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자동차 산업계의 가장 큰 화제중의 하나는 바로 크라이슬러와 메르세데스-벤츠 간의 합병이었다. 그 대 사건 이후 많은 관심이 다임러 크라이슬러에 쏠린 가운데 거대한 두 회사간의 합병의 첫 결실이 태어났다.
바로 크로스파이어다. 하지만 세계 언론을 통해서는 많은 관심을 받은 반면, 정작 국내에서 그 실물을 만나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내 지난 2004년 다임러 크라이슬러 코리아를 통해 크로스파이어가 쿠페와 로드스터 모두 국내에 선을 보였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크로스파이어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첫 합작품으로, 그 성격 또한 과도기적인 성향이 강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두 회사의 시너지로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모델이 아니라 기존 벤츠의 모델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면서 디자인과 일부분만 크로스파이어에 맞게 재해석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생산은 독일의 카만에서 한다.
그 베이스가 된 모델은 1996년 등장한 메르세데스-벤츠의 SLK다. 물론 크로스파이어가 3.2 리터 엔진 사양만으로 출발한 것을 감안한다면 SLK320의 등장은 1996년이 아닌 2001년이 되긴 한다. 어쨌든 메르세데스-벤츠의 소형 럭셔리 로드스터이면서, 하드탑 컨버터블인 바리오루프를 탑재한 세계 최초의 모델이자 또한 베스트셀러인 SLK가 크라이슬러의 색깔을 띄고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같은 플랫폼을 가지고 서로 다른 두 회사가 서로 다른 모델을 선보이는 경우는 사실 이제는 흔한 일이어서 그 예를 다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크로스파이어의 경우는 그 과정이 좀 더 특이하다. 꼬집어 말하자면 곧 그 생명이 다할 모델인 SLK를 보다 대중적인 브랜드인 크라이슬러가 얻어 와서 자신들의 옷만 입혀 새차로 선을 보인 꼴이다. 그 과정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SLK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바리오루프는 사라졌다.
이렇게 등장한 크로스파이어는 과연 어떤 색깔을 띄게 되었을까?
언론을 통해 선보인 크로스파이어의 모습은 일단 성공적이라 할 만큼 멋졌다. 그 겉 모습만 보아서는 어디에서도 SLK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외형 디자인은 완벽하리 만치 크라이슬러 다운 모습이다. 그것도 아주 멋진…… 시승차의 파스텔 느낌이 약간 가미된 파란색도 멋지다. 은은하면서도 화려하다. A필러와 윈드실드를 아우르는 아치의 은색과의 조화도 멋지다. 쿠페를 고른다면 꼭 이 파란색을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그 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한 눈에 이 차가 SLK임을 알아 차릴 수 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버튼과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그대로 가져왔다. 너무나 오랫동안 보아온 그 모습 거의 그대로 여서 적잖이 실망스럽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그나마 다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건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이 바뀌었고, SLK에서 AMG 패키지로 선보인 두터운 가죽시트를 전동식으로 장착했다는 점 정도. 편의성에서 수준 이하였던 SLK의 다이얼 타입 리클라이닝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자 이제 직접 크로스파이어의 시동을 걸고 그 세계를 경험해 보자.
첫 대면장이었던 발표회장에서 만난 크로스파이어 로드스터와 쿠페는 솔직히 어느 것 하나 덜 예쁜 것이 없었다. 로드스터는 로드스터대로 예뻤고, 쿠페는 쿠페대로 멋졌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던히도 고민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기자에게 그런 고민을 할 여유는 없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두 모델을 차례로 타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기자가 먼저 타보게 된 건 크로스파이어 로드스터였다. 그것도 연노랑색으로 이틀, 은색으로 사흘을… 그런데 로드스터를 시승하고 나자 쿠페를 타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 졌다. 결국 쿠페를 시승하면서 흥분 속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미 로드스터는 시승기로 선을 보였으므로 이제 크로스파이어 쿠페를 타 본 소감 중 인상 깊었던 점 몇 가지와 로드스터와의 차이점 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크로스파이어 쿠페의 대표적인 장점을 들자면 뛰어난 운동성능과 멋지고 개성 있는 디자인, 벤츠에서 이식되어진 높은 품질,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 등을 들 수 있겠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 뿌리인 SLK는 럭셔리 소형 로드스터 부문에서 베스트 셀러였으며 이제는 유행이 된 하드탑 컨버터블의 원조다. 이 두 가지 특징이 가지는 성격에서 스포츠성은 다소 약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벤츠다운 여유와 안락함을 버릴 수 없었고, 하드탑 컨버터블의 특성상 무게배분과 중량등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 다른 경쟁 로드스터에비해 짧은 휠 베이스와 국내에 많이 보급된 SLK230K의 경우에 해당하는 컴프레서 엔진의 급격한 파워 상승 등으로 인해 다소 심한 오버스티어를 연출하는 결점 등을 안고 있었다. 물론 첨단 ESP가 안정적인 자세를 잡는데 큰 도움을 주긴 하지만 말이다.
크로스파이어는 이런 SLK의 유전자를 이어 받으면서도 높은 운동 성능을 추구한 변화를 이루었다. 하드탑 컨버터블 대신 소프트탑 또는 아예 높은 강성을 실현한 쿠페로 그 보디스타일을 바꾸었으며, 보다 단단한 하체를 위해 서스펜션을 손봤다. 그리고 엔진은 자연흡기 엔진인 V6 3.2L만 얹었다. 그리고 시승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변화는 초 광폭 타이어의 적용이다. 이런 일련의 변신으로 인해 크로스파이어는 SLK의 고질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었던 심한 오버스티어를 극복하고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뛰어난 그립력을 갖추게 되었다.
우선 보디 스타일에서 하드탑 컨버터블은 무거운 하드탑을 닫았을 때와 열었을 때 중량 배분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닫았을 땐 앞쪽에, 열었을 땐 뒤쪽에 상당한 중량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쿠페와 로드스터 양 쪽 모두 뛰어난 중량 배분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소프트탑을 장착할 경우 그 무게가 하드탑에 비해서는 가벼우므로 다소 덜 불리하다. 거기다 아예 쿠페 형태일 경우 그런 문제는 완전히 없어질 뿐 아니라 뛰어난 강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크로스파이어에는 쿠페가 더욱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엔진에서는 벤츠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대표적인 엔진인 V6 3.2L 엔진만을 얹었다가 나중에 SRT-6 버전이 추가되었다. 시승차는 물론 V6 3.2L로 최고출력 219마력/5,700rpm, 최대토크 31.6Kg.m/3,000rpm의 힘을 발휘한다. 자연흡기 엔진이라 높은 배기량에서 얻을 수 있는 큰 파워와 토크가 매끄럽게 전달되는 점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은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이 엔진은 환경친화를 외치며 개발한 벤츠의 SOHC 3 밸브 엔진인지라 보다 강력한 파워를 추출해 내는 고성능형 DOHC 엔진과 비교할 때 배기량에 비해 출력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벤츠는 최근 DOHC로 다시 돌아섰다. BMW, 아우디와의 출력 경쟁을 좌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더 앞선 기술 개발로 인해 DOHC엔진으로도 뛰어난 친환경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크로스파이어로 볼 때는 새롭게 개발된 벤츠의 고성능 V6 3.5L 엔진을 새로 이식 받을 가능성도 없어 보이므로 어쩔 수 없이 만족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작은 차체의 크로스파이어에는 이 엔진으로도 충분한 고성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크로스파이어는 0 ~ 시속 100Km 가속 6.5초, 최고시속 242Km 의 고성능을 발휘한다.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라면 뛰어난 그립력을 들 수 있겠다.
스티어링 휠을 잡았을 때 가장 먼저 와 닫는 것이 그 부분이었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도 노면을 움켜 쥔 듯한 뛰어난 그립력을 느낄 수 있다. 이는 탄탄한 서스펜션 세팅에 더해 앞 225/40ZR18, 뒤 255/35ZR19 사이즈의 광폭 타이어 적용으로 인한 것이다.이로서 가히 충격적으로 놀라운 그립을 자랑하면서 옆 모습에서는 강렬한 카리스마도 선사한다.
스티어링은 SLK와 같은 리서큘레이션 볼 타입이긴 하지만 리어에 비해 한 치수 림폭이 좁은 프론트 휠을 장착하였고, 넓은 트레드와 미끄러질 줄 모르는 그립력이 더해져 날카롭고 과감한 코너 공략이 가능해 졌다. 크로스파이어는 엄청난 핸들링 머신으로 거듭난 것이다.
고갯길에서 크로스파이어는 그 진가를 발휘한다. 지칠 줄 모르는 뛰어난 그립으로 코너링 한계 속도를 끌어 올렸고, 높은 파워는 크로스파이어를 밀어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SLK가 가지고 있었던 오버 스티어의 망령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한계를 넘어설 경우 벤츠의 첨단 ESP가 끼어 들어 자세를 바로 잡아준다. 하지만 자신이 있다면 ESP의 도움 없이 짜릿한 주행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ESP를 끄고 스티어링 휠을 한껏 꺾고 기어를 1단에 고정한 후 엑셀을 살짝 튕기듯 눌러 주면 크로스파이어는 쉽게 스핀 턴도 할 수 있다. 그 만큼 힘이 넘쳐 난다는 뜻이다.
사실 로드스터가 멋지긴 하다. 원하면 마음껏 하늘을 받아 들일 수 있다는 것은 더 없는 매력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크로스파이어 로드스터는 탑을 닫은 상태에서 소음 유입이 심했다. 솔직히 기자가 타본 여러 오픈카 들 중 하위에 속했다. 터널을 지날 때면 정신이 없을 정도였으니…… 그런 점을 차치하고라도 스포츠카로 거듭난 크로스파이어라면 강성과 무게, 공기저항 등을 고려할 때 그 뛰어난 성능을 만끽할 수 있는 쿠페가 제격이다. 거기다 둥글게 떨어지는 루프라인은 그 어떤 차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멋진 뒷 모습을 선사한다. 포르쉐를 닮은 와이드 펜더와 가변식 리어 스포일러는 덤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넉넉한(?) 화물 공간까지 얻을 수 있다.
크로스파이어 쿠페의 가격은 5,670만원이다. 그 성능을 감안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가격이다. 그런데다 크라이슬러의 프로모션 등을 이용한다면 훨씬 더(놀랄 만큼) 저렴하게 구입할 수 도 있다. 얼마나 현실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영업소를 방문해 보기 바란다.
크로스파이어 쿠페 썸네일
장점
- 크라이슬러가 빚은 멋진 외부 디자인
- 차체에 비해 넉넉한 V6 3.2L 자연 흡기 엔진의 넉넉한 파워
- 초 광폭 타이어의 적용으로 인한 카리스마 넘치는 외관과 강력한 노면 장악력
- 2인승 쿠페이면서 뒤에 적당히 확보된 화물 공간
-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가격
단점
- SLK를 통해 이제는 식상해져 버린 실내 디자인
- 텔레스코픽만 되고 틸팅은 되지 않는 스티어링 휠 (차라리 그 반대인 경우 보단 낫다)
- 업그레이드 되지 않은 벤츠의 초기 수동 겸용 자동 5단 트랜스미션(굳이 단점이라기 보다는 신형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바람)
기사&사진 제공 : 글로벌 오토뉴스(http://global-auto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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