한 슈코다는 당연히 체코가 공산국가이던 때에 그 당시에 유행하던 볼보의 차체 스타일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필자는 왠지 무난하고 소박한 이미지의 이 차 구형 ‘슈코다’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차의 스타일이 잘 됐다거나 좋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약간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간결하고 소박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이 차를 친근하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사실 자동차는 고성능의 첨단 이미지가 있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만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강력함이나 첨단의 이미지가 강한 것에는 다른 감성이 들어갈 틈이 없지만, 슈코다 같은 이런 ‘편안한’ 스타일에는 나름의 개성이나 감성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있다. 그래서 한 번 더 쳐다보게 되기도 한다. 물론 필자가 이러는 것에 ‘촌스러운 차를 두둔 한다’ 고 생각하는 네티즌도 있을지 모른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필자는 여기에 국산차가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다양한 ‘자동차 종합선물세트’ 일 줄은 몰랐었다. 그런데 다양한 차들 속에서 등장하는 우리의 차들을 보면서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한국차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 그 비중이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의 자동차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물론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한국의 차들은 어느새 세계 시장에서 ‘슈프리머시’를 가지고 있게 되지 않을까? 그 과정을 비유해서 이야기 한다면 이 영화의 시리즈 제목이 그런 것처럼 ‘코리언 아이덴티티’와 ‘코리언 슈프리머시’ 라고 하면 어떨까? 영화 「본 슈프리머시(Bourne supremacy)」의 구성과 내용은 첩보영화였지만, 우리나라의 자동차를 생각할 수 있는 영화였다.
원문 : 이곳
제공 : 삼성교통박물관(http://www.stm.or.kr )/글 : 구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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